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줄 놓아버리고 읽은 소설 『완득이』(김려령글/ 창비)
![완득이](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hoto-book.daum-img.net%2Fimages%2Fnbook%2Fblarge%2F085%2Fb9788936456085.jpg)
김려령이라는 작가, 만만치 않네.
이경숙회원
이 책이 나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은 것 같다. 아이들과 소규모로 논술 수업을 하고 있는데, 기존에 프로그램에서 많이 다룬 책들이 시기가 지나고, 색바랜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나름 새로운 책들 중에서 같은 주제를 담은 것들을 선택하는데, 이시기 친구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었다. 어떤 책이 있나 이리저리 찾고 있는데, 특이한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완. 득. 이!
인상깊은 책이다. 겉표지도 만화책인가 인상을 줄 정도로 손이 가게 만드는 책.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정신없이 달려 읽은 것 같다. 일단, 재미있다. 키득키득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게 만드는 책. 딱, 요즘 아이들의 말투, 정서, 묘한 상황에서 던지는 무심한 독백이 만들어내는 유머가 재미있었다.
완득이의 주변에는 무언가 하나씩은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난장이로 밤무대를 전전하고, 이도 마땅치 않을 때는 시장판을 돈다. 완득이가 삼촌으로 부르지만 핏줄로 맺어진 관계는 아닌 가족의 한 사람 ‘난닝구’씨(실은 남민구인데 발음이 어눌한 삼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렇게 들린다). 17살이 넘도록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어머니. 그녀는 베트남에서 왔다. 요즘에야 동남아, 몽골 이주 여성들이 많지만, 17년 전에 참 일찍 한국을 찾았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완득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천적관계, 담임 똥주. 제일 처음 완득이는 ‘담임 똥주좀 죽여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려고 교회를 찾는다. 그 기도하는 내용이 배꼽잡는다. 폭력적이고 아이 못살게 구는 생각없는 선생같지만 실은 많은 것을 배려하고, 챙기는 담임 똥주. 이들과 함께 완득이의 쿨~~하고 무심한 면을 좋아하는 전교 1,2등한다는 여자 친구 윤하, 건들거리는 친구 몇. 밤마다 완득이와 담임의 대화에 ‘야, 씨**** 완득인지 만득인지’하며 끼어드는 옆집 아저씨 등
이들이 얽히고설키는데, 빠른 속도의 필치로 잠시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표지 사진에 있는 작가의 모습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으면서 작은 입을 쫑알거려 앞에 있는 누구 하나 꼼짝못하게 하겠구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가벼워 보이지만 이주 여성 문제, 이주 노동자 문제, 신체적 결함을 가진 장애우 문제, 학교 폭력 문제,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사회 현상들이 나열돼 있다.하지만 그것을 심각하게 풀지도 않고, 나열만 하지도 않는다. 늦게 어머니를 만나, 그 정을 깨달아 가며 마음속에서조차도 신파로 흐르지 않는 감정을 드러낸다. 흠이 있다면 많은 이야기들이 약간의 환타지를 담고 있듯이 담임 똥주도 그렇게 넉넉하게 마음쓰고 무슨 일인가를 꾀하려면 자본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는 옥탑방에 대충대충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악덕 기업주인 아버지를 두고 있고, 그에 대한 반항으로 집을 나와, 이주 노동자들을 도우며 산다. 이런 것이 아마 드라마틱한 설정일 것이다. 독특하고 재미있어 하며 읽다가 순간 이 부분에서 아, 이 책이 소설이었지 하는 자각이 왔다.
완득이를 읽고 나면 ‘재밌다. 이런 책도 있구나.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도 넘어가는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꿋꿋하게 이겨내라는 교훈(?) 내지는 터득을 느끼게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나만의 바램이었다. 아이들은 그뿐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그러했고, ‘유진과 유진’이 그러했으며 ‘나의 스프링캠프’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세계 명작이라는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을 읽으면 ‘약간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정도에서 다를 수 있으려나?
무심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아이들, 별탈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 특별한 결핍없이 있을 것이 다 갖추어진 아이들에게는 어떤 위기 상황의 이야기를 접해도 그것은 남의 일일 뿐이다. 더 심하게는 왜 굳이 그런 얘기들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지, 나는 관심이 없으니 그 느낌을 말하기도 싫다 이렇게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는 빈껍데기의 아이들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내려고 애쓰는 중일 테니까.
이 친구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겠다고 섣불리 책을 권해서는 은근한 무시(?)를 받을 수도 있다. 가르치려고 의도하고 뭔가를 내놓지 말고, 그냥 읽어도 좋고, 읽고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면 더더욱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그들의 책상에 한 권의 책을 올려둬 보자. 뭐야? 하며 한쪽으로 미루어 놓더라도 언젠가 심심해졌을 때, 손에 잡을 수 있는 그 한 권이 ‘완득이’어도 좋지 않겠는가.
10월호 지회소식지(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