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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을 의지하는 아하시야 1:1~4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엘리야의 말을 전달한 사자들 1:5~8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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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자 사자를 바알세붑에게 보내 자기 병이 나을지 묻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자(천사)가 이른 대로, 아하시야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알세붑에게 물었기에 죽을 것이라고 왕의 사자에게 전합니다. 아하시야는 그 말을 전한 자가 엘리야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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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을 의지하는 아하시야 1:1~4
어려울 때 무엇을 찾느냐가 그의 신앙을 보여 줍니다. 아하시야가 2층 난간에서 떨어져 심각한 병에 걸립니다. 그는 바알세붑에게 사자들을 보내 자신의 병에 대해 묻게 합니다. 바알세붑은 ‘파리들의 주’라는 뜻으로, 에그론 지역에서 섬기던 신으로 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자 바알을 먼저 생각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세붑을 의지하며 섬겼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무시하고 인간이 만든 우상인 바알세붑에게 묻는 악한 행동을 책망하시면서 아하시야에게 죽음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요, 모든 문제를 아시고 해결하시는 분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자 누구를 찾았나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내가 가장 먼저 찾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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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말을 전달한 사자들 1:5~8
왕의 사자들은 바알세붑에게로 가지 않고 왕에게로 돌아갑니다. 왕의 명령보다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아하시야가 바알세붑에게 사자들을 보낸 일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한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전해 들은 아하시야는 겸손히 회개하기보다 누가 그 말을 전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털이 많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다’는 말에 그는 엘리야임을 단번에 알아차립니다(8절). 엘리야의 상징이 된 그의 독특한 복장은 그가 항상 쫓겨 다니며 광야나 산에서 살았음을 보여 줍니다. ‘털이 많은 사람’은 ‘털옷을 입은 사람’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겸손히 응답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선언을 들었음에도 아하시야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였나요?
하나님의 경고에 나는 어떻게 응답하나요?
한절묵상:열왕기하 1장 2~3절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하시야는 하나님을 찾으며 나라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들었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정말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물으러 가는 것이냐?"(3절)라고 천사가 그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아하시야라는 그의 이름에만 하나님이 있을 뿐, 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자기 삶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헛된 소망은 진정한 치유와 진보를 막는 유해하고도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찰스 콜슨
오늘의 기도
하나님, 어디든 계시고 무엇이든 아시는 하나님을 먼저 찾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그 감정에 속지 말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저를 살리시고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히는 은혜를 주소서.
오늘의 찬송(새 340 어지러운 세상 중에)
본문으로 들어가기: 열왕기는 아합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아합은 나봇을 죽이고 이스라엘 땅에 바알 신앙을 퍼뜨린 인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죽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아버지의 길과 어머니의 길을 따라 행한 악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 단락에서는 아하시야와 엘리야의 만남을 통해 그가 왜 악한 왕으로 평가되었는지 알려주고 있다.
단락 구분
1절 모압의 반역
2~4절 여호와의 말씀을 왕의 사자에게 전달한 엘리야
5~8절 왕에게 엘리야의 말을 전달하는 왕의 사자
9~12절 왕의 부름을 거절하는 엘리야
배경이해
이 본문에서 등장하는 신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이다. ‘세붑’은 ‘파리’라는 듯으로 바울세붑은 직역하면 ‘파리 떼의 왕’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우두머리 바알’이란 뜻의 ‘바알세불’을 의도적으로 변조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바울세불이라고 부르는 경우 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사탄을 바알세불이라고 부른다. 우가릿의 주문들은 질병 귀신들을 내쫓기 위해 바알세불에게 기원하곤 하였다. 그렇기 대문에 바알세불로 보는 경향이 많아. 하지만 그냥 ‘바알세붑’으로 보는 경우에는 이방신에 대한 경멸적 표현으로 해석한다. 즉, 열왕기 화자는 이방신의 신탁을 파리 데가 윙윙거리는 소리로 점치는 것과 같은 무가치한 것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순간 그분만을 붙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매순간 가장 먼저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도록 하자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역을 위해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이들을 위해서라도 늘 그분을 의뢰하고, 의지하도록 하자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4절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의 운명을 결정하십니다. 아하시야는 자기 운명을 알려고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불운을 바꿔보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헛수고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라와 통치자의 흥망성쇠를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하시야의 비극적 운명을 통보하려고 하늘로부터 사자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며 살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3절 아하시야는 하나님보다 바알세붑을 더 의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붙드셨다’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여호와 신앙을 천명하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답지 않게, 위기의 때에 그가 찾은 것은 여호와가 아니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입니다. 애초부터 그의 삶에 여호와의 자리가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손 내미는 대상이 바로 내가 섬기는 신이며 나의 주인입니다.
