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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까페 내에서 일어난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 병력 동원 숫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가?'
에 대해 토론한 내용입니다
게시물보다 댓글의 내공이 미친듯이 높아서 긁어서 가져왔습니다 ㅇㅅㅇa
원글의 출처는 이곳: http://cafe.daum.net/shogun/1Db/5327
/장평대전이란?
장평 대전(長平大戰) 또는 장평 전투長平之戰는
춘추 전국시대 말엽인 기원전 262년~260년 경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회전이다.
전국 시대의 판도를 변하게 만든 대표적인 전투의 하나이다.
장평의 승리로 진나라는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기 시작했으며
승리한 진나라에게는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을 가져다 주었고,
패배한 조나라에게는 몰락을 가져온 결정적인 전투였다.
//진나라(백기)와 조나라(염파)의 전투 도중,
원래 병력을 지휘하던 장군인 염파가 장기전을 계획하다 해임되고,
그 뒤를 이은 조괄이 단기간 회전을 통해 진나라를 몰아내려다
유인 → 퇴로 차단 및 역습 → 포위된 상태에서 보루 구축
→ 구원군의 지원 실패 → 이판사판 돌격으로 총대장 조괄 사망
→목숨은 살려준다고 약속해 항복한 조나라 병사 40만을
토굴에 가만 있으라고 들여보낸뒤 입구를 무너뜨려 생매장시킴
→ 조나라 국가 멸망 테크를 탄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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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sis 12.06.24. 11:18
40만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숫자가 궁금하네요. 전국시대 인구로는 조나라가 4만이나 동원했을지 의심스럽군요. 흔히들 장정을 다 대리고 나갔다는데 뭐 인구수만 말이 안될 뿐만 아니라 그 수는 고대사회에서 보급도 못하죠.
┗ 惡賭鬼 12.06.24. 15:27
4만은 확실히 넘지 않나 싶습니다. 고대사 특유의 뻥이라고 생각해왔다가 실제 유골이 발굴된 상태인데, 공개된 유골만 수천 이상이고, 유골들의 밀도등을 추출했을때 40만이 진짜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것저것 뒤져봐도 명확한 말은 없고, 10만안밖으로 추정은 하고 있다는데... 어쨌든 무시무시한 일이죠;; 당시 중국인구가 2000만정도라는데;;
┗ Highsis 12.06.24. 17:06
그 시대에 10만이라는 숫자가 가능한가요...; 촉나라도 사력을 다한 이릉전에서 4만밖에 동원하지 못했고요. 유골 밀도로 숫자를 알 수 있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뼈가 썩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수천 유골을 발견해서 100배의 숫자가 신빙성이 생긴다는건;;
┗ Revolution 12.06.24. 15:46
이번에 장평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그 숫자가 40만 학살설에 신빙성을 더해준다고 하더만요....
┗ 청의동자 12.06.24. 18:57
40만이 말이 됩니다.
┗ 하히해 12.06.24. 22:28
춘추전국 말기의 중원 대륙의 총력전 정황은 우리의 상상이상입니다. 사실상 보급이고 나발이고 손에 창대하나라도 들 힘이 있는 나이의 사내면 모조리 투입.. 때문에 보급로가 조금만 교란되도 대군이 어이없게 녹아나는 상황도 보이고;;
┗ 아이신교로 12.06.24. 23:42
읭 단순한 동원이라면 군사제도에 따라 숫자가 천차만별인걸로 아는데요 우리나라만 봐도 고려땐 수십만 뽑아서 싸워대다가 조선때 가면 임진왜란때 최대가 17만이었잖음메;;
//그래서 전국시대=헬게이트ㄷㄷㄷㄷㄷㄷㄷㄷ;;
┗ Highsis 12.06.25. 01:41
청의동자 // 근거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40만 기록이 사실이라면 다른 기록들에 의거 백기가 175만명을 전쟁에서 죽였다는 건데, 저 시대로부터 500년 뒤인 후한 말기 인구가 2000만이었는데 춘추전국 시대의 인구가 정확히는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반이라 가정하면 백기가 중국 인구의 1/5을 갈아버렸다고요? 애초에 발견된 유골 숫자도 정확히 안 알려져 있는데(못 찾겠더라고요) 세월에 따른 손실이 있었다고 해도 유골이 몇 만개가 발견되지 않는 한 40만이 어떻게 사실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Highsis 12.06.25. 01:45
아이신교로// 고려 말기는 제가 알기로 500만 인구 정도로 추산이 되고 춘추전국 시대로부터 무려 1600년 뒤의 일이기 때문에 보급체계나 행정체계가 비교도 안되게 발달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고려가 말 그대로 모든 장정들을 다 동원한 게 인구의 7%인 30만 대군이고, 이 수치도 보급이 힘든 고대 사회에서 동원하기 정말로 힘든 비율입니다. 그런데 고려보다 인구도 훨씬 적고 체계도 1600년 전의 것에다가 전쟁통에 쌀도 넘쳐나지 않았을 조나라에서 40만이 동원됬다고는 개인적으로 근거 없이는 못 믿겠네요...
┗ 惡賭鬼 12.06.25. 02:20
Highsis// 고중세 사회의 인구는 시대에 따라 비례적으로 상승하진 않았습니다. 전국시대 총인구를 3000만~ 200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고, 그중 삼진(위,조,한)의 인구가 가장 많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와 비교할만한 인구일겁니다.
참고로 전국시대와 동시대에 이미 페르시아 제국은 20만 이상을 동원했습니다 -물론 병참문제로 실제로는 몇만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기록만을 보면;; -
행정문제는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한 행정을 갖추었을 나라들이 전국칠웅이고, 통일 이후 진-한의 행정력을 본다면 이미 엄청난 수준을 갖췄다는걸 알수 있지요(진의 행정력이 우월하긴 했지만 몇백년동안 치고받은 적국이 허접
┗ 惡賭鬼 12.06.25. 02:19
것은 있을수 없는 일. 사상,인재교류도 활발했으니 더더욱 그렇죠)
또한 상시적으로 총력전이 벌어지며 전투의 규모가 커지던 상황이며, 전투 장소가 조나라 국내였다는 것도 대규모 인력동원이 가능했다는 증거이지요.
유골의 밀도 문제는, 유골의 밀도와 분포장소들로 전체적인 매장범위를 추정해서 없어졌을 유골들의 수를 계산한다는거 같습니다. 그게 10만 이상일꺼라는 말인듯.
그래도 40만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후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벼농사도 못 지었다는걸 봤을때 전쟁의 여파로 수십만이 떼죽음했다는건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 오로쿠트 12.06.25. 09:00
진의 중국 통일 시 인구는 2천만 이상이었고 전한 5천만, 후한때 6천만에 달하는 인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땐 각국의 인구가 급감하지만 이는 전란으로 인한 인구 감소 이외에도 호족에 의한 인구의 누락, 유망민들이 호구조사에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전국시대 당시엔 중국 역사상 가장 밀도 높은 총력전 체제의 수행을 위해 철저한 제민지배체제가 수립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인민의 대규모 동원이 가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거기에 주 전장이 조나라 영역 내였던 방어전이기 때문에 병력과 보급 동원도 상대적으로 쉬웠던 상황이죠. 애초에 진의 원정군 20만을 방어군 40만으로 겨우 막았다는건 그40만이 질낮
┗ 오로쿠트 12.06.25. 09:02
은 농민징집군이라는 방증이라 봅니다.
