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기획하여 최근에 출간된 "1990년대 한국영화"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석규배우님 관련된 부분이 짧게 있어 올려봅니당
p. 168-171
90년대의 ‘워너비’: 최진실, 한석규 그리고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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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마침내 한석규가 등장한다. MBC TV 드라마 <아들과 딸>(1992~1993), <서울의 달> (1994)의 성공을 발판으로 영화에 진출한 이후 한국영화를 책임진 가장 강력한 스타이자 배우였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의 한국영화는 박중훈을 필두로 안성기, 최민수 등이 각자의 몫을 나눠 가졌다면, 19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실상 한석규로 단일화 됐다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보편의 연기, 깊고 명징한 목소리, 편안하고 부드러운 미소는 멜로 • 코미디 • 액션 • 드라마에 모두 어울렸다. 충무로의 오랜 인물들이 아닌 개성 있는 신인 감독들과도 과감하게 손을 잡을 줄 아는 탁월한 작품 선택력도 성공의 큰 요인이었다. 영화 데뷔작인 <닥터봉> 이후 <은행나무 침대>, <넘버 3>, <접속>, <초록 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쉬리>까지 1990년대의 한석규가 흥행과 비평에서 실패한 작품은 단 한 편도 없다. 출연작이 곧 화제작이 자 흥행작이었다. 한석규가 거절한 <박하사탕>(이창동, 2000)의 김영호 역으로 '2천 년대 한국영화의 새 얼굴'이 된 설경구가 훗날 영화지 《씨네21》과의 인터뷰(2019년 3월, 영화 <우상> 개봉 당시 커버 촬 영 영상 인터뷰)에서 1990년대의 한석규를 두고 "되고 싶은 롤 모델이었고, 오롯이 혼자 한국영화를 짊어지고 있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2000년 이후 휴식기와 <이중간첩>(김현정, 2003)의 실패로 슬럼프를 겪으면서 한석규의 위상과 역할을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가 나눠갖지만, 1990년대 한석규의 단일 파워는 지금도 넘보기 어려울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배우님 자체에 대한 글은 이게 다예요.
이밖에 1990년대에 출연하셨던 영화가 장르, 제작/투자, 기술 등의 관점에서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몇 부분만 옮겨볼게요 심심하신 분은 읽어보셔도.. ㅎㅎ
p. 92 (넘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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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개봉한 <넘버 3>는 조폭영화의 경향과는 다른 영화로 주목할 만하다. 조폭영화에 코미디를 결합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보다 이후에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2000년대 초반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린 조폭코미디영화의 원조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도강파의 넘버 3 태주와 깡패 같은 검사 마동팔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시인을 꿈꾸는 호스티스 출신의 현지, 삼류 시인 랭보, 부하 셋을 거느린 불사과 두목 조필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를 계속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풍자의 대상으로 희화화되면서 스노비즘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p. 116-117 (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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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의 설정에서는 한국의 역사의 특수 상황인 분단을 소재로 가져오고, 형식적으로 할리우드 액션-어드벤쳐 영화를 벤치마킹함으로써 대규모 액션을 구사하려는 전략이었다.
이 영화에서 북한의 비밀특수대 소좌 박무영은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려고 남북한 지도자를 제거하려고 한다. 남한의 비밀정보 기관 OP의 독수요원 유중원은 이를 막으려고 악전고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액션의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개되는 대규모 충격전은 당시 로서는 처음 시도한 설정이었으나, 관객들은 황당무계한 판타지로 치부하지 않고 할리우드 액션영화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1990년대 초반에 <서편제>가 가장 한국적인 영화라며 공감의 눈물을 흘렸던 관객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쉬리>가 할리우드 영화 같은 한국영화라며 감격했다. 서편제)가 김영삼 정권의 ' 역사 바로 세우기'의 아이템이 된 것처럼, <쉬리>는 IMP 외환위기로 인한 트라우마 치유에 필요한 아이템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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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할리우드식 액션영화 <쉬리>의 주인공 유중원은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 같은 '영웅'으로는 재현되지 못했다. 유중원은 약혼녀 이명현이 남파 간첩 이방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손으로 약혼녀를 사살하는 인물이다. <장군의 아들> 1편에서 김두한은 일본 경찰이 된 한국인 순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서, 조선인으로서, 당당하게 뒤돌아본다. 반면에 유중원은 이명현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고 멘탈이 붕괴된다. 만일 유중원이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주인공이었다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영웅의 자리에 갔을 것이다. 국가부도 사태가 가져온 국민적 열패감은 유중원의 경우처럼 남성 주인공의 실패와 패배 또는 죽음으로 전이된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한국형 블록버스터 액션영화, 웰메이드 영화, 대중영화에서도 반복된다.
p. 286 (은행나무침대 VF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