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술집은 화폐 유통을 목적으로 생겼다.
주식점을 열어 유통을 꾀한게 그 시초이다.
별로 성과도 없었고 조선 때도 마찬가지 였단다.
영 호남의 대로에 주점이 있긴하나 술과 장작이 있을 뿐 잠자리는 없었다.
여행자는 부득이 식량과 여행 필수품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효종 때 점차 화폐가 유통되니 음식도 팔고 여자도 있는 주막이 유행했다.
주로 역 주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주막의 주(酒)는 술, 막(幕)은 집이다.
술과 음식과 잠자리까지 제공했다.
주막에는 주(酒) 또는 점(店)이라는 깃발을 내걸어 주요 상품을 강조했다.
주막의 여주인은 주모요.
잡일하는 소년을 중노미라 불렀다.
구한말에 이르러서 목로주점과 색주가가 성행했다.
술잔을 벌려놓는 길고 좁은 목탁 같은 탁자상인 목로에서 마시는 집을 목로주점이라 한다.
지금도 애창하는 이연실의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는 "목노주점"이 이런 분위기의 주점 이겠다~
여럿 안주를 늘어놓고 술 한잔에 안주 하나 술값만 받았다.
의자가 없으니 서서 마시므로 말 그대로 선술집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일제 때 망국의 한을 달래려고 더 마시니 여자와 술을 파는 색주가가
많이 생겨 술집을 더욱 번성시킨다.
오비 베어를 시작으로 스텐드바 니나노집 노래빠 단란주점 요정 룸살롱 등이 생겼다.
이런 것들이 술집의 변천사이다.
허양길 입니다.
첫댓글 어린시절 겨울방학때 매서운 설한풍 맞으면서 금광상 돌깨기하여 받은 노임을들고 .
모친 심부름으로
10km 떨어진 시장길 한겨울추위속 왕복 20km길 광목한통<疋>질머지고 주막들려 탁배기 한잔 에 생태국물 한수저 잊지못할 14살 추억 회상 합니다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찿아오라던
이왕이면 더큰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앉아서
그래 그렇게 붇딫어보자
오늘도 목로주점 흙다암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탄다
-간 주-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사고
년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을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가장 멋진친구야 빠트리지마
한다스의 연필와 노트 한권도
오늘도 목노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