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학회 등산모임을 알립니다.
6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에 양재동 트럭 터미날 건너편의 버스 정거장에서 모여서 청계산 옥녀봉을 거쳐 매봉에 오른 다음 하산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후 7시경에 원터골 “정선으로 가는 길” (02-572-9822)에서 저녁 식사를 하겠고, 작은 기념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라는 메일이 총무 황 승덕선생으로부터 왔다.
토요일 오후 2시 반.
차를 태워주겠다는 처의 이야기에도 그냥 택시를 타겠다고 우겨 집을 나선다.
갈 때는 내가 운전해도 되는 데 처가 혼자 운전해 돌아 올 때를 생각하면 이것이 마음 편하다.
택시를 탔더니 서초동 IC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불과 10분 만에 도착하였다.
기다리면서 건너 편의 중고수입차 전문인 서울 오토 하우스를 본다.
젊은 애들이 외제 차를 샀다가 1년 쯤 타고는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resale value가 좋은 차를 싸게 판다하여 언젠가 구경을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곳이다.
이윽고 하나, 둘씩 모여 들어 최 의진, 안 정경, 황 승덕, 나,
그리고 Gambro에서 둘, 보령에서 한사람이 모여 7명이다.
길 건너 트럭터미널과 양곡시장을 지나 등산로 입구의 우측에는 새 길을 낸다고 산을 아예 잘라 놓았네.
반바지를 입고 가서 시원하여 좋았으나 그 놈의 모기들이 어찌나 덤벼드는지.
올라가다 무덤가에서 쉬려니까 황선생이 좀 더 위의 개나리골 갈림길의 벤치에서 쉬잔다.
어제 경주의 처 의동생이 보내어 온 산딸기를 먹는다.
처가 신통하게도 인원수를 맞추어 포크를 7개 넣어 두었다.
밤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 입맞춤의 길에서 다시 사진을 찍고, 다음 임 꺽정 길을 지나면 해발 375미터 옥녀봉이다.
이 곳은 위로는 매봉, 아래로는 과천이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좋은 곳.
봉우리가 예쁘다고 옥녀봉이라는데, 그러나 좀더 story telling이 필요하다.
옥녀가 길 떠난 낭군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는데 이게 옥녀바위라든가.
토요일 오후에 크게 힘을 뺄 필요도 없고 해서 매봉은 포기하고
하산 길로 접었다. 내려가는 길의 약수터에는 물이 콸콸 나와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신다.
역시 젊고 날렵한 Gambro의 여자직원이 산을 잘 오른다.
강원대학 산악연맹의 멤버였다며, 내가 학교 다닐 때 암벽등산 이야기를 하니까 원주의 간현바위를 타 보았느냐고 묻는 데, 우리 때는 그 코스가 없었다고요. 안 정경선생도 한 때는 바윗꾼이었다고. 우리가 즐겨 탄 코스는 인수A, B,
선인A, B, 그리고 박쥐코스, 우이암과 주봉도. 장비도 11밀리 120피트짜리 군용자일에다 8밀리보조 자일이었으니까.
황선생에게 지난번 안나푸르나 트래킹에 대해 묻는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처와 이것과 deal해서 제주도를 갔었지요.
또 누가 스키에 대해서, 나 역시 66년도에 스키를 탔었지요.
하다못해 T bar도 없었던 시절이 아닙니까.
게걸음으로 20분 올라가서 5분만에 활강해서 내려오는 그런 스키.
옛날이야기는 끝이 없다.
여기에서 이 한민선생을 만났다. 조금 늦게 혼자 매봉까지 갔다 온다면서.
7부 능선을 따라 제 1야영장에 도착하여 다시 약수터에 들렀다가
황선생이 전화를 해보니 임 헌관선생이 버스에서 내려 올라오고 있다고.
내려가는 길섶에는 피나물이 노란 꽃, 섬초롱이 보라빛 꽃을 피우고 있고,
아직 꽃이 안 핀 둥굴레, 꽃대가 쑤욱 올라온 비비추가 지천으로 있네.
거의 다 내려가서 임 헌관선생을 만나니까 일행이 9명이다.
곤드레 나물밥으로 유명한 “정선 가는 길”은 원터골의 느티나무 뒤라서 하산주 하기는 딱 좋다.
찬 맥주로 목을 축이고 곤드레 밥 정식 9인분과 석갈비 세 접시를 시키고,
술은 곤드레가 들어 간 곤드레 탁주, 황기가 들어 간 만드레 탁주가 있어 각각 한 병 씩 시켰더니
곤드레 탁주는 다 팔리고 없단다.
돼지 갈비구이에 어울리는 술은 소주, 지난번 이 집에 왔더니 빨간 뚜껑 25도 소주가 있어 이것도 한 병 청한다. 밥을 푸고는 돌솥에 찬물을 부어 놓으면 나중 훌륭한 누룽지 탕이 된다. 비벼 먹을 때 들어가는 된장과 양념장, 둘 다 좋다. 된장찌개에 계란 찜, 꽁치 무 졸임, 곰 취 장아찌, 뽕잎 무침과 김치 두 가지. 웰빙식단이다.
축구 이야기가 빠질쏘냐.
이 한민선생이 내기를 하여 병원의 의사들 26명이 3만원씩 낸 78만원을 승, 패, 승 인 경우 독식한다고 좋아하더니.
이 글을 올리는 오늘 새벽, 갔다 바친 페널티 킥 덕분에 이게 날라 갔다.
아까 워라!
끝으로 계산은 1/n으로 1만 오천원 씩,
이래서 이 모임이 스폰서란 문제없이 십년 째 지속되고 있다.
나중 부엌용 필수품 한 박스가 오늘의 참가 기념품.
마을버스를 타고 양재동, 다시 마을버스로 집에 도착하니까 저녁 8시 반.
오늘 오후도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다.
첫댓글 매주일 유교수는 등산을 하시는데, 사모님께서는 무얼 하실까요... 혼자서...
하! 그러니까 내가 이것을 다른 것으로 때워야 하니까 고달프지요.
다른 어떤 걸로 때우실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