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제에 관해 예전에 다른 기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듣는 순간 '아! 그래. 그게 정답이구나'라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일산인가 부천인가... 하여간 한 지방도시에
성인 수련생만 100명이 넘는 태권도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단어들을 보시죠.
지방도시, 태권도장...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성인부 활성화하고는 거리가 먼 조건들이죠.
기본 인구도 적고 먹고 살기 힘든 지방도시에 애들만 바글대는 이미지로 굳어진 태권도장...
하지만, 의외로 성인 수련생이 무려 100명!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도장 관장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성인부를 운영하고 싶은 지도자라면,
정권지르기 하나를 3시간 동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감이 오십니까?
과격한 스파링이 성인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매일 같이 크고 작은 부상이 나오는 타격 중심 스파링을 펼치는
극진가라테나 진무관, 무에타이 등 각종 격투기 도장에는 성인 관원이 넘칩니다.
브라질유술이나 합기계 종목도 부상이 적고 세련된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꽤 과격하고 관절 손상 등 의외로 심각한 부상도 많이 일어나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역시 성인 관원이 많은 편이고, 꾸준히 출석하는 이른바 '충성파' 관원도 많습니다.
무술이 아니더라도 MTB, 마라톤, 암벽등반 등 힘들고 고된 운동은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종목은 돈(!)도 많이 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즐기는 성인들이 많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빵야님이 말씀하신 9번 항목, 즉 잘 정리된 이론이 있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전수해줄 수 있는 지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언제나 먼저 몸보다 머리로 생각하고,
개체차가 강한 만큼 개인이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해도 될 것인가, 이것이 과연 타당하고 효과적인가,
이것이 나를 더욱 낫게(강하게, 멋지게) 만들어줄 것인가,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
거기에서 합당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움직일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당한 이유가 있고, 그만한 성과를 체험하면 그 때부터 확실히 움직입니다.
그러나 일반 무술도장에서는 그보다는 그저 시키면 따라하는 단체 운동 성격이 강하죠.
앞에서 사범이나 관장이 시키는대로 혹은 보여주는대로 몸풀고,
지르기 하고, 발차기 하고, 낙법 하고, 줄 서서 미트 차고,
수리 진도 나가고, 형 진도 나가고, 가벼운 스파링이랑 PT 체조로 마무리하면
정좌하고 앉아서 관훈 외우고, 전달 사항 듣고, 오늘의 한자나 영단어 외우고... -_-a
어린이나 청소년들이야 몸이 먼저 반응하고 아직 모르는 것도 많은 만큼 흡수가 빠른 시절이니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 자체가 신나고, 몸이 즐거우면 그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신체 활동이 더디기 때문에 더더욱 먼저 머리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나의 동작이라도 그 안에서 곱씹고 더 끌어낼 수 있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합니다.
앞서 언급한 무술 종목들은 지도자들이 각 종목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거나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부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관원들과 함께 나누고 하나라도 더 전수하고자 노력합니다.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했던 정권지르기라고 할 지라도 설명 여하에 따라서
'아, 이 자세엔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그럼 더 좋겠구나'라고 납득할 수 있습니다.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게 이렇다면, 저건 저런 것이 아닐까' 라고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도 성인에게는 나름대로 즐거운 부분이 됩니다.
기술 체계 또한 단순히 있는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면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바르고 효과적일 수 있는가를 교정하고 응용하며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어떤 기술 쪽에 재능이 있어.'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특기 기술'이 탄생할 수 있으며,
단순히 형을 외우고 요구하는대로 동작을 다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의 동작을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스스로 수련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반 도장의 지도자들은 생활고에 치여서 등등의 이유로
자기 수련이나 정보 검색 등에 투자할 시간도 없고,
여타 커리큘럼의 연구 개발을 할 여유나 능력이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당장 주요 관원층이 유소년층이다 보니 거기 중심으로만 자꾸 돌아가게 됩니다.
요즘은 도장에 중고등학생도 잘 안 나온다고 하는데 이렇게 연령층이 자꾸 낮아지는 것도
생각해보면 청소년층만 해도 요새는 머리를 많이 쓰고 자아가 강한 편이니까요.
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언제나 줄서있는 애들 가르치는 그 방법 그대로라면... 답은 뻔한 거지요.
어찌보면무술 격투기 동호회에 그나마 성인 비율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얘기 꺼리, 더 많은 대인 관계...
도장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첫댓글 동의합니다. 대학 신입생들만 해도 그렇지 않은데 제대한 학생정도만 되어도 이론을 철저히 설명해줘야 따르는 경향이 있더군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보다는 머리로 먼저 이해하려고 하니 입이 참 바쁩니다.ㅎㅎ
역시 류운님 잘 읽었습니다.
중장년 아저씨들한테 골프가 인기인 이유랑 비슷한 거죠. 서점에서 골프 스윙, 퍼팅에 관한 책을 한번 보십시오. 스윙 하나만 가지고도 손, 발, 다리, 팔, 몸통, 머리, 시선...에 대한 극도로 세밀한 이론은 어느 중국무술의 복잡한 요결과 의념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주말에 한번 꼴로 필드나 연습장을 찾아도 충분히 즐기면서 실력도 차근히 향상되는 즐거움이 있고 또 경쟁심이 덜 심하기 때문에 딱 안성맞춤인 거죠. 저도 골프를 배우고 싶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박지은냥 때문이긴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