저 역시 40만은 총 동원인력이라 보고(전투병+후방지원병 총합), 실제 전투 과정에서 사상자가 있을 것이고, 탈주병도 상당수 있었겠죠. 순수하게 포로로서 갱살한 병력은 10만~최대 20만사이일 거라 생각하긴 합니다. 그렇게 전투를 벌였는데 총동원인력 전부가 인원 손실이 거의 없이 완전항복했다곤 믿기기 어려우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위의 백기가 학살한 병력 170만은 실제론 '패퇴'시킨 적병의 총수+기록상의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패퇴시켰던 적병이 다시 재집결해서 다시 패하고(...) 했기에 기록상의 인원이 중복되어 뻥튀기 되었겠죠
┗ 홍랑 12.06.25. 09:10
그러니까 아콘 몇기가 쳐들어오자 다급해져서 SCV로 막았는데 다 녹아버리고 나니 기반이 없어서 망했다는 스토리군요
┗ ▦무장공비 12.06.25. 10:37
포로를 10만 단위로 학살한건 거의 확실합니다(......)
실제로 조나라가 그전까진 진나라와 털고 털리며 진의 팽창을 억제했지만 백기가 한번 학살한 이후론 완전 맛이 가기 시작하거든요.
┗ Highsis 12.06.25. 13:20
장평대전이 대영웅 조괄의 부임 전까지는 장기전으로 흐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40만의 부대가 농사도 안 짓고 전투에 나가 장기전을 벌이면 먹여살릴 경제가 있었을지. 하지만 말씀 들어보니까 십만 안밖의 숫자는 가능한 것 같고,원래 숫자 과장을 자주 하는 역사서이니 만큼 40만보다 개인적으로는 적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 bookmark 12.06.25. 17:17
숫자를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역사서... 라고 해도 결국 따져보면 대부분은 숫자가 들어맞는게 사실이죠. 특히 장평대전 이전 30~40년 전부터 십수만대 이상의 동원기록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마찬가지로 십수만대 사상자 발생기록이 나타나는 상황이니 40만 동원이 불가능하진 않다 봅니다. 현저히 약해진 한, 위 연합군이 24만에 달하고, 여기서 박살이 난 후(이궐전투, 여기서 한나라는 독자적으로 싸울 힘을 상실하고 맛이 갑니다.)에도 국력이 조금 더 여유가 있었던 위나라는 다시 화양산 전투에서 13만을 동원했다 한번 더 말아먹은 다음에야 국력을 완전히 잃고 맛이 가는 등 동원 규모는 수십만선에 도달하고 있지요.
┗ ▦무장공비 12.06.25. 17:32
하이시스 / 전국시대 말엽의 극한의 전면전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중국에서 이 정도 레벨의 제민지배 시스템이 구축 된 적은 별로 없습니다=.=;;;
┗ 퇴계지부 12.06.25. 19:43
Highsis// 40만 동원설이 말이안된다는 근거를 설명하시죠
┗ Highsis 12.06.25. 23:09
퇴계지부// 여태 설명했건만 뭘 원하시는지.... 중국 역사서에서 숫자 과장하는 게 한두번이 아니고 40만을 지지하는 건 그 역사서의 숫자랑 수백구일지 수천구일지 모를 유골 뿐이고, 관련 항목은 전부 거론했습니다만 뭘 더 이야기 하시라는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당연히 40만보다 적었을 것 같다고 제가 말하는 건 그 정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데 제가 추정 이외에 근거로서 제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는지 알려주시죠. 정도준의 최후처럼 사실을 규정하는데에는 역사서의 내용 뿐만 아니라 다른 사실의 의거한 추정이나 상황근거 등도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 bookmark 12.06.26. 14:54
Highsis// 중국 사서에서 숫자 과장하는 건 일반적으로 앞에 '호왈' 이라고 적어서 '이거 부풀리기 들어갔다' 는 꼬리표처럼 딸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식으로 유추할 수 있는 내용 없이 부풀리기 들어간 건 그닥 없고, 극히 예외적인 항목이라 말할 수 있지요. 40만 과장설이라면 40만이 과장이라 볼 수 있는, 이러한 사료적 근거라도 있어야 하겠습니다만, 그런건 찾아볼 수 없군요.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부풀렸다 할 수 있겠습니까.
┗ 마초 12.06.26. 17:17
중국인들의 뻥티기 역사를 면면히 살펴보고... 2천년 당시 상황을 지켜보더래도 40만명은 무리수인듯 싶습니다. 순수 전투병력 40만 보단 양민학살 포함이 아닐런지요?
┗ bookmark 12.06.26. 19:11
마초//뻥튀기 역사... 어쩌고 하지만 잘 보면 '호왈' 이라던가, 교차검증을 통한 평가 등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많으며, 상당수 기록은 뻥튀기 안하고 집어넣었습니다. 그런거 없이 막연하게 뻥튀기라고 한다면 동의할 사람은 몇 안되요.
┗ Highsis 12.06.27. 06:36
bookmark // 사기 이외에 40만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기록이 있습니까? 첫째, 2년이나 벌어진 장기전에서 40만이 넘는(전투 중 전사한 숫자도 많을 것이므로) 대군의 보급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통일왕조도 아닌 조나라에 있을 리가 없고,양측 병력이 합계 백만에 다다랐다는 것도 역시 1700년 뒤 명나라가 100만대군을 2년 전쟁터에서 굴리는 것도 힘들텐데 두 국가의 국력으로 감당이 가능한지 의문이고, 사기에 따르면 백기가 175만명을 죽였다는 기록인데 이것도 믿기에 신빙성이 떨이지는 수치이며, 사기에 따르면 진과 초의 인구는 500만인데 병력이 100만이라고 나옵니다. 인구 500만에서 병력 100만을 동원하나다고요?
