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권정숙
구름이 차양을 두른 듯한 하늘을 보며 곳곳에 솜사탕처럼 둥그스
런 뭉게구름 속에서 임종 직전에 보았던 세 여인의 얼굴이 미소 짓고 있다.
生과 死의 갈림길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
지 아니면 운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인들이 숨을 거두기 전에 나는
늘 그들의 마지막 문병객이 되었었다.
결혼 전에는 가깝게 지냈던 언니가 오랫동안 앓았던 폐결핵으로 꽃잎 같은
청춘을 다 펴지도 못한 채 떠나기 전 모습을 보았었고, 결혼 후에는 동기간
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내게 친 언니처럼 다정 다감 했었던 그녀 역시 갑작
스런 뇌졸중으로 떠나갔다.
그렇게, 그녀들이 떠난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잊혀지지 않지만 간암으로
하여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해왔던 한 친구는 유난히 잊지 못할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찌 할 수 없다는 듯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살점을 에이는 듯한 끝없는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고통이 멎는 날은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을 정도로 낙천적인 친구였다.
워낙에도 청순했던 이미지였지만 항암치료로 해서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었
으나 단정한 가발을 착용함으로 그 이미지를 유지 하였고 틈 날 때 마다 지
방 곳곳에, 심지어는 해외여행까지 다니는 여유로움을 보이고는 했다. 죽음
이 가까워 온다는 불안도 그녀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본인의 정신은 이미 없었다 아니 차
라리 그녀에게나 가족에게는 다행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순간 아무도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던 친구의 남편은 문병을 간
내게 방금 항암치료를 받고 잠이 들었다며 마지막 모습이 될지 모르니 들어
가 보라고 하였다.
병이 악화된 후부터 얼마간 볼 수 없었던 친구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두려움으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병실 문을 열었다 미세한 공기
접촉도 위험한 상태여서 그녀의 침대는 새 하얀 커튼으로 가리워진 상태였
지만 커튼사이로 비춰진 친구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가 없었
다.
호흡기를 코에 삽입한 채 무릎사이에 손과 얼굴을 묻고 쭈그리고 앉아 그렇
게 잠이 들어 있었지만 형상은 마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물처럼 구석진
하얀 벽에 기대어 목을 조른 듯 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런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있으랴 바라보는 마음이 너무나 힘겨
워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로 문을 닫고 말았다. 차마,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아픔을 쓸어안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사망의 숲 속으로 들어가서 영영
나오지 않았다.
바보 같으니라구 편한 모습으로나 갈 것이지 그렇게, 다리도 편히 못 펴고
가야만 했다니... .
하기사 어떻게 두 다리 쭉 펴고 갈 수가 있었을까 어떻게 발길이 떨어졌을
까 끝도 없이 머물고 싶었을 생명, 타들어가는 그리움으로 고통 받는 가족
의 모습을 어떻게 담담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단 말인가. 넘치는 촛 농
과 재만 남기며 꺼져가는 촛불처럼 작아지는 생명에 안타까움을... .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친구의 모습은 내 마음 한 켠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나는 병문안 가는 것이 제일 부담스럽다. 그리고 그 안에 올리고 내
리고를 반복하는 하얀 침대가 싫고 전기 콘세트가 설치 되어있는 병자의 얼
굴 같이 하얀 벽이 싫다.
그곳에 가면 없던 병도 내 몸속 어딘가로 불빛처럼 스며 들것만 같아 심란
해지며 심지어는 지쳐 있는 보호자들까지도 깊은 병에 걸린 듯 한 모습으로
만 보였다.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청춘을 채 펴지도 못하고 간사람, 완벽한 아내
와 엄마로서 살다 간 두 모습이 구름 속에 포개어 진다. 남겨진 사람들은 떠
나간 이를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새봄을 맞이하듯 향긋한 봄 내음 속에서 삶
이 기울어 가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기까지 우리는 어떤 희노애락으로 지
고 지는 세월을 살아가게 될까.
아픔과 외로움이 있는 병실은 평탄치 않게도 하고 희망을 갖게도 하지만 건
강한 삶을 위하여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가도 짧은 세월이건만 우리 자신
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앞에 간 그녀들의 얼굴이 오늘 따라 더욱 짙어지는 것은 지금 내 마음의 뭉
게구름 속에 더욱 깊숙이 묻혀 있기 때문이리라.
2003 17집
첫댓글 아픔과 외로움이 있는 병실은 평탄치 않게도 하고 희망을 갖게도 하지만 건강한 삶을 위하여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가도 짧은 세월이건만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친구의 모습은 내 마음 한 켠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나는 병문안 가는 것이 제일 부담스럽다. 그리고 그 안에 올리고 내
리고를 반복하는 하얀 침대가 싫고 전기 콘세트가 설치 되어있는 병자의 얼
굴 같이 하얀 벽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