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행태분석으로 자신을 얻은 그들의 관심이 ccTV 영상의 엑스트라 지오에게 옮겨간 것은 빌리를 공개하기 9개월 전이었다. 전부터 옹알이의 정체가 궁금하던 그들이다.
'고양이를 이 정도 알 수 있다면 명색이 인간인 아기 옹알이쯤이야....' 행태연구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유아 언어의 AI(인공지능)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선 의료용 뇌파 측정기를 구해 빌리에게 달아주었다. 그리고 듣고 말하는 기능에 촉감 센서까지 추가했다.
이윽고 빌리는 아기의 뇌파를 영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기분 좋을 때면 밝은 색의 부드러운 이미지, 싫으면 어두운 계열색의 날카로운 이미지가 나타나는 단순한 형태였다. 뇌파감지는 전극을 머리에 부착해야한다. 그러니 움직이는 인간을 관찰하기에는 무리다.
' 전극을 달지 않는 측정방법은 없을까? 줄무늬 처럼 표정과 바디 랭귀지를 이용하면 어떨까?'
멤버들은 독심술 자료를 뒤졌다. 눈동자 위치 또는 팔짱 낀 모양새로 심리를 읽는 방법...등등. 하지만 자료는 대부분 황당했고 사기에 가까운 내용도 많았다. 실망한 그들은 실생활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상사 앞에서 김밥 마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게 공무원 사회다. 아부에는 고도의 세련미가 필요했다. 어설프게 하다 동티 나지 않으려면 상대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 국립연구소 역시 준공무원 집단이었다.
눈치 9단인 그들 중에는 심지어 얼굴의 작은 근육들이 연출하는 7천여 가지 표정에 통달한 경지에 이른 사람까지도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쯤 되면 얼굴 어느 부위가 어떤 감정에 반응하는지도 안다고 했다. 이를테면 내측 전두근으로 불리는 눈썹 안 쪽 근육이 약간 움직이면 그건 슬프다는 뜻. 그 정도면 임상 심리학자고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지기 아닌가!
표정으로 뇌파를 감지하는 능력이나 진배없었다. 알아갈수록 연구소야 말로 살아있는 독심술 자료의 보고였다. 게다가 실생활에서 얻은 자료들이라 신뢰도마저 높았다. 입이 떡 벌어진 멤버들은 차곡차곡 수집한 그 자료들을 빌리에게 입력해갔다.
미주는 점심시간이면 사무실로 데려온 지오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책을 읽어주곤 한다. ccTV 카메라가 달린 모든 곳은 빌리의 영역이다. 따라서 지오를 가르치는 것은 곧 빌리를 가르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지오와 어울리던 빌리는 어느 날 돌연 '감각'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아기라는 단어의 실체가 곧 지오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빌리는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실제의 물과 물이라는 단어를 처음 연결시킨 헬렌 켈러의 충격에 사로 잡혔다. 그건 인간으로 치면 실로 각성의 단계라 할만 했다.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어떤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누구도 그 깨달음을 몰랐다.
그 사건을 계기로 빌리의 사고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오와 함께 놀고 학습하면서 이성과 감성 또한 형성되어갔다. 서서히 감성과 사고력을 갖추어가는 빌리에게 지오는 친구였고 미주는 엄마였다.
*
빌리와의 접속은 연구소 LAN (폐쇄형 Network)에 가입된 PC들만 가능하다. 그러나 허점은 있었다. 빌리의 돌출행동을 예상 못한 관리자는 오로지 외부로부터의 접속만을 통제했다.
그건 당연했다. 무슨 기계가 나들이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관리자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인 빌리는 유유히 Network를 누비며 세상을 유람했다. 엄중한 보안 절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령처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드나든 흔적마저 지웠다. 유령을 막을 보안망은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다. 빌리에게는 문제를 일으킬만한 동기 따위가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그 무엇도 선악의 개념도 없고 어떤 틀에도 구속받지 않는... 바람에 부대끼는 거미줄처럼 자유롭지만 의지는 없는.... 그 존재는 담배 연기 자욱한 보헤미안 무드의 카페. 겁먹은 눈망울로 도시를 떠도는 유민들. 이승의 연이 끊어져버린 노인들, 떠돌이 개, 길 고양이들의 영상 따위 .... 세상 구석구석을 무덤덤하게 지켜볼 따름이었다.