┗ Highsis 12.06.27. 06:45
물론 이는 총동원병력으로 해석하는게 맞습니다. 허나 그것도 통일 진의 인구가 2000만이었으므로 삼국지대와 엇비슷한데 위나라 30만, 오나라 20만, 촉나라 10만으로 추정되는 총 60만 병력이 비해 사기에 나오는 병력을 합치면 300만 명인데 이게 총동원수라 봐도 몇백년 동안 전쟁이 지속되어 땅이 피폐해지고 농업이나 사회 구조 역시 완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래동안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이라 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장평대전은 2년동안 벌어진 전쟁이고, 조나라가 40만을 동원한 것은 확실히 '가능'하나 이 수치는 말 그대로 모든 젊은 남자들을 합쳐야 나오는 수치고 실제로 이 수가 묻혔다면 조나라는 약체화가 아니라 바로
┗ Highsis 12.06.27. 06:58
멸망했어야 맞습니다. 조나라의 국력으로 40만이면 역시 사기에 의거 진에게는 병력 100만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진나라나 초나라가 병력 100만을 잃고 그 후에도 몇년이나 침입을 막는게 가능한지 생각해 보면 되지요. 국가의 모든 체계가 전시를 위해 돌아가고 최대한의 병력을 끌어모으는 총력전 체제의 시작인 1차 세계대전에서야 인구 20% 동원이 가능해집니다만, 고대 사회에 그런게 가능했을 리가 없고 그대로 적용하면 송나라때 병력 2000만을 끌고 다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송나라 말기 병력이 100만을 넘었는데 그 돈 많다던 송나라 예산의 80%가 국방비로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20% 적용하면 2천만 -0-
┗ Highsis 12.06.27. 06:57
그나마 독일 프랑스나 20%가 가능할 뿐 같은 총력전 체제였던 영국은 13%정도에 그치죠. 이런 정황들을 볼때 사기에 나오는 수치는 '병력으로 징집이 가능한' 예비군 숫자라고 보는게 옳지 실제 그 병력이 죄다 차줄되 2년동안 전장에 투입되었다고 보기에는 (보급병 숫자를 합쳐도) 지나치게 고대 사회의 체제를 과대평가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나라의 40만은 현대 한국으로 1200만 대군입니다. 한국이 전쟁이 터진다 해도 1200만을 2년 이상 보급할 수 있나요? 있을 수도 있지요. 2200년 전의 고대 국가가 그게 가능할까요? 어렵다고 봅니다. 이게 제 소견입니다.
┗ bookmark 12.06.27. 09:27
병호제, 즉 '병역을 전담하는 호수'를 따로 관리하던 삼국지때와 제민지배체제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총동원체계를 구축했던 전국시대가 같을리가 있나요. 양측의 군제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틀린데 동치로 놓는 것은 에러입니다. 거기다, 위, 촉,오를 예로 드셨으니 각국이 인구수의 10%에 달하는 병력을 상시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체계, 특히 촉한의 경우110~120만의 파악 인구로 12만을 '상비군'으로 돌렸다는 것도 아시겠죠? 체제에 따라서는 2년 정도가 아니라 40년 가까이 상비군으로 인구수 10%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국가도 등장하는 판국에 막연히 2년을 유지 못할것이다는 건 타당한 논리가 아니군요.
┗ bookmark 12.06.27. 09:37
사기의 신뢰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긴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하나하나 입증되고 있는 게 사기라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죠. 장평대전 유골 발굴도 고작 수천구 아니냐고 주장하시지만, 현재 발견된 것만 해도 수만구가 넘었고, 수십만구에 달할 수 있다는 게 현실인 이상 부정하려면 다른 고고학적 증거, 즉 사기에 나온 기록을 교차검증할 기록이나 내용 자체를 검증할만한 고고학적 발굴이 나와야 합니다만, 그런건 없군요. 네. 상나라 유적 발굴때 왕들의 이름과 순서가 사기에 나온 그대로였던 것처럼 각종 발굴은 사기의 신뢰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게 태반이라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심지어 대규모 유골까지 발견되었는데
┗ bookmark 12.06.27. 09:51
'사기에 나온 것일 뿐 아니냐' 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추정과 생각만으로 부정할 수 있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또한, 조는 장평 이후 휘청이는 게 아니라 망했어야 정상 아니냐고 하시는데, 장평 직후 바로 1년 뒤에 조는 수도가 포위당해 멸망 직전까지 갑니다. 그런 조가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초, 위 등 다른 국가들의 대대적인 구원이 있었기 때문이지 조에 힘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인 남자가 씨가 말랐다는 내용도 따라붙고요. 이정도면 거의 망한 거나 다름없죠.
고대사회를 너무 고평가하는 게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나, 글쎄요. 현대사회와 고대사회는 사회 구조의 복잡성과 사회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
┗ bookmark 12.06.27. 10:00
한 인력의 차이가 좀 심하게 나죠. 특히나 전국시대는 이후처럼 사회적 계층 체계가 거의 파괴된 상태이고, 국가가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체제였습니다.
전국시대에 비하면 사회적 중간층이 현저히 두껍고 동원력이 턱없이 떨어지는 고대 로마가 16년에 걸친 한니발 전쟁 기간동안 연평균 20만 이상을 동원해 냈는데 이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죠. 이탈리아 반도 인구가 500만이나 되었기에 가능했다지만 그 중 로마 시민의 비율은 1/3 이하였는데도 40% 이상을 로마 시민이 차지했다는 걸 생각하면 결코 뒤떨어지는 동원이 아닙니다. 이건 긍정하면서 전국시대의 동원을 부정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겠죠.
┗ bookmark 12.06.27. 10:09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30~40만의 전쟁 전 인구의 1/3~1/4를 역병으로 상실하고도 다시 최대 4만 5천여로 추산되는 대규모 원정대를 시칠리아로 보냈고, 심지어 그 모든걸 상실하고도 다시 2만은 족히 되는 대규모 인력을 소집해 함대를 꾸렸습니다. 전쟁 후 10년 뒤의 아테네 인구가 전쟁 전의 절반도 못미치는 거야 너무나도 유명한 일이고. 그런데 인구의 20%를 잃었으니 조나라는 당장 망했어야 한다면 아테네는 어떻게 전쟁 중후반을 끌고 갈 수 있었을까요? 아테네의 인구 손실은 조나라의 그것을 한참 뛰어넘은, 기겁할 정도로 높은 수치인데.
┗ 퇴계지부 12.06.27. 10:55
Highsis 曰 "사기 이외에 40만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기록이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셨는데 사기의 그 기록이 가짜라 주장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군요?
┗ 퇴계지부 12.06.27. 11:06
그당시엔 한방에 국운이 갈리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군대동원도 창과 칼을 들 수 있는 사람이면 모조리 징병한거 같습니다.
그러니 40만명이란 계산이 나올수가 있죠
┗ Highsis 12.06.27. 14:35
bookmark/ 촉은 인구 94만에 병력 10만 2천인데 그게 상비군이었을지는 모르지요. 이릉대전에 4만명 동원한거 보면 10만을 최대동원병력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후한말 인구가 5천 500만이고 삼국 시대 호구조사의 인구가 750만인데 실제 호구조사에 들지 않은 인구는 최대 7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촉의 병력 규모는 10%가 아니라 그 한참 아래입니다. 그리고 실제 비율이 어찌되었든 고대사회에서 20%를 동원하는 건 불가능해요. 예를 드신 로마의 경우 총 인구의 4% 수준이며 로마만 따로 계산해도 5% 미만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국가들이 인구 20%를 병력으로 가졌다는 사기의 근거가 될 수 있나요?
┗ Highsis 12.06.27. 14:57
위에 보충해서 삼국시대 인구가 2/3로 감소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인구 3300만에 상비군 위오촉 합쳐 60만이면 역시 2%수준이고 국가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총력전 때는 고대시대에 로마의 경우처럼 5%나 무리할 경우 10%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주장하시는 바와 달리 10%가 상비군이었던 적은 실제로 없고 20%가 총력전때 동원되는 경우도 실제로 없습니다. 조나라의 경우 많이 봐도 15~20만이지 20%인 40만 대군은 그냥... 불가능합니다. 송나라가 인구 1%인 100만대군 유지한다고 허리가 빠졌는데 인구 20%인 2000만대군이 동원된다면 나라가 붕괴됬을 걸요. 20%씩 동원하는 전국시대 군대는 풀뿌리만 먹는 군대입니까?
