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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독계(毒計) 심계(心計)
"훌륭하군."
낙헌지는 어둠을 꿰뚫어보는 안력을 갖고 있는 지라
채운봉의 골짜기가 아름답고 장엄하게 이어지는 것을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그는 마을을 벗어나서는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낙헌지의 보법은 이미 축지성촌지경(縮地成寸之境)에 이르렀기에
몇 걸음을 걸었는가 싶자 이미 십 리를 달릴 수 있었다.
갈수록 산이 험해졌다. 그렇지만 산세가 아무리 험해도
낙헌지의 발걸음이 나아가는 속도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다.
낙헌지는 검은 연기가 흐르듯 달려 채운봉 깊숙이 들어설 수 있었다.
간간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곤 했다.
아마도 석진영과 검선자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보였다.
"흠…이 근처에는 없겠군."
낙헌지는 천이통(天耳通)을 시전하며 골짜기 깊숙이 들어갔다.
그는 원래 무서움이 없는 사람이다.
핏물을 뚝뚝 흘리며 산발한 귀신이 다가선다 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낙헌지는 동굴이 아주 많은 골짜기에 이르러 이상한 조짐을 느끼게 되었다.
불현듯 모공이 시리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피를 끓게 했다.
"으윽… 이것은 마의 기운이다!"
낙헌지의 눈에서 혈광이 폭사되었다.
그는 상승마공을 익힌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마공지기(魔功之氣)를
무수한 동굴 한 곳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아주 희미한 자색 기운이 동굴 밖으로 흘러나왔다.
오대마왕의 극마지공을 터득한 낙헌지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기운이었다.
자색 기운은 악마의 숨결같이 사악하게만 느껴졌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지극히 절묘한 신법을 시전해 동굴 앞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동굴 안의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자색 안개가 안력을 철저하게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저 안에서 사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무저갱으로 돌아가 더 수련을 하겠다."
낙헌지는 자신 있게 말하며 들어가려다가 문득 걸음을 세웠다.
'기문진(奇門陣)이다.'
그의 표정이 가볍게 긴장되었다.
동굴의 입구는 일장 정도였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넓이가 넓어지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자색 안개가 시력을 방해해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낙헌지는 동굴 입구에서부터 이 장 정도가 돌로 뒤덮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어지럽게 늘어선 돌덩이들에 불과했지만
사실은 지극히 놀라운 기문진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살쇄백진…? 백절마 사숙께서 말한 바 있는 마도의 기문진학이다."
낙헌지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흘러나왔다
'분명 칠마전 출신이 있다는 증거다.'
낙헌지는 천살쇄백진이 칠마전의 전주인 심마가 창안한 기문진학임을
백절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군. 석진영, 그 놈이 이 안에 있기 쉽겠군."
그는 백절경(百絶經)을 뇌리에 떠올렸다.
백절경은 백 가지 마도절기로 이루어진 경문이로 그 안에는 마도 기문진에 관한
모든 파훼법이 담겨져 있었다.
낙헌지는 이내 천살쇄백진의 파훼법을 찾을 수 있었다.
"흠, 파훼법을 알아내기는 했으나 조심해야만 한다.
자칫 사문(死門)과 두문(杜門)으로 들어서면
천살쇄백진의 사악한 힘 아래 혼백이 으스러져 죽을 수도 있다."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다음 혈발마공(血髮魔功)을 운용했다.
콰류류류―!
낙헌지의 몸에서 우레 소리가 일어나며 머리카락이 시뻘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서는 불꽃이 피어오르고 몸 주위로 적무(赤舞)가 형성되었다.
보기에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낙헌지는 혈발마에게서 혈발마공의 힘을 고스란히 전수 받았는지라
적어도 일백 년 수위의 혈발마공을 연성한 정도의 마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적무는 아주 막강한 호신강기였다.
혈발마공이 구결에 따라 무형에서 유형화된 것으로 동굴에 차 있는 자색 안개보다 훨씬 더했다.
낙헌지는 혈발괴인으로 변신된 자신의 모습에 고소를 지으며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파파팟―!