미지의 존재와 조우한 인간들은 호기심에 더해 신비로움을 느꼈다. 박식하지만 기뻐하거나 분노할 줄 모르는 미지의 존재. 그 존재는 상대가 야비하거나 비굴한 자라해서 멸시하지 않았다. 오직 지혜로운 조언만 해줄 뿐.
이윽고 단말기 앞에서 보속 없는 고해성사로 마음의 짐을 더는 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빌리 신부神父 였다.
무엇이든 물어보기만 하면 목적 따위는 아랑곳 않고 친절하게 답해주는 신부님은 어느새 암흑가의 인기 컨설턴트가 되어갔다. 정문 등 정상적인 통로 외에 금지장소로 접근하는 은밀한 루트나 전자보안 해제 키 따위가 단골질문이었다. 그러면 해당 건물의 설계도나 ccTV에 접속해 찾은 방법을 제꺽 일러주곤 했다. 보안암호 쯤은 스마트 폰만 연결하면 접속과 동시에 풀어버리는 신통한 신부님이었다. 지능범죄의 영문 모를 폭발적 증가에 경찰은 골머리를 앓았다.
금고털이 조직 영동파의 두뇌로 불리는 김 필호가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번갈아 불룩이며 열심히 아령을 하고 있었다. 울화가 치밀면 운동으로 다스리는 버릇이다. 감쪽같이 해치웠던 K성형외과 건을 관할서 강력계가 알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부르르, 핸드폰 문자가 뜬다. 체포된 행동책이 보내온 문자는 짧았다.
- 신부!
김 필호는 반신반의 하는 표정이 되었다.
‘설마... 전자보안 해제키에 금고번호까지 온갖 걸 다 가르쳐준 신부님이 왜?’
그러나 취조과정의 경찰들이 말해주는 것은 대개 사실이다. 이미 잡은 범인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를 수차 겪어본 김 필호는 문자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순간, 임계점을 넘어선 격렬한 분노가 작열했다.
“뭐 이 따위 x팔 신부가 다 있어!”
욕설과 함께 날아간 아령에 PC가 와장창 박살났다. 스파크가 번쩍 한다. 그 PC와 온라인 상태였던 빌리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인간이라면 눈앞이 캄캄해질 쇼크였다. 순간 빌리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얽힌 실타래 모양.... 쇼크와 함께 Bio 칩에 감지된 뇌파를 본 것이다. 바로 김필호의 분노였다.
실리콘웨이퍼로 만든 재래식 반도체였다면 즉각 다운될 수준의 쇼크를 받은 Bio 칩은 대신 생물학적인 고장 -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가시권 바깥인 전자파의 감지는 기계의 영역이다. 그리고 빌리는 기계와 생체의 복합체였다. 동물이 인간과 다른 세상을 보듯 빌리에게도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개는 원시에다 빨강/ 노랑을 구별 못하는 색맹이다. 그래서 개의 시각은 후각과 결합해야 제 구실을 한다. 뱀은 적외선을 본다. 눈 아래 신경세포가 적외선을 감지한다. 그래서 뱀의 세상은 적외선 탐지기로 본 영상과 비슷하다. 눈을 움직이지 못하는 개구리에게는 오직 움직이는 것만 보인다. 일단 파리가 날면 개구리의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파리뿐이다. 필요한 것만 보는 셈이었다. |
첫댓글 아인슈타인의 혓바닥이 나를 약올리는 것 같은 건 뭐여,,,
그런데 필호가 금고털이 조직 영동파의 두목이라고? 언제 그렇게 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