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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늙은 영웅(英雄)의 참회(懺悔)
초추(初秋).
이제 대낮이라 해도 그리 뜨겁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신선한 바람이 불었고,
간간이 홍엽(紅葉)이 눈에 띄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인지 들판에는 결실에 임박한 오곡백과가 있고
, 들에는 이제 단풍(丹風)의 절경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안휘성(安徽省)의 도계진(桃鷄鎭).
황혼을 등지고 도계진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흑삼청년 하나의 모습이 유난히 두드러졌다.
약간 큰 키에 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격에
준수하다는 말로도 표현의 부족을 느끼는 이목구비를 한 약관(弱冠) 청년이었다.
봉황(鳳凰)이 까마귀의 날개를 한 듯 복장은 형편없었다.
너덜너덜해진 흑의는 거지라도 입기를 주저할 정도로 흉칙했고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짐승 굴 안에서 수십 일을 살다 나온 사람처럼
옷에서 누린내와 곰팡이가 피어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청년은 몹시 허기진 표정이었다.
'큰일이군. 지니고 있는 은자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을까?'
주린 배를 채울 궁리를 하기에 여념이 없는 청년의 눈빛은 담담한 가운데
붉은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충혈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은은한 홍광(紅光)이었다.
눈빛이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눈이 피로해서가 아니었다.
청년의 몸 안에 있는 막강한 마공의 힘이 반박귀진의 한계를 넘어서
눈빛을 그리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도계진은 화려한 가옥, 장원, 누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근처에서도 이름난 부촌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도계진 전역에 알 수 없는 살기(煞氣)가 팽배해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군.
거리거리를 지키고 있는 무사 차림의 사람들의 눈빛이 살기에 차 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거리를 걷는 청년은 가다가다 눈에 뜨이는 경장 차림의 강호인들을 보고
야릇한 기분이 되었다.
아주 기묘한 진세를 이루고 있는 일단의 무사들은
도계진 안에서 가장 화려한 장원(莊院)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는 중이었다.
〈 강남제일장(江南第一莊)〉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고가(古家)인데 대문이 꼭 닫혀 있고 인기척이 없었다.
하지만 무공을 조금이라도 익힌 사람이라면
그곳이 나는 새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방비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강남제일장이라…
무사들이 왜 강남제일장이란 곳을 중심으로 매복(埋伏)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기다리고 중인가?'
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전방(錢房)을 발견하고 눈을 번쩍 떴다.
'일단 허기를 메우고 의복을 새로 사 입어야겠군.'
흑삼청년은 강남제일장에 대한 의혹을 훌훌 떨쳐 버리고 전방 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방 안에는 무사들이 눈알을 번들거리고, 노인이 주판알을 퉁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검을 가슴에 안은 무사 셋이 있고,
수염을 한 자 정도 기른 노인 하나가 있었다.
흑의청년이 전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세 명의 검사가 눈알을 부라리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
"걸인은 환영하지 않는 곳이다."
검사 중 하나가 다짜고짜 내공을 발휘해 청년의 가슴팍에 일장을 가했다.
바람소리와 함께 개비수(開碑手)가 시전되어 청년을 때리기 직전 청년의 왼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미안하네만 걸인이 아니네."
"크으윽!"
개비수로 청년을 치려 했던 검사는 자신의 손이 청년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크게 놀랐다.
더군다나 잡힌 부분이 불 속으로 들어간 듯 화끈거려 고통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는 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구… 무림고인을 몰라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검사가 사색이 되어 눈물을 주르르 흘리자 흑삼청년이 웃으며 손을 풀어 주었다.
"다음부터는 무작정 사람을 치려 하지 말게."
청년은 금나수를 회수한 후 주판을 퉁기고 있는 노인 앞으로 다가가며 품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노인은 더럭 겁부터 집어먹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은자를 원하신다면, 조… 조금은 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러다 실내에 은은히 퍼지는 보광(寶光)을 보고 입을 벌리며 탄성을 발했다.
"오오…!"
거지보다 궁색한 옷차림의 청년이 꺼내든 것은 아름답게 생긴 금갑(金匣)이었다.
용과 봉황의 무늬가 표면을 가득 장식하고 있고
군데군데 녹두알 만한 명주(明珠)가 박혀 있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이것을 팔고 싶소."
청년이 금갑을 내밀자 노인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입술에 침을 발랐다.
"이… 이것은 춘추(春秋)시대의 보물인 뇌정금갑(雷霆金匣)?
오, 이것을 직접 보게 되다니… 이런 기연이 다 있나!"
"뇌정금갑이 그리 유명한 것이오?"
"이것은 도인들이 선계(仙界)의 보물이라고 하는 것이오
. 소문으로는 남천관의 관주가 이것을 얻어 안에다 아주 귀한 물건을 넣어 두었다고 들었소."
