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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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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무 많이 보았는가 보다. '러시아', '기행'이란 두 낱말이 들어간 책임에도 제대로 된 사진 하나 없다. 요즘 출간되는 여행서적들과 비교하면 심심할 지경이다. 지은이인, 시인 최하림도, 책을 펴낸 출판사도, 이 점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이렇게 책을 펴낸 까닭이 어딘가 있으리라. |
못 보았다고 유감스러울 것도 없었다. 오늘 나는 너무 많이 본 셈이었다. '너무'가 들어가면 체할 수도, 탈이 날 수도 있다. (37) |
과연… 우리는 요즘 '너무 많이 본' 여행들만 기억한다. 나 자신도 그렇다. 두 해 전 봄날, 브루나이를 가족들이랑 다녀와서도, 쓴 글은 세 쪽도 되지 않으면서, 여러 곳에 퍼뜨린 사진은 수 백 장이었다. 그렇게 우리네 삶의 모습이 변해가고 여행 記도 맞춰져서 글에서 사진으로 바뀌나 보다.
![]() (2008년 봄, 브루나이) |
그런데 이 책은 고집스럽게도 지은이의 발자취와 소소한 이야기들을 끌고 넓고 거칠고 황량한 시베리아를 건너간다. 그 벌판에 흩뿌려진 러시아 역사와 예술 이야기는 당연히 우리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게다가 지은이는 시인이다. 시인이기에 가능한 문장들이 읽는 이를 더 설레게 한다. 아니, 어쩌면 일반 여행자들이라면 더 흥분하고 찬탄해 마지않았을 일들은 건너뛰고 문학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오히려 강조한다. [최하림의 러시아 예술 기행]이라 이름붙이고, 사진 한 장 제대로 더하지 않아도, 그 이름값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
다시 한 잔을 더 입에 부어 넣고, 육개장이 나오자 빨간 육개장 국물을 들이마셨다. 속이 따끈따끈하면서도 기분이 풀어져갔다.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붉은 육개장 국물도 마셨다. 나는 붉은 국물을 마시며 붉은 광장을 떠올렸고 바실리 사원을 떠올렸고 레닌을 떠올렸다. 레닌은 말했다. "톨스토이의 모든 것을 영구히 보존토록 하라"고. 레닌이 야스나야폴랴나에 처음 갔을 때, 한 말이었다. (104) |
비록 실패한 도전으로 끝나버렸지만 이러한 문화에 대한 원칙이 있었기에 그 많은 문화유산이 살아남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엄청난 문화유산을 잃어버린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역사이기도 하고. 게다가 시인의 눈에 들어온, 여행객들을 실어나르는 차량의 운전기사 이야기도 새롭다. 오래전 중국에 짧은 여행을 갔을 때에도 놀랐던 일이, 운전기사님께서 틈만 나면 책을 보는 모습이었는데 러시아에도 비슷한 풍경이라니…. 물론 러시아의 운전기사는 지식인이 몰락한 뒤의 모습이라 조금 씁쓸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 (에르미타슈 박물관 전경) |
나는 기사의 책 읽던 모습과 그의 넓은 이마와 눈이 떠올랐다. ~ 그는 우리들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 미국의 꼭두각시거나,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데는, 나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현재가, 이 순간이 가장 중요했다. 어제나 내일은, 오늘의 시점에서 보자면 무의미한 것인지도 몰랐다. (68) |
러시아의 역사가 그러하듯 그들의 예술도 찬란하게 피어났지만 지금은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많은 작품 하나하나에 묻어있는 이야기들 만으로도 소설 수 백 권은 족히 가능하리라. 지은이는 두 번의 러시아 기행 이야기 속을 걸어가며 러시아 예술에 대한 너른 관심과 애정을 나타낸다. 그러나 어쩌랴, 러시아의 역사가 아프게 저물었듯, 그곳의 예술가들 역시 저물어 갔으니…. |
이 책은 러시아 여행을 앞 둔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입문서이다. 구체적인 일정도 요약되어 있지 않고 찾아갈 여행의 팁 Tip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감상법을 일러주고 그 사례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으니, 마땅히 한 번씩 만나보고 러시아로 떠나야 하리라. 여행은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보고 느끼는 것일지니…. |
나는 외국 여행을 하려면 반드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서들을 읽고 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반성을 하면서 투어 버스에 올랐다. (64) |