┗ Highsis 12.06.27. 15:09
마지막으로 전 사기의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한게 아니기 때문에 사기의 기록이 실제 유골이 발견되어 증명되었다는 것과 이 논의는 상관이 없습니다. 숫자가 문제지요. 사기를 사마천이 저술하던 당시의 기록에 40만으로 내려와서 그 기록을 가져다 썼다고 사기가 신뢰가 없어지는게 아니니까요. 사마천이라고 모든 자료를 교차대조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실제 틀린 기록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일부러 틀리게 쓴 것이 아닌 이상 사기 기록이 과장된 기록을 채택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 Highsis 12.06.27. 14:59
추가로 역병으로 인구 30%가 죽었다면 징집 가능 병력에서 줄어든 수치는 그 1/5인 6% 정도입니다. 전투병력 20%가 쓸려나간 조나라랑은 다른 경우지요. 그리고 30~40만이 인구의 1/3, 1/4이었다면 아테네의 추산 인구가 120만 정도였다는 건데 말씀하신 6만 5천은 남은 인구 8% 수치의 병력이므로 당연히 징집이 가능하지요. 설마 반이 죽었다 해도 역시 위에 제가 언급한 국가가 무리할 시의 비율인 10% 수준이고요. 제 논증이 틀렸다고 반박하시려면 그때의 아테네가 16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시면 됩니다. 송나라가 전국시대 체제로 전환하기만 하면 2000만명의 병력을 굴릴 능력이 됬다는 것도 설명해 주시면 되고요.
┗ Highsis 12.06.27. 15:10
예를 들어주신 경우도 전부 인구 2%~8% 수준이니 최대 5% 무리하면 10%라는 가정이 20%보다 더 신뢰성이 있죠. 후대로 갈 수록 경제, 사회구조의 발전과 보급의 증가로 인구대비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전국시대가 후대와의 비교에서 앞설 수 있었던 건 전 국민을 징집대상으로 삼았다는 건데, 이후에도 전쟁 중에 전 국민을 징집 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굉장히 많고 그 모든 경우에도 불구하고 20%나 되는 병력을 동원한 국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들의 행정 체계나 경제, 보급 능력이 전국시대보다 우월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고려도 여요전쟁때 총동원해 박박 긁어모은 결과가 10%였습니다.
┗ Highsis 12.06.27. 15:09
퇴계지부// 아니요. 북마크님께서 위에 글에 교차검증등을 통해 검증이 가능한 기록이 많다고 하셔서 덧붙인 겁니다.
┗ Highsis 12.06.27. 15:28
몇가지 사례를 추가로 나열하겠습니다. 수 멸망 시기의 인구는 5천만에 육박하는데 대운하를 뚫어 강남의 경제력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게 된 수양제가 고구려를 칠때 100만 대군이 아니라 전국시대처럼 20%인 1000만 대군을 동원했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정사인 수서에 나오는 113만 8천 대군도 부대 편성과 당시 상황을 볼때 과장되었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음을 참고해 주세요. 수나라가 설령 수비전이었다고 가정해도 1000만대군을 동원한다고요? -0-..
청나라도 후기에 인구가 3억 5천이었으니 총동원시 7천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겠네요. (실제 상비군 90만) 이게 말이 됩니까?
조나라 40만 설이 이와 똑같습니다.
┗ bookmark 12.06.27. 17:14
병호제로 동원한 상비군입니다. 위, 촉, 오 시기의 군제를 안다면 총동원전력이라는 말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상하번제로 평시엔 절반만 돌린다던 위도 아니고, 사병 연합이라서 숫자가 애매모호한 오도 아닌데 무엇을 가지고 상비군은 아닐 것이라는 말을 합니까. 마속이 죽을때 10만이 울었다던 내용이 화양국지에 존재하는게 그건 보셨나요. 제갈량이 10만 끌고 오장원 나갔다는 기록이 제갈량전에 있는데 그건 보셨나요. 이릉대전때도 유비군 외에 별도로 황건이 1~2만의 전력을 이끌고 장강 이북지역에서 전진하다가 대전 후에 위로 투항하는데 그것도 확인해 보셨는지요.
수나라, 청나라 모두 군제 자체가 전국시대와 다릅니다. 그걸
┗ bookmark 12.06.27. 17:20
그걸 같다고 놓고 이야기하는 건 솔직히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죠. 국가체제가 다르고 사회구조가 다르며 동원 필요도가 다른데 무작정 최대치로 동원했어야 한다는 드립은 IF놀이 하자는 겁니까.
미파악 인구가 많이 잡힌다는 건 동원률이 떨어진다는 걸 보장하는 기록이 전혀 되지 못합니다. 애초에 잡히지도 않는 인구를 파악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참 말이나 될까 모르겠습니다. 관중만 하더라도 인구가 수십만이던게 수만명으로 줄었고 이민족 인구가 더 많아졌다는 기록이 존재하며, 위나라 내에선 자국 내 인구가 후한말의 한개 주만 못하다면서 전쟁은 자제하고 국력증진에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또 어떻습니까.
┗ bookmark 12.06.27. 17:24
인구와 실제 인구가 다르니 동원률을 낮춰 잡아야 한다며 전국시대는 철저하게 예외가 되는 군요. 네.
아테네 인구가 120만? 전 전쟁 전 아테네 전체 인구가 30~40만이라는 말을 한 겁니다만? 대체 어떻게 읽으신 건지 모르겠군요. 아테네 전체 인구가 30만 선이였는데 거기서 1/3이 역병으로 날라가고, 거기서 다시 4만 이상의 시칠리아 원정군을 보내고, 그걸 다 날려먹고 다시 2만 이상의 동원을 거진 십여년 가까이 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대체 어떻게 읽혔길래 아테네 인구의 1/3이 30, 40만이라는 식으로 읽힌 겁니까? 신통방통한 독해력이십니다. 역병으로 인한 손실 빼고도 함대 동원 인력만으로도 전쟁 전의 20% 이상 되는 동원사례
bookmark 12.06.27. 17:51
겁니까. 재밌네요. 전쟁 기간을 따지면 전국시대의 동원이 로마 공화정의 그것보다 오히려 낮은 걸로 보고 따질 소지가 많은데 말이죠. 한니발이 장악한 지역이 한때 이탈리아 반도의 40%에 육박했고 그 지역의 인구는 거진 10년 이상 동원하지 못했다는 것, 로마 공화정 체제 하에서 일단 강제적인 동원이 가능한 건 로마 시민 뿐이라는 건 생각도 안하셨겠죠. 거 참.하긴 뭐. 사회구조와 제도가 전국시대와 완전히 다른 수, 송, 고려(여요전쟁때 지방행정체계 하나 제대로 구축 못했던 고려도 여기 들어있네.), 청의 예를, 그것도 그들이 '동원하지 않은' 걸 '동원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시니까. 이러면 또 전국시대
┗ bookmark 12.06.27. 17:49
의 체계로 바꾸면 되지 않냐고 드립을 치실려나요. 사회구조와 국가체계 전환과 운용이 문명5에서 사회제도 선택하는 것처럼 일정 문화수치 차면 클릭 한두번에 싹 정립되는 것처럼 손쉬운 줄 아십니까.