청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되자 빙긋 웃었다.
"그렇소. 바로 그것이오."
"그… 그럼 남천관 사람입니까?"
"그렇소."
노인은 뇌정급갑을 몹시 탐내 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럼 왜 이것을 파시려 하십니까?"
"허기를 메워야 하는데 지닌 돈이 없어 팔려 하오.
사부라 할 수 있는 남천신군도 용서해 주실 것이오.
지금 약간의 돈으로 이것을 사 준다면 언제고 돈을 모아 세 배로 갚아주겠소."
"아이구, 남천신군의 제자이시란 말입니까?"
노인이 놀라 허리를 숙였다. 세 명의 검사도 마차가지였다.
'신군의 덕망(德望)이 여기까지 알려져 있군.'
뇌정금갑을 꺼내들고 감탄해 하는 청년은 남천신군에게서 뇌공삼보를 선물로 받은 낙헌지였다.
"헤헤…허기를 메우실 목적이시라면 이 귀한 물건을 제게 보여주신 값으로
충분히 은자(銀子)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도관에 기부금을 내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노인이 미소지으며 은자 백 냥을 서랍 안에서 꺼내 가죽 주머니에 넣어
낙헌지의 손에 들려 주었다.
"아… 이럴 수는 없소."
낙헌지는 깜짝 놀라 사양했다.
노인은 한껏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사양 마시고 받아 두십시오.
그리고 굳이 부담이 되신다면 언제고 기회를 봐 되돌려 주십시오.
남천관의 고수시니 신용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협명을 떨치려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공은 남천신군이 쌓고 복은 낙헌지가 받는 셈이었다.
낙헌지가 뭐라 감사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자 전방 주인은 밖을 가리키며 조그맣게 말했다.
"혹시 강남제일장의 일로 여기 오신 것은 아니십니까?"
"강남제일장의 일이 어떤 것인지 아시오?"
"헤헤… 강남제일장의 노장주(老莊主)는 과거 강남십검(江南十劍)이라 불리던
열 분 절세검사의 우두머리 운리신룡(雲裏神龍)이십니다.
남천신군과도 안면이 있는 이곳 도계진의 영웅이시지요.
그 분의 고향집에 변괴가 생겨 도계진 사람들은 모두 걱정하던 중입니다."
낙헌지는 한껏 호기심을 보였다.
"변괴라면…?"
"얼마 전 괴무사들이 강남제일장을 힘으로 점령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지요.
안타깝게도 근처 오백 리 안에서 가장 어여쁘시다는 강남미인(江南美燕) 아가씨가 지금 붙잡혀 있지요."
노인은 무엇이 두려운지 들리 듯 말 듯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운리신룡은 삼십 년 전부터 강남제일검이라 불리던 절세고수였다.
십여 년 전 갑자기 자취를 감춰 강호에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의 명성은 여전했다.
돌연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전방의 나무문이 산산조각이 되어 부서졌다.
콰앙―!
일곱 명의 황의인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아주 신속했다.
전방의 호위무사 셋을 간단히 점혈해 쓰러뜨리고는 낙헌지와 전방노인을 완전히 에워쌌다.
"흐흐…네놈이 마을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지켜봤다."
황의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아이구!"
전방 주인은 사색되어 꿇어 엎드렸고 낙헌지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일곱 사람을 쭉 둘러봤다.
모두 흉악한 용모를 하고 있었다.
특징이라면 허리에 가죽주머니 서너 개씩을 차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옷자락에 글씨를 수놓고 있었다.
〈 百毒魔府(백독마부) 〉
그렇다.
그들은 천하의 어떤 문파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백독마부의 무사들이었다.
낙헌지는 백독마주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했다.
황의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낙헌지를 향해 손을 쳐들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놈이 강남제일장 근처로 올 때부터 강남십검의 우두머리이자
강남십검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운리신룡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수인?"
낙헌지는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크훗…네놈이 하는 말을 다 들었다.
걸인 차림으로 여기 온 이유가 강남제일장의 정세를 염탐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하…그렇소?"
"크훗… 천리(天理)를 거역한 강남십검 중 아홉은 이미 죽었다.
하나 남은 운리신룡도 죽고 말 것이다."
황의인의 말이 점점 살기에 찼다.
낙헌지가 점잖게 타일렀다.
"난 운리신룡을 모르는 사람이네. 잘못 짚었네."
"속일 수 없다.
네놈이 운리신룡의 하수인으로 여기 와
강남제일장에 누가 있나를 알아보려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단 말이다."
"후훗…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군."
황의인은 낙헌지의 태도에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다짜고짜 일지를 쳐냈다.
