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테이트 - 허은실
언니는 높은 데서만 사네요
구두를 벗으며 소연은 무심한데
신발들을 치우는 척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숙인다
너는 올 때마다 힐을 신는구나
어쩌면 정말이지
스물 첫 서울살이 약수동 단칸방도, 신당동 재개발 지구 반지하도, 스물 셋 첫 독립 화양동 옥탑방도,
스물다섯 첫 직장 보문동 원룸도, 서른 첫 투룸 원서동 빌라도,
막다른 골목에 돌아앉은 계동 그 작은 집도 언덕 위,
신혼집은 명륜동 8번 마을버스 종점, 전세금 까먹고 옮겨간 정릉동 171번 종점
초본 세 페이지 나의 주소는
모두 종점이거나 山번지여서
애인들 언제나 골목 입구에서 돌려보내고
신발장에 하이힐 없는 이유
이제 깨우친다
우리도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살자
딸은 내 소매를 끌고
운동 되고 좋잖아
나는 딸의 손을 잡아끈다
종점에 내려서도 가파른 언덕
홈스위트마이
힐스테이트
*시집/ 회복기/ 문학동네/ 2022
#허은실 시인은 시를 참 잘 쓴다. 시인에게 시 잘 쓴다는 말이 그 시인을 욕되게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시를 잘 쓴다.
후배를 집에 데려간 그녀는 너무 높은 곳에 살아서 미안하다.
높은 집도 집 나름,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달동네 언덕배기까지 하이힐을 신고 걸은 후배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시대가 변해서 아파트가 신분을 구분 짓는 요즘이다.
그래서 개나리, 장미 아파트는 사라지고 캐슬 스카이홈, 센트럴 프리미엄 레지스비, 리버 파크 뷰 월드 등이 대세다.
이름이 어려워야 아파트 가격이 올라간단다. 아파트 이름을 외우지 못해 시어머니가 찾아 오지 못하니 일석이조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 하면 순진한 사람 소리 듣는다.
딸이 우리도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서 살자는 투정에 "운동 되고 좋잖아"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입맛은 씁쓸했겠지만 속은 편할 것이다.
내 주변에도 있는 돈 탈탈 털어서 대출까지 받아 아파트에 사는 사람 여럿 있다. 요즘 이율이 높아지면서 죽어라 일해서 이자 갚느라 허리 부러지겠다고 아우성이다.
집을 등에 짊어지고 살다가 마침내 내 집 꿈을 완성하고 나자 주름 자글자글한 노년이 되었다. 집에 인생을 바친 것이다. 그들의 삶을 깎아 내릴 생각은 없다.
내가 가난하게 살아서인지 유독 이런 시에 공감이 간다. 이런 삶이 궁하다는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 좋겠다로 대신한다. 적어도 빚을 지고 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종점에 있는 높은 집으로만 초본 세 페이지를 채우며 살아온 시인이 하이힐을 신어 본 적 없으니 발목 통증은 없었겠다. 문득 오래 전 내 돈을 떼먹은 여자가 생각난다.
서너 살 아래 직장 후배가 10만 원을 꿨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나 당시 내 월급이 30만 원쯤 되었으니까 10만 원은 큰 돈이었다.
월급 타면 바로 갚겠다더니 월급 다음 날부터 나오지를 않는다. 사장에게 물으니 그만 뒀단다. 계획적이었다는 배신감이 밀려와 기어코 받아 내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피 같은 내 돈을 떼먹고 달아나? 나는 사장에게 주소를 물어 그녀를 찾아 갔다. 난곡동, 지금은 잊혀진 동네지만 신림동 뒷편 달동네였다.
지금은 아파트 촌으로 변하면서 신림동, 봉천동이란 동명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가난을 상징하는 동네 이름이라 아파트 가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민 의견 때문이다.
그녀의 집은 버스 종점에 내려서도 경사진 골목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그녀는 하이힐 신고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나를 보자 예쁘장한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미안해요. 나중 꼭 갚을 게요."