5~9,11절 아하시야는 자신의 죽음을 선포한 사람이 엘리야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이유가 자신의 불신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릎을 굽히기보다, 선지자의 무릎을 꿇리려고 군대를 보냅니다. 그의 행동은 무모한 도발이고 가장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말씀을 굽게 만들려면,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굴복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며,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4,10,12절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는 진정한 말씀의 사자였습니다. 그는 왕의 서슬 퍼런 위협에도 왕의 죄를 고발하며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속히 내려오라’는 왕의 준엄한 명령에도, 굳게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말씀의 사자가 동시에 세상 권력을 대변하는 왕의 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침묵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내게 주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말씀의 전달자로 삽시다.
기도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신실한 종이 되게 하소서.
(왕하 1:1~8절)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를 물으러 신하들을 보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왕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왕의 신하들은 그 이야기를 왕에게 전합니다. 왕은 그가 엘리야인줄 알고 그를 잡으로 두 번이나 오십부장과 군사를 보내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군사들을 사르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4절).
‘아합이 죽은 후...’ 아합은 오므리 왕조의 두 번째 왕으로 북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그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이스라엘을 강력한 나라로 만들었지만, 성경에는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악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북이스라엘 창건 이래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던 오므리 왕조의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고, 급기야 모압의 독립을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좇아간 오므리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합을 이어 왕위를 이어받은 아하시야가 어느 날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에 듭니다. 그래서 그는 블레셋 에그론의 신인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이 병이 낫겠는지 물어 보라 명합니다(2절).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사자들을 만나 하나님의 사자에게서 받은 메시를 전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바알세붑에게 묻느냐?...네가 반드시 죽으리라...’(3~4절). 하나님의 백성이 구하고 찾아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고, 묻는 것은 언약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아하시야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했습니다. 왜? 바알세붑이 가장 큰 신이고 능력이 있는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럽게 당한 사고나, 내 능력으로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삶의 환경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열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현재 처한 삶의 환경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할 때,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통의 현실 너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한 채 다른 방법으로 현실의 문제를 회복해 보겠다고 하는 것은 곧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의 말씀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5~8절).
징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지라도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우려야 합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절).. 유대인들은 죄로 인생의 문제를 풀어가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인생의 문제를 풀어가셨습니다.
징계의 메시지가 나에게 다가올 그 때가 바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심판의 말씀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영적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하시야는 유다 왕 여호사밧 17년에 사마리아에서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다스리게 됩니다(왕상 22:51).
그가 조금만 돌아보았다면 부모인 아합과 이세벨이 그들의 악행과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일에 대해 깨닫고 돌이킬 수 있었지만, 여전히 바알을 숭배하고 그 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끝까지 긍휼로 허락했던 힘을 약화시키고, 모압으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하셨고(1절), 아하시야는 크게 다쳐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2절).
그는 나라가 흔들리고, 자신의 육신까지 무너지면서도, 여전히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치료에 대해 묻도록 사자를 보냅니다(3절).
여호와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엘리야에게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그에게 임한 죽음의 심판에 대해 그 사자들에게 전하여 그 패역과 우상 섬김을 넘어서 천하 만물을 다스리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의 존재를 알리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3,6절)’은 마치 지금을 살아가는 이 세상과 믿음의 사람들에게 외치시는 음성으로 들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우리의 존재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방황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눈앞에 놓인 세상적 탐욕과 생활의 염려 앞에, 신앙이 힘을 잃고 사탄이 주는 낙심에 영혼을 내어주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으라는 베드로 사도의 외침을 듣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을 여호와의 말씀에 못 박고, 우리의 생각을 주님을 바라보는 기도 아래 가두어, 악한 세력이 갑옷 솔기를 뚫고 들어오게 끊임없이 쏘는 불화살을 넉넉히 막아 낼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신 영적 승리의 토대 위에 개선가를 부르는 담대한 그리스도의 증인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질문은 해답을 가진 이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시115:4~7)
그런데 그런 우상이 무슨 해답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사울 왕은 무당에게 묻고 하나님께 묻지 않음으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대상10:14)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42:4)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해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묻는 자가 해답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묻고 듣고 그 영광 뵈옵기 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레10:3)
오늘의 말씀요약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사자를 보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사자가 이른 대로 왕의 사자를 통해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알세붑에게 묻는 왕이
죽을 것이라 전합니다. 아하시야는 그 말을 전한 자가 엘리야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우상을 의지하는 아하시야(1:1~2)
하나님은 어려움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아하시야가 즉위한 후 모압의 배신 등
본격적으로 북 이스라엘의 쇠퇴 조짐이 드러납니다. 성경 원문에는 접속사를 통해 모압의 배신 직후에
아하시야가 떨어졌음을 보여 줌으로써 두 사건이 연관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의 추락은 아합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왕상 21:20~29). 아하시야 왕은 치유 여부를 알기 위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신하들을 보냅니다. 아합의 우상 숭배가 국가 쇠퇴의 발단이었다면,
환난 때에 여호와가 아닌 우상을 찾은 아하시야의 불신앙은 북 이스라엘의 쇠퇴를 가속화합니다.