"쓴맛을 봐야 실토를 하겠느냐?"
바위에 동전만한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지공이 시전되는 찰나 낙헌지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 검은 그림자가 흐르는 듯하더니 지공이 무위로 돌아갔다.
"어엇…이형환위(移形還位)!"
황의인은 그제서야 낙헌지가 고수라는 것을 알고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낙헌지는 언제 보법을 밟았느냐 싶게 제자리에 우뚝 서서 뒷짐을 지고 천천히 말했다.
"나는 과객(過客)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들이 하는 수작을 보니 협의도를 걷는 한 사람으로 도저히 간과할 수 없구나."
낙헌지는 황의인을 향해 오른손을 쳐들었다.
아무런 음향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이 붉게 변했다가 은은한 기류를 만들어 황의인의 가슴을 뒤덮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황의인은 몸이 얼음 굴로 빠지는 듯한 냉기를 느끼며 빳빳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꼼짝 못하게 되자 여섯 무사가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귀… 귀신 같은 놈이다!"
"암기를 쓰자!"
황의무사들이 공격을 가하려 할 때 낙헌지가 크게 외쳤다.
"멈춰라!"
취마음(醉魔吟)에 의한 호통이 떨어지자 여섯 황의인은 낯빛을 희게 물들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윽…!"
"크으억!"
그들의 귓구멍에서 붉은 피가 내비쳤다.
낙헌지는 말 한마디로 여섯 사람을 굴복시키고는 여섯 중
가장 나이 어린 자를 골라 바짝 다가가며 물었다.
"살고 싶으냐?"
"제… 제발 살려 주시오."
낙헌지 나이 정도의 무사가 아래턱을 덜덜 떨었다.
"그러면 바른 대로 말해라."
"예예!"
"너희들은 어느 문파에 속하고 있느냐?"
"저… 저희들은 백독마부의 호법무사들입니다."
낙헌지는 뒷짐을 쥐며 그 앞을 천천히 거닐었다.
"여기 왜 왔느냐? 백독마부는 이 근처에 있느냐?"
"저희들은 수백 리 밖에서 왔습니다
. 소부주(小府主)이신 독랑자(毒娘子)와 태상호법(太上護法),
그리고 총관(總官) 어르신네와 함께 왔습니다."
"무슨 일로?"
청년은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려는 요량으로 숨김없이 대답했다.
"숨어 지내고 있는 운리신룡의 수급을 잘라 백독마부로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낙헌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를 죽이려 하느냐?"
"강… 강남십검은 백도마부의 불공대천지수라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강남십검을 모두 죽인 후 강호를 상대로 복파대전(復派大展)을 열고
세력을 넓히겠다는 부주님의 말씀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더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있습니다."
낙헌지는 그와 마주 선 채 물었다.
"강남제일장을 친 무리가 너희겠군."
"예."
"운리신룡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냐?"
"그렇습니다. 그의 딸을 잡아두고 있습니다.
숨어 지내고 있는 운리신룡은 딸을 천금같이 귀히 여기고 있는 지라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낙헌지는 표정을 엄하게 굳혔다.
"고약한 짓이군, 인질로 사람을 끌어들이려 하다니…
너희 백독마부는 지옥궁(地獄宮)같이 고약하구나!"
"지… 지옥궁!"
무사의 얼굴에 검은 그늘이 만들어졌다.
백독마부의 힘은 지옥궁에 비해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옥궁과는 털끝만한 충돌도 없었다.
백독마부의 부주는 지옥궁이 장차 천하를 얻으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기에 부하들에게 지옥궁 사람들과는 절대로 충돌을 해서 안 된다는 명을 내린 바도 있었다.
하여간 지옥궁의 악명은 당금천하 어떤 사람에게라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낙헌지가 지옥궁과 백독마부를 한 무리로 보고 말할 때였다.
"흐음…!"
전방 밖에서 한숨 어린 침음성이 들려왔다.
부서진 문 사이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흰옷을 입고, 얼굴을 흰 복면으로 가린 괴인이 언제 나타났는지
뒷짐을 지고 낙헌지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그의 눈빛은 낙헌지의 눈빛만큼이나 신비로웠다.
"하수들을 상대하기보다 노부와 시비를 가려 보는 쪽이 낫지 않을까?"
"당신은 누구요?"
낙헌지가 싸늘한 질문에 백의복면인은 차분하게 응대했다.
"노부는 백독마부의 태상호법이 되는 사람이네."
복면인이 창노한 음성으로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태상호법이라고? 제법 강한 자다.
백독마부를 속된 무리로만 생각했는데 내 판단이 잘못된 것 같군.'
