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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 크리스티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천리본당 신부님, 그리고 모든 신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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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친구, 심진 크리스티나를 떠나 보내면서
지난 날을 기억해 봅니다
심진 크리스티나, 편히 편안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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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4일,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맑았다. 영은 힘찬 활보속에, 대형 가방등을 챙겨 들고 그의 처 진과 함께 용인 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진은 서운함이 문뜩 지나처 버리지만, 애써 감추면서 그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남편을 멀리 여행을 떠나 보내는 아내의 깊은 마음은 누구도 쉽게 헤아릴 수 없으리라.
◇7시20분, 인천 국제공항 리무진은 용인을 떠나 유럽을 향해 서서히 첫발을 디디고 있었다. 차창 밖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진, 서운함을 잊으려는 듯,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고 있었다. 멋쟁이 남편 만들기 1호 작전, 그녀는 꼭 성공할 것이리라......!
◇9시20분, 드디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다른 대원들과의 약속은 10시20분, 무려 한시간이 남았다. 진과 영은 지하1층 한식집을 찾았다. 개별식 식단이기에 영은 아주 간단히 주문하였다. 진은 생각보다 비싼 한식에 약간의 불만을 표시해 왔다. 남편 여행에 대한 투자는 과감했지만, 알뜰한 살림꾼의 기질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영은 검소한 그녀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알뜰히 다녀오겠습니다."
◇10시 10분, 약속 장소인 3층 국민은행 앞 휴게소애 도착해 보니, 서울과 대구의 대원들이 이미 와 있었다. 목거리 명찰을 들여다보면서 서로의 반가운 인사는 한동안 계속 되었다. 대원들은 3개조로 편성되면서 조장이 임명되었다. 조장들은 대원의 중심으로 아낌없이 봉사할 것을 명 받고 있었다. 이어서 노란 띠로 가방을 표시하고, 파랑 스카플로 대원들을 결속시키면서 드디어 지도 신부님의 기도와 강복으로 공식적인 순례가 시작되었다.
◇"진아, 잘 다녀올게......!" 영은 진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다. 출국 심사가 시작되자 대원들은 소지품들을 바구니에 꺼내 놓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영은 진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진 역시 환송객 틈바구니에서 멀어저 가는 남편의 모습을 아쉬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작게 외처 본다. "....분도 성인의 사랑, 듬북 받고 오세요....!!!"
◇13시15분, KE905편 대한항공은 11시간 30분의 간의 긴 여행 끝에 독일의 프랑크 프르트에 도착하였다. KE905는 인천 ⇒ 천진 ⇒ 북경 ⇒ 울란바트로 ⇒ 모스코바 ⇒ 프랑크프르트(17시35분 현지시각)의 항로를 택하였다.
◇19시35분, LH012 국내항공으로 뮌헨에 도착, 다시 전용 리무진을 이용하여 슈바이클 베르그 수도원으로 향 하였다.그 곳에 도착한 시간은 20시 30분이었다.
< 1>
▣수도원 순례 - (2003년 6월 4일 - 6일 )
순례수도원 명 : 슈바아클베르그
소속 및 설립년도 : 오딜리엔 연합, 1904년 설립
<6월4일 일과표>
06:00 - 06:30 기상
06:30 - 08:00 수도원 전례 참석 - 아침기도 및 미사
08:00 - 09:300 식사 및 휴식
09:30 - 11:30 수도원 견학
11:30 - 12:30 수도원 전례 참석 - 낮기도
12:30 - 14:00 중식 및 휴식
14:00 - 14:30 수도원 전례 참석 - 저녁기도
14:30 - 18:30 파사우 성당 순례
18:30 - 19:10 식사 및 끝기도
19:00 - 23:30 유럽 음악축제
◇진,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지 몸은 지치고 무겁답니다. 다리의 통증은 좀체로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주무르고 파스를 붙이고..., 다리를 정성스럽게 달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 봅시다. "하느님, 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십시오...!!!"
◇진, 그칠 줄 모르는 종소리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답니다. 알고 보니 종은 매시15분마다 울리는데 15분에 땡, 30분에 땡땡, 45분에 땡땡땡, 60분이 되면 땡땡땡땡, 그리고 매시 만큼, 즉 12시이면 12번 종을 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일 전례를 알리는 종소리는 참으로 웅장하답니다. 수십개의 크고 작은 종이 동시에 춤을 출 때이면, 정말로 이곳이 그리스도 국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답니다. 어느 동료 순례객은 밤새도록 울려대는 종소리에 한 잠도 못잤다고 투덜거렸답니다.
