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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1: 12 모든 나무가 시들어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 1 )
욜 1: 12 모든 나무가 시들어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 )
또 포도나무가 시들고 무화과나무가 마를 것이며,
석류나무와 대추 야자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전부 시들 것이다.
1]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미 앞에서(7절) 언급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덧붙여 모든 나무를 언급하고,
시들고 말랐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심판에 대한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2]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이러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는 결론을 강조하는 접속사로,
앞에서 언급된 현상들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기쁨을 완전히 상실하게 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우리의 모든 삶이 바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 마음 부대에 넣는 것, 예배가 바르게 드려지고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문제이다.
희망찬 새천년에 하나님 앞에 바르게 예배를 드리는 것,
하나님의 말씀과의 바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요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 메시아 예고, 성령 충만의 시대 약속,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가 기록된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다.
이 요엘서를 통해 새천년을 시작하는 희망에 대한 비전과 재림 신앙을 확고히 세워가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먼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서 전하고자 한다.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1)
요엘을 통해서 내리신 여호와의 말씀, 이것이 우리가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1) 반드시 들어야 할 여호와의 말씀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2上)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어떤 일을 합니까?
말씀은 우리를 중생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신케 한다.
또 말씀은 우리를 회개케 한다.
우리를 견책하고 권고하며 책망하고 우리로 바르게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성경이고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이 설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든지 들을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만 한다.
선택의 다른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도 거역하지도 말아야 한다.
자기 마음에 맞든지 안 맞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의 마땅한 본분이며 인간의 자세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들으십시오.
이것이 오늘 선지자를 통해서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2) 지도자들이 들어야 할 여호와의 말씀
2절에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라고 했다.
여호와의 말씀은 늙은 자들이나 땅의 모든 주민이 다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남의 말을 잘 수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늙은이가 어떤 사람입니까?
오래동안 예수 믿는 사람,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일 수 있다.
또 구약의 '늙은이'는 '지도자', 더 정확하게는 장로(長老)를 가리킨다.
'늙은이'일수록 여호와의 말씀을 잘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신자들에 의해서 배척을 받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수용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초신자보다 오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감하려 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에 대한 말씀을 아담에게 주셨는데 직접 듣지 못한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고
이어서 아담까지 넘어져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지 못해서 일어난 단적인 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를 오래 믿는 사람들, 중요한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교회가 소망이 있습니다.
(3) 전해야 할 여호와의 말씀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3)
하나님의 말씀을 대대로 전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말씀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직접 전하고 가르쳐야 한다.
교회학교만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신앙교육을 해 가야 한다.
둘째, 영적인 자녀를 가져야 합니다.
개인 전도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전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개인 전도를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영적인 자녀를 갖는 것(태신자)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딤후 4:2)은
선택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될 엄한 명령이다.
그 명령을 준행하는 첫 번째가 영적인 태신자를 갖는 것임을 명심합시다.
우리 교회는 3.1운동을 새 천년에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장 큰 명령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도자들이 먼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전해줘야 한다.
이 책임을 우리가 받았다.
우리가 새 천년에 대한 큰 꿈과 위대한 포부를 갖기를 바란다.
이 꿈을 이루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되게 하시기를 주께서 간절히 원하십니다.
3] 예배가 끊어지면 ( 요엘 1:8-12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이해인 씨의 글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가족에게 부끄럼이 없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반갑게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좋은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내 할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이웃과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힘주어 대답하기 위해 지금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좋은 사회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왔을 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이같이 되기를 바라며.... 가을이 왔다가 빨리 갑니다. 복된 가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재앙에 대한 요엘 선지자의 태도는 파멸을 의미하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유도하는 회개의 기회로 보는 것입니다. 심판이 무섭고 가공할수록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간절해집니다. 새벽 직전이 가장 어둡고 추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최고의 축복은 예배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할 때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예배가 끊어지면 영적인 위기이며 파멸입니다. 신앙 부도의 징후이며 증상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예배가 끊어지면 슬퍼집니다.
본문 9절“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소제와 전제는 매일 번제와 함께 드려졌습니다. 이같이 매일 드리는 제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요엘 당시 여러 제사들이 형식에 그치고 말았기에 종교인들에게 파격적인 도전이 되었습니다. 제사마저 드릴 수 없게 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소제와 전제가 끊어짐으로 인해 제사장들은 슬퍼하게 됩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모든 성도들이 크게 슬퍼할 것입니다. 예배드릴 성전이 없거나 예배드릴 성도가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예배드림은 영적인 축복이며 기쁨입니다. 성도가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이는 저주이며 큰 슬픔입니다. 제사장이 슬퍼하면 온 백성이 슬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십니다.