낙헌지는 태상호법의 내공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역시 절대고수이기에 고수를 알아볼 수 있었다
. 물론 두려움이라고는 기러기 털끝만큼도 없었다.
"좋소. 나가 따져 보겠소."
낙헌지는 태상호법의 청을 쾌히 수락하고 전방 문을 지나 태상호법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태상호법은 낙헌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일순 크게 놀랐다.
"그… 그 물건을 어디서 구했나?"
태상호법에게 지극한 놀라움을 주는 물건은
검집도 없이 허리띠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백룡신검(白龍神劍)이었다.
'이 물건을 재빨리 알아보는군.'
낙헌지가 뭐라 둘러대기도 전에 태상호법이 지레 짐작했다.
"그것은 백룡신검이 분명하다. 백의검제가 지옥제일검을 죽일 때 사라진 것인데…
설마 지옥궁 사람은 아니겠지?"
"지옥궁? 하하…지옥궁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오."
태상호법의 눈빛이 기묘하게 반짝였다.
"지옥궁과 혹…원한이 있나?"
"내가 오래 살게 된다면 지옥궁은 내 손아래 멸망된 문파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오."
태상호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정 오만한 자군.
당금무림에서 감히 지옥궁에 대고 그토록 도전적인 언사를 표할 사람은 너 뿐일 것이다."
"흥!"
낙헌지는 냉소를 치며 강남제일장 쪽을 가리켰다.
"저 안에 운리신룡의 딸을 잡아두고 있는 일부터 해결을 하고
지옥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너는 강남제일검을 대신해 온 사람이냐?"
"아니오."
태상호법은 당당한 자세로 팔짱을 꼈다.
"그럼 왜 나서느냐? 설마 검노인(劍老人)으로 불리는 노부가
강남십검 중 아홉의 수급을 잘라 백독마부주에게 바쳤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단 말이냐?"
"노인이 강남구검을 죽였단 말이오?"
"허허…오래 걸린 일이었지.
지난 십 년을 구검을 죽이는데 바친 사람이 노부다. 이제 하나가 남았을 뿐이다.
강남제일검의 딸은 운리신룡의 수급이 노부의 품안으로 들어올 때
자연히 자유로운 몸이 될 것이다."
낙헌지는 태상호법이라는 자가 독랄한 악인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의 악독한 처사가 더 궁금했다.
"강남십검을 왜 끝까지 죽이려는 게요?"
"그는 죽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마라.
노부는 부주께 은혜를 입어 강남십검을 죽이는 것으로 그 은혜를 갚으려 할 뿐이다."
"흐음…그렇소?"
낙헌지의 눈살이 찌푸러졌다.
태상호법 검노인은 다시금 그를 유심히 살폈다.
'괴청년이군. 백독마부에 대한 소문을 모르고 있는 강호인이 있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군.
그리고 백룡신검은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그는 굳이 낙헌지와 격돌하고픈 생각이 없는 듯 한 마디 던졌다.
"운리신룡과 관련이 없다면 나서지 마라. 살신의 화를 자초하게 된다."
"하하… 내 고집은 남의 말에 꺾이지 않소."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단 말인가?"
낙헌지는 상대의 살기 어린 분위기를 전혀 무시했다.
"나를 놀라게 할 무공이 있다면 상관하지 않겠으나…
내가 강남제일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오."
검노인의 눈빛에 잠시 갈등이 비쳐 나왔다.
"흥, 정말 검노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군. 죽기를 자청한단 말이냐?
하지만 노부는 아무나 죽이는 살인마가 아니다. 어서 떠나라!"
"하하… 그냥 가지는 않겠소.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소."
낙헌지가 호기롭게 외칠 때 어디선가 전음집밀에 의한 음성이 들려왔다.
"굳이 노부를 돕겠다면 검노인과 싸우기 보다 취영루(聚英樓) 이층으로 와 노부를 찾게."
아주 가는 음성이었다. 물론 낙헌지로서는 처음 듣는 음성이기도 했다.
'누굴까?'
낙헌지는 전음집밀이 상당히 먼 거리에서 들려왔음을 짐작해 상대의 무공을 가늠해 보았다.
돌연, 검노인이 손을 흔드는가 싶더니 낙헌지의 몸 주위로 백팔 개의 검화가 피어올랐다.
"어엇―?"
신비한 목소리에 잠시 정신이 팔려 있던 낙헌지는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뒤로 세 걸음 급히 물러났다.
쐐애애액―!
낙헌지의 옷자락이 검기에 잘려 나비같이 날아오르며 검노인의 손이 허공에서 정지되었다.
검노인은 크게 놀라 외쳤다.
"놀랍군, 노부의 쾌검을 피한 유일한 사람이다. 운리신룡보다도 낫구나!"
낙헌지의 역시 상대를 달리 보게 되었다.