◇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들과 하나가 될 수 있으니, 무척 기쁘답니다. 비록 독일 말로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가이지만, 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며 천장을 한바퀴 돌아 올 때이면, 아름다운 새소리로 변하여 내 영혼에게 말을 걸어 온답니다. 찬미가, 시편, 독서, 신자들의 기도, 주의기도, 그리고 본기도 등,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내용으로 지구 저편의 사람들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 2>
--- 슈바이클 베르그 수도원 대성당 명판에 새겨진 역사를 찾아서 ---
◇진, 수사님과 함께 성당을 돌아봅시다. 입구에는 수도원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초대교회에 선교사를 파견한 기록이 보입니다. 그 선교사는 한국전쟁중 북한군에 의해 옥사덕에서 순교하셨답니다. 그의 가족은 순교자의 높은 뜻을 기억하기 위해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비하였답니다. 통일이 되면, 순교자가 애써 선교 사업을 펼첬던 그곳에 순교자를 대신하여 사목할 사제에게 드릴 미사 도구, 즉 성합과 성작 두벌이랍니다. 그의 가족은 아직도 슈바이클 베르그 수도원 근처에 살고 계십니다. 여기서 잠깐 옥사덕에서 순교한 선교사들을 기억 합시다.
옥사덕(구슬모래 언덕)의 십자가는 열 일곱 이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 북한에서의 시련-에 소개 된 내용을 복사한 것이다.)
1. 페트루스 게르너 수사(설사, 쇠약 7월 2일)
2. 마루쿠스 메쯔거 수사(설사, 탈수 8월2일)
3. 오이겐 오스터마이어 수사(고령 64세, 장질환 49년 9월 14일)
4. 바실리우스 하우저 수사(수종증, 50년 2월 14일)
5. 파스칼 팡아우어 수사(수종증, 50년 4월 16일)
6. 애바 쉬츠 수녀(심장병, 장질환, 탈수 8월 10일)
7. 가누트 아베르나스 신부(심장, 신장, 혹한 추위에 방치 11월6일)
8. 그레고리오 조르거 신부(설사, 명상가, 굶주림과 추위로 동사 11월5일)
9. 힐라리우스 호이스 수사(설사, 예술가, 약초 채집가, 50년 12월 12일)
10. 졸라누스 헤르만 수사(심장 약체질, 과로, 12월 13일)
11. 에우제비우스 로마이어 수사(거인체구, 화농성피부농종 급성 장카르타르, 9월1일)
12. 안셀모 로모 신부(수종, 설사, 병약, 동상, 11월9일)
13. 일테폰스 플뢰찡어 수사(대장장이, 뇌일혈, 52년 3월 20일)
14. 코트리프 아우어 수사(폐렴, 병약, 4월 6일)
15. 쿠니베르트 오트 신부(심장, 각혈 6월 14일)
16. 아르눌프 슐라이어 신부(신장, 심장, 화농성 종창 6월 28일)
17. 프록뚜오사 게르스마이어 수녀(간호사, 뇌일혈 52년 9월 15일)
◇진, 순교자 17분중 슈바이클 베르그 수도원 소속 수사님은 한 분 이셨답니다. 이 수도원은 1941년. 4월. 2일 나치군에 의해 36명의 수사 지망생이 순교하는 고통의 역사도 있답니다.
◇진, 제대를 감싸고 있는 대리석 벽면에는 눈 높이 수준으로 얼굴만한 크기로 성서에 나오는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답니다. 비둘기, 물고기..., 그런데 달팽이가 보였답니다.
"수사님, 달팽이도 성서에 나오나요?" "물론이지요. 달팽이는 아주 천천히 가지만 꾸준하답니다. 기도하는 습관은 이처럼 달팽이를 닮아 가야 한답니다."
< 3>
◇진, 지금 나는 독일의 남동쪽, 국경 마을,
파사우를 바라보고 있답니다.
파사우는 도너우강, 인강, 일츠강 마주 치고 있습니다.
강가에는 크고 작은 유람선들이
힌가로이 흘러 가고 있답니다.
강폭은 대략 200미터, 깊이는 15미터...???
이건 내 짐작입니다.
좁은 강을 유람선들이
힘겹게 다니는 것 갔답니다.
저 배들은 어디로 가며, 비용은 얼마나 될까....???
진, 유람한번 합시다...!
