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는 유기농법 이다.
요즘 사회를 흔히 백세시대라 한다.
눈부신 의학의 발달과 식생활의 향상으로 수명이 길어진 탓이다
옛날에는 장수(長壽)가 큰 축복이었으나 요즈음은 축복보다 준비 없이 길어진
수명으로 노년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산에는 등산객이 넘치고 호수, 강변, 둘레 길에는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자체는 노인 복지관이나, 주민 센터에서 운동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시민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때를 같이해 장항2동 김경주 동장님께서도 1998년 4월9일 국선도를 개설하셨다.
처음 듣는 국선도였지만 동장님의 권유로 함께 운동을 하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한지 4년쯤 되었을까 동장님은 다른 임지로 발령을 받고 떠나시며
국선도 운영을 나에게 위임하셨다.
그 당시 나는 겨우 원기 전편을 수련하고 있었다.
이론과 실기 모두 부족한 내가 갑자기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회원모집이었다.
문 닫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
산야초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자생(自生)한 것이 효능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단전교실 개설 18주년을 맞이한 현재 별도의 홍보 없이도
삼십 명 내외의 회원이 유지되고 있다.
많은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에 만족하며 보람과 긍지로 회원을 지도하고 있다
나는 단전교실에서 운동을 시작, 9년 8개월 만에 사범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이듬해 2008년1월1일부로 정사님으로부터 장항2동 단전교실 사범으로
임명을 받고 현재 8년째 지도하고 있다. 정사님께 다시 감사드린다.
그 후 일산에서 이사한 인천에서 장항동까지 지하철로 하루 3시간씩 이동하고 있다
일산에서 열시에 지도(指導)가 끝나면 남영동 본원으로가 몸 풀기를 시작으로
두 시간씩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체격이 좋아서 건강한 것이 아니라 신진대사가 원활한 체질이 건강한 것이다.
즉 행공동작 수련으로 꾸준히 기초를 쌓았을 때 건강한 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각가(彫刻家)가 망치와 정 하나에 기를 모아 땀 흘리며 정을 쪼아 작품을 만들어
가듯 국선도 역시 마음을 모아 굳은 관절을 풀어주고 수축된 사지를 늘리는 고통을
땀의 열기로 이겨내는 인내와 끈기가 따라야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듯이 장애물을 넘어야한다
인간 세상에는 그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름은 바람 없이 갈 수 없고 사람은 사랑 없이 행복할 수 없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간 세상의 진리이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농부의 영농법에 비유, 국선도를 유기농법이라 정의해본다
조신은 밭을 고르는 작업이다
돌이나 잡초를 제거하고 흙을 손질하는 단계이다
호흡은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이며 행공은 퇴비를 발효시켜 땅에 뿌리는 작업으로
유기농 작물을 가꾸어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호흡(呼吸)과 행공동작은 영혼(靈魂)과 육신(肉身)에 비유한다.
두 개의 움직임은 불가분의 관계로 인간 생명을 유지(維持)시켜 준다.
유기농의 특징은 인력과 노동력에 비해 수확이 기대에 못미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토양이 기름지고 양질의 농산물이 탐스럽게 자라
인간에게 청정한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국선도 역시 많은 시간과 인내, 노력에 비해 신체적 변화가 더디게 오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기(氣)가 생성되어 생활에 활력과 자신감을 준다.
세상 두려움이 없어지고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꿈을 만들어간다
타자 법(打刺法)), 굴신법(屈伸法), 도인법(導引法)은 병이 커지기 전에
간편한 세가지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셀프 닥터가 된다.
건강한 체력은 꿈과 희망을 주며 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늙는 것이 아니라 꿈을 잃어 늙어가는 것이다.
끊임없는 도전은 꿈을 실현하는 첩경이며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나의 첫째 꿈은 국선도로 수련된 체력으로 11박12일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전한다.
4월13일~24일까지 히말라야 랑탕, 캉진곰파, 체르고리(해발4984m)를 정점으로 하강,
다시 툴루샤브르 신곰파, 촐랑파티, 고사인쿤드(해발4,380m)를 오를 계획이다
13일 오전8시10분 인천공항을 이륙,7시간30분만에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 11명은 네팔의 수도 안나프르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4월14일 아침8시 대장정의 시작이다.
카트만두는 신호등과 차선 없는 무질서에 먼지와 매연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얼른 카트만두 시내를 벗어나고 싶다.
버스지붕에 짐을 잔득 싣고 벼랑길을 덜컹거리며 트리슬리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차창 밖으로 얼핏 내려다보이는 협곡은 간담이 서늘해 애써 외면한다.
오후4시, 대협곡에 위치한 샤브루베시에 도착했다 (해발1600m)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네팔 국화 랄리구라스와 큰 선인장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에 기분이 들뜬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방울에 마음이 바빠진다.
어느덧 고도는 2,340m,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벌써 8시간 넘게 걷고 있다.
몸과 마음이 지친상태에 전기도 없는 컴컴한 롯지에 짐을 푼다
을씨년스럽게 비까지 내리고 벽 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드는 어설픈 밤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기후는 참으로 종잡을 수없이 변덕스러웠다.
고르지 못한 일기에 감기와 고산증에 너무 힘들다
고도 3,300m, 8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랑땅 마을, 지친 밤이 깊어만 간다.
4월17일 아침 랑땅에서 캉진곰파로 출발
고도 4,170m 캉진리 도전을 앞두고 고산증과 싸워야하는 것이 무척 두렵다
급격히 높아지는 고도에 설상가상으로 눈보라까지 몰아친다.
