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무위키저자의 견해를 싣습니다.]유생 한생이 유방과 다른 제후들을 견제하면서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에서 머무르면서 세력을 기르자고 했지만 항우가 이를 반대하면서 한 말에서 유래했다.이 고사성어는 항우가 그만큼 고향을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고향 사람만을 잘 대해주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항우의 전략적 식견이 얼마나 좁은지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함양이 자리잡은 관중 평야를 둘러싼 하수와 진령산맥은 천혜의 요새였고, 두 자연 요소가 만나는 함곡관만 틀어막아버리면 외부 세력이 관중 안으로 진격하는 것은 당시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관중 평야의 무시무시한 생산력은 그 당시 중국 어디와 비교해도 제일의 생산력을 자랑했다. 여길 포기하고 당시로서는 깡촌 중에도 깡촌이었던 초나라로 돌아간 것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실책이었다.
중국의 TV대중석학 이중톈은 그의 책 『중국인을 말하다』박경숙 (옮긴이) 은행나무, 2008. 에서 중국인들은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족속이라고 하면서 그 예를 고대의 <초한지>영웅인 항우로 들고 있습니다.한마디로 항우는 그놈의 체면차리려고 개폼 잡다가 망하고 뒈졌다는 겁니다.예컨대,항우가 유방과 그 유명한 【홍문의 만남】에서 관중땅을 양보받고 관중땅에서 분탕질하고 실컷 한풀이(자신의 조국 초국이 관중을 발판으로 천하통일한 진나라에 망했으므로)를 하고 자신의 고향 팽성(=서주)으로 서둘러 천도를 하고자 한 이유도 자신의 고향가서 자랑하고 싶은 체면심리가 작용했다는 겁니다.즉,“고향의 어르신들,저 항우,어르신들의 한풀이 확실히 하고 이렇게 금의환향(=이 사자성어가 여기서 유래함) 했습니다”하고 자랑하고 싶었다는 것이죠.또 하나 항우가 그 유명한 해하의 【사면초가】로 강동자제 8천을 다 잃고 오강을 건너지 않고 자결한 것도 바로 이 체면심리 때문이라는 것인데요...즉,“이제 내가 강동자제를 다 죽였는데,내가 고향에 돌아가서 무슨 낯으로 고향 어르신들을 뵙겠느냐”는 체면심리 때문에 자결했다는 겁니다.이 말고도 더 쓸말은 많은데(특히 대드,중드관련해서....),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중톈은 그의 <체면>글 이하에서 이 체면이 중국인의 사과문화와 얼마나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지의 기다란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저는 이 정도에서 각설하고요...다만 중텐이 한번 씹고 간다면,중텐이가 항우를 <체면>의 장에서 맨앞에 끄집어 내어 그 대표적인 예로 든것은 다 글작전이 있었다고 보는데요...즉,중국인의 체면심리는 고대로부터 있었다는 것이지요,저도 저의 이번 글에서 이 중톈이 꼰대를 끄집어낸 것 역시 저의 글쓰기 작전이 역시 있어서인데요.즉,이중톈을 끄집어 내서 제 글의 신뢰성의 제물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즉,한중의 사과문화에는 이 체면심리가 결정적인 변수로 면면히 고대로부터 그 심층에서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이글은 나 파공자가 <한중일의 사과문화의 심리구조>를 밝히려고 모카페에 쓴 아주 긴 게시글에서 극히 일부만 인용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