아합 때부터 이어져 온, 뿌리 깊은 죄가 아하시야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었습니다.
주변에 널리 퍼진 죄로 인해 아무렇지 않게 죄에 발 담그고 있지 않은지 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아하시야가 어려울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아닌 이방 신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사주 카페와 철학관 등이 넘쳐 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결단과 기도를 하면 좋을까요?
아하시야를 향한 심판 예언(1:3~8)
언약 백성이 환난 중에 부를 이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아하시야가 우상에게 자신의 치유 여부를 묻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배교 행위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죽음을 예언하십니다. 은밀하게 추진한 일을 엘리야가 알고 있자
아하시야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아합 왕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엘리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기에,
아하시야의 마음에는 자신에 대한 예언 역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일수록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 묵상 질문: 바알세붑의 뜻을 물으러 보낸 사자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을 때,
아하시야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 적용 질문: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오늘의 기도
오늘의 운세와 점치는 곳을 곁눈질하며 마음이 흔들렸음을 고백합니다.
돌이키라 말씀하실 때에 일부러 듣지 않는 악함이 없는지
날마다 말씀으로 저를 점검하며 매일 더 정결한 성전이 되어 가게 하소서.
열왕기하 1:1~8 하나님의 경고에 둔감한 사람
먼저 왕상22:51에 보면 아합왕이 죽고 아들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왕이된다.
아하시아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범죄케한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왕상22:52)
바알을 섬겨 우상숭배하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케하며
그 아비 아합왕의 온갖 행위와 같았다(왕상22:53)라고
아하시아에 대해서 성경이 평가한다.
이런 아하시아에게 하나님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2가지로 손을 보신다.
첫째는 모압이 배반을 한다.(1)
둘째는 사마리아에 있는 왕궁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든다(2)
모압은 다윗왕때 정복되어서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치던 나라인데
아합왕이 죽자 독립을 선언한다. 국력이 그 만큼 쇠약해 졌나보다.
병을 얻은 것은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왕이 왜 왕궁 난간에서 떨어져 심각한 질병을 얻었을까?
둘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인생을 살다보면 질병을 얻을 수 있고 고난을 만날수도 있다.
그러나 질병과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처리방식 태도가 문제이다.
아하시아왕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병이 났겠는냐?라고
블렛셋(에그론)으로 사람을 보낸다.(2)
하나님이 가만히 계실리가 없다.
여호와의 천사가 디셉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3)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 오지 못하고 반듯이 죽을 것이다(4)라고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고 왕의 신하에게 가서 전하라고 해서 엘리야가 그대로 전한다.
왕의 신하들도 즉시 돌아가서 엘리야에게 들은 대로 왕에게 전한다(6)
왕이 화가 나서 물었을 것이다.
어떤 놈이 그 따위 말을 하더냐?(7) 라고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두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디셉사람 엘리야 인줄 왕도 알아 차린다(8)
왕들의 신하와 엘리야의 순종을 본다.
왕들의 신하도 왕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을 한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천사의 음성에 철저히 순종 함을 본다.
왕의 신하에게지만 왕이 죽을 것이다, 반듯이 죽을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용기있게 전달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
칭찬 들을 만한 일이면 조금 부풀려서 보고 드리고
책망 받을 만한 일이면 축소 왜곡 은패해서 보고하는 것이 나의 삶인데
엘리야는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음성 들은 대로 정확하게 전달한다.
두번째로 아하시야의 태도도 보고 싶다.
환란이 올때에 어려움이 올때에 하나님께 나아가기 보다는
이방에 바알에게 찾아가는 불신앙의 태도
하나님이 가장 싫어 하시는 우상숭배의 모습이 돌이킬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함을 본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아버지의 긍휼 아래 생명을 얻고
살아갈 힘을 공급받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눈앞에 놓인 삶의 큰 장벽과 마음과 생각을 짓누르는
근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사탄에게 내어 주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구원의 백성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 가운데 기름 부어주시고,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신음하고 고통받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에 백성들에게도 북 이스라엘 아합에게 베푸셨던
그 은혜와 긍휼을 허락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높이고,
허락하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겸손과 순종으로 반응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