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댄 동산 같고’
예레미야 31:7-14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새해 첫 주일이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소망마다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빈다. 삶의 구석구석, 빈 틈 빈 틈 하나님이 동행 하셔서, 늘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란다.
본회퍼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제 자리 걸음을 하지 않고 한길을 갑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길을 알고 계십니다.”
새해에 모든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소원을 품는다는 것이다. 기대와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아일랜드 기도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꿈꾸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해마다 반복되지만 모든 새해가 아름다운 것은 새로운 꿈을 꿀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동 터 오르는 태양을 보고 빌고, 어떤 사람은 자기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지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희망을 아뢴다.
그 희망은 바로 시작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그 꿈은 내 삶에 생기를 주는 신비이다. 내 믿음은 미래를 맞이하는 능력이다. 올해도 꿈을 꾸라.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꿈을 디자인하라. 내 삶에 기대를 가지라. 꿈을 이루려고 살라.
그러나 명심하라. 기도의 열매는 넝쿨 채 굴러 들어오는 완성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밭에 뿌려지는 ‘한 알의 씨앗’이라는 것을! 우리가 지닌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에 바탕을 두었기에 희망이란 에너지로 가득하다.
1)
본문은 예레미야의 예언이다. 선지자는 포로 된 자를 격려하기 위해 권면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한 마디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나 그들의 자녀를 자기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메시아가 오셔서 크고 복된 나라를 이루게 하신다고 약속한다.
특히 31장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며 거듭거듭 반복한다. 전형적인 예언의 공식문구로 신뢰감과 확신을 준다. 31장에는 이러한 형식의 짧은 문단이 8개이고, 무려 19번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담대히, 확신에 차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남 유다 왕국에 대해 얼마나 실망하셨는지, 그들이 어떻게 바벨론에게 침략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며,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될지, 그 심판에 대해 전해야하는 슬픈 운명의 예언자였다. 그런데 이젠 모든 환난이 그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 설교제목은 ‘물 댄 동산’이다. 이 표현 하나만으로도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얼마나 환희에 차고, 기쁨이 크고, 넉넉한가를 느낄 수 있다.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12).
‘물 댄 동산’은 말 그대로 동산의 골짝마다 물이 흘러내리고, 웅덩이마다 고여 있어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다.
지금 ‘물 댄 동산’이란 상황은 우리나라처럼 비교적 물이 많은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든지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관개시설이 잘 된 선진국 형 농업시설을 뜻하지도 않는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타인 땅처럼 늘 메마르고, 황량한 지역의 상황이다. 그런 땅이 ‘물 댄 동산’과 같다니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인가?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에서 ‘물 댄 동산’과 같은 꿈을 꾼다. 그것은 자기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온다는 환상이다. 예레미야는 그의 백성을 향해 병 주고, 또 약을 주는 셈이다. 한결같이 바벨론의 위협을 예언하고, 결과는 멸망당하고 말테니 그냥 항복하라고 권유하던 예레미야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대로 전했지만, 자기 동포를 향해 심판을 선고하는 일은 정말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예레미야는 미움을 받고, 보복을 당하였다. 숱하게 감옥에도 갇히고, 죽임을 당할 뻔하였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제 심판과 보복이 끝나면, 다시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전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더러 소원을 아뢰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7).
2)
본문은 메시아의 임재와 구원예언을 담고 있다. 31장에서 예레미야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 시작은 이렇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1).
또 ‘새 언약’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도 같은 메시지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3).
너무 익숙한 말씀 아닌가? 예레미야 31장은 마치 모든 심판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마주한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을 보는 듯하다. 톨레레게를 마치면서 읽은 요한계시록에는 완전한 구원 메시지가 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7).
본문은 구체적인 상황은 마치 출애굽을 연상케 한다. 사람들은 포로에서 돌아온다. 정상인은 물론 장애인과 여자들이 큰 무리를 지어 다시 고향 땅을 밟게 될 것이다. 흩어진 사람들을 목자이신 하나님이 다시 찾으실 것이고, 다시 권리를 회복하리라는 약속을 하신다.
예레미야는 마치 첫 사랑을 맺었던 출애굽과 광야의 경험을 회고한다. 가까운 미래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그 시절처럼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제2의 출애굽을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12).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더 이상 포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로 인해 새로운 희망과 기쁨 가운데 살게 되리라고 약속한다. 참된 회복과 평화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얼마나 성실하고, 영원하신지 거듭거듭 전한다.
이스라엘은 부모에게 징벌을 받은 자식처럼 마침내 마음을 돌이켜, 뉘우쳤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새로운 언약의 갱신으로 나아간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31).
비록 첫 출애굽에서 맺은 돌에 새긴 옛 언약은 깨뜨려졌으나, 새 언약은 이제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옛 언약은 돌에 기록되었음에도 깨졌다. 이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33).
이제 깨뜨려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는 새로운 바탕 위에 세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그들의 속’과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 이제 새로운 출애굽언약이 이루어진다.
3)
이러한 약속은 자기 백성에게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된 우리를 향해서도 유효하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새해를 맞은 사람들은 과거의 포로가 되지 말고, 회복된 삶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안에서 참 회복을 누리도록 한다.
오늘은 성탄절 둘째 주일이다. 내 마음에 메시아를 모신 상태, 그것이 ‘물 댄 동산’이다.
‘물 댄 동산’은 어떤 상태인가?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12).
먼저 ‘물 댄 동산’ 같은 모습은 근심 없는 상태이다. 잘 준비된 상태이다. 넉넉하다.
둘째 ‘물 댄 동산’은 심령이 회개한 상태다. 고통과 시련으로 점철된 과거로부터 분리되어, 마음이 편안하다. 용서받은 마음이다.
셋째 ‘물 댄 동산’과 같은 심령의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을 두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 되신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되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 ‘새 언약’이 이루어진 내용이 신약성경이다. 새 언약의 본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후 11:25)
사람이 꿈을 꾸면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또 꿈을 이루려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어느 교회가 몇 년 새 교회 이름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왜 이름을 자주 바꾸냐고 물어 보았다. 대답이 걸작이다.
처음 지하실에 개척 후 ‘물댄동산교회’라고 지었다. 그런데 지하실 바닥이라 물이 차더라고.. 그래서 2층으로 옮긴 후 이름을 ‘새빛열방교회’로 바꾸었다. 그런데 2층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빛이 너무 들어와 방해가 되더라나. 이번에는 교회를 시장 입구 길가로 옮기면서 ‘만나’로 바꾸었는데, 항상 먹을 만큼만 주시더라고 했다. 결국 다시 이사하면서 ‘선한목자’로 바꿨다고 한다. 이번에는 무슨 이유를 댈까, 싶다.
새해에 심령이 ‘물 댄 동산’같은 삶을 살라. ‘물 댄 동산’ 같은 삶을 꿈꾸라. 마음이 메마르면 신경질과 짜증부터 나는 법이다. 은혜로 내 삶을 적시고, 사랑으로 내 관계를 적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내 영혼을 적신다면 얼마나 새해가 아름답고, 넉넉할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셔서 새해에 여러분의 심령이 ‘물 댄 동산’ 같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린다.
첫댓글 새해에는 물댄동산같은 넉넉함을 가질수 있도록 늘...준비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