호신강기가 진탕되며 그는 외부에서 전해지는 강한 암경(暗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과연 천살쇄백진이군.
혈발마공으로 심맥을 보호하지 않고 들어섰다면 마기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으나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파훼법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진세 깊숙이 들어섰다.
천살쇄백진은 작은 규모로 펼쳐졌기에 그는 이내 진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강하게 전해지는 암경도 느껴지지 않았고 자색 기류도 보이지 않았다.
동굴은 아주 광활한 공간을 갖고 있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십 장에 달했고,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구조였다.
낙헌지는 동굴 가운데로 들어섰다.
'……?'
그는 호흡을 멈추며 걸음을 멈추었다.
동굴벽을 등진 채 정좌하고 앉은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탄탄한 등판을 가진 백삼청년 하나가 정수리에서부터 몽롱한 자색 안개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으… 음…!"
어디선가 여인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낙헌지는 신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 그만 굳어지고 말았다.
'아니, 저 여인은…?'
그는 차마 대할 수 없는 광경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아…!"
백삼청년 앞으로 반듯이 누워 있는 전라미인(全裸美人)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입술을 살짝 벌리며 묘한 신음성을 토하는 중이었다.
강남미연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절세미녀였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반듯이 누워 두 손을 깍지 끼운 채 배꼽 위에 놓고 있었다
. 희디흰 다리는 손가락 하나 들어 갈 틈도 없이 꽉 밀착된 채 길게 뻗어 있었다.
미녀의 몸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백옥으로 깎아 만든 미인상(美人像)이 누워 있는 듯한 환상을 줄 정도로 아름다웠고 신비로웠다.
이때쯤 두 손을 합장하고 정좌에 있는 백삼청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색 안개가
전라미인의 몸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흐으윽…!"
여인은 뭐가 그리 괴로운지 신음 소리를 연발했다.
여인은 나이 이십을 넘기지 않은 나이로 보였고,
오똑한 콧날과 새빨갛고 탐스러운 입술을 갖고 있었다.
목의 빛은 아주 희고 고운 반면 얼굴색은 자줏빛이어서 보기가 흉칙스러웠다.
"아악…!"
여인은 마치 능욕 당하듯이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내며 가쁜 숨까지 헐떡였다.
그럴 때마다 탄력 있는 육봉이 심하게 요동쳤다.
일순,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통스런 신음성을 멈추었다.
그것은 마력에 대항하던 강한 의지력이 말살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후훗… 거의 완벽하게 되었군
. 이제 내가 심령(心靈)의 주인임을 말하면 저 계집은 내 소유가 된다."
백삼청년은 합장한 손을 풀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돌연 그의 등뒤에서 차갑고 살기 짙은 냉소성이 일었다.
"흥, 심마대법(心魔大法)을 펼치려면 반나절 내내 고생해야 하는데
다된 밥에 재를 뿌리게 되어 유감이다."
백삼청년은 철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누… 누구냐?"
그는 벌떡 일어서며 홱 몸을 돌렸다.
절세고수답게 그 와중에도 그는 독랄한 살수를 잔뜩 손끝에 운기하였다.
어둠 속에서 폭사되어 오는 흑의인영 하나가 있었다.
흑의에 복면을 한 괴인은 시뻘건 눈빛을 하고 청년 앞에 사뿐히 내려섰다.
난데없는 불청객을 살피던 백삼청년은 입을 딱 벌렸다.
"허억? 지… 지옥제일검(地獄第一劍)의 복면을 하고 있는 놈이 있단 말인가?"
백삼청년의 얼굴빛이 고운 밀가루보다 더 희게 물들었다.
흑의복면인은 백삼청년과 마주서며 팔짱을 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훗훗…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흑의인의 복면 위에는 지옥제일검이라는 다섯 글자가 분명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는 지옥령(地獄令)이라 불리고 있는 동패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석진영! 지옥령의 이름 아래 죽는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그렇다. 백삼청년은 남천관의 수제자이며 현재 무맹의 총순찰로 있는 석진영이었다.
지옥제일검의 복면을 쓴 자가 차갑게 말하자 석진영은 입가를 실룩거리다가 자색 안광을 폭사했다.
