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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을 도우시는 하나님 3:13~20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연합군의 승리 3:21~27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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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엘리사는 여호사밧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며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합니다. 바람도 비도 없지만 물이 가득하게 되고, 모압을 이긴다고 합니다. 아침에 모압 사람이 물을 피로 착각해 서로 싸운 줄 알고 노략하러 가지만 패합니다. 전세가 불리해진 모압 왕은 맏아들을 번제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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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을 도우시는 하나님 3:13~20
하나님은 신실한 한 사람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여호람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체면을 봐서 도움을 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잊은 여호람이 아니라 그분을 찾고 의지하는 여호사밧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거문고 타는 자가 연주할 때 엘리사는 골짜기에 물이 가득할 것과 전쟁에서 승리하리라는 하나님 뜻을 전합니다(16~19절).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17절)라는 말은 자연 현상이 아닌 하나님 권능으로 골짜기에 물이 가득 차리라는 뜻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데 하루아침에 물이 가득하게 되는 일은 창조주가 하신 놀라운 일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엘리사가 여호람의 요청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은혜 베푸실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의 신앙과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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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의 승리 3:21~27
모압은 갑옷을 입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모으고 연합군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고 그 물이 태양 빛으로 붉게 보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이를 ‘핏물’로 여깁니다. 바짝 말라 있던 골짜기에 물이 가득 차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모압은 세 나라의 군사들이 서로 싸우고 죽여서 가득하게 된 핏물로 착각한 것입니다. 모압은 공격을 감행하고, 이를 예상한 연합군은 모압을 효과적으로 물리치며 모압 땅까지 초토화합니다. 전세가 불리해진 모압 왕이 자신의 아들을 신에게 바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에 모압 군대는 악에 받쳐 싸우고 연합군은 퇴각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전쟁은 초자연적인 기적 가운데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 더 깊은 묵상
골짜기에 가득 찬 물이 핏물처럼 보이게 한 하나님 권능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내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권능이나 승리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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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구도로 보는 영적 전쟁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도 있고 개인의 삶에도 각자의 전쟁이 있습니다. 전쟁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모든 전쟁의 본질은 영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나와 상대방’ 둘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 마귀’라는 삼자 간의 싸움입니다. 삼자 관계를 삼각형 구도에서 보면 마귀는 절대로 하나님을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를 공격합니다. 이럴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간구와 기도를 들으시고 마귀를 진멸하십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모든 영적 전쟁의 삼각형 구도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 있고 기도하고 있으면 영적 전쟁에서 이기지만, 기도 생활이 무너지면 그 전쟁은 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못 하면 내일 하지’라는 태도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치열한 영적 전쟁 중에 있다는 개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배를, 찬양을, 그리고 기도를 전투적으로 하십시오. 이는 목숨을 건 싸움, 정말 이겨야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면 그 싸움은 절대 질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편에 있으면 반드시 승리를 누립니다.
기도의 사람 / 유진소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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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하 3장 17~18절
하나님은 물이 없는 골짜기에 웅덩이를 파라고 명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자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다음 날 골짜기에 물이 넘쳐흐르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리라는 약속까지 주십니다. 목마름의 해결도, 전쟁에서의 승리도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는 순간은 위기 상황에서도 이성과 상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주님을 찾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 한 그곳은 희망의 장소로 변한다. - 제이 스트렉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이 제 삶에 가장 큰 힘과 능력임을 항상 기억하게 하소서.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영적 전쟁에서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순종해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14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본문으로 들어가기: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호람은 반란을 일으킨 모압과 전쟁을 하기 위해 군사를 모으고,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동맹을 맺는다. 하지만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광야에서 물 부족을 겪게 되고 연합군이 위기를 겪게 되는 가운데 드디어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는다. 이때 소개된 선지자가 바로 엘리사이고, 엘리사는 여호람 왕과 여호사밧 왕을 처음 만나게 된다.
단락구분
13~14절 여호람을 반기지 않는 엘리사
15~20절 여호와께서 물을 주심
21~25절 연합군이 모압을 이김
26~27절 모압 왕이 아들을 번제로 드림
배경이해
27절에서 모압 왕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번제로 드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고대 근동에서 아이를 제물로 바친 증거는 카르타고나 사르디니아에서 발견되며 앗수르 시대(주전 8~7세기) 수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시행되었다. 또한 아이를 제물로 바친 이야기는 성경에서도 언급되는데, 풍성한 소출을 위한 수단(미 6:6~7)이거나 군사적 승리를 얻기 위한 방편(삿 11:30~40)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여호와께서는 이것을 금지하셨다(신 18:10). 주전 8세기 페니키가 비문을 보면 길리기아인들과 그 적군이 전쟁을 하기 전에 몰렉 신에게 그런 제사를 바친 일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에서도 아이를 바치는 제사는 거의 몰렉과 연결되어 나온다(레 18:21, 20:2~5).
신실한 한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공급하는 통로가 됩니다.