수사님도 부러워 하고 있답니다.
"유람선은 어디까지 갑니까?"
"지중해랍니다.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의 꿈이랍니다. ..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그리스등
10개 나라를 거처
그림같은 지중해를 향하여 달리고 있답니다."
"기간은...?"
"편도 15일 이랍니다."
"비용은 ...??"
"유로화 5,000(700만원) 불이지요."
진,
돈 많이 모으면,
꿈같은 유람선 꼭 태워 드리리다.
기대하시길...!!
◇진,
함께 파사우 시내에 위치한
스테파노 대성당 순례를 합시다.
이 성당은
주변의 독일지역의 성당은 물론하고
주변국가,
즉 오스트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불가리아등의
어머니 교회로서 로마 외각 지역에 설립된 교회중
독일어 문화권 안에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답니다.
교회 선교의 사명은
물론하고 건축 양식에 있어서도
주변 교회의 모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진,
스테파노 대성당의 보물1호는
세계에서 제일 큰 파이프오르간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건을 보았으니,
이왕이면 그 오르간 연주 소리를
들어 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진,
꿈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2003년 6월 5일 저녁 7시 30분,
유럽지역 영성 음악회가
그곳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음악회 총감독은
서두에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 ... 이미 하느님의 도성을
떠나 버린 유럽인들, ♬
♬ 이제
그들은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 도성으로 되돌아 와야 합니다. ♬
♬ 오늘 열리는 영성 음악회는
그들 모두가 ♬
♬하느님 부르심에 귀를 기우리고 ♬
♬마침내 ♬
♬ 하느님 도성을 향하는
힘찬 출발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
< 4>
◇착하고 충실한 크로아티아 출신의 국제 운전기사, 보 - 조, 그는 우리가 음악회를 마칠 때까지, 잘 참아 주었답니다. 보-조는 우리 모두를 편안하게 해 준답니다. 가끔은 스처가는 도시들을 정성껏 설명도 해준답니다. 허지만 그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답니다. 보-조, 그는 전문대학 출신으로 보스니아 전쟁이 나기 전 그의 직업은전기 기술직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갔답니다. 전쟁은 그들의 직장을 모두 앗아갔습니다. 그의 처는 국가 공무원으로 현재도 근무하고 있지만, 국가 재정은 이미 오래 전에 파탄되어 전쟁이후 지금 까지도 한푼의 급료를 받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들의 가정은 넉넉지 못한 보-조의 운전수당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형편이랍니다. 전쟁은 많은 슬픔을 갖어다 주고 있었습니다.
◇보-조의 크로아티아 전쟁비화를 들어봅시다. 때는 보스니아 전쟁 초엽이었다. 갑자기 마을이 반쪽으로 갈라지면서 적과 아군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총기류까지 지급되면서 일촉 측발의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허지만 적과 아군은 너무도 잘 아는 사이가 아닌가. 그들은 너무나 괴로웠다. 초병으로 순찰을 돌던 보조는 상대방이 안드레아라는 것이 확인되자 크게 소리첬다.
"안드레아, 소주 한잔하자...!!!"
"보-조, 그럼 언덕 아래로 오너라"
"안주 갔고 와야 되...!!!" 보조가 소리치자
"알았다...!!!" 안드레아는 보조의 동창생이며 수십년간 절친한 사이가 아닌가. 그러나 보조의 진영에서는 신중한 태도로 보조의 돌발적인 행동을 저지하려 들었다. 어떤 설득도 보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보조는 대치하고 있는 완충지대로 힘차게 뛰어 나갔다. 보조의 결심히 확인되자, 안드레아 역시 약속한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 갔다. 그들은 한나절이 되어서야 서로의 진영으로 돌아 왔다. 무사함을 확인한 동료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다음날, 보조의 친구들은 전날의 안전을 믿고 함께 행동하기로 하였다. 술과 음식을 더 많이 준비하였다. 그날도 보조 친구 모두 살아 돌아 왔다. 다음날, 보조의 선후배들이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음식과 술은 사람보다 더 풍성하였다. 완충 지대에서의 파티는 완전한 화해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얼마 후 마을의 모든 이들은 전쟁전보다 더 결속된 하나가 되어 흥겨운 잔치에 흠뻑 젖어 들었다. 바로 그때 보조의 상부 조직으로부터 긴급명령이 하달되었다. 지금 즉시 진격하라는 명령이었다. 보조는 그 명령을 모두에게 알렸다. 보조의 모든 병사들은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이를 본 안드레아 병사들 역시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공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화력 시위였지만, 다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마을은 한 사람도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은 없었다. 보조의 생명을 건 영웅적인 행위가 보스니아 전쟁으로부터 자신의 마을를 건진 아름다운 이야기다.