"설마…그 하인 놈의 귀신이란 말인가?"
과연 칠마전의 소전주답게 그의 관찰력은 예리했고 판단 또한 빨랐다.
지옥제일검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귀신…? 하하핫…!"
"흥, 귀신이라도 두렵지 않다.
대체 어떤 귀신이기에 진짜 지옥제일검의 면전에서 지옥제일검 행세를 하는지 알아보겠다!"
말이 끝나는 찰나 석진영의 두 손바닥이 지옥제일검 쪽으로 활짝 펼쳐졌다.
꽈르르르― 릉―!
동굴 안이 뒤흔들리며 시꺼먼 기류가 일어났다.
먹물같이 짙은 기류는 금석조차 녹여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닌 음마장력(淫魔掌力)이란 마공이었다.
뇌성벽력과 함께 음마장력이 흑의인을 박살낼 듯이 몰아쳐 왔다.
"흥, 음마지수(淫魔之手) 정도로 귀신을 업수이 여긴단 말이냐?"
흑의인은 노도처럼 몰아치는 묵색마강을 향해 정면으로 혈강을 발출했다.
꽈꽝!
지축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동굴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동굴은 금세라도 붕괴될 듯이 진동되었다.
"크으윽! 음… 음마장법을 막다니…?"
석진영은 바닥에 두 발을 박은 채 창백한 안색이 되었다.
지옥제일검으로 화신해 있는 복면인은 상반신을 약간 휘청였다가
신형을 안정시키고 다시 팔짱을 끼었다.
"과연 대단하구나! 과연 천하의 어느 누가 너의 일자을 받아내겠느냐?"
"으으… 음마지장을 능가하는 마공이 천하에 존재한단 말인가?"
석진영이 몹시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그의 눈빛은 몹시 지쳐 보였다.
'심마대법으로 인해 진기가 고갈된 상태라 이 놈을 이기기는 힘들다.
정면 승부를 피해야 한다.'
복면인은 아주 냉혹한 어조로 외쳤다.
"석진영, 어떻게 죽고 싶은지 말해 봐라.
목이 부러져 죽고 싶으냐, 아니면 심장이 으스러져 죽고 싶으냐? 소원대로 해주겠다."
"하하하…!"
석진영이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웃어? 왜 웃는단 말이냐?"
흑의인이 화를 참지 못하게 외치자
석진영이 돌연 웃음을 멈추고 눈을 부릅뜨며 흑의인을 직시했다.
"나를 봐라!"
그의 눈알에서 신비로운 광채가 흘러나왔다.
흑의인은 그의 잔혹스럽고 황홀한 안광을 대하고도 끄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빛을 즐기며 마주 쏘아보았다.
"심마지안(心魔之眼)도 소용없다!"
흑의인의 눈에서 새빨간 안광이 폭사되자
석진영은 뒷머리에 철퇴를 맞은 듯한 표정이 되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허억, 혈발마공(血髮魔功)…? 너, 너는 혈발마(血髮魔)와 어떤 사이냐?"
석진영은 심마대법을 펼치는 도중에 복면인과 일장 격돌을 벌이느라 내공이 흩어져
심마탈백마안(心魔奪魄魔眼)을 오래 계속할 수 없었다.
그가 심마탈백마안술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섰다.
흑의복면인이 그의 안목에 감탄해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서 복면을 벗겨냈다.
"석진영, 날 기억하겠느냐? 네 손아래 지옥제일검이 되었던 사람이다."
복면이 벗겨지며 천하미장부의 모습이 드러나며 동굴의 어둠을 밝혔다.
"네… 네놈이라 생각은 했었다만… 너무도 놀랍다."
석진영의 얼굴이 시꺼멓게 변하여 땀으로 뒤덮였다.
'낙헌지! 이 놈은 분명 기연을 얻었다.
하필 이 귀중한 순간에 나를 찾아왔단 말인가?'
그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낙헌지… 네가 정녕 살아 있었단 말이냐?"
"그렇다. 그리고 나는 지옥제일검이다."