소와 사자가 있었는데 둘은 서로를 죽도록 사랑하여 결혼하였습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육식동물인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초식동물인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하지만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소와 사자는 크게 다투고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난 최선을 다 했어!”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의 상태를 헤아리지 못하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마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상대를 대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나 위주의 최선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나 중심과 나 위주의 예배는 아닌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예배가 되도록 늘 기도하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가 우리 개인, 가정, 교회에서 소홀해지거나 끊어지면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슬픔이 몰려옵니다. 예배는 드리고 또 드려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늘 부족할 뿐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어 슬픔은 물러가고 기쁨이 충만한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예배가 끊어지면 없어집니다.
본문 10-11절“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요엘 선지자는 자신의 논지를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장차 임할 재앙의 결과를 예언합니다. 농경지와 목축지를 가리키는 모든 땅이 생산력을 잃게 됨을 말합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의미합니다. 밭의 모든 소산이 다 없어진다는 예언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밀과 보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농사도 하나님이 허락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떠나시고 저주하시면 순간 다 없어집니다. 내가 다 소유한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에 다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다 떨어지고 마르고 없어집니다.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와 전제가 끊어지면 모든 것은 다 없어집니다. 예배가 끊어지면 다 없어집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다 떠나가게 됩니다.
명예, 지위, 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과 기자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지요. 그는 평소에 강의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칠판에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1,000억!” 그리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재산이 아마 천억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지요. “여러분, 이런 제가 부럽습니까?” “네!”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그는 웃으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이런 성공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1,000억 중에 첫 번째 0은 바로 명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0은 지위입니다. 세 번째 0은 돈입니다. 이것들은 인생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앞에 있는 1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만일 1을 지우면 1,000억이 어떻게 되나요? 바로 0원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명예, 지위, 돈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그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없다면 바로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물질과 모든 것은 0에 불과합니다. 우상입니다. 인생 메뚜기가 다 먹어치웁니다. 때로는 질병, 도둑, 사기꾼, 여러 곳으로 물질이 사라집니다. 황충이 먹어버립니다. 예배가 끊어지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포도와 밀과 보리가 다 없어집니다. 나의 모든 소유와 보화가 다 없어집니다. 다 내 손을 떠납니다. 물질 때문에 예배를 포기하거나 줄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예배를 잘 드림으로 더 풍성해지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예배가 끊어지면 마르게 됩니다.
본문 12절“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와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습니다. 시들고 말랐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심판에 대한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나무가 시들고 말랐으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라버렸습니다. 사람이 삶의 기쁨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업과 일이 망했으니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무슨 의욕과 힘이 있겠습니까? 그냥 주저앉은 것입니다. 모든 기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망연자실한 모습입니다. 곡식과 포도주의 수확이 없게 되었으므로 모든 기쁨이 사라져 버렸고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제사의 상실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영적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기본적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삶이 총체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대로 이끌리어 살다보면 영적으로 무감각해져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무엇도 인간에게 행복과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샘에 물이 마르듯이 사람의 즐거움이 말라버립니다. 명예나 물질에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즐거움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힘이시고 즐거움이십니다. 즐거움이 없습니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반드시 놀라운 즐거움이 넘칩니다.
패니 크로스비(1820~1915)는 태어난 지 8주 만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한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죽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신앙의 눈이 열려 행복을 누리며 사는 법을 체득하였습니다. 여덟 살 때 이런 시를 썼습니다. “비록 앞은 못 보지만 나는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가! 나는 다짐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리라고” 그녀는 열 살 때부터 성경 전체를 암송하기 시작하고 기타를 배우며 찬송시를 작사하여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지은 찬송가 중에 ‘후일에 생명 그칠 때’가 특히 유명합니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없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어느 날 한 목사가 패니 크로스비에게 앞을 볼 수 없어 몹시 안타깝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패니는 “아니에요. 다시 태어난다 해도 맹인으로 나게 해달라고 말할 겁니다. 천국에서 처음으로 뵐 분은 저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일 테니까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패니는 ‘주가 맡긴 모든 역사’란 찬송에서 예수님을 뵈리라는 소망을 다음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당할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패니 크로스비의 삶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인간을 얼마나 행복하고 위대하게 할 수 있는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만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잠깐이고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이 영원한 것입니다. 예배가 끊어지면 모든 것은 마르게 됩니다. 인간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마르게 됩니다. 예배 회복으로 즐거움이 넘치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작아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예배가 끊어지면 슬퍼집니다. 없어집니다. 마르게 됩니다. 예배 회복으로 기쁨과 물질과 즐거움이 넘치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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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 7:2).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