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별난 겨울이었다.
연필 찾으러 갔다가 지우게 놓고 오고
사포 찾아오면 그라인더가 안 보이고
잃어버린 장갑 한쪽을 왼손에서 찾고
금방 쓴 송곳을 주머니에서 발견하고
통화하면서 전화기를 찾고
아침에 들은 말을 오후에 다시 묻기도 하니
너도 나이 먹어보라던 어른의 말씀도
업은 아이 삼년 찾는다는 말도 이해가 됐다.
그게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지만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보니
만사가 귀찮고 뭘 생각하려도 멍하기만 해서
머릿속이 하얗다는 말의 의미도 체험했다.
몸살 후유증이려니 했는데
말 한마디 듣는 것도 민감하고
말 한마디 하는것도 조심되니
어쩌면 세월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었는데
엊그제 티비를 보다가 눈치 챘다.
아, 맞아!
이게 저 사람들이 말하는 우울증인지도 몰라.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에고~ 이건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비록, 활달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착하는 성격도 아니고...
걱정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코 빠트리고 끙끙거리는 것도 아니고...
가끔, 아내에게 잔소리도 듣지만
마눌님 잔소리야 몇십년 들으며 사는데... 설마? 하며 아닌 척도 해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추운 겨울 그 끝에는 어김없이 봄이 오고
나흘 만에 다시 찾은 그곳엔
어느새 꽃이 피고 벌의 몸짓이 분주하다.
황량하던 창고 곁에 노란 복수초가 눈부시고
하우스 밖 양지 녘엔 잔꽃들이 앙증맞다.
매화나무엔
겨울을 견뎌온 꽃눈들이 조롱조롱한데
성급한 녀석들은 꽃을 피워 벌을 기다리고
지난가을부터
그 모습 그대로 찬바람 눈서리를 맞던 목련도 곧 필 눈치다.
이들인들 겨울이 편하기만 했으랴.
무엇이었을까.
이 게으름이 어디서 왔는지.
무기력은 또 어디서 왔는지.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지만
가라앉는지조차 모르고 스스로를 더 깊이 파묻었으니
그게 어디 세월 탓이랴.
그게 어디 몸살 탓이랴.
느긋하게 살리라 했지만,
부족한대로 살자 했지만,
좀 더 넓혀 생각하자 했지만,
내속의 나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참 다행이다.
가라앉음을 알았으니 다행이고
속내 털어 놓을 곳 있어 다행이고
팔 뻗으면 잡아 줄 손 있음이 다행이니
이쯤에서 유별난 겨울앓이를 봄바람에 흩뿌려본다.
겨우내 앓던 몸살을 하루 아침에 털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디서 전자음이 삐삐 울린다.
고등어 데우려고 전자렌지에 넣었는데 또 깜빡한 거다.
쉬 고쳐질 일은 아닌듯하니 어쩌랴.
피식 웃으며 커피 한 잔 들고 내다보니
유난히 붉은 동백꽃 너머
초등학교에 내려 앉은 오후 햇살이 화사하다.
으랏차차~~
한껏 뻗은 기지개에 사지가 늘어진다.
봄이다...^^
-11.03.16 강바람-
첫댓글 겨울앓이도, 건망증도 봄기운과 함께 확 날려 버리세요
안그래도 그래볼랍니다...따신 봄날에 함 뵈얄긴데요...^^
그래도 봄은 찾아 오는가 봅니다 인간보다 더 확실한것이 식물들이지요..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러게요. 건강하고 행복하이소...^^
강바람님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거 참 어려운 건데요.
지난 겨울 눈 속에서 제 씨앗 손아귀에 꼭 그러쥐고 보낸 풀도 있고요. 그새 또 꽃이 피었나 봅니다. 복수초 매화 목련 동백, 봄입니다. 저도 약간의 우울증이 있는데요. 운동이 참 좋더군요. 우선 입맛이 돌고 몸이 가뿐해집니다. 잠도 잘 오고요. 헬스장 다녀도 좋고, 집에서 매일 조금씩 하셔도 좋습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혼자 꽁하고 있으면 더 할것같아서 이렇게 주절거렸습니다.
용기 주시니 고맙습니다...^^
강바람님... 건강하시죠! 먼발치에서 따스한 봄소식 잘 듣고 갑니다. ^ㅡ^
봄기운 받고 씩씩하게 놀아볼겁니다...고맙습니다..^^
환경에 따라서 기분이 다르듯이,,녹색들판이 보일적에는 마음도 편안해 질것이네요,,그곳은 여기보다 봄이 빠르네요,ㅎ
봄이 오는 속도가 몇키로인지 모르지만 거기서 여기까지 백키로니 아무리 늦은 봄이라도 수일내로 올라갈겁니다...^^
강바람님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계절의 변화는 참 묘하지요.
좋은 작품 기다려 봅니다.
에고 무슨 글이랍니까.
그냥 이런저런 내 모자람의 일부인것을요. ^^
그놈의 나뿐 우울증 저한테 택배로 보내세요..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이렇게 보냈지 않습니까...^^
삶은 조그만 싫수가 있어야 즐거운 거 아니가요..아름다운 동백꽃 정말 화사합니다..
그래요...그런 것 같습니다...^^
가슴에 와닿는글과 아름다운 봄에화신 즐겁게보앗읍니다 늘 건강하세요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님께서도 건강하시고요...^^
아무도 없을때 [봄이다] 소리 한번 지르세요
봄.이.다~!!! (암도 없어서요)...^^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는 말씀은 제겐 첨이네요.
한 구절 마다 모두 새겨들을 인생 선배님의 일상입니다.
올해도 주름살과 검버섯? 관리 썬크림과 분가루ㅋ 바르셔서 멋진 나날 보내셈요...^^*
내 어릴때부터 들은 말인데...주름살, 검버섯 웬만큼 발라서는 감출 수 없다우...^^
마음이 따사로울 때 아름다움을 느끼는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겨울은 안 떠나고 남아 있습니다.
내 속의 겨울도 빨리 쫓아버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