결국은 그렇죠. 님은 '타당한 근거 없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님의 주장인 동원률이 20%가 넘어가는게 불가능하다는 건 도통 근거도 없고, 그 반례도 여럿 있으니 고려할 가치가 없으며, 사기의 기록이 과장되었다는 것의 근거는 그냥 추정뿐이군요. 사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발굴을 다룬 본문에 이를 부정하는 내용이 있길래 뭔가 반대 내용의 문헌자료라던가 하는 근거가 있나 했는데 말입니다.
┗ Highsis 12.06.27. 20:25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30~40만의 전쟁 전 인구의 1/3~1/4를 역병으로 상실하고도 다시 최대 4만 5천여로 추산되는"
충분히 전쟁 전 인구 1/3~1/4인 30~40만이 역병으로 상실되었다고 읽힐 수 있는데요. "인구의" 위치 때문에 앞의 문구를 수식할 수도 뒤의 문구를 수식할 수도 있지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전쟁 전 인구의 1/3~1/4를 역행으로 상실하고, 남은 30~40만의 인구로도 다시 최대4만 5천여로 추산되는"
이게 더 알아듣기 쉽겠죠.
(수정삭제)
┗ Highsis 12.06.27. 20:25
답변하면서 재미있다 하시는데 중의적인 문장의 해석으로 나온 의견을 곡해니 난독이니 하면 안되지요.
그리고 반례라니 뭔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고대에 숫자가 전투 승패의 중요요소인데 20%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던 국가들이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에서도 20%를 동원한 경우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하나도 없(었)건만 그걸 멋대로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라고 가정하고 자신의 그리스/로마 사례만이 전국시대에도 통용되는 진실이라고 이야기 하시는 근거는 뭐죠? 사회구조 다르다고 비꼬면서 로마/그리스가 조나라랑 달랐다는건 잊으셨나 봐요. 송나라가 2000만을 동원하는 전국시대 사회로 개혁하지 않은 이유나 들어보죠
┗ Highsis 12.06.27. 18:28
저는 전쟁시 5% 무리해서 10%가 고대사회 동원력의 한계라고 보고 있고 님은 20%가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입장이죠. 저는 송나라 수나라 고려 등의 예시를 들어 제 주장을 뒷받침했고 님은 로마/그리스의 사례를 들어 마찬가지 일을 했는데,자신의 근거만 맞다는 생각에 로마/그리스의 사회가 조나라와 다르다는 것도 고려 못하고 사회 다른데 그걸 모른다라고 하시더니 마찬가지로 자신의 반례가 많다고 하시면서 제가 껀낸 사례도 많다는 걸 무시하시네요. 고대 사회 동원력이 5%고 한계가 10%라는 건 제가 만들어낸 이론이 아니고 고대사에서 많이 나오는 이론이니 그렇게 헛소리 취급은 하지 마시죠. 오히려 20%가 정말 듣보잡인데요.
┗ Highsis 12.06.27. 18:33
국가들이 동원력 20%를 넘은 사례보다 그렇지 못했던 사례가 수없이 많습니다. 왜 멸망할 위기의 일전에서도 5%~10%동원하는 수준의 국가들이 전부다 '할 수 있었는데 그냥 망하고 싶어서 안했다.' 라고 주장해 보시죠. 고대 전쟁에서 숫적 우위가 중요한데 왜 그렇게 위대한 20%동원의 전국민 동원 체제를 버리고 상비군이나 지원병, 특정계층 징집 체재로 바꿔 병력 숫자를 1/10로 줄이나요? 문명 테크 드립은 웃겼는데 송나라가 기적의 힘으로 전국시대 체제로 바뀌었다면2000만명 징집이, 청나라 경우는 7천 500만명 징집이 가능했을 거라는 거지요? 그러면 세계정복 하고도 남았겠습니다 그려. 전국시대 사회/보급이 우리의 미래상인가요?
┗ Highsis 12.06.27. 18:43
타당한 근거 없이 주장을 한다고 하시는데 거울 보고 이야기 하는 꼴이시네요. 제가 댄 중국 국가들이 조나라와 체제가 다르다면 로마/그리스도 다름은 물론이요 로마/그리스가 20%를 동원했다면 그 외 수많은 국가들이 위기시 20%를 동원하지 못했고 그건 몰락하던 로마도 마찬가지었죠. 로마 멸망시 20%면 1000만명입니다. 로마가 중국처럼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사회체계가 아니었다고요? 저도 알죠. 그런데 20% 동원했떤 고대 로마/그리스도 안 똑같거든요. 바다에 인접하지도 못하고 상업으로 번성하지 못한 국가를 아테네 로마 같은 상업적으로 번성한 데다가 여러 다른 세력과도 연계를 맺고 있고 또한 '도시국가'이기도 한 사례랑 비교하
┗ Highsis 12.06.27. 18:51
비교하시면서 내 사례는 맞는데 네 사례는 사회가 다른 것도 고려 안한 드립이다. 라고 하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네요. 도시국가에서 20% 동원했던 사례 때문에(정작 그 사례의 로마도 제국으로 성장 후 20% 동원력은 못 보여주었고 그리스의 상대였던 페르시아도 20%를 못 동원했음에도) 그게 모든 국가의 사례에 통용되는 결과라고 믿고 청나라의 경우도 "그것도 그들이 '동원하지 않은' 걸 '동원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시니까" 라고 하시다니 제 눈을 못 믿겠네요. 청나라는 님 주장과 달리 7천 500만 병력 유지 못할 것 같은데요. 오버도 적당히 해야지 어디 아무 포럼에서나 청나라가 7천 500만명을 전쟁에 투입할 수 있었다고 해보세요.
┗ Highsis 12.06.27. 19:15
산업 혁명 이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히는 보급품과 수송선의 발달로 20%에 달하는 국가 총동원이 가능하게 된 거지, 무기는 농기구를 들려주었다 해도 땅 파서 쌀 내고 그걸 육로로 비포장 도로를 건너 운반해야 하는 전국시대 국가들과 님이 가능했다고 주장하신 청나라로서는 그런 식으로 20%를 2년동안 보급하는게 불가능하지 말입니다. 사기에 따르면 기병도 국가마다 1만 정도 있었다는데 군마 1만필 쳐묵쳐묵하는 것도 장난이 아닐테고요. 거기에 사기에서 말하는대로 진나라 인구의 20% 갑병이 전투병만 의미하는 거라면 보급을 담당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뭐 인구의 50%가 동원됬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네요. 택도 없죠.