♨♨♨.............38선을 걷어내는 한국식 보조가 무척 아쉽다!!!!!!
(이 야사(野史)는 분도수도원의 강순건 안토니오 신부와 그와 함께 한 분도수도원봉헌회 유럽수도원 순례자 30명의 이름으로 증언하는 바이다.)
< 6>
순례수도원 소개 - (2003년 6월 6일 금요일 오전)
◇진, 유럽 축제 음악회의 감격도, 그리고 보조의 영웅적인 보스니아 전쟁 야사(野史)도 뒤로 하고 우리는 예정대로 순례를 하고 있었답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보조가 또 창밖을 가르키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달리고 있는 길은 로마재국이 사용하던 그대로의 군사 도로입니다. 도로가 옆의 마을은 아직도 로마 군인들의 후예들이 살고 있습니다."
강신부님도 한마디 덧 붙이신다.
"로마 군인들의 규율은 무척 엄격하였다. 첫째, 정복지에서는 상대방의 문화적인 파괴보다는 그 기틀위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갔다...둘째, 민폐를 최소화하였다. .그러기에 로마군인이 머문 장소는 어김없이 지금도 유명한 포도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포도주를 좋아하는 그들이 포도 묘목을 전쟁터까지 갖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 7>
◇진, 유럽이 본래부터 가톨릭 국가는 아니었답니다. 지역마다 이교적인 신화가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답니다. 메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답니다. 천장에는 남녀 제사장들이 수사님들에 의해 제단에서 쫒겨나는 벽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생사화복(生死禍福)을 갖어다 주는 신화적인 나무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수사님들은 우상화된 나무를 뽑아버리고, 그리스도를 알리기 그곳에 파견된 12수사님들을 상징하는 12가지러 뻗어나는 새로운 나무를 바로 그곳에 심는 벽화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파는 벽화처럼 간단하지 않았답나다. 핵심적인 벽화는 그리스도 강생에서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교회적인 우주관, 인간관등을 사실적으로, 때로는 추상적으로 조형과 건축 공법을 이용하여 신비스럽게 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조각과 건축의 양식은 그리스도 신비를 들어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실제적인 예로써 성당 좌우의 어느 지점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부활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천상의 모습이 삼차원적으로 보여지며 자신이 천상에 오르는 착각을 느끼게 합니다. 성당은 그 자체가 신학적이요, 철학적인 내용을쉽고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진, 이곳의 수사님들은 성당 설립 천년 기념으로 교황님으로부터 세바스틴 성인의 유해를 선물로 받아 기뻐하고 있답니다.
◇진, 이곳의 보물은 참으로 많으나, 그 중에 귀한 것은 천년이나 되는 제의를 현품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붉은 제의, 금색, 은색, 그리고 비단과 금실, 은실등으로 만든 제의들..., 그곳은 문화재 절도 같은 이들은 하나도 없는가 봅니다.
◇진, 보물은 또하나, 동방전례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순례수도원 소개 - (2003년 6월 6일 금요일 오후)
< 8>
◇진, 우리는 니더랄타이크에 있는 성당으로 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대성당을 찾았습니다. 성당 건축물의 양식은 수정 바로크 였습니다. 성당의 신학적인 특징은 제대를 좌우로 하는 소 제대에 설치된 죽음의 문화였습니다. 우측 제대에서는 천사가 모래시계와 촛불을 높이 처 들고, 강렬한 멧세지를 전달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촛불처럼 달아 없어지고
모래 시계처럼 끝을 향하야
달려가고 있습니다.
회개하시오"
좌측의 제대에서는 천사가 저울을 높이 들고 있으며, 다른 천사는 주교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색관을 찢고, 지팡이를 뿌러트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늘에서 셈바치려 할 때이면
지상에서의 어떤 권위와
지위도
절대로 도움되지 못합니다.
다만
당신의 회개만 필요할 뿐입니다.