개인적 적용
1. 우리에게 맡겨 주신 땅을 섬기고, 그 땅에 나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2. 작은 한 사람을 통해 어마어마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나를 통해 그 땅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풍성하길 소망하도록 하자
3. 주님으로 인해 변화되고, 모든 이들이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을 찬양하게 될 그 날을 기대하도록 하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절 전쟁터에 난무하는 인간들의 함성과 수군거림 속에서는 침묵하시더니, 잔잔한 거문고 소리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엘리사에게는 응답하십니다. 늦추고, 멈추고, 대세에서 멀어져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속도를 성과로 치환하는 삶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고요한 말씀의 안식처에 머물러야 합니다.
16~20절 물이 생겨날 수 없는 상황인데 ‘물을 저장해 둘 개천을 파라’고 명령하십니다. 구덩이의 깊이와 개수는 하나님 약속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뢰와 비례할 것이고, 신뢰의 양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채우심과 해갈하심을 맞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눈앞의 상황에 함몰되기보다 말씀 앞에 서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내 신뢰의 깊이와 너비는 얼마나 됩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3,14절 여호람은 하나님이 전쟁터로 자신들 일행을 ‘불렀다’(10절)고 경건한 척하며 말했지만, 선지자 엘리사는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고 핀잔을 줍니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며 그저 여호람의 혈기와 욕심으로 시작되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주신 감동’ 등 그럴싸한 종교 용어와 수식어로 치장하여 합리화하고 있는 내 삶 속의 이기적인 계획은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21~27절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공급하신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 말씀에 무지한 모압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햇살에 반사되는 물의 빛깔을 보고 연합군이 서로 싸워서 흘린 피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즉시 공격을 감행하지만, 오히려 목마름이 해소되어 기운을 차린 이스라엘에게 대패하고 맙니다. 멸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모스’ 신뿐입니다. 이 우상의 예배 방식은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끔찍한 인신제사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이들의 최후는 이토록 비참합니다.
기도
공동체-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흔들림 없는 말씀에 모든 상황을 맡기게 하소서.
이제 여호와의 말씀은 엘리사를 통하여 전해지는 시대(12절)에 이제 여호와께서는 그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여호람왕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왕을 부추겨 모압왕 메사와 전쟁을 시작한 것은 자신들에게 바치던 조공을 거부함 때문이었는데,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물이 모자라 죽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사용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여호람에게 아비 아합왕과 같이 우상에게 물어보라 하지만, 여호람은 엘리사를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을 드러냈지만, 시작하지도 않은 전쟁에서 여호와께서 패배하게 하신다는 영적으로 어두운 눈(13절)임을 알려줍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의 헌신(14절)을 중보로 받아, 엘리사는 물 한방울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전쟁에서 이기고 모압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을 선언합니다(18~19절). 선하다고 볼 수 없는 여호람왕의 전쟁의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알려주시기 물이 넘치게 하심으로 상상할 수 없는 생명의 역사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구원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우리를 건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옳으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 우리의 죄와 연약함과 부족함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그 구원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큰 일,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만, 여호와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됩니다(18절).
어떤 이들에게는 물이 생명이 되지만(20절) 어떤 이에게는 심판의 도구가 된다 (22~23절). 이스라엘, 유다 그리고 에돔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 것으로 여긴 모압왕은 인간적인 판단으로 선제공격을 하다가 철저하게 패하고, 성들은 모두 무너지고 비옥한 땅이 돌밭이 되었으며, 엘리사의 예언대로 샘들이 다 막히고 좋은 나무들도 다 베어져 버렸습니다.
모압왕은 사면 초과에 이르자, 수도인 길하레셋(25절)에서 자신의 아들을 잔인하게 번제로 드리며, 이스라엘 연합군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어 최종적인 멸절을 피하고 돌이키게 합니다.
이는 여호람의 그릇된 의도가 완성되기 보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있게 하고, 모압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여호와의 사랑과 공의를 보여주는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드러내시길 원하시고, 온전하지 못한 우리의 요구에도 응답하시며 때론 악한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돌아봅니다.
인생 가운데 답이 없음을 깨닫고, 오직 우리를 향해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오시고 생명의 성령의 법을 주심으로 우리가 온전해지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더 알아가길 소망합니다. 의롭다 하시는 그 믿음 안에 온전한 지식과 덕을 구하고, 인내과 절제 위에 온전한 경건을 이루며, 형제우애와 사랑을 순종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아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며, 골짜기에 개천을 파면 물이 가득하게 되고
모압을 이길 것이라 합니다. 아침에 모압 사람이 물을 피로 착각해 노략하러 오자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 이깁니다. 전세가 불리해진 모압 왕은 맏아들을 번제로 드립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엘리사의 예언(3:13~20)
문제 많은 인생에 유일한 해답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책망한 엘리사는
유다 왕 여호사밧을 생각해 이스라엘 연합군을 위한 예언을 합니다. 골짜기에 웅덩이를 파면 물을 얻을 것이며,
모압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둘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기후 여건상 건기에는
땅이 바짝 말라 있어 땅을 판다고 해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고, 이튿날 자신들이 판 웅덩이에 물이 가득하게 고인 것을 발견합니다.