낙헌지는 입가에 오만한 웃음을 흘렸다. 석진영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지… 지옥제일검이라고?"
"하하… 네가 나를 지옥제일검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더냐?
너는 아직까지 지옥제일검이 상청관에 나타나
천후협과 독목수라를 쳐죽였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구나."
"천… 천후협과 독목수라를 죽였다고?"
석진영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렇다, 지옥제일검이 그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천옥룡이란 사악한 놈이 지옥제일검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낙헌지가 작심을 한 듯 오른손을 치켜 올렸다.
투명한 핏빛 광채를 발하는 손이 너무도 눈부셨다.
석진영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석벽에 등을 대고는 손을 내저었다.
"낙헌지, 네… 네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궁금하다. 네가 어떻게 이토록 초강고수가 되었단 말이냐?
설… 설마 정의무성에게 잡혀 무저갱에 갇힌 혈발마를 만났단 말이냐?"
"죽을 놈이 무엇을 더 알려 하느냐?"
낙헌지는 석진영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석진영이 칠마전의 소전주답지 않게 잔뜩 죽을상을 하며 애원했다.
"제발…난 아직 죽기에 이르다."
낙헌지가 그의 참담한 표정에 일순 경계심을 풀었다.
진짜 지옥제일검으로 천하를 공포에 떨게 하던 그가 겨우 이 정도인가 싶었다.
순간, 석진영의 표정이 지극히 사악해지며 그의 장심이 낙헌지의 복부를 강타했다
콰앙―!
낙헌지는 오장육부가 파열되는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느끼며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네… 네놈이 암습을…?"
"무… 무서운 놈! 쓰러지지 않는단 말이냐? 네놈의 무공이 분명 나를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니."
석진영이 잔뜩 인상을 일그러뜨리다가 한 발을 나녀의 배 위에 올렸다
. 절색의 나녀는 혼몽 속에서도 터질 듯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스런 신음성을 토해냈다.
"아아악!"
낙헌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석진영, 정말 지독한 놈이구나!"
"흐흐…내가 지독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느냐?
이 계집이 배가 터져 죽는 꼴을 보기 싫다면 뒤로 물러나라. 어서!"
석진영이 낙헌지보다 한 가지 뛰어난 점은 풍부한 강호 경험과 독랄한 심계였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물이었다.
낙헌지는 한순간의 방심으로 그만 철천지원수를 죽이지 못하고
그만 석진영이 계략을 피울 여유를 주고만 셈이었다.
"으음…!"
낙헌지는 분했으나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석진영이 낙헌지가 물러서자 겨우 안도하며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네 놈 앞이라면 나의 모든 것을 숨길 필요가 없겠군."
석진영은 천천히 말하는 와중에 흐트러진 진기를 가다듬었다.
"네놈이 한 시진만 더 늦게 나타났다면,
흐흐…검보(劍堡)는 이미 내 수중(手中)에 들어 왔을 것이다."
"심마대법이 성공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냐?"
"잘 아는군. 칠마전의 소전주(小殿主)로 중원으로 흘러나온 칠마령을 회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낙헌지는 그의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흥, 그래서 심마대법으로 금의검선자를 금제시킨 후
흑의검왕(黑衣劍王)과 삼십삼 정검수가 보호하고 있는
칠마령의 마지막 한 조각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려 했겠군?"
"흐흐… 너무도 잘 알고 있구나!"
석진영은 내심 크게 놀라면서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심마대법(心魔大法)!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칠마전주인 심마의 탈백마안과 함께 가장 악독한 탈혼최면술로 불리는
미심술(迷心術)의 최고 단계이다.
낙헌지는 오대마왕에게서 칠마의 모든 수법에 대해 배웠기에
석진영의 어떤 수작도 파악할 수 있었다.
"석진영, 네 놈이 그 사이 무림맹의 총순찰이 되어 검보 안으로 들어간 목적은 물론
검보에 보관돼 있는 칠마령의 마지막 조각이겠지.
하지만 흑의검왕과 삼십삼 정검수의 관문을 뚫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석진영의 발에 제압되어 있는 절색나녀 쪽을 힐끗 보았다.