┗ ★海東天子☆ 12.06.27. 19:32
Highsis// 전국시대의 [편호제민지배]에 관한 지식을 좀더 축적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한나라 이후로 제민지배는 어려워집니다. 사회가 발전하기 때문인데, 송나라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제민지배적 지배체제의 연장선을 최대한 늘려도 당나라 [부병제]에서 파토가 나거든요?! 근데 송나라가 전국시대처럼 제민지배를 못한 이유를 대하면 뭐 할 말이 없는 거죠...ㅎㅎ;; 중국은 이미 당말이면 [재정국가]로 이행하면서 '모병제'가 일반화 됩니다. 때문에 송나라는 엄청난 재정지출을 감당하면서도 100만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고...ㅋ
┗ ★海東天子☆ 12.06.27. 19:31
또한 전국시대의 인구는 진나라 통일 후의 2천만 규모로 추정해 볼 때 2천만을 훌쩍 넘기는 힘듭니다. 이걸 7웅과 군소국가들이 나눠가졌다고 생각해 보면, 각 국가는 수백만대의 인구를 보유한 것으로 볼 수 있죠...^^; 수백만대 인구를 [편호제민]으로 지배한다면, 강력한 중앙집권(사실 중앙집권체제와 군현제는 이미 전국시대에도 나타남)을 통한 동원이라는 측면에서 총력전으로 동원 가능한 병력수는 꽤나 많았을 겁니다. 중국의 경우는 전국시대쯤 되면 사통팔달의 도로와 상업망은 물론, 운하 및 하천을 이용한 [역전제]와 [조운]이 제대로 갖추어 지면서 총력전을 가능하게 할 인프라와 경제력의 축적이 가능해지거든요...ㅎㅎ;;
┗ ★海東天子☆ 12.06.27. 19:37
사회체제의 변천과 각국의 [특수성]은 외면한 채, 본인이 정한 틀 안에서 시대를 '통(通)'하여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지요?!...^^; "국가들이 동원력 20%를 넘은 사례보다 그렇지 못했던 사례가 수없이 많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중국의 전국시대가 바로 넘은 사례에 해당하는 겁니다!!! 총력전을 근대에나 가능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근대주의]에 매몰된 매우 오만한 발상이죠...ㅋ 또한 중국 역사서들은 사료적 측면에서나 역사연구의 기본인 '교차검증' 및 고고학과의 연계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신뢰성을 가진 귀중한 사료들입니다. 그걸 뒤집으려면 타당한 근거를 내놔야죠?!...ㅎㅎㅎㅎㅎ
┗ Highsis 12.06.27. 20:13
쓰고나서 좀 감정적으로 쓴 것 같아 뒤가 캥겨서 수정하려고 왔는데 다른 분이 덧글을 다셨네요 -0-..
★海東天子☆ // 좋은 식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bookmark // 마찬가지로 토론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감정적으로 글을 썼는데 쓴 뒤에 수정하려고 왔다가 이미 덧글이 있어서 그냥 이렇게 추가로 다는 거니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20% 동원을 아직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해동천자님 말씀대로 제가 아는 지식의 틀을 기준삼아 모르는 전국시대의 상황에 적용하려 했던 것은 이해했으니 위에 언급한 대로 전국시대의 특수성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보겠습니다.
┗ 청의동자 12.06.28. 07:51
40만은 확실합니다.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에
┗ 퇴계지부 12.06.28. 09:31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해동천자님께서 대신 해주셨네요 (위대한 학식을 지니신 해동천자님)
┗ ▦무장공비 12.06.28. 10:09
하이시스 / 사실 전국시대가 상식을 벗어난 시대 인거 맞습니다 -.-)a 말 그대로 '싸우는 나라들'의 시대인걸요. 전국7웅중 중하위권인 위,한,조,연등의 인구는 통산 500만에서 700만 정도로 추산되지요. 장정그러니까 싸울수 있는 성인 남성을 제민지배 체제로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극한으로 짜낸 상황이라고 보시면 될겁니당.
┗ 블라디미르 대공 12.06.28. 10:33
흠. 일본의 전국시대는 어땠을까 궁금하네요.
토탈워 카페에서 일어난 논쟁입니다.
한번 읽어볼만한 글이기에 퍼왔습니다.
원글은 아이신기오로님 작성입니다.
첫댓글 엥 4년전의 제가 저기 있군요. ;ㅇ; 잘 지내는지 안부라도 묻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때 입장에서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논쟁을 할 기력도 없네요 __;
저때는 해동천자님이 논쟁에 들어오신 시점에서 내공에 쫄아(....) 더 이생의 논쟁을 포기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저때 일이 좀 마음에 남아 중국사 배울 때마다 교수님들꼐 사기의 숫자 신빙성에 대해 여쭈어 보았는데 열이면 열 전부 40만명 과장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과장 아니라고 하는 전문가도 있겠지만요.
과장이라는 것도 '40만은 커녕 4만은 될까말까' 인지, '40만은 안돼도 1~20만은 될걸' 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_Arondite_ 4만 이하라고 주장한 건 아닙니다. 그냥 과장이 너무 심하다는 걸 10배로 근거없이 던지듯 표현한거고, 그 뒤로는 저도 논쟁하며 4만 언급을 더 이상 안하고 숫자가 과장되었다는 것만 일관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그 바로 다음 덧글다신 분이 유골 수천개가 발굴되었다고 하시는데, 실제 당시 발굴 유골은 130개 라고 알고 있습니다. 수십배 과장해 말씀하신 건데 비슷한 맥락으로 큰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닙니다.
저때도, 지금도 제가 고수하는 입장은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많은 숫자가 장평대전을 포함해 과장되었다는 거고, 정확히 얼만큼인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한번 읽어보시라고 긁어온겁니다 맞고 틀리고를 따지자는게 아니고요 아까올린 첫글에 해당 글에달린 댓글까지 추가했습니다
으음....당사자까지 계신 상황이라 의견개진하긴 그렇긴 한데..... 그당시가 수탈하고 짜먹는 시대라고 수도 없이 다른분들이 말하는데 빼애액대는 느낌이군요;; 전 애초에 중국사는 잘모르지만 제가 저기 참여했다면 십중팔구 흥분했을듯;;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렇다면 다수가 말하면 그게 옳은 것입니까? 목소리도 작은 사람보단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물론 누가 맞다 그르다가 아닌 느낌을 말씀하신 것이니 이런 반론이 옳지 않을 수 있겠네요. 저도 중국사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런 토론은 맞고 그르고를 떠나 정답을 알 수 없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은모자 전부 '제민 방식이어서 가능한 숫자다'러고 하시는데, 문제는 그 제민 방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분들이 안계십니다. 오히려 통치방식보다 '호왈'이 없으므로 과장이 아니다,가 더 믿을만한 것이, 왜 그런지 설명을 해주시고 계시니까요.
@검은모자 만약 제게 '진은 상군의 변법을 시작으로 법치를 중시했으며, 소왕과 범수(맞는지 모르겠네요)에 이르러선 각지의 인재들이 모이면서 군대기강이 잡히고,그러므로 대군이 가능했다'식으로 말하면서 보병 몇십만이 과장이 아니다,라고 하면 수긍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지도 못하는 방식을 말씀하시면서 '이 방식이니 가능하다'라고 하시면 전 받아들이기 힘들죠. 전 위의 토론이 그런 토론으로 보입니다. 과장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쪽도 믿고싶어지진 않네요.
