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
오계자
우리 사회는 누구나 평등을 원하면서 실제는 알게 모르게 차별을한다.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하고, 직업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취업난의 고통을 못 견뎌 목숨까지 버려도 엿장수는
걸인이나 하는 행위로 생각한다. 네뚜리 엿장수, 그들 내면의 삶과 철학을
난 잘 알기에 가위소리가 정겹고 고향같은 향수가 있다.
강산이 세 번 변하기 전이었다. 월급으로는 까마득한 미래를 위해
고물상을 했다. 어른들이 많이 걱정 하시고 말리셨지만 깨끗하고 편한 사업
보다는 성공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찾아오는 도부꾼들 다 받아들여 먹여주고 재워주며
함께했던 7년이 내 생의 가장 보람된 기간이었다. 스쳐간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분들이 있다.
나를 참 많이 도와 주던 나이론 김씨, 엿장수 스타일이 아니라고 붙은
별명이다. 영어든 한자든 필적도 놀랍지만 깔끔하고 외모도 학자같은 교양이
몸에 베어있는 신사였다. 주위에선 수배자 아니냐며 경계도 했지만,
저녁으로 곡차 한잔 나누며 삶의 바다로 철학의 세계로 우린 여행을 했다.
사람의 능력과 시간은 한계가 있고 욕망은 끝이 없는 법, 그 유한에다
무한을 담으려하니 세상엔 부정이 생기고 범죄가 있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즘 틱낫한 이라는 배트남 스님이 책도 쓰고 여러나라 다니며
연설하는 내용이 바로 30년 전 엿장수 김씨가 말 하던 그 내용이다.
엿장수 김씨, 그는 세상파도 위에 표류하는 철학가였다. 우리가 그의
훌륭함을 그 가치를 몰라 본 것이다. 세상은 그를 무시하고 그는 허덕이는
인간 세상을 안쓰러워 했다. 속이고 속는 인간무리를 불쌍타 했다. 우리는
소통이 잘 되었고 더러는 허튼 소리도 오갔지만, 얼굴 하나로는 들어 갈 수
없는 정치판을 비웃지 않았고, 부자들의 돈 모으는 방법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직 세상 인간끼리 어찌 저리도 소통이 안되누.... 안타까워했다.
내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책임이라
고집하니, 아이들 올려 놓을 자리 끝이 보이냐며 쉬엄쉬엄 가잔다.
그는 내 사업장을 雲休堂이라 했다. 자기들은 구름이고 이 곳은 쉬었다 가는
곳.
대문은 만들지 않을 테니 비바람이 세차거든 언제고 오라했다.
또 한사람 아직도 너무 궁금하고 보고싶은 승현(가명)군.
그는 내게 무서운 비밀과 아쉬움을 두고 같다. 이제는 털어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아 그의 얘기를 한다.
상냥해 보이지만 늘 말이 없던 청년, 어느 여름 밤 둘만 남게된 들마루에서
말문이 열렸다. 경북이 고향인 그는 일찍 부모님 여의고 삼촌 밑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입대 했는데, 어떤 특수교육을 받았단다. 교육은 끝났고,
몇개월 휴가를 주며 오기 싫은 자는 오지 마라 스스로 선택하라 했단다. 그
시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선택된 인생인 것 같고, 결정이 6일
남았다고했다. 그 동안 혼자서 짊어진 갈등에 얼마나 힘 들었을까 안쓰럽고,
엄청난 비밀이라 사실은 두렵기도 했다. 그런 교육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반신반의 했는데 내 앞에 현실로 놓여있다.
둘이서 밤 이슬에 옷이 젖도록 고민을 하며, 갔을 때와 가지 않았을 때의
각본을 다 맞춰 보았다.
다음 날, 사골을 사다가 푹 고았다. 다른 도부꾼들은 좋아라 먹는데
승현이는 눈이 촉촉해 진다.
이틀 후 그는 떠났다. 살아 돌아오면 꼭 찾아 오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하며
천근이나 되는 듯한 발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갔다. 준비해 준 옷과
돈은 편지와 함께 다 두고 갔다. 돈도 옷도 필요가 없단다.
눈물이 적은 내가 누구 보내고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었다 내
친동생이라도 보냈을까? 아니면 은둔 시켰을까? 이미 선택이 되어 있다는
우리의 판단이 잘 못된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살아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내게 연락 하리라 믿는다. 가끔 기다려
지고 보고 싶다. 그는 살아 돌아오면 걱정이 없고 얽매임이 없는 엿장수 할
것이라 했다. 그 시대 엿장수는 철학이 있었다. 글을 쓰던 사람중에는
등단하신 분도 있고 출가해 수도승이 되신 분도 있다. 때로는 색을 즐기고
술에 빠진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합심해서 건져 주었다.
세상은 그들을 바닥인생으로 보지만, 내 雲休堂 식구들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확실한 자기 철학이 있었다. 적어도 남에게 害는 주지
않고 살았다. 잠시 쉬었다 가는 세상을 너무 힘 들게 비틀거리는 것도 채울
수 없는 욕망 때문이란 걸 그들은 알았다. 아등바등 뒤엉킨 세상을 구해주고
싶어했다 감히 석가모니 처럼...
난 그들에게서 비관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 좌우면을 얻어서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주장처럼 "나"라는 존재 자체가 생각에 있다면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마음이다. 그러니 행복과 불행 괴로움과 즐거움은 내 마음에 있는
것, 이왕에 쉬러 온 세상 편하게 쉬었다 가자 철학이 있고 낭만이 담긴
그들과의 소통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2003 17집
첫댓글 잠시 쉬었다 가는 세상을 너무 힘 들게 비틀거리는 것도 채울 수 없는 욕망 때문이란 걸 그들은 알았다. 아등바등 뒤엉킨 세상을 구해주고 싶어했다 감히 석가모니처럼... 난 그들에게서 비관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 좌우명을 얻어서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