'무서운 수법이었다. 아무리 방심했다 해도 순간적으로 나의 옷 자락을 자르다니…
이 노인의 무공은 남천관을 괴멸한 지옥제일검과 버금갈 정도다.'
낙헌지는 검노인과 한 번 싸워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보다 신비한 목소리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일단 그곳으로 가보자. 일이 점점 재미있게 되어 가는군.'
낙헌지는 옷자락이 잘린 데서 오는 노화를 간단히 풀어버린 후
검노인을 향해 차가운 눈빛과 함께 말했다.
"잠시 후 와서 따져보겠소. 그러니 떠나지 마시오."
"어디로 가려 하느냐?"
"하하…, 잠시 후 봅시다."
낙헌지는 웃으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비천추운신법(飛天追雲身法)이라는 상승절학이 시전되며
낙헌지의 몸은 순식간에 검노인의 망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검노인은 얼떨떨해 하는 눈빛을 보였다.
"대체 저 자는 누군가? 당세에서 들어보지 못한 초고수다."
이때 한 줄기 향풍(香風)을 끄며 검노인 바로 곁으로 떨어져 내리는
홍의여인(紅衣女人)이 있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육체를 가진 경성(傾性)의 미인으로
입술 끝이 밑으로 처져 아주 매서운 맛을 풍겼다
.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일 절색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용모였다.
"검노인의 일 검을 피하는 자가 있다니 놀랍군요."
홍의여인은 검노인과 친숙한 듯 가까이 다가서 한 마디 던지고는
낙헌지가 자취를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다시 오면 살려 보내서는 안 됩니다. 검이건 독이건 가리지 말고 놈을 죽여야 합니다.
백독마부의 일을 방해하는 자는 하나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용모는 절세적이지만 마음은 아주 독한 여인 같았다.
검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운리신룡을 죽이기 전이라면 소부주(小府主)의 말에 따라 괴청년으 죽일 것이나
, 운리신룡이 죽은 후라면 손을 쓸 수 없소.
운리신룡의 수급을 잘라내는 것으로 부주와 나와 사이의 모든 거래가 끝나는 것이니까."
"호호…맞는 말이에요."
홍의여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흘렀다.
'흥, 어리석은 늙은이! 사부님의 수단이 그 정도뿐인 줄 알았더냐?
운리신룡을 죽인 후라도 너는 떠나지 못한다.
네 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안다면 말이다.'
홍의여인은 아주 자신만만해 보였다.
'운리신룡이 새벽에 이백 리 밖에서 모습을 보였다는 정보가 정확하다면
그 자는 이 근처에 당도해 있을 것이다. 죽이는 일은 시간문제이다.'
홍의여인은 매서운 눈빛을 흘리다가 유령처럼 사라졌다.
"아…!"
검노인은 여인이 사라지자 나직이 한탄하며 눈을 꾹 눌러 감았다.
'십 년 노예생활이 이제 끝나게 되는지 모르겠군.
그 사이 세상에 대한 불충(不忠)의 죄를 어찌 씻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노안에 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낙헌지는 도계진 안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취영루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취영루는 도계진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누각이 훌륭하고 음식 맛이 좋았으나 워낙 후미진 장소인지라
단골이 아니고는 잘 찾지 않는 고급 주루가 바로 취영루였다.
주루 안은 한산했다.
낙헌지는 취영루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다시 신비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빠르군. 벌써 오다니."
이층 난간에 서서 낙헌지를 바라보는 백발노인 하나가 있었다.
매우 평범해 보이는 모습인데 얼굴빛이 낙헌지를 가볍게 긴장시켰다.
'진짜 얼굴이 아니다. 역용환(逆容丸)을 써서 변색시킨 얼굴이다.'
그는 노인이 역용하고 있다는 것을 즉시 간파했다.
"노인장이 나를 불렀소?"
"그렇네."
"하하… 곧 가리다."
낙헌지는 흔쾌한 표정으로 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노인 혼자만 있는 것이 아주 쓸쓸해 보였다.
수수한 마의(麻衣)를 걸치고 있는 노인의 눈빛은 아주 밝았다.
'고수다. 적어도 백년내공(百年內功)을 지녔군.'
낙헌지가 나름대로 상대를 가늠할 때 노인은 품안을 뒤져 옥갑 두 개를 꺼냈다.
두 개의 옥갑은 노인의 손짓에 의해 탁자 바닥을 파고들었다. 저저로 뚜껑이 열었다.
"흐음…, 멋진 구슬이군."
낙헌지는 옥갑 안에 들어있던 용안만한 명주들의 보광에 눈이 머는 듯한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오른쪽 옥갑에는 알이 굵은 명주 열 다섯 개가 들어 있고,
왼쪽 옥갑에는 작은 명주 서른 개가 들어있었다.
