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토합병 선언 지역 전선 총공세
바흐무트에선 “1차대전 참호전 양상도”
“러 내부 전공다툼” “장기전 능력 과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의 한 가옥이 9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채 불에 타고 있다./ 로이터통신© 경향신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일부 지역에서 밀려난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에서 점령지 재탈환을 목표로 모든 전선에서 공세를 가하고 있다. 바흐무트 등 일부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고 일부 전선에서는 참호전이 벌어지고 있다. AFP·dpa통신 등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부터 주말 내내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군의 드론(무인 항공기), 미사일, 대포를 이용한 공격이 계속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0일 밤 러시아의 포격으로 동부 지역이 크게 피해를 입었다며 “오랫동안 포격과 화재에 시달린 바흐무트, 솔레다르, 마리인카, 크레미나에는 거주할 만한 곳이 거의 남아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 점령군이 불에 타 페허가 된 도시인 바흐무트를 완전히 파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경향신문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가 장악하고 있는 도네츠크주의 관문에 해당하는 도시다. 러시아군은 헤르손 지역에 있던 보충대와 와그너 그룹 용병, 전공을 올리면 석방한다는 계약으로 투입된 전과자 출신 군인까지 바흐무트에 투입했다. 가디언은 바흐무트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참호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하루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참호전은 서로 진격하지 못한 채 참호를 파고 버티면서 포격과 기습공격을 주고 받으며 사상자만 키우는 전투 방식이다. 전쟁을 거치며 바흐무트의 인구는 7만2000명에서 1만2000명으로 줄었다. 수도, 전기, 난방 등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갈 곳 없는 빈곤층과 노인, 너무 고집이 세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만 남아 장작을 패 요리를 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승패와 무관하게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한 달 전 포격으로 집을 잃고 남편이 부상을 당해 입원해 있는 타티아나(46)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왜 아직도 전쟁을 하고 있느냐”고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벤 베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연구원은 바흐무트가 인근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전략적 가치가 높지 않다고 텔레그래프에 전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바흐무트에서 파괴와 소모전을 벌이는 데는 체첸 용병을 이끄는 카디로프 람잔과 와그너 그룹을 지휘하는 예브게니 프리고진 간의 전공 다툼이 있다고 짚었다. 미국 전쟁연구소는 러시아가 바흐무트에 집중하는 사이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등 다른 전선에서 전공을 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키이우 주재 한 영국 고위 외교관은 텔레그래프에 “전쟁에서 양이 질을 능가하는 수준이 온다. 동쪽으로 후퇴할수록 러시아의 보급선은 짧아지고 주민들은 친러 성향이 된다”며 돈바스에서의 파괴 전략은 러시아가 대포 등 저강도 무기만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군인을 괴롭히며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텔레그래프는 파괴와 장기전 의지는 유럽의 올겨울 에너지난과 결합해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의지를 꺾지는 못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의 결의는 약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10일(현지시간)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의 한 은신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다른 전선에서도 러시아군의 공격과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날 도네츠크의 거점을 점령하고 바흐무트부터 65km 떨어진 리만과 크레미나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 정부 대변인은 루한스크주에서 러시아군을 격퇴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자포리자주 멜리토폴에서는 우크라이나 미사일 공격으로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다고 점령 당국이 임명한 멜리토폴 시장이 밝혔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는 러시아의 드론 공격으로 전력망이 파괴돼 150만명에게 전기 공급이 끊겼다. 막심 마르첸코 오데사 주지사는 “에너지 기반시설과 민간 거주지가 밤새 드론 공격을 받으면서 지역 내의 거의 모든 구역과 공동체에서 전기가 끊겼다”며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