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사적 및 명승 4호)
속리산은 해발 1.057m의 천황봉을 주봉으로 9개의 높은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고 불리다가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팔경’의 하나인 속리산은 밀림과 기암괴석으로 절경을 이루어
예로부터 제2의 금강산이라고 해왔다.법주사는 신라 진흥왕14년(553)
의신조사가 창건한 이래 혜공왕12년(776) 진표율사가 중수하고
임진왜란에 불탄것을 인조 2년(1624) 벽암대사가 재건한 것이
현재에 이른다.법주사에는 지정문화재가 도처에
산재하여 있어 법주사 일원은속리산을 포함하여
사적 명승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속리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
이 소나무는 나이가 야 6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산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노거수 소나무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조선 세조(1455-1468재위)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탄 가마인 연이
나뭇가지에 걸리어 지나가지 못하자 왕이 ‘소나무 가지에 연이 걸린다’라고 말하자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그 밑을 통과하게 되어 신기하게 여긴 세조가
이 나무에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그 후로 이 소나무는
‘연걸이소나무’ 또는 정이품송‘로 불린다.
↑안내자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있는 회원들
팔상전(국보 56호)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초창되어 조선 인조 4년(1626)에 백암선사가 재건하고
1968년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이 팔상전은 오층목조탑파
건축으로 한국목조탑의 하나로 남은 건축물이다.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5칸이고 3,4층은 정면과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칸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상부의
상륜부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공포의 양식은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위에만 공포로 짠 주심포식이나, 5층에는 기둥
사이에도공포를 짜 올린 다포식으로 되어 있다. 전체높이는
상륜까지 약 65m로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에 제일 높은 것이다.
대웅보전(보물 915호)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인 이 중층전각은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창건되어
혜공왕12년(776) 진표율사가 중창하였고, 다시 조선 인조 2년(1624)에 백암선사가
삼창을 하여 오늘에 이른다.전각 안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는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로 대승불교가 흥성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삼신불이란 석가모니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하여 과보로
나타난 몸(보신),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 석가모니의
진여의 몸(법신), 그리고 중생제도를 위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몸(화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천왕석등(보물15호)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혜공왕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면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 화창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다.
옥개석 정상에는 보주를 받친 2단의 보주만이 남아 있다
이 석등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향로를 머리에 인
공양상을 , 뒤쪽에는 석련지를 배치하였다.
쌍사자 석등(국보 5호)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조성연대는 성덕왕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은 부처님의 가피로 명랑한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석조유물에 사자를 이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래 많은 예를 볼 수 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 중에 법주사
석등이 가장 뛰어나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대석을 모두 하나의 돌로 조각한 것이다.
희견보살상-유형문화재 제 38호
희견보살은 성불의 큰 서원을 가지고 몸과 뼈를 태우면서까지 아미타불 앞에
어려운일이 있어도 강한의지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이 보살상은 모루돌위에 다기 모양의 그릇을 머리에 이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모루돌과 보살 그리고 그릇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얼굴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 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있다.
옷은 속옷위에 가사를 걸치고 매듭과 옷자락이
무릅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 되었다.
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희귀한 문화재이다. 전체 높이는 213cm이다.
원통보전(보물916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14년 창건을 거쳐 대웅보전과 같이
삼창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정방형 평면의 단층 사모지붕을 이룬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로 안에는 높이2.8m의 금색목조관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관음보살상은 머리에 화관을 쓴 자비로운 모습의 불상이다.
↑ 편액(사진:문화재청)
↑ 내부불상 및 우물천장(사진 : 문화재청)
법주사 철학(法住寺鐵학) 보물 제 141호
당간지주의 동쪽 정면에 있는 쇠솥은 높이 120㎝, 지름 270㎝, 두께 10㎝의
거대한 규모로서 철확이라고도 부른다. 본래는 강원 옆 공양간
주위에 있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3,000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장국을 끓일 수 있다고 하는데 가람
곳곳에 있는 거대한 석조물통 및 항아리와 함께
번성했던 법주사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물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솥 중에서 가장 큰 솥이다.
법주사당간지주(法住寺幢竿支柱)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43호
당간이란 달리(刹) 또는 절(寺)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에 당간 즉 찰(刹)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 한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위에 특정한
색갈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되어 신성 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 당간지주 설명을 들으면서 올려다 보는 회원들
법주사 석련지(국보 64호)
이 석련지는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굄과 한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구름위에 둥둥 뜬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본다.전체적인 조형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비슷하다. 연지의 조법은 정교하고 풍려한 것으로 국내의 석련지 중 대표적인 유물이다.
금동미륵대불
이 불상은 1989년 석가탄신일에 옛 용화보전 자리에 세워진
33m의 통일을 기원하는 청동미륵불로 법주사의 상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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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여래의상(보물216호)
높이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양각된 이 마애여래의상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미륵불상이다.법의는 우견편단으로 가슴에서 양다리 사이로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부드럽게 처리하였다.둥글고 온화한 얼굴, 큼직한 코, 꽉다문
두꺼운 입술 등을 갖춘 고려초기 불상의 특징적인 수법을 잘 보여주고 마애불이다.
법주사 석조(法住寺石槽)유형문화제( 제 70호)
이 석조는 통일 신라시대에 만들어지 것으로 추정되는 긴 네모 꼴의 큰 물통이다.
높이 94cm, 길이 446cm, 폭 240cm 이다. 신랑 성덕왕 19년(720)에 만든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잘 보조되고 있으며,
법주사의 3,000 승도가 물을 저장하고 사용하였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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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법주사는 오랫만이라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요청했더니, 조금 듣다가 모두 도망가 버려서 미안했답니다. 그래서 마무리는 제가... 앞으로는 제가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봉공주님, 법주사 공부 제대로 하셨습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 전하면서....
법주사의 이 방대한 사적자료를 대추사느라 입구만 보고온 불초 소생에겐 정말 생생한 공부가 되었습니다. 하나 하나 설명을 읽을때 마다 아하! 그렇구나 하고 감탄을 함변서... 感泣!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산사에... 가을 빛이 녹아들었네요... 회원님들의 모습도 가을을 닮은것 같고... 사진술이 기가막힙니다.. 편집도 정성이 느껴지고... 안간사람이 이토록 많이 느끼면 안되는데.. 다녀오신분들이 손해보는 느낌이 드니까요..ㅎㅎ 감상 아주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봐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野草 선생님의 격려에 힘이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