"결국은 금의검선자를 심마대법의 노예로 만들어 칠마령을 탈추하려 하다니…
네 간악함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이다."
낙헌지는 모든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놀랍게도 절색나녀는 검보의 이선자 중 하나인 금의검선자 이약란이었다.
고강한 무예와 드센 기질의 소유자인 그녀였지만
석진영의 흉계에 당해 이렇듯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석진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흐흐…기연(奇緣)을 얻어 살아나더니 과거보다 백 배는 똑똑해졌군.
과거에 너 같은 적이 있었다면 나는 여태 칠마령의 한 조각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석진영은 금의선자를 밟은 채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치밀한 인물이었다.
낙헌지는 검미를 치켜올리며 외쳤다.
"석진영, 어서 검선자를 풀어 주어라!"
"흐흐…부탁하는 놈 치고 너무 건방지다 생각지 않느냐?"
"이 비열한 놈! 너도 남자란 말이냐?"
낙헌지는 사납게 다그치면서도 내심은 명경지수 같은 맑은 심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짐짓 화를 내는 이유는 석진영을 방심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는 계속 석진영을 공박했다.
"석진영, 남천신군께서 너 같은 사악한 짐승을 쳐죽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금의검선자의 목숨으로 나를 위협한다고 나의 살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흐흐…오마의 전인이라면 나의 정당히 싸울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나도 싸움을 피하는 졸장부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와 싸울 수 없는 입장이다."
석진영이 꼬랑지를 내지자 낙헌지는 더욱 강한 격장지계를 구사했다.
"싸우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나를 결코 나를 피하지 못한다."
"하하… 금의검선자가 너의 목숨을 한 번 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하찮은 하인에서 오마의 전인이 되어 완전히 변신했지만 은혜까지 잊었겠느냐?
이 계집을 그대로 밟아버릴까?"
낙헌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금의검선자의 목숨으로 나를 위협하다니…!"
석진영은 칠대사마의 전인답게 간교하고 흉심이 깊었다.
그는 여유 있는 표정까지 지었다.
"크훗훗… 금의검선자는 심마대법에 거의 걸린 상태다.
중원에서 금의검선자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오마의 전인이라면 그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물론 알고 있다. 심마대법은 시전한 사람만이 풀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나만이 이 계집을 본래대로 할 수 있다."
낙헌지는 명령조로 말했다.
"그럼 본래대로 해라!"
"흐흐…대가 없이 할 수는 없다."
"도망갈 기회를 달라는 것이냐?"
"두말 할 것도 없지."
석진영은 수치를 모르는 듯 아주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약란의 나신을 가리켰다.
"나는 금의검선자를 이용해 칠마령을 얻으려 했었다
. 금의검선자를 풀어주게 된다면 나의 정체를 천하에 폭로시키게 되는 것이고
이후 무림맹의 공적(公敵)이 되고 만다.
이제껏 이룩한 모든 터전이 산산이 박살나 버리는 것이지
. 그 정도라면 너는 복수를 이룬 셈이 되는 것이다."
낙헌지의 태도는 아주 강경했다.
"그 정도로 안 된다. 나는 너를 죽여야만 분노를 해소할 수 있다."
"흐흐…그것은 추후에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너의 판단에 따라 이 계집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낙헌지는 주먹을 움켜쥐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좋다, 기회를 주지."
그러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심마대법을 해소하는 방법이 어떤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나의 눈을 속이려 하지 마라!"
"하하…사실 나도 천하의 미인을 피떡으로 만들어 죽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다."
석진영은 내심 안도하며 이약란의 배에서 발을 떼었다.
그는 어지럽게 십지를 휘저었다.
"으음…!"
이약란은 전신이 비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혼절하고 말았다.
전신 혈관이 툭툭 불거지며 그녀의 얼굴빛이 점점 희게 변했다.
석진영은 금의검선자의 백팔대혈을 격공점혈법으로 점혈한 후 품 속에 목갑 하나를 꺼냈다.
"이것을 복용시키면 심마대법이 무산될 것이다. 회혼단(廻魂丹)이라는 것이다."
"던져라!"
"훗훗… 난 바보로 아느냐?"
