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지은이>
박효관(朴孝寬) 1781~1880.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애(雲崖).
조선 철종, 고종 때의 가객(歌客). 제자 안민영(安珉英)과 더불어 가집 '가곡원류(歌曲源
流)'를 엮었다. 시조 15수가 전한다.
<말 뜻>
상사몽(相思夢) :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여 꾸는 꿈.
실솔 : 귀뚜라미.
추야장(秋夜長) : 직역하면 '가을 밤이 길다'이니, 긴 가을밤. 다음의 "깊은 밤"을 수식하
는 말이다.
<감 상>
애타게 그리운 님을 어떻게 하면 만날볼 수가 있을까. 가을밤, 긴긴 밤을 잠 못 이루고 님
생각에 엎치락뒤치락하는 내 신세 ······. 그러나 님께서는 나를 잊고 단잠을 자고 있을텐데
데, 그 님을 깨워서 나를 생각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님 그리워 꾸는 나의 사랑의 꿈이,
저렇게 밤을 지새워 우는 저 귀뚜라미의 넋이 된다면, 님이 자고 있는 방에도 마음대로 들
어갈 수가 있지 않을까.
애절한 마음이 기교적으로 표현된, 잘 다듬어진 가작이다. 귀뚜라미 울음 수리에 잠 못
이루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님이 오마 하거늘
님이 오마 하거늘 저녁밥을 일지어 먹고
중문 나서 대문 나가 지방 위에 치달아 앉아 이수로 가액하고
오는가 가는가 건넌 산 바라보니 거머히뜩 서 있거늘 저야
님이로다 버선 벗어 품에 품고 신 벗어 손에 쥐고 곰비님비
님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진데 마른데 가르지 말고 워렁
퉁탕 건너가서 가느나 가는 허리 지긋이 그러안고 정엣말
하려터니 흘깃 곁눈 얼핏 보니 상년 칠월 사희날 갉아벗긴
휘추리 삼대 살뜰히도 날 속였다
마초아 밤일시망정 행여 낮이런들 남 우일 뻔하괘라
<말 뜻>
일지어 : 일찍 지어.
중문(中門) :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있는 작은 대문.
지방 : 문지방.
치달아 앉아 : 올라가 앉아서.
이수(以手)로 가액(加額)하고 : 손을 이마에다 대고.
거머희뜩 : 검은 빛과 흰빛이 뒤섞여 어른거리는 모양.
곰비님비 : 곰부락님부락. 엎치락뒤치락 덜렁거리는 꼴.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德으란
곰비에 받잡고 福으란 림비예 밪잡고 ······"의 곰비림비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천방지방 : '천방지축'이라고도 한다. 너무 급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
워렁퉁탕 : 급히 내닫는 발소리.
정(情)엣말 : 정겨운 말. 애정의 속삭임.
상년(上年) : 작년. 지난해.
휘추리 삼대 : 삼[大麻]의 줄기를 삶아서 껍질을 벗겨 버린 속대.
가늘고 긴 휘추리가 분명하다.
살뜰히도 : 살뜰하게도. 정겹게도.
마초아 : 때마침. '모처럼'으로 된 것도 있다.
밤일시망정 :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밤이기에 망정이지, 대낮이었더라면 여러 사람의 웃음
거리가 된 뻔하였다. '괘라, ~웨라, ~에라'는 모두 감탄의 뜻을 지닌 종결어
미로 쓰였다.
<감 상>
시골 총각머슴이 밤에 동네 아가씨와 밀회라도 하는 장면인 줄 알았더니, 그 예비 동작에
끝나고 말아 일이 좀 싱겁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작이나 마음 졸임이 상당히 박진감 넘치
고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으며, 이런 종류의 사설시조에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소박한
수다 속에 진솔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어쩐지 호감이 가는 작품이다.
첫댓글 21일 모임에 참석하셨다는데 뵙지를 못했습니다...늘 생각 깊은 시조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려요..좋은 하루 열어가십시오~^^*
늘 오후님의 좋은 시 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넉넉한 날 되십시요.
밤이 깊었네요.. 내일 다시 올께요~*^
공주님 벗겨진 유리구두 한짝 제가 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