"이 중 하나를 갖게."
노인의 느닷없는 말에 낙헌지는 검미를 치켜 올렸다.
"이것은 주겠단 말이오?"
"옥갑 두 개 중 하나를 갖고 남은 하나는 나의 딸에게 전해 주게.
그것이 옥갑 하나를 주는 대가이네.
두 개의 옥갑은 나의 전 재산의 반에 해당되네. 어느 것을 골라도 같은 값이지."
"무슨 말씀이오?"
"허허… 하나를 갖는 대신 다른 하나를 나의 딸 강남미연에게 전해 달라는 말이지."
"강남미인? 그럼 노인장이 백독마부가 찾는 운리신룡(雲裏神龍)이시오?"
"그렇다네."
노인은 얼굴 표면을 쓰다듬었다.
가루약이 떨어져 내리며 노인의 살색이 희게 변화했다.
낙헌지가 미리 알아냈듯 백발노인의 얼굴은 역용환에 의해 바뀌어진 얼굴이었다.
본래의 모습은 신선의 풍모로 아주 헌앙했다.
"이제 얼굴을 가릴 필요는 없겠네.
자네의 무공이라면 노부의 딸을 무사히 구해낼 수 있을 것이네.
그 아이만 무사하다면 다른 소원은 없네.
노부가 검노인과 비무하는 사이 노부의 딸을 구해 안전한 곳으로 보내 주게나."
낙헌지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꼭 비무를 해야 합니까?"
"피할 수 없는 싸움이네. 아홉 아우가 이미 죽었네.
노부 혼자 살아있는 셈이지. 죄값을 치르는 것이니 억울하지는 않네."
"어떤 사연입니까?"
"백독마부주에게 죄를 지었으니 목숨으로 갚을 수밖에.
아…그녀에게 죄를 지어 그녀를 협녀(俠女)에서 희대의 독녀(毒女)로 화신케 했으니
백번 죽어도 억울한 것은 없다네."
운리신룡은 탁자 위에 있는 술병을 들고 꿀꺽꿀꺽 들이마셨다.
당대의 영웅답지 않게 표정이 아주 처량했다.
'무슨 말일까?'
낙헌지는 잠자코 그가 다시 말하기를 기다렸다.
"후우…!"
운리신룡은 술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지옥궁과 함께 세상을 어지럽히는 백독마부는 강남십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네."
"대체 어떤 죄를 지었다는 것이오?"
"십여 년 전 금갑신구(金匣神龜)를 얻게 되자 죽었다고 소문난 천약선자(千藥仙子)의 일을 아는가?
그녀가 바로 지금의 백독마주일세.
그리고 그때 그녀를 암습해 거의 죽게 하고 금갑신구 내단을 훔쳐
열 조각으로 나눠 한 조각씩 먹는 천약선자 휘하의 십검(十劍)이 바로 강남십검일세."
낙헌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천약선자는 우리들을 믿었네. 그래서 호법을 부탁했었다네.
하지만 우리들은 보물에 눈이 멀어 그녀를 암습해 쓰러뜨렸다네.
우리는 금갑신구 내단을 훔쳐 나누어 먹고는 전보다 두 배 강한 고수가 될 수 있었다네."
과거의 치부를 털어놓는 운리신룡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게만 보였다.
"한데 우리 손에 쓰러졌던 천약선자는 당시 금강불괴지신이었는지
죽지 않고 살아나 오늘의 백독마부주가 된 것이네."
들을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검노인은 천약선자가 고용한 청부살인자라네.
그는 인형설삼(人形雪蔘) 한 뿌리를 받는 대신 십검의 수급을 주기로 약속했었다네.
허허…인과응보(因果應報)이지."
운리신룡은 쓸쓸히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허리가 유난히 구부정해 보였다.
"비밀을 지켜 주게나. 그리고 노부의 딸에게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아 주게.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일세. 적어도 그 아이한테만은 부끄러운 아비가 되고 싶지 않네."
"잠깐!"
낙헌지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운리신룡은 씁쓸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살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버렸네.
십오 년 전 지은 죄로 이제껏 괴로워하며 살아 왔다네.
죄값을 치르러 가는 것이니 도울 생각 말게.
굳이 돕고 싶거든 옥갑 하나를 받고 노부가 검노인과 싸우는 틈을 이용해 딸을 구해주게나.
검노인의 백 초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니 딸을 구할 기회는 있는 셈이지."
운리신룡은 그렇게 말한 후 창문을 통해 훌쩍 날아 사라졌다.
낙헌지는 운리신룡이 훌쩍 떠나가자 잠시 생각을 굴리고는 소매를 휘저었다.