◇진, 수사님을 따라서 도서관으로 가 봅시다. 서두에 이미 언급하였지만,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서 근래 소명을 잘 들어내는 청소년에 관한 작품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알 수 없지만, 글로 또는 종이 접기, 작고 큰 조형물, 각종 피정의 안내문 등은 고성(古城)이 성현들의 지혜를 간직하고 현대의 청소년안에 살아 숨쉬는 느낌입니다. 참으로 신선한 느낌이었답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 성현들의 지혜에 또 한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과학적인 책관리 였습니다.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맞추는 일입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환기 방법으로 온습도를 조절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기 복사본의 정교함에 감탄을 금지 못하였답니다. 도서관 역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창가로 갈수록 녹색으로 치장하여 마치 정원에 나와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으로 책을 가까히 하도록 배려한 점입니다. 천장과 벽화, 그리고 조형물등은 부드럽고 생동감이 넘처 흐름니다. 특히 신체 부위중 눈을 강조하여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강렬하게 표현한 점입니다. 학자다운 예리한 눈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 9>
◇진, 나 신부님은 우리들의 여행의 피로함을 걱정되어 의미있는 수도원 순례후 휴식을 권하였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에 없었던 초봉헌 성당 방문하게 되었습다. 순례할 성당은 높지 않은 언덕위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언덕위의 작은 경당, 그곳은 마을 사람들이 성모님을 모셔 놓고 어렵고 힘들 때 가끔씩 찾아 오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관습은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의 농작물등은 알 수 없는 해충에 의해 대단한 피해를 보게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경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 해충을 박멸해 줄 것은 간절히 애원하였습니다. 성모님은 마침내 농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었습니다. 농부들은 성모님께 감사의 초를 봉헌하였습니다. 농부들은 매년 6월이 되면 성모님께 감사의 초를 정성스럽게 봉헌하는 전통이 이때부터 생겨 났습니다.
◇농부들이 봉헌하는 초의 굵기는 2-30센티 미터, 길이는 무려 20미터가 된다고 합니다. 해마다 농부들은 청장년들은 이 초를 메고 50킬로메타 이상 행군하여 마침내 이곳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통 역시 몇 백년을 지켜 오는 것으로서 유럽 가톨릭인의 저력이 엿 보입니다. 뿐만아니라 초 봉헌 성당 뜰안에는 가족 묘들이 아름다운 꽃들로 꾸며저 있습니다. 이 꽃들은 몇 일만 돌보지 않아도 말라 버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가족들은 거의 매일 이곳을 찾곤 합니다. 이미 돌아가신 선조들을 살아 계시듯 보살피는 그들의 효성, 참으로 본 받을 만 합니다.
◇이 초봉헌 성당은 성모님의 은혜를 많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애절한 사연이 있는 많은이들은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속사정을 솔직히 말씀 드리곤 한답니다.
◇어떤 늦 총각이 장가를 들었지만, 도대체 아이가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본당 신부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신부님, 제겐 왜 아이가 없죠?"
"답답아, 신부인 나보다 네가 더 박사가 아니더냐??? 그래도 궁굼하면 언덕위에 성모님께 물러 보거라!!!"
◇늦총각은 성모님께 초를 정성스럽게 봉헌하면서 자식이 아직 없음을 불평하였습니다. 그날로부터 십년후 본당 신부님은 총각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자 그집을 방문하게 되었답니다. 그날 따라 총각은 보이지 않고 동네 꼬마들이 집안에 가득하였답니다. 아이들에게 늦총각의 행방을 묻자 아이들은 언덕위에 성모님께 갔다고 알려 주었답니다. 신부님은 그곳에서 늦총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봐, 늦총각..!!! 아직도 아이가 없나???"
"해마다 아이가 나와 그만 주십사하고 봉헌하러 왔습니다"
◇신부님이 그 집을 방문하였을 때의 아이들은 모두 늦총각 아이들이었답니다. 이번 순례객중에 늦총각과 똑 같은 이가 있습니다. 내년이 기다려 지는군요..!!
< 10>
◇진, 내일이면 처음 도착지인 슈바이클 베르그 수도원을 떠나게 된답니다. 벌써 3일이 고 보니, 무척 아쉬움만 남습니다. 오늘은 아빠스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 교구 본당들의 견진 일정을 잠시 미루고 저녁 시간을 주셨습니다.
◇진, 아빠스와의 만남의 장소는 피정센타 반지하에 마련된 수도원 카페랍니다. 아주 간단한 인사와 함께 각자 취향에 따르는 음료나 술을 나누면서 아빠스와 시간을 같이 함이었답니다. 콜라, 사이다, 그리고 값비싼 포도주와 양주까지 주량따라 마시되, 모두 아빠스가 한턱 내시겠답니다. 허허참..??? !!!