결혼식 사진이 걸린 창문 너머로 화장실 냄새가 밀려 왔다. 그녀는 당장 갚으라고 한다면 이거라도 주겠다면서 치마를 내리려고 했다. 나는 바로 제지하고 방문을 나섰다.
너 결혼 했구나? 저 잘 생긴 남자는 어디 갔다니? 내 돈 언제 갚을 건데?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집을 나왔다.
골목길을 내려 가는 나를 향해 그녀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미안해요."
나중 그 남자는 돌아 왔을라나. 웃는 모습이 예뻤던 그녀는 잘 살고 있으려나? 때론 시가 이렇게 잊혀졌던 옛일을 생각나게 만들기도 한다. 평온한 봄날이다.
첫댓글 저의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려 집니다
돌아보니 그리 나쁘지만은 아니었구나 싶네요^^
현재의 삶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궁핍했던 지난 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저 또한 그 가난이 자양분 되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답니다.ㅎ
슬퍼요
그래요.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슬픔이지요.
슬픔 뒷면에 자리한 희망이 있기에 살구요.
가능한 웃으면서,,ㅎ
유현덕님의 글을 읽으니이십년전 하나 남의 죽마고우 친구에게 백만원을 때인 생각이 나네요. 그아인 잘사려나?
저도 돈 떼인 일이 수두룩하네요.
다시는 돈 빌려주지 말아야지 했다가도
막상 부탁하면 거절을 못했으니,,
내 코가 석 자이면서,,ㅎ
젊은 날
하이힐을 너무 많이 신었더니
무지 외반이 되어
잘 넘어지게 되네요.
ㅠㅠ
저도 아직 하이힐꽈ㅠ.ㅠ
포기할 수 없는 여심이네요
@정 아 우리 정아님
저랑 같은
하이힐꽈
ㅎㅎ
@페이지
옆에서 편한거 신으라
잔소리하는데도
폼생폼사 어쩔 ㅋ
@정 아 뭐 많이 걷지 않고
차로 이동하고
잠깐 서있을땐
하이힐이 최고지요.
ㅎ
하이! 반가운 페이지 님,,^^
여지껏 하이힐을 신으시다니 대단한 의지네요.
모쪼록 건강을 위해서 조심조심 안전한 길 걸으세요.
꽃길만,,ㅎ
@유현덕 하이~~
반가운 유현덕님^~^
어제밤에도 방구석 패션쑈 하면서
구두를 신었다가 벗었다가......
하이힐 신으면
일단
옷 태가 좋아지고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기분이 끝내주거든요.
ㅎㅎㅎ
@페이지 페하! (페이지 님 하이)^^
옷태 살리는 데는 하이힐 만한 게 없지요.
구두를 신었다 벗었다 했다는
귀여운 페이지 님을 상상하면서
잠시 미소 지어 봅니다.
고운 저녁 되세요.ㅎ
@유현덕 와우 폐하가 아닌
'페하'에
씨러집니닷
@페이지
역시 이름은
잘지어야 혀
페하도 발음으로 들으면
진정 폐하로쎄요 ㅋ
@정 아 저기압 이었는데
우리 정아님
그리고 헨덕이 아재가
완전 기분을 업업 시켜주시니 최곱니더.
살면서 오지게 고생은 안하고 살아서
그들 삶에 진정한 공감은 어렵겠지만
이런삶도 있구나~~
엘베타는곳에 가고 싶어하는 딸과의 대화가 아리합니다
딸네 손주 시터이모님
나이 50대에 성남에
자가빌라에 입주하먼서
얼마나 좋아하든지요
축하 많이 해주었습니다
축하 잘 해주셨습니다.
제 후배도 반지하부터 시작해서
빌라, 다세대 등 주택으로만 몇 번 이사하며 살았는데
최근 다세대 자가 주택자가 되었다네요.
아파트는 꿈도 못 꾸지만 행복하게 잘 산답니다.ㅎ
나는 당장 그녀가 뭐로 갚으려하지
그게 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물건일까
결혼반지일까 아니야 10만원에 비할 물건은 아닐거야
너무나 짧은 순간에 했던 생각입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미안해도 그렇지 너무나 헤픈여자라서 측은함보다 화가 났어요
설마 하려고야 그랬을까요.