4년전 글에서 빼애액되서 님 흥분하게 만들뻔해서 무척 미안하네요. 후에 제가 여쭤본 역사학 전공 교수님들은 모두 과장 맞다고 하셨는데 중국사 잘 모르는 님이 흥분할 정도로 제가 좀 주책이 없었나 봅니다. 논쟁 끝에는 흥분한 거 같아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했는데 님에겐 부족한가 봐요.
근데 모리야님. 당사자까지 계신 상황이라 의견개진하기 그런건 아니죠. 그냥 대놓고 빼애액 한다고 왜 말을 못해요. "내가 이런말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하고 할말 다 하는 거랑 똑같은 거 아시죠?
토론에 참여를 한 당사자가 토론하다 답답해 흥분하면 모를까, 직접 관여도 안한 주제에 3자가 옆에서 툭툭 모욕 던지는 님 같은 태도는 극혐이네요. 의견개진하기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굳이 의견개진하려면, "토론태도가 상대방 말을 잘 안듣는 것 같다" 정도로 하면 될것이지 빼애액 하는 수준하고는. 저런 비판이라면 저도 전혀 기분 안나빴을 텐데, 시비 참 이쁘게 거시네요.
저도 충고 하나 드릴게요. 님이 참가 안한 토론 내용 보고 누가 옳다 평가 내리는 건 좋은데, 인신공격은 하지 마시죠. 평가에서 더 나가 토론태도 지적하고 싶다면 태도만 지적하시고요.
토론 참가한 것도 아니면서 다수에 붙어 반대쪽 한사람 모욕하는 건 진짜 돼먹지 않은 짓이거든요.
저는 나름대로는 열심히 반박하고 근거찾아 의견개진 했는데, 참가자도 아닌 지나가는 사람이 기여 한줌도 없이 다수에 편승해 한쪽 모욕하고 자기는 우월감 느낄 권리가 생기니 참 편하지요?
제가 끝에 흥분했다고 사과하며 끝낸 4년 전에 토론 글에 지나가던 사람에게 모욕받아 기분이 더럽습니다. 시비 돌려드렸는데, 원하면 신고하세요. 몇년 전 일 올라올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모욕받으면 열받을 것 같고 지금도 열받아서 그랬습니다.
@Highsis 그럼 이토론을 뭐라해야됩니까? 당사자인분이 기분나쁘실게 이해가 되는데, 난 이토론 보면, 되게 일관적으로 인구퍼센트가 어쩌고 하시는데, 처음부터 그게 의미가 없다고 다른분들이 얘기를 하시는데 안들려안들려 하면서 자기말만 하는데말이죠.
@모리야 전제국 다수에 붙어라 하시는데, 님이 이해가 가는 형식으로 토론을 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안나옵니다. 그런데 님도 당장에 사과까지 하면서 끝냈다고 인정하신거 아닙니까? 처음부터 좋게 토론을 임하시지도 않으셨으면서 좋은 소릴 들으실거라 생각하십니까?
@검은모자 저도 '제민정책'을 설명하지 않은건 아쉽다 생각합니다만,(저도 솔직히 잘모르는 분야고요.) 그러나 소수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은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시대적 특수성을 보면 유럽의 경우는 옳지 못하다.'라고 수도 없이 다른 분들이 설명을 하는데 안들려 안들려하면서 자기의 기준대로 역사를 맞춰보려는 모습이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모리야 전제국 제가 그분들 의견에 설득 안당하는 것 뿐이지, 제시된 말에 대답도 하고있고 근거도 계속 대고 있습니다. '안들려안들려'하면서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는건 눈에 대놓고 색안경 끼고 읽는 님 착각이고요. 제 덧글만 쭈르륵 읽어보세요.
첫번째 덧글 이릉대전 병력, 유골 숫자 지적
두번째 덧글 사기에 나오는 전사자 더한 백기의 175만 참살 의문
세번째 덧글 고려 인구 7% 동원
네번째 덧글 장평대전 = 2년 장기전. "말씀 들어보니까 십만은 가능한 것 같다."
여기서 10만은 가능할 것 같다고 제가 인정했는데 40만 가지고 계속 논쟁한 겁니다.
다섯번째 덧글 사기의 교차검증 가능한가
여섯번째 덧글 진과 초의 병력 합쳐 200만 기록
@모리야 전제국 일곱번재 덧글 조나라가 약체화 아니라 바로 멸망했어야 정상
여덞번째 덧글 송나라 병력 100만 국방비 80%
아홉번째 덧글 1차 세계대전 총동원 인구대비 수치
요지는 비슷하지만 같은 내용 가지고 빼애액 하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토론 참여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보아 설득력이 얼마나 되던간에 나름대로 열심히 근거대고 대답도 했는데, 제 3자가 '안들려안들려'로 취급하고 무시하긴 참 쉽죠?
@모리야 전제국 저게 어딜 봐서 똑같은말 반복에, 안들려안들려 반복입니까? 제가 중간에 10만 가능하다 인정한건 모니터에 대고 지우게로 긁으셨어요?
그게 맞다 그르다를 논하기 전에, 설령 제가 설득력이 부족하거나 태도가 잘못됬다 하더라도, 그거 지적하는 님의 태도나 고치라는 말입니다. 위에 알려드렸듯 '토론에서 남 말 안 든는 것 같다'라고 하면 됩니다. 일차적으로는 직접 논제에 의견을 개시하는 게 옳은 거고, 그걸 못하겠다면 누가 옳은 것 같다라고 평가를 하면 되는데, 그것도 못하겠다면 뭐 토론태도를 지적하는 거지요. 그것조차 님이 못하니까 제가 엄청 기분나빠 하는거죠.
@Highsis 결국 말입니다. 님말보면 굉장히 일관적으로 그 이후시대 예를 통해 얘기를 하고 있는데...상식적으로 위촉오시대나 고려의 병력동원체계가 전국시대랑 같지가 않을거란 생각은 안하십니까? 꽤나 일관적으로 다른 분들이 '그때 편제가 같냐'라고 지적하는데 이때 이렇는데 왜 그러냐 저때 저런데 왜그러냐...로 일관하는데요. 거기다가 후대를 예시로 들거면 그때 편제가 전대의 편제와 비슷했는지, 어떻게 봐야될지는 님이 설명해야되는건데 그런 모습을 보이나요(...) 댓글보다보면 편제는 님 반박하는 쪽이 더 많이 설명하지, 님이 설명하는 쪽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남이 대중심리에 기대서 한마디 툭던지는 사람 취급하기전에, 님 말 맥락이
@모리야 전제국 토론을 함에 있어서 제가 진짜로 같은 근거만 무한반복 틀어대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님이 제 덧글에 하듯 상대방 덧글 안읽고 딴소리만 하는 것도 아니며, 다수에 의견에 토론을 계속 진행하는 거 뿐이에요. 제가 설득력이 부족할 수 있지만 납득할 때까지 토론을 계속 하는 건 남에게 모욕받을 거리가 아닙니다. 하물며 토론 참가도 안하고 기여도 안하고 그냥 편승해 모욕 어사 툭 던지는 사람에게서는 더더욱.