능공섭물진기가 일어나 탁자에 박힌 두 개의 옥갑이 빠졌다.
낙헌지는 왼손으로 옥갑을 움켜쥐는 동시에
운리신룡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비천추운신법을 시전했다.
검은 옷자락이 흔들리는 가운데 그의 몸이 삼십여 장 밖을 달리게 되었다.
낙헌지에게 비천추운신법을 전수해 준 사람은 대무신국의 삼밀사 중 하나인 비천신매였다
. 비천추운신법은 대무신국의 절예 중 상급에 속하는 상승경공이었다.
낙헌지는 별빛이 흐르듯 빨리 달려 곧 운리신룡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운린신룡의 신법도 지극히 뛰어났지만 낙헌지에게 비한다면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하하… 혼자 떠나시면 어찌하란 말씀이오?"
낙헌지가 웃으며 운리신룡의 어깨 바로 옆으로 달라붙자 운리신룡은 감탄에 젖었다.
"오… 과연 절세고수였군.
소협이 검노인의 일 검을 피하는 것으로 대충 짐작했네만 정말 뛰어난 무공이군.
부디 나의 부탁을 잊지 말아 주게."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딸의 안위에 대해 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백독마부는 노부를 위해 아주 지독한 함정을 팠네,
만에 하나 노부가 그들 손에 죽지 않는다면 노부 대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네,
그러니 검노인과 노부 사이의 비무에 끼여들지 말아 주게나."
낙헌지는 그의 기개에 존경심이 일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시오?"
"허허…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노부는 하늘을 우러러 살 수 없는 죄인이네."
운리신룡은 씁쓸히 말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던 두 사람은 취영루를 떠나 차 한잔 식을 시간 정도 달려
강남제일장 근처로 다가서게 되었다.
"노부가 최대한 검노인과 맞서 보겠네.
노부의 딸을 구해주게. 딸을 무사히 구해준다면 죽는 순간까지 자네를 고맙게 생각하겠네."
운리신룡은 강남제일장의 정문에서 백여 장 떨어진 곳에 이르자
낙헌지에게 다시 당부하고는 훌쩍 날아올랐다.
"차아앗!"
기합소리가 근처를 뒤흔들었다.
운리신룡은 일갈을 터뜨리고는 전 잠룡승천(潛龍昇天) 신법으로 날아올랐다가
비연천림(飛燕穿林) 신법을 이용해 강남제일장 정문앞에 내려섰다.
"어느 놈들이 노부의 집을 점령했느냐?
노부 운리신룡이 집을 비운 사이 이런 망나니짓을 한 자들은
노부의 신검 아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운리신룡의 출현에 강남제일장 근처에서 함성과 함께 사람의 모습이 속속 나타났다.
"운리신룡이 나타났다!"
"천라지망을 쳐서 포위하라!"
"한번 들어선 이상 다시는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수십 명의 홍의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와
운리신룡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원형진 하나를 구축했다.
허공에서부터 백의인영 하나가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흰빛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백의노인은 다름아닌 태상호법 검노인이었다.
그는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운리신룡의 외침소리를 듣고 나타난 것이다.
"잘 왔다!"
백의노인의 눈에서 살광이 일어났다.
"으음…!"
죽기를 각오하고 모습을 드러낸 운리신룡이었으나
백의인이 정면으로 막아서자 공포를 느끼는지 몸을 움찔했다.
"그대가 바로… 검노인이라는 자로군."
운리신룡은 수 시진 전 도계진에 도착해 강남제일장 근처의 정세에 대해 이미 소상히 알았지만
마치 방금 도착한 사람같이 행동했다.
이유는 물론 낙헌지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낙헌지는 운리신룡이 검노인에게 가로막히고
그들의 모습이 사람 그림자로 인해 보이지 않게 되자 손바닥에 땀을 쥐었다.
'운리신룡을 그냥 죽게 해서는 안 되는데…!'
그는 백독마부의 악도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운리신룡을 구할까 하다가
일단 그의 딸을 구해내기로 작정했다.
'지금은 죽을 작정을 했는지 모르나 사랑하는 딸을 보게 된다면 마음이 돌아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선 강남미연이라는 여인을 구하자.'
낙헌지는 담장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주위를 둘러본 후 위로 슬쩍 날아올랐다.
잠영비(潛影飛)라는 절묘한 마도신법(魔道身法)이 시전되며
낙헌지의 모습은 소리 없이 강남제일장 안으로 움직여 들어갔다.
낙헌지는 땅 위를 스치듯 날며 지극히 넓은 강남제일장의 뜰을 가로질렀다.
검은 구름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몇 개의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차― 앗!"
"죽어라!"
장원 밖에서 검노인과 운리신룡의 호통소리가 강철음과 함께 들리기 시작했다.