2010. 4. 19. 50년 전 그날처럼, 붉은 진달래 함성 그리운 밤입니다. |
들풀처럼 |
*2010-043-04-05 |
*책에서 옮겨 둡니다. |
상상은 언제나 사건을 확대하고 극단으로 몰아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역사는 갈수록 무섭고 잔인해져간다. (18) |
순간 나는 바이칼도 슬프고 푸른 꽃들도 슬프고 우리도 슬프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슬픈 생각들을 안고 기념 촬영을 했다. 축제라 할까, 퍼포먼스라 할까. 기억 속 깊이 바이칼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23) |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내가 러시아가 아닌, 러시아 민중을 알게 된 것을 생각하면 유형 생활은 결코 시간 낭비였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도스토옙스키) (41) |
내가 처음 울음과 눈물을 생각하게 된 것은 확실히 알료샤로부터였고 연민을 경험한 것은 1980년 5월 광주로부터였다. 나는 도청 앞 광장을 지나 금남로 길을 걷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캄캄했다. 나는 붉은 꽃을 보았다. 꽃이 나르르 위로해주었다. (45) |
기사는 그때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는 차가 멈추어 있을 때마다 책을 보고 있었던 듯했다. 얼굴도 보통 기사답지 않게 단정했다. (61) |
위대한 교사보다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는 깊고 크다. 위대한 작품은 시대가 흘러가고 가치관이 변해도 역경에 처한 사람들은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준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등불이 되어주고 다친 상처를 쓰다듬어줄 수 있으되 위대한 교사는 역사로밖에 남지 못한다. (101) |
낭만주의적 여행가들은, 여행이란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풍경을 보고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그 풍경을 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 긴 시간은 충족의 깊이를 가지고 온다. 그런 충족이 참 여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처럼 외국 여행길에 나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 앞에 나나탄 풍경을 오래 보고 있을 수 없다. 한 사원, 한 도시라도 더 보아야 한다. (106) |
역사란 이렇게 아버지와 그 아들과 또 아들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떠오르는 무대이자 거울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110) |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해요. …… 우리는 길고 계속되는 낮과 밤들을 살아가야 한단 말이에요." 라고 하는 소냐의 목소리(<바냐 아저씨>)도 들려온다. (117) |
시인은 보는 자이지 혁명운동가가 아니다. 시인은 군중일 수 없다. 시인은 철저하게 개인이면서, 개인 이상의 높은 곳에 이르러야 한다. (133) |
삶의 목적이나 운명은 우리가 화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화해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다. (138) |
때문에 그 어둠은 고향이란 말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슬픔에로 가 닿고 있으며, 삶과 죽음이 지나가고 만나 섞여 흐르는 대지(길)가 된다. 놀랍게도 그 대지는 빛과 생명을 껴안고 있다. 그 면에서 타르콥스키의 영화는 대지의 시이자 구도자의 기도다. (151) |
그런데 그 순교는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 세상을 구하려면 밭으로 나가 일해야 한다. 일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야말로 진정 헌신을 요구한다.) (152) |
나는 지나치게 많이 보고 다녔다.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팠다. 무엇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161) |
작가란 그렇게 고통스런 눈으로 세계를 보고 세계를 아파하는 자다. 아파하는 일 외에 더 할 것이 없다. 아픔이 작가의 양심이다. (182) |
참다운 시는 진정성과 더불어 감상, 퇴폐, 허무가 버무려진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 ~ (196) |
버스에 몸을 실은 채, 이 같은 생각을 두서없이 하고 있을 때, 차는 슬픔의 종착역 같은 다다랐다. 작가들의 공동묘지였다. (1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