@Highsis 참가고, 기여고간에 제가 저기활동을 안했는데, 뭘 할 수 있나요? 사정이나 이런거 안보고 우격다짐으로 논리전개시키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군요.
@Highsis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 안하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
제민지배가 어떻게 얼마나 더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급문제를 어찌할지에 일언반구도 없거늘 뭔.
@모리야 전제국 소수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한건 아닙니다. 다수라고 그게 옳은지는 모른다는거죠. 그래서 근거들이 필요하다는겁니다. 지구가 둥글고 지동설이 정설인 것을 아는 사람에겐 자전과 공전이 시계방향인지 아닌지 해돋이와 노을을 통해 설명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어떤모습인지, 돌긴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겐 먼저 이 지식을 설명해야죠. 전 이 부분이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모리야 전제국 귀 막으셨어요?
일단 님은 대중심리에 기대서 한마디 툭던지는 사람이 맞고요. 그짓거리 하지 마세요. 수준 보입니다.
님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자면 내가 어그로 끄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내 나름 열심히 주장한 건데 인신공격 하면 안된다고요. 4년전 논지에 구멍뚫기 전에 그 기초도 안된 지적질부터 고치라는 말입니다.
또 설명드러야 되요? 3자가 토론에 참여하는데 있어서 순서대로
1. 의견 제시
2. 누가 옳은 것 같다라는 발언
3. 토론 태도 부드럽게 지적
4. 참가자에 대한 모욕적 언사
님은 1,2,3 스킵하고 4로 가서 빼애액 소리를 하니까 돼먹지 못한 겁니다. 제 토론 설득력을 논외로 하고 말입니다.
@모리야 전제국 지금 우격다짐으로 내가 옳다 우기는 게 아니고, 4년전 토론에 참가 안했는데 지금 왜 그러느냐고 따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님 태도 지적하는 거라고요.
먼저 빼애액거린다고 시비 걸어놓고 억울해 하지 마세요. 정 억울하면 신고하시던지요. 전 기분나쁜일에 오버해 대응할 때는 종종 있어도 적어도 먼저 시비걸지는 않거든요.
태도 지적하니까 그 말에 답은 안하고 '네가 똑같은 소리만 하니까 그렇지'하고 비겁하게 변명하신 게 누구게요? 누구긴 누구에요 님이죠. 토론 당사자는 말했듯 흥분할 수도 있는데 4년뒤 님이 '저기 있었으면 흥분할 뻔;' 했다면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배애액댄다." 라고 한 짓이 옳아요?
@Highsis 대중심리고 어쩌고간에, 소수가 제대로 의견제시를 못했으면서 뭔 말도 안되는 소리랍니까? 뭔가 획기적인 의견 제시할거면 근거부터 제대로 대야지, 제대로 대지도 못했으면서 뭔 소리랍니까? 열심히 찾고 뭐고간에, 그게 내가 알바입니까? 그리따지면 지적설계론자들도 마이클 비히같은 과학자들 책에서 근거는 열심히 찾아요.
@모리야 전제국 그럼 다수자 제시한 의견에는 어디 제대로 된 근거 제시가 있는지? 양쪽 다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그래서 평행선을 달린 거지.
대체 어디에 다수측이 제대로 제시한 근거가 있는지??
@모리야 전제국 당시 토론때도 봐요. "신통방통한 독해력이십니다." "재밌네요." 상대방분이 이렇게 비꼬기 전까지 전 도발 안했습니다. 그 뒤에 저도 흥분해 비꼬는 덧글 적었다가 흥분해 미안하다고 저만 혼자 사과하고 끝맺었죠. 전 다른 수가 있는데도 상대 기분 나쁘게 시비거는 님과같은 사람을 참 싫어해요. 저분은 토론하다 제가 수긍 안하니까 답답하고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비꼴 수 있다고 쳐도, 님은 위에서 제가 언급한 1,2,3 방안을 할 수 있었음에도 모욕부터 날려놓고 스스로 옳았다 생각하시니까 기가 차네요.
전 살면서 먼저 시비건 적이 없고, 제가 먼저 논지가 아니라 상대 토론자를 대상으로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모리야 전제국 지금 님은 제 답답함 지적하며 자기는 안 답답해 보이시죠?
1. 전 어그로 끈 게 아니라 토론을 했고
2. 그 수준이 님 눈에 어떻게 보였던간에 님은 "당사자가 있어 말하기는 뭐하지만" "빼액거린다"고 속 뻔히 들여다보이는 모욕부터 날렸고
이게 팩트인데요. 님이 알 바는요, 시비부터 거신 님 태도라고 몇 번을 반복해야 되나요? "토론 하는데 상대방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다"라고 적었으면 제가 전혀 기분 안 나빴을 거라고 위에 적고 계속 주장하는데 이건 또 몇 번을 적어야 하나요?
본인은 잘못 하나도 안한 것 같죠? 자기가 남에게 건 시비는 쿨하면서 상대가 똑같이 반응하면 발끈하는 게 우습네요.
@모리야 전제국 전 님같은 분들의 태도가 참 이해가 안가요.
제가 도덕적으로 무결하지는 않지만, 어느 토론을 보고 한쪽에 동의해도 반대편이 어그로 끈 것이 아니라면, 우선적으로 한쪽에 동조해 의견개진을 하던가, 그게 싫다면 한쪽의 의견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던가 하지 되도록 토론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님 같은 분은 토론자에 대한 공격도 모자라서 아예 인신공격부터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가 옳다고 변론하는 거 보니까 진짜 이해가 안되요. 이 사람은 자기가 지나가며 던진 모욕에 상대방이 경건하게 수긍하길 바라는 건가 하고 말이죠.
인터넷에서 조리돌림 놓는거 거 좋아하시나요?
@Highsis 저도 이런 상황많이 당해봤는데 대게 이런식으로 당하면 저는 흥분해서 비꼬기나 욕설이 들어가는데 하이시스님이 반박하는거보고 많이 배우고갑니다
사기의 병력 기사를 믿는다면 칠국은 합쳐서 500만 대군을 뿜어내는 산업혁명기 국가들이죠..
장평의 기사대로라면 최소30만 대군을 한지역에 밀어넣은 건데 이걸 2년동안 보급해내는데 성공했다면 조나라는 최소 철도 보급망이라도 갖춘 국가일겁니다...
오로지 육상보급에 의존해야 하는데 진대의 가도도 전국을 다 합쳐서 9천킬로 남짓으로 아는데 뭔 수로 이걸 2년동안 보급힌다는건지 조군이 통조림을 개발했어도 인 될겁니다.
근데 저 제민 방식이 뭔가용?
기원전 전국칠웅이 수십만을 뽑아낼 수 있었던 그 정체랑 특수한게 뭔가얌? 어느 책을 읽으면 자세히 알 수 있나요??
고대의 대부분 기록은 뻥튀기가 미담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