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인사, 무엇이 문제인가
미래경영연구소
연구원 함용식
1. 며칠전 박 대통령이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융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그 뉴스에서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되어 언급된 내용 중 하나로, 모피아(MOFIA: 재무부 출신 관료)들의 독식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KB금융지주 회장, 농협금융지주 회장, 여신금융협회 회장, 수협은행장 등이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들로써 관료들의 인사 독식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제 2금융권에도 금감원 출신 관료들이 임원으로 포진해있다는 뉴스가 어제 오늘에 걸쳐 올라왔다.
2. 이와 관련 어제 청와대는 공공기관과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평가서를 발표하며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물 갈이를 암시했다.
이 평가서는 18명의 공공기관장들에게 낙제점(D등급 이하)을 줬는데, 이는 공공기관장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 2009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그리고 본인이 D, E 등급을 받은 기관장들의 프로필을 네이버에서 검색해본 결과, 10명이 관료 출신, 3명이 교수 출신, 정치인 출신 1명, 금융기관출신 1명, 실업인 출신1명, 나머지 3명은 검색이 안됐다. 확실히 눈에 띄는 점은 일반적으로 전문성을 갖췄을 것이라고 인식되는 관료와 교수들이 이번 평가에서 낙제자의 70% 이상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3. 이러한 공공기관 인사 문제와 관련하여, 어제 한국의 대표적인 두 신문사가 올린 사설 두개가 서로 의미심장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먼저 A신문 사설은 공공기관 기관장 인사에 관료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점엔 일부 공감했지만, 이 인사들이 모두 청와대를 통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공공기관 기관장 후보를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B신문 사설은 금융기관 뿐 아니라 국토해양부와 산업통상부 산하 기관인 인천국제공항, LH, 에너지관리공단 등에 모두 해당 주무부처의 관료들이 기관장으로 들어섰다며 관료들의 인사 독식 문제를 보다 강도높게 지적했고, 무엇보다 청와대가 이러한 관료 독식 현상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시의적절했으며, 인선이 한두 달 늦어지더라도 관료들이 요직을 싹쓸이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는 또다른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능력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공정한 인사를 해야함과 동시에 능력있는 인재들을 여러 분야에서 고루 등재 하라는 뼈대있는 조언도 놓치지 않았다.
일단 본인은 두 사설 중에 B신문 사설이 문제점을 더 정확히 간파했다고 생각한다. A신문 사설은 현재까지 벌어진 관료 독식 인사를 청와대가 주도한 듯 언급했지만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드러난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보면마치 권위주의의 폐해를 피하고자하는 강박관념 조차 느껴질 정도로, 하부 기관들의 독립성을 왠만해선 건드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면모는 이번 국정원사태에 대해서 처음부터 검찰들에게 국정원 압수수색을 허락했고, 검찰들이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에 모종의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를 전혀 보이지 않은데서 분명히 나타난다. 또한 기본적으로 『정부 3.0』을 국정 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정부의 핵심 정보들을 국민들과 모두 공유하겠다는 의식은, 비밀주의 정보 독식에 의한 기득권을 현 정권은 조금도 누릴 의도가 없음을 천명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지금까지 벌어졌던 공공기관의 관료 독식 인사를 청와대가 주도한 듯 언급한 A신문 사설은 사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관료 독식 인사를 주도한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정부 부처의 장관·차관들을 비롯한 관료출신 인사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공공기관의 관료 독식 인사를 일부 허용한 측면은 일견 있었다고 보인다.
이에 대해 조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과거 한국의 관료들은 사실 지금처럼 복지부동, 보신주의, 부정부패로 물든 한량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 60년대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은 물론이고, 당시 한국의 완전한 불모지였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자신들의 전문분야와 너무나 동떨어진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발품 팔아 뛰어다니며 개척함으로 한국의 산업과 과학기술의 반석을 놓았던 것이다. 이 것은 그들이 그 분야 전문가들이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시 그들은 어찌하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가득했고, 사명의식으로 가득한 자는 당연히 돈, 뇌물, 향응 같은 류 들로부터 내성이 강할 수 밖에 없었을 뿐 아니라, 잘못된 것에 대해 권력자에게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용기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 소위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들을 훨씬 능가하고도 남는다.
5. 그러나 이 시대의 관료들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진 오늘날, 그들은 더 이상 소명의식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시니컬한관점일 수 있으나, 솔직히 그들 다수는 무사안일 보신주의 속에 잠자고 있으며, 그런 자들 중 상당수가 돈과 술과 성적인 것에 노예가 되었다. 또한 이들, 특히 주로 행시 패스자들은 자기들 끼리의 이너써클을 형성하여 『관료 → 교수 → 공공기관장』으로 돌아가는 『끼리끼리 인사』에 매우 능숙하다. 이런 자들에게서는 결코 혁신과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이들이 각 정부 부처에 산하기관을 만들어놓고, 퇴직 후에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산하 공공기관의 장으로 들어가, 약 3년 정도 동안 수억원~십억 단위의 연봉을 받으며 끼리끼리 다 해먹는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 기득권들 중 아마 관료들이 최고 수준의 모럴헤저드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럴헤저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요소 투입이다. 바로 정치인, 기업인, 과학자, 부조리를 못견뎌 바른소리 쓴소리로 밀려난 과거의 관료출신들 등 다양한 계층을 섞어서 기용하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을 기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신있고 개혁적인 정치인들은 사실 복지부동 관료 사회를 이러저리 흔들어 깨울 아주 좋은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