비록 지금 바짝 마른 절망의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샘이 터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바라볼 것은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침체와 절망 가운데서 힘들지만 공동체가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요?
연합군의 승리(3:21~27)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높은 곳에 진을 친 모압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이스라엘이 머물던 골짜기에 해가 비쳐 물이 붉게 된 것을 보고 이스라엘 연합군이 서로 싸워 피로
물든 것이라고 오판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군대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성급하게 노략하러 감으로
패망을 자초합니다. 그리고 결국 모압 땅은 황폐하게 됩니다. 길하레셋마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모압 왕은 급기야 자신의 맏아들을 모압의 신 그모스에게 번제로 바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에 격분한 이스라엘은 철군하고 전쟁은 일단락됩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며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 묵상 질문: 모압 사람들이 착각한 것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고 도와주시길 바라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가망이 없다고, 이제는 틀렸다고 탄식이 흘러나오는 바로 그 순간에도
주님을 붙잡을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원합니다. 간절히 주님의 얼굴을 구할 때,
마침내 역전을 만들어 내시는 승리의 주님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1.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13-14절)
엘리사 선지자는 여호람의 말을 듣고 냉정하게 대답합니다.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그 말을 한 후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여호람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하나님께 간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아합과 함께 하는 모습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부분에 대하여 인정해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믿음의 선한 일을 오랫동안 기억해 주십니다. 그의 믿음으로 행한 선한 행동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십니다.
묵상하기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2.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으십니다.(15-27절)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들이 전쟁에서 이기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 말씀대로 그들은 승리하게 됩니다.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없이 뭔가를 해내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물이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풍성한 물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물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음은 하나님의 능력 부족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골짜기에 도랑을 파기만 하면 그곳을 채우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없이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을 통하여 전쟁에 승리케 하신 것 같이 오늘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의 사람을 위하여 행하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항상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힘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묵상하기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며 사는가?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일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발생해서 어려울 때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물 없는 땅에 물도, 모압과의 전쟁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믿음의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준은 외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실수가 없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일상에서 어떤 신앙고백으로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 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누군가에게 여호사밧처럼 은혜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웅덩이를 파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것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몫입니다. 오늘 무더위와 싸워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느냐를 하나님은 보시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나로 인해 주변 사람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승리를 원하는 사람은 미리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능치 못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겸손하게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옳은 것이라면 믿음으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아 알게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그런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나의 힘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때로는 예기치 않은 사건에서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한 준비입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만 하지 말고 겸손하게 꿇어 엎드리며 나가야 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이 원하는 일의 승패도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원하기는 하지만 이루지는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소원을 갖고 원하는 것을 이루는(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십시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는 자로, 의로운 자로, 열정을 가진 자로 서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악의 영향력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27절)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한 모압왕은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결심을 합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은 그들이 전쟁에서 패하면 그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이 노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압왕은 그의 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큰 아들을 희생제물로 드리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산 사람으로 직접 제사를 드립니다.
모압 왕의 이러한 태도는 모압의 신을 감동시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던 모압군사들의 마음을 크게 격분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사행전의 자세로 싸웠습니다. 모압 군사들이 한 사람이라도 모두 죽겠다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싸우는 것을 본 연합군의 군사들은 그들의 살기에 기가 꺾여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악은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주 강인합니다. 자신의 자식을 바치는 그런 강인한 악함 앞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악은 더욱더 기승을 부립니다. 악은 더욱더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한 부분이 됩니다.
어슬프게 적당히 세상에서 살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적당하게 살다가는 악의 강인함 앞에서 분명코 넘어질 것입니다. 그들의 어설픔은 악한 이들의 강인함 앞에서 영향력을 잃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악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오늘날 왜 그렇게 악이 기승을 부립니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악 앞에서 무기력해졌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선을 행하려는 사람과 악과 깡으로 악을 행하며 이기려 하는 사람이 붙으면 악이 이깁니다. 악이 선 보다 더 강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려는 사람이 악을 행하려는 사람만큼 강인한 자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을 보면 악이 더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은 목숨 걸고 덤비는데 선은 취미생활하듯 하려고 하니 선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며,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있으나 마나 인 사람이 되지 말고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변에서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십시오. 선한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면 그 일에 목숨 바치듯이 진실함으로 행하십시오. 그래서 악의 영향력을 이기고 진정 이 땅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 한 사람 때문에 주변이 따스해지고, 나 한 사람 때문에 살 맛나는 세상이 되며, 나 한 사람 때문에 구원 얻는 사람이 있는 그런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자격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전능자의 날개 아래 거하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을 알리는 메신저로 사용하여 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날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구원에 합당한 삶으로 섬기며 순종하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에도 아버지의 은혜가 마르지 않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허락하신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