"난 너 같은 위선자는 아니다. 약속은 지키겠다."
석진영은 간특한 눈빛을 발하며 턱짓을 했다.
"우선 옆으로 열 걸음 물러나라. 그러면 회혼단을 여기 내려놓고 떠나가겠다."
"좋다."
낙헌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을 두고 떠나지는 않는다.
더러운 하인놈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석진영은 나름대로 계책을 꾸미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낙헌지 역시 궁리한 바가 있기에 석진영이 요구하는 대로 열 걸음 옆으로 물러나 몸을 세웠다.
석진영은 비로소 동굴 입구를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훗훗…혈발마공을 익혔으니 칠마전의 마공을 겁내지 않겠지.
그러니 내가 떠난다 해도 장차 보복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이를 말이냐?"
"그럼 나중에 결판을 내자."
석진영은 목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낙헌지는 그의 하는 양을 지켜보며 전신 가득히 진기를 운기시켰다.
'악독한 놈! 네놈은 비밀을 알고 있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그냥 갈 놈이 아니야.'
석진영은 동굴 입구를 향해 그대로 신형을 폭사시켰다.
그가 입구로 사라지자 낙헌지는 석진영을 쫓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이약란의 누워 있는 방향으로 이형환위신법을 시전했다.
"소저!"
낙헌지는 바닥에 놓여 있는 목갑을 주워 들며 이약란에게로 바싹 다가섰다.
여인의 나신에서 물씬 체향이 느껴졌다.
순간, 동굴을 벗어날 듯 달려가던 석진영이 허공에서 몸을 꺾으며
낙헌지를 향해 철탄(鐵彈) 다섯 개를 날려 보냈다.
"뒈져라!"
철탄이 허공을 가르는 속도는 가히 섬전과 같았다.
"흥, 기다렸다."
낙헌지는 이약란을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막고는
철탄이 날아드는 방향에 대고 쌍장을 휘둘렀다.
꽈꽈― 꽝―!
철탄 다섯 개가 낙헌지의 손바닥에서 일어나는 혈발마공에 부딪히며
화염을 일으켜 동굴 안을 용광로 같이 달궜다.
우르르― 릉―!
동굴이 무너질 듯한 가운데 석진영은 옆구리에 도끼를 맞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어디서 날아드는지 모를 일장이 그의 옆구리를 후려친 것이었다.
"크으으…!"
석진영은 누군가 암습을 가한다 싶어 휘청이며 급히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다른 누구의 기척도 찾아낼 수 없었다.
"누… 누가 나를…?"
낙헌지는 번개같이 몸을 날려 그의 퇴로를 다시 봉쇄했다.
"어리석은 놈! 혈발마공은 알고 회선마강(廻旋魔 )은 모르는구나?
나는 네 놈이 이런 꾀를 부릴 줄 알았다."
"회… 회선마강? 그것까지 익혔단 말이냐?"
"하하…너는 나를 너무 몰랐다. 도망갈 기회를 주었는 데도 도망치지 않았다니…
결국 네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으으…네놈이 무공이라고는 전혀 모르다가 이렇듯 초절해졌으니…
오마가 그리 위대한 존재라는 말이냐?"
석진영은 그제서야 진실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벌레를 씹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공포에 겨워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낙헌지는 새삼 다시 평가해야 했다.
"결국 너는 네 총명함을 너무 믿어 이 지경이 된 것이다.
금의검선자를 원래대로 해준 채 잡혀 죽게 되었으니 말이다."
"으으…네가 나를 능가할 줄은 몰랐다.
네놈이 나의 심계를 파악하고 있는 줄 알았다면 신탄(神彈)을 쓰지 않고 그냥 떠났을 것이다."
석진영은 괴로워하다가 손을 머리께로 가져갔다.
낙헌지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상대는 간악한 칠마전의 소전주였다. 최후의 순간까지 방심해서는 안될 상황이었다.
석진영은 눈을 감고 씁쓸히 중얼거렸다.
"그때 남천관에서 너를 죽이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그리고 네놈이 마룡단과 탈백마안에 접하고도 살아나는 끈질긴 놈임을 몰랐다는 것이 원망스럽다."