'벌써 비무가 시작되었군.'
낙헌지는 죽음을 각오한 운리신룡의 처사가 몹시 안타깝기만 했다.
생면부지인 자신을 믿고 딸을 맡겼으니 반드시 그의 딸을 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문득 바람에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낙헌지는 거목의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누각 안에서 훌훌 날아오르는 홍의여인 하나가 있었다
.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인인데 입가에 흘리고 있는 웃음이 지극히 사악하기만 했다.
"호호… 운리신룡이 딸 때문에 함정 안으로 걸어 들어왔군.
호호호… 운리신룡의 수급을 얻는 것은 시간 문제다."
홍의여인은 득의해 중얼거리며 강남제일장의 정문 쪽으로 바삐 달려갔다.
낙헌지는 그녀가 스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모습을 드러내며 다소 놀라운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서서(西施)라는 전설적인 미녀(美女)도 저 여인만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다
. 그러나 아름다운은 겉보다 내적인 것이 중요한 법이야.
저 여인은 독가시를 지닌 장미일 뿐이다."
낙헌지는 홍의여인의 뒷모습을 힐긋 바라보다가 누각을 향해 몸을 날리기를 계속했다.
"누구냐!"
"서라!"
아무도 없는 듯하던 누각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 명의 황의중년인이 있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 있었군."
낙헌지가 그들의 머리 위쪽에 이르러 감탄해 하며 잠깐 신형을 안정시켰다.
"적이다!"
"죽여라……!"
황의인들은 낙헌지의 초절한 경신법에 공포를 느끼고 뒤로 물러나며
양 소매를 어지럽게 흔들어댔다.
피피피핑―!
소매가 바람을 일으키는 동시에 매캐한 연기가 세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으음, 화혈사(化血砂)를 쓰다니!"
낙헌지는 검붉은 독무를 보는 순간 눈에서 냉광을 일으켰다.
화혈사는 먼지 한 알만으로도 황소 한 마리를 죽일 수 있다는 아주 무서운 맹독(猛毒)이었다.
"나를 죽이려 하다니 그냥 있지는 않겠다!"
낙헌지는 화혈사가 날아들자 손바닥을 활짝 펴 두 노인을 겨냥했다.
콰아아아―!
장심에서 한 줄기 붉은 기류를 피어오르며 화혈사는 날아들던 기세를 되돌려
황의인들 쪽으로 되돌아갔다. 황의인들이 내던졌을 때보다 열 배는 빨랐다.
"으헉―?"
"강기로 화혈사를 되돌렸다!"
황의인들은 낙헌지가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 싶다가
독안개가 되돌아오자 아연실색해 눈을 질끈 감았다.
검붉은 기류가 그들의 몸을 휩쓰는 가운데 화혈사에 적중된 그들의 옷과 피부가 스르르 녹아 버리고
뼈와 살이 찰나지간 피고름으로 화해 툭툭 떨어져 내렸다.
"크으으으…!"
"아― 악!"
황의인들은 순식간에 맹독에 중독돼 핏물로 화했다.
"밀로만 듣던 화혈사의 위력이지만 정말 끔찍하군.
이렇게 무시무시한 독물이 백독마부 안에 아직 많이 있다면 무서운 일이다."
낙헌지는 두 사람의 시체가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일이냐?"
누각 안에서 또 다른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린 비명 소리냐? 어서 보고해라!"
중년인의 외침이 야음을 때릴 때 낙헌지는 누각 이층의 창문가로 접근했다.
낙헌지는 창문가로 다가서며 막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사악한 용모의 중년인을 볼 수 있었다.
"왜… 왜 대답이 없느냐?"
순간 그의 얼굴을 향해 뻗어 나가는 흰 손 하나가 있었다.
"이것이 대답이다!"
차가운 손이 중년인의 목덜미를 움켜잡는 동시에 체격이 당당한 청년이
그를 밀치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케에엑!"
중년인은 청년의 손에 목을 졸리게 되자 고통스러운지
오만상을 찡그리며 이마 위에 지렁이 같은 핏줄을 돋웠다.
그는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그리고 하의 바지 끈도 느슨해 있었다.
'이 놈도 백독마부 사람인가?'
낙헌지는 중년인의 용모가 몹시 고약하다 여기며
어둠 속에 누워있는 희끄무레한 사람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그는 너무도 생소한 광경에 그만 굳어지고 말았다.
'아…!'
첫댓글 딸의 목숨이 중요하지. 부모라면 누구나~~
즐감하고갑니다.
ㅈㄷㄳ
즐감~!
즐독
김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즐감요!!!!!
마부
역시 무협!!!!!!1111
즐감요~
즐감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독요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