돈 갚으라고 종주먹을 댈까 미리 선수를 친 거겠지요.
뭐든 보는 시각에 따라 헤픈 여자가 될 수도
남편을 사랑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오탁번 시에 보면 굴비 장수에게 몸 주고 얻은 생선을
먹은 남편이 사연을 알고는 울며 신부를 다독이지요.
@유현덕 식당에서 진종일 설거지해서 오만원 받는 여자
노래방에서 남자랑 빈방에 잠시가면 바로 오만원 버는 여자
허리휘게 설거지하는 여자는 손이 없어서 빤쓰를 못내리는 여자일까요
그건 아니어요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다면 아니없어도
가난하다고 다 그렇게 살진 않아요
글에게는 사치스럽게도..
지상에서 10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삽니다.
맨 꼭대기 층....35층이죠.
층 간 소음에 매우 민감한 집 사람 덕분이기도 하고요.
아파트인 까닭에 하이힐은 신어도 되지만 요.
아마 그 여직원에게 10만 원은 치마를 내려도 될 만큼이나 절실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하기만 했던 옛날..
우리들의 자화상 입니다.
김포인 님 아주 높은 분이시군요.^^
돈에 대한 사연은 묻지를 않아 잘 모르겠구요.
미혼이라고 했는데 그게 더 기가찼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세상을 향한 님의 배려가 아름답네요.
꽃향기가 35층까지 올라가려면 얼마쯤 걸리려나?
향기 머금은 좋은 봄날 되시기를,,ㅎ
저는 적당한 높이 19 층인데
가끔1층서 부터 계단으로 올라오며 두세번 숨고르기 합니다
그녀가 지금은
운동삼아 계단오르는 집에 살고있을테지요
저도 이젤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15층에서 20층 사이가 저는 딱 좋더라구요.
계단 오를 때뿐 아니라 삶에서 숨고르기 만큼 좋은 것도 없지요.
내뱉을 말도 숨고르기에서 정리를 하면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녀가 비록 내 돈은 떼먹었어도
마음씨는 고왔으니 잘 살 거라 믿어요.
그때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30년 전 제게 딱 석 달만 사용하겠노라 면서 천만원을 빌려 간 저의 외숙은 지금까지 나 몰라라 입니다.
제가 그 돈을 그냥 줄 정도의 여유가 많은 사람도 아니었었고,
제게는 선천성 지병이 있는 딸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여러 번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때 마다 저 보다 일곱 살 위인 외숙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다 잊힌 일 입니다. ㅎ
저는 8년 전 살던 아파트를 처분 해 단독을 구입 이사를 했습니다.
좋아하는 꽃을 마음대로 기를 수 있고,
물론 아파트 살 때도 베란다를 작은 저만의 정원으로 만들어 놓고 철마다 다르게 피는 꽃을 바라보며 마냥 행복해 하는 호사를 누리며 살긴 했습니다만. ^^~
그런 아픈 경험이 있으시군요.
저는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굶는 것만 벗어나면
빚부터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제 지인도 귀농해서 안성에 사는 사람이 있는데
얼마전에 방문했더니 참 편안해 보이더라구요.
수피아 님의 순수한 전원생활을 응원합니다.ㅎ
퍼 다 놓은 글도 이쁘고 자신의 글은 더욱 빛나는 현덕님 오늘도 미소짓고 갑니다.
아무리 유명 시인의 시든
무명 시인의 시든 간에
내 마음에 온전히 들어와 내 것이 되었을 때
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 글이 운선님을 미소 짓게 했다니
저도 기쁘네요.ㅎ
저도 지인에게 두번인가 돈 뜯겼는데,
이제 다 안받으려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저도 꿔줬다가 받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네요.
받더라도 갚는 사람이 되레 적선이라도
하는 것처럼 당당한 걸 보고 서글프기도 했지요.
꿔준 돈 받으면서 내가 고마워서 굽신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 사연을 나중 글로 한번 써 볼게요.ㅎ
@유현덕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