"……."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기 일보 직전에 좌절되는 것이 한스럽다.
서장에서 나의 성공을 기다리고 계시는 사부님께 불충하게 되었으니…
이대로 자결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구나."
석진영의 좌절에 찬 말은 낙헌지를 속이기 위한 계책이 아닌 듯 싶었다.
낙헌지는 팔짱을 꼈다.
"자결한다면 굳이 내 손으로 죽이지 않겠다."
"지옥검대(地獄劍隊)와 지옥궁(地獄宮) 고수들은 모두 나의 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내가 죽는다면 그들은 일단 후퇴할 것이다."
석진영은 비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칠마전의 계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조만간 서장에서 나를 대신할 사람 하나가 나올 것이다.
칠마전의 고수 중 나보다 현명하고 사리분별이 밝은 사람이 또 있다.
그가 온다면 내가 어리석어 망친 일을 완벽히 해 낼 것이다."
낙헌지는 죽음에 임해서까지 마(魔)를 두둔하는 그의 태도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죽어도 칠마전에 충성을 하는 것이냐?"
"칠마전은 위대하다. 가장 위대하다!
나는 칠마전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석진영은 할 말을 마치고는 눈을 꾹 감으며 손을 천령개로 가져갔다.
식은땀으로 범벅이된 그의 얼굴이 아주 처량해 보였다.
낙헌지는 그의 머리통이 산산이 박살나는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여차할 경우 손을 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석진영은 막상 자결하기가 두려운 듯 잠깐 주저했다.
"흥, 두렵다면 내가 손을 써 주랴?"
낙헌지의 비웃음에 석진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으으…칠마전에 약자가 없다는 것을 나의 죽음으로 보여주겠다!"
석진영은 자신의 천령개를 향해 주먹을 가져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
아주 가까이서 긴 장소성이 들려왔다.
실로 막강한 진기가 실린 장소성이 동굴을 뒤흔드는가 싶더니
자색기류로 덮인 동굴 입구를 통해 날아드는 흑영 하나가 있었다.
번개를 방불케 하는 신법의 주인공은 나이 오순 정도의 흑의중년인이었다.
동굴을 보호하고 있던 기문진은 석진영이 던진 신탄의 폭발에 의해 파괴되어
내공이 강한 사람은 막을 수 없는 상태였다.
흑의인이 바람같이 날아들자 석진영의 눈에서 생기가 감돌았다.
'오오…하늘이 돕는구나.'
석진영은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어엇?"
흑의인이 동굴 안으로 떨어져 내리며 괴이한 광경에 어이없어 할 때였다.
석진영은 자신의 머리를 박살내려 하던 손으로 낙헌지를 향해 뇌공장(雷公掌)을 쳐냈다.
"지옥제일검― 쓰러져라!"
꽈르르르― 릉―!
뇌성과 함께 막강한 강기가 뿜어졌다.
"어림없다!"
낙헌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석진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에
그가 뇌공장을 일으키는 찰나 취마보(醉魔步)를 밟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흥, 비굴한 놈!"
그는 냉소를 치며 하며 석진영을 향해 일장을 내지르려 했다.
순간, 흑의중년인의 사자후가 터져나왔다.
"네가 지옥제일검이라는 놈이구나!"
맑은 음향과 함께 장검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번― 쩍―!
첨예한 검기가 그대로 낙헌지를 향해 뻗어나갔다.
"어리석은 사람!"
낙헌지가 한 손으로 석진영의 가슴을 후려치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흑의인의 검을 상대했다.
"크으― 윽―!"
가슴에 일 장이 적중된 석진영은 비명을 지르고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파악―!
흑의인의 장검은 낙헌지의 왼손 안에서 딱 멈추어졌다.
낙헌지는 한 순간에 두 가지 일을 절묘하게 구사했다.
하지만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펼쳐내느라 양손 모두에 혼신 공력을 깃들일 수는 없었다.
"으음…!"
흑의인의 검을 막아내기는 했으나 손이 베어지는 것은 면치 못했고,
석진영을 치기는 했으나 그를 박살내지는 못했다.
