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0일 연중 27주간 화요일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20여 년 전 우리 아이들과 아내는 음치인 내게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느라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매일 가르쳐줘도 음감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못 부르니 포기 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정말 몇 십 년 만에 배우는 노래이지만 그 노래의 가사가 정말 좋아서 그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을 하여서 겨우 배우게 되었고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하덕규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 ‘가시나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인과 촌장’과 ‘조성모’가 불렀는데 나는 그 가사의 내용과 분위기에 젖어서 곡을 무시하고 부르기 때문에 그렇게 노래를 배우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겨우 흉내만 내고, 아직도 엉터리로 부를 뿐입니다.
누가 나에게 인정사정 두지 않고 노래를 시키면 나는 분위기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서 기분 좋은 날은 분위기를 뒤엎기도 합니다. 내가 가사를 보면서 따라 부르는 유일한 노래이기 때문에 그 노래밖에 부를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노래를 부를 때 아예 나를 빼놓는 배려를 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쩍 그 노래를 자주 듣습니다. 정말 내 속에는 가사 말처럼 내가 생각지도 못한 내가 너무 많답니다. 그래서 아무도 편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까지도 불편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주 편안한 사람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아주 불편한 것을 억지로 견디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를 사로잡고 있는 많은 것들이 가시로 돌변하여 오장육부를 후벼 파면서 가득히 뿌리도 내리고 가지도 뻗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답니다.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강의하고, 복음 묵상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든 것들이 가시가 되어 내 안에서 똬리를 틀고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세상의 헛된 욕심들입니다. 나는 언제나 헛된 욕심들이라고 하면서도 내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들에게 큰소리도 치면서 펑펑 돈도 써보고 싶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뭉텅뭉텅 자선을 행하고도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계획을 세우기도하고, 유혹하는 사람들에게 말려들어 밤을 새워가면서 충고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고, 사업계획서도 만들기도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게 헛된 것에 마음이 팔려 있는 나를 보고 극구 말리고 어떤 때는 다투기까지 하면서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고,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어려서 겪었던 많은 아픔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잊은 줄 알고 있었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나서 후회와 회한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3-40 년 전의 사건들이 생각나고, 내가 실수한 것이나 잘못한 것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슬프고 우울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는지, 그 아픔이 다시 아픔을 끌어내고, 그 분노가 다시 분노를 만들어내며, 그 슬픔이 새로운 슬픔으로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를 의지하고 나에게서 행복을 찾는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몫을 생각해보면 마르타의 몫이 나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는 주님의 말씀은 마리아는 주님을 중심으로 살았고, 마르타는 우선 급한 불을 끄는데 치중하고 세상의 일에 매달려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에 살면서 급한 불을 끄지 않고, 세상을 무시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매일 내 삶에 올라오는 많은 사건들은 지금 당장 불을 꺼야하는 것들이고, 원칙과 진실을 외면하고 과정을 무시하고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언제 원칙과 진실과 과정을 중심으로 그렇게 차근차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급한 불을 끄고, 당장 처리해야 할 것들에 매달려 살다보니까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삶을 반추해보면 후회와 회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내 안의 가시나무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 할 텐데도 그 실마리를 찾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나를 되돌아보며 이 가을에는 실마리를 푸는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가시나무 - 하덕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요즘 제가 바라보고 있는 저를 말씀하시네요.
복잡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 그림만 있는 제 속 세계를 갖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나 자매님
비워도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자만심으로 가득찬 가시나무의 제 못된 마음까지
주님, 받아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
아멘
감사합니다. 아네스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