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함께 하는 저녁이 있는 삶

[원푸리]

이웃과 함께 하는 저녁이 있는 삶

우리집 건너편에 있는 앞집의 주 작물은 재작년부터 곤드레다. 농사가 원래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바쁘지만 5월부터는 풀 뽑으랴 곤드레 꺽으랴 더 바빠진다. 게다가 요즘은 곤드레를 삶아야 해서 밤까지 바쁘다. 하루 수면시간이 너댓시간이란다. 20시간 가까운 노동. 미래에 농업인은 사라져야 할 직종인가? 인공지능이 인공배양할까? 아니면 지구 상에 가장 흔한 원소 C, H, O, N을 이용하여 유기화합물을 화학비료 생산하듯 쏟아낼 것인가?

각설하고, 대부분 나물은 묵나물보다 생나물로 출하하는 것이 품도 덜 들고 가격도 좋게 받는다. 하지만 생나물로 출하를 못하면 도리가 없다. 수확한 곤드레가 오래도록 싱싱할 리 없거니와 주인 처지를 보아 밭에서 생장을 멈추고 기다려줄 리도 없다. 해서 삶아 말려서 묵나물로 출하할 수 밖에 없다. 그 작업이 하루 이틀 걸러 저녁마다 계속된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도 긴 시골의 밤. 밭에서 길어야 서너 시간 일하는 귀촌인들은 놀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철수야~ 노올자~" 할 대상도 마땅치 않다.

앞집에서 밤에 오징어 집어등 만큼이나 밝은 전구가 마당을 밝히니 하나 둘 마치 나방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네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주인이 내어주거나 각자 들고온 커피, 음료수, 막걸리를 홀짝거리며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날 앞집에서 키우던 무려 4Kg 짜리 닭 두 마리를, 바빠서 차려주지는 못한다면서 내어준다. 몇 사람이 달려드니 살아있는 닭은 순식간에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솥 안에서 사람 손을 기다린다. 이렇게 한 밤의 작은 잔치가 시작되었다. 

닭이 얼마나 큰지 먹고 남았다!

주인네를 번거롭지 않게 하려고 손님들 모두가 솔선하여 잔치의 주인이 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니 차리는 것이나 뒷처리를 하는 것이나 순식간이다. 앞집 입장에서는 고단한 야간 노동을 부부가 외롭게 하는 것보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좋다. 큰 도움은 되지 않아도 조금씩은 거들어 줄 수도 있다.

이제는 고구마를 들고 오고, 삶아 냉동시킨 옥수수를 들고오고, 고기를 들고 오고, 술과 반찬을 들고 오고.... 점차 다양해진다.

막걸리 마시며 화로에 옥수수와 고구마 구워먹기

곤드레를 묵나물오 만들기 위해서 먼저  삶는다. 가마솥 크기가 500명분 밥을 한 번에 할 정도다. 적당히 삶아지면 냉수가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는 초대형 고무통에 던져진다. 다른 초대형 고무통에 옮겨 헹군다. 피박스에 담겨 사진처럼 눌러 짠다. 사진의 눌림돌 무게는 아마 200Kg? 체인블럭으로 들어올린다. 소량이 아니라 노동절감형 장치가 필요하다. 물기가 한껏 빠진 곤드레는 곤드레가 되어 하우스 안에 펴진다.

어제는 한 사람이 생오리를 얇게 포를 떠왔다. 다른 사람들은 잔치국수를 준비해서 차려낸다. 이렇게 해서 또 모였다.

순식간에 차려진 잔치는 끝나자마자 치워진다. 어둠이 짙어지니 산골의 밤은 이내 싸늘해진다. 아낙네들에게 부뚜막 앞은 구들장이나 진 배 없다. 자~ 뜨끈뜨끈하게 지지자!

예전에 어떤 대통령 출마자가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었었다. 그 어떤 공약보다 가슴에 와닿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싶으면 자신의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되돌아보라 했다. 삶의 의미는 여가를 어찌 쓰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함께 하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은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지금까지 머리로만 알았는데 이제 가슴으로 알았다.

[형원]

저녁있는 삶~ 저도 나중에 꼭 누렸으면 좋겠어요^^

[원푸리]

모두의 로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