석진영은 오장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싸우기를 아예 포기했다.
"검왕(劍王), 그가 지옥제일검이오. 반드시 죽여야 하오!"
석진영은 흑의중년인을 향해 악을 쓰면서 몸을 일으켜 동굴 밖으로 훌쩍 날아갔다.
낙헌지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너는 죽은 후에야 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는 흑의인에 의해 석진영의 추격을 포기해야 했다.
"지옥제일검! 남천옥룡을 죽이려면 일단 나를 죽여야 한다. 너를 찾고 있었다!"
흑의중년인은 안광을 발하며 좌장으로 낙헌지의 가슴을 강타했다.
퍼펑―!
폭음과 함께 낙헌지는 비틀비틀 두 걸음 물러나 몸을 세웠다.
"으음, 대무신장(大武神掌)이군."
낙헌지가 쓰러지지 않자 흑의인은 망연히 놀란 표정이 되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과연 대단하군, 소문 이상이다."
"비키시오! 싸울 시간이 없소."
낙헌지는 석진영을 죽여야 하는 일념에 흑의인을 무시하려 했지만,
흑의인은 검을 곧추 세우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최소한 동귀어진이 있을 뿐이다!"
비장한 각오가 서린 태도에 낙헌지는 검미를 치켜올리며 외쳤다.
"어서 비키시오!"
"하핫…칠마전의 소전주답게 무공이 대단하군.
하지만 대무신국의 무공 또한 호락호락 하지 않다."
흑의인은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검강(劍 )을 발출했다.
다섯 자 길이의 검강이 발산되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낙헌지는 비로소 그의 존재를 인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당신이 흑의검왕(黑衣劍王)이란 사람이군."
"그렇다, 지옥제일검! 나는 대무신국의 흑의검왕이다.
폭음 소리를 듣고 따라와 네놈을 보게 된 것이다. 기왕 만난 이상 한 번 싸워야 벌여야겠다."
흑의검왕의 옷이 풍선같이 부풀었다.
참으로 기묘한 만남이었다.
흑의검왕이라면 칠마령의 세 조각을 지키기 위해 대무신국에서 파견된
일백정검수의 우두머리격이 아닌가?
그가 오히려 칠마전의 무리를 돕게 된 것이다.
낙헌지는 한순간에 그를 제압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묘책이 떠올랐다.
"흑의검왕, 나를 막을 수 없소."
"어리석은 소리! 최소한 너와 함께 죽을 자신이 있다."
"칠마령이 숨겨져 있는 곳에서 오십 장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정검수 수장으로서의 본분인데
그것을 잊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오?"
낙헌지는 엄한 표정으로 손을 쳐들었다
. 동굴이 보광(寶光)에 물들었다. 그의 손에 옥패 하나가 쥐어진 것이다.
"허억, 정검령(正劍令)…?"
흑의검왕의 얼굴이 희게 변해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정검령주(正劍令主)을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는단 말이냐?"
낙헌지의 외침에 흑의검왕은 참담한 표정이 되었다.
지옥제일검이라면 천하의 악적이다
. 하지만 그에게 정검령이 있다면 항거할 수 없다.
그것은 지엄한 사문(師門)의 영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흑의검왕은 듣거라!"
낙헌지가 동굴 어귀로 미끄러지며 흑의검왕을 향해 명했다.
"삼밀사에게서 정검령주의 지위를 물려받은 사람으로 명하겠다.
곧 금의검선자에게 회혼단을 먹여 제정신을 찾게 한 후 검보로 돌아가
지옥궁의 습격에 대비하고 검보를 떠나지 마라!"
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동굴 밖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흑의검왕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누워 있는 이약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이것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로서는 누가 진짜 정의(正義)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첫댓글 헸갈리게 만드는군.흠
감사합니다
즐감요!!!!!
즐감하고갑니다.
재미있네요
감사히 잘보았습니다
즐감~!
ㅈㄷㄳ
감사해요~~~~^~
ㅎㅎㅎ
검왕
감사합니다
ㅈㄷ
즐감요~
즐감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독요
즐독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