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아침 8시에 잠실종합운동장에서 180여 명(골프, 등산, 문화탐방)이
버스 5대에 분승, 강원도 양양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문화탐방에서 박게언 동문과 카메라 담당, 김배경 동문이 촬영한 골프팀과
박춘경 동문이 촬영한 등산팀의 사진들이 기대됩니다.
문화탐방팀은 관동8경 중 하나인 청간정, 금강산의 고찰 건봉사, 민속촌 왕곡마을
등을 둘러 보았는데, 김유원 동문의 친절한 안내와 해박한 해설을 통해서
동문가족 모두가 탐방여행의 진가를 유감없이 만끽했습니다.

누구냐구요? 최금석, 김영환, 이준범, 서영환, 유용진

강원 고성군(高城郡) 토성면(土城面) 청간리에 있는 정자.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구릉 위에 있으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아침의 해돋이광경과 낙조(落照)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정자의 창건연대와 건립자는 미상(未詳)이나 1520년(중종 15)에 간성군수(杆城郡守) 최청(崔淸)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불타 없어진 것을 40여 년 후인 1930년경에
지방민들이 재건하였다. 그 후 1955년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명으로 보수하였고(지금의 현판은 그의 친필),
1981년 4월 대통령 최규하(崔圭夏)의 지시로 해체복원(解體復元)하였다(Naver백과사전).

정맹석, 그리고 김종수 부부

오현식 부부

임한응 부부

건봉사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冷川里)에 있는 절.
신라시대 법흥왕 7년(서기 520년)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하였다.
758년(경덕왕 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만일회의 시초이다.
그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사찰을 중수(重修)하여 서봉사(西鳳寺)라 개칭하였는데
1358년(공민왕 7)에는 나옹(懶翁)이 사찰을 중수하고 다시 건봉사라고 개칭하였다.
1464년(세조 10)에는 어실각(御室閣)을 짓고 역대 임금의 원당(願堂)으로 삼았고 그 뒤,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사리와 치아를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며
구한말 개화사상과 신문화교육을 위해 봉명학원이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아군 5,8,9사단, 미군 10군단과 북한군 5개 사단이
이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때 건봉산지역 전투로 사찰의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으나
1994년 이후 점차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옛 절터와 대웅전, 불이문(강원 문화재자료 35), 9층탑을 비롯한 7기의 탑,
48기의 부도(浮屠), 31기의 비석이 있다(Naver백과사전)






건봉사 능파교


아래의 사진들은 고성군 민속촌 왕곡마을 방문 모습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에 있는 민속마을.
2000년 1월 7일 중요민속자료 235호로 지정되었다.
크기 18만 2112.7㎡인 이 마을은 죽왕면의 송지호 뒤편,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로 100년 가까이 된
기와집 20여 채와 초가집 30여 채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1988년 전국 최초로 전통마을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19세기를 전후하여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은 ㄱ자형 구조로 안방과 사랑방,
마루와 부엌을 한 건물 안에 나란히 배치하고, 부엌에 마구간을 덧붙여
겨울이 춥고 긴 산간지방에서의 생활에 편리하도록 했다.
대부분 관북지방 가옥 특징인 겹집 형태이며, 각 집마다 굴뚝 모양을 다르게 만들었는데,
진흙과 기와를 한 켜씩 쌓아 올리고 드문드문 항아리를 놓기도 했다.
함씨가 대성을 이루어 집성촌의 형태를 띠는데,
마을 입구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효자각은
1820년 함씨 집안 효자 5명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공현진해수욕장에서 맞는 달맞이가 장관이며,
주변에 오색온천, 통일전망대, 청간정, 송지호, 화암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첫댓글 야... 보기 참 좋다.... 특별히 이곳의 동기 김종수의 그 어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등, 다른 동문들의 어부인과 같이 찍은 사진들이 더 행복해게 보이는 것이 참 보기 좋구만... 처음 올린 사진들 중 먼저 눈에 뛰던 염성국의 활짝 퍼진 행복한 얼굴이 여기선 안보이는 이유는??
참 잘도 파악하였군 그래. 나도 궁금해서 둘째날(20일), 셋째날(21일) 사진들을 다시 훌터 보았는데, 염성국 부부의 행복한 모습이 없더구만. 그러니까, San Francisco 이시우(李時雨) 부부와 마찬가지로 New Jersey주 염성국(廉聖國) 부부도 강원도여행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일쎄. 그렇지만, 염성국 부부 관련 사진들은 16장이 있어서 내가 e-mail로 부쳐주었다네.
5월 28일 Georgia주 오현식(吳鉉植)의 E-Mail : Dear TaeHo, Thank you for the memorable images ever happened in the last 50 years.
태호와 한응의 E-Mail : 泰鎬-> 안녕, 임한응!!! 그렇게 50년만인데도, 마치 매일 보았던 것처럼 느껴지더구만. 더욱 멋진 시간들을 갖지 못해서 아쉽지만, 우리들은 아마도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 : Georgia주 林漢膺-> 고맙다. 그래, 만나서 반가웠다. 그런 좋은 행사의 임원으로 준비하고 집행하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참으로 성공적인 행사 였었서. 축하한다. 좀 나도 더 너하고 같이 보낼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러나 네가 보내고 있는 좋은 글, 사진, 음악으로 늘 같이 있지 않니.하엿튼 우리는 얼마나 복을 받고 있는지 새삼스렇게 느꼈다.몸 건강히 잘 있어라.
태호와 임규의 E-Mail : 泰鎬-> 안녕, 이임규 !!! 졸업기념행사에 부부동반해서 오기를 잘 했지요 ? 본인이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 촬영 자료가 많을 것 같네.태호의 카메라에 몇장이 눈에 띄어서 보낸다. San Francisco 李壬圭-> 보내준 사진 잘받아 보았다. 늘 챙겨주는 우정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이 기회에 이번 50주년 행사를 주관한 임원진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림니다. 이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