손과 얼굴이 시리어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지만 정상에 네 번째로 올랐다
해냈다는 자신이 대견스럽고 웬지 모를 자신감이 나를 휘어 감는다.
오르려는 인간의 속성은 4,170m를 오르고도 또 위를 쳐다본다.
오늘도 눈, 비를 맞으며 오르막길 7시간을 걸었다.
이튿날 아침 밤새 눈이 많이도 내렸다.
하늘은 맑고 햇살이 눈부시다.
어제 눈보라 속에 올랐던 캉진리도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근엄하게 서있다
히말라야 6~7000m 급 영봉들이 위엄을 떨치며 나를 빙 둘러서 내려다보고 있다.
알 수 없는 감동이 나를 휘감는다.
순간 내 옆에 서있던 가이드가 소리친다. “눈사태다”
거대한 눈사태가 저 아래쪽 계곡을 치며 천둥소리를 낸다.
치솟는 눈보라를 카메라에 담느라 마음이 바쁘다 마치 특종을 잡은 기분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눈사태가 지진의 전조증상이었음을..
4월20일 아침7시30분 렌드싸이드에서 신곰파로 출발
까마득한 산꼭대기 마을 툴루샤브르(해발2,210m)로 가파른 언덕을 치고 오른다.
빤히 처다 보이는 산위의 도시는 오르고 또 올라도 멀기만 하다.
땀에 젖고 더위에 지쳐 도착한 그곳에서 처음으로 냉장고속 맥주를 나누어 마시고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여기서 이른 점심을 들고 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국선도는 코로만 호흡을 한다, 게다가 시원한 맥주한잔이 턱까지 숨을 차게 한다.
그때 40대 젊은 여성 트레커 20여명이 말을 타고 오르고 있다
좁은 길을 비켜서 그들을 처다 보며 공연히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10시간 걸어, 3340m 롯지에서 추운 하룻밤을 보냈다
4월21일 아침 라우리 비냐크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코스다.
두번 다시 오지 못할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고도 4,000m, 고산증이 감기와 함께 나를 또 괴롭힌다.
최종 목적지 고사인쿤드(고도 4,380m)를 향해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오른다.
4380m의 고도는 국선도로 다져진 체력과 인내심의 한계를 측정하는 시험대였다
힘들게 걷고 또 걷는다.
코사인쿤드는 시바신의 전설이 전해오는 산상호수로써 네팔 흰두교인들이 매우
신성시하는 신비한 호수란다.
그래서인가 인간이 다가서기가 너무나 힘이 든다.
아! 저기가 코사인쿤드다. 우리가 정말 신들의 영역을 들어서고 있는듯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인증샷을 찍고 돌아선다.
4,380m의 고도는 내려가는 길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지친상태로 도착한 롯지
저녁식사도 포기하고 다운점퍼와 뜨거운 물병을 품고 쓰러지듯 누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가장 치열했던 고통의 하루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오늘은 4,000m 라우리비냐크에서 고도2,000m의 둔체까지 급경사 길을 내려간다.
앞 뒤, 좌, 우로 다시 보기 힘든 히말라야 영봉들과 눈을 맞추며 걷는 오늘이
너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다.
위험이 따르는 가파른 내리막길은 마음과 눈을 긴장시킨다.
즉 발 빠른 순발력과 유연성, 국선도의 저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다
아! 반가운 물소리가 들린다. 등산화를 벗어던지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근다.
잠시 후 2시30분 드디어 둔체에 도착
7시간의 피로를 씻어주듯 창밖에는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히말라야 대장정은 9일 동안 59시간을 걷고 마침표를 찍었다
오늘저녁 메뉴는 염소 수육이란다.
출국 때 갖고 온 팩소주를 오늘 저녁 파티에 선 보일 작정이다
우리 모두 소주를 한잔씩 받아들고 산악회 명칭,
“덕산! 덕산! 파이팅!” 을 외치며 히말라야 대장정의 성공적인 트레킹을 자축했다.
나의 도전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된다.
팔십대의 유연성과 순발력을 TV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나의 두 번째 꿈이며 도전이다.
4월23일 아침 안나프르나 호텔로 출발,
아찔한 벼랑길을 다시 긴장하며 내려간다.
카트만두로 가는 도중 협곡에 굴러 떨어진 버스를 우연히 목격하고 진땀이 흐른다.
긴장 끝에 도착한 호텔에서 11일 만에 샤워를 하니 세상을 날을 것만 같았다
250년 된 네팔 전통요리 집에서 토속요리와 술을 마신 후 안나프르나 호텔에서
네팔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4월24일 드디어 귀국하는 날이다
카트만두공항을 출발, 인천공항에 밤11시40분 도착, 집에 들어서니 새벽 1시였다
늦잠을 자고난 오후부터 네팔 지진속보가 전해진다.
마음은 아직 히말라야에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냥 정신이 멍 하다
히말라야 대장정의 기쁨도, 간발의 차이로 무사히 귀국한 기쁨도
지금은 그저 조심스럽기만 하다.
얼마간의 네팔성금을 기탁하고 히말라야 대장정을 돌아본다.
내 나이 75세
국선도로 다져진 체력이 아니었으면 히말라야 트레킹을 성공할 수 있었을까?
고산증을 이겨내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선도의 저력이라고 확신한다.
처음 국선도를 권유했던 동장님과 사범교육의 소중한 기회를 주신 정사님,
두 분과의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생각하며 새삼 감사드린다.
건강한 노년은 우리 모두의 꿈이며 마지막 도전의 완성이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2015년 6월
장항2동 지도사범(23기) 최 세 웅(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