◇돈을 낸다면, 술등의 귀하고 천함을 금방 알련만, 공짜라 도대체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독한 맥주, 순한 맥주, 맥주와 콜라가 반반 인것등..., 단것과 쓴 것..., 참으로 다양하고 푸짐하였습니다. 까만 맥주를 꺼내들은 나는 어느새 취해 버렸답니다. 그것은 독한 맥주였나 봅니다.
◇진, 아빠스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선교사를 파견해 주시겠습니까?"
"아니오. 선교사가 부족합니다. 선교사 성소의 고갈은 유럽 전반에 걸쳐 심각합니다. 이곳도 예외는 아닙니다."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급격한 인구 감소에 있다고 봅니다.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합니다."
"유식한 사람들의 인구 조절 역설의 결과가 아닐까요?"
"국가 장려상품이었지요. 자녀들이 많으면 무식해 보이도록 방관한 결과입니다."
"인구조절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아닙니까?"
"무엇보다 생명을 거스르는 산아조절 의식은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윤리와 경제, 더 나아가 종교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모든 사회 조직을 거칠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함축된 말씀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합니까?"
"근래에 이르러 교회와 국가는 전과는 정반대로 적극적으로 출산 장려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효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식의 변화와 함께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허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통일된 독일의 미래를 알아 봅시다.
"동독에 대한 선교는 어떠합니까?"
"문화와 경제적인 차이 극복은 70년후에 이뤄 질 것입니다."
"서독 문화가 월등하니, 쉽게 동독으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그와는 반대로 동독의 문화(무신론)가 서독(유신론)을 급속히 잠식해 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하느님, 그분을 감추고 겁없이 살면, 아주 편안한 모양입니다."
< 11>
◇진, 리무진은 서서히 출발하더니, 성모 발현지를 거처 다음 숙소인 오틸리엔 수도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시아의 한국, 중국, 미국, 아프리카 케냐등지의 선교지를 둔 오틸리엔 연합의 모원이랍니다. 그곳에 아빠스가 얼마전 전세계 분도 수도원 총 아빠스로 임명되어 로마 본부로 떠나셨답니다.
◇진, 리무진은 끝없는 들녁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낯설은 독일은 참으로 신기하게 보여 집니다. 정말로 자세히 보았습니다. 도로 주변은 깨끗하게 제초 되였으며, 산에는 부러운 목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라고 있으나, 잡목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예쁜 집들에는 어김없이 창가에 꽃들로 그림같이 꾸며 놓고 살고 있었습니다. 정리 정돈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겨울 벽난로용 장작은 일정한 크기로 잘라 내어 쪼갠 다음 벽쪽에 깍듯이 쌓여저 있었습니다. 어느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어 보였습니다. 도시, 농촌, 도로, 들녁, 야산...,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건물은 한채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도시나 농촌의 폐가옥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완벽합니다. 작은 나무로 예쁘게 깍아 만든 울타리, 그 넘어 견공들의 집마저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구멍가계는 어느 곳을 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옷이나 가전제품 가계 역시 기가막힌 정리정돈, 청결입니다. 거리엔 휴지조각, 담배꽁초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문화적인 차이일까요??? 부럽군요...!!! 그러나 사람들은 청바지에 헐랭이 와이셔츠..., 우리나라 서민층의 평상복과 별차이 없어 보입니다. 못 사는 것은 아닌지....??? 아니지요, 소득은 우리보다 훨씬 높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답니다.
◇진, 리무진은 한나절 신나게 달려가더니, 벌판 한가운데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성모 발현지 가까히 온 모양입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마을은 순례자들로 가득합니다. 순례자의 옷 모양도 다양합니다. 배낭족 순례자도 보입니다. 십자가는 모자와 옷, 그리고 배낭에 덕지덕지 달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순례객은 초라한 몸골, 볼품없는 물병을 허리춤에 차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있지만, 이들은 몇 백리를 걸어서 이곳에 도착한 것입니다. 적게는 하루나 이틀, 많게는 일주일, 또는 열흘씩이나 걸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순례는 본당이나 교구차원에서 연중행사로 치뤄 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이면, 주교님 또는 본당 신부님이 이들 행렬에 선두 자리를 지킴니다. 스승이 먼저 앞서 가시니, 제자들이 어찌 따르지 않으리오. 유럽교회의 힘의 뿌리는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지금 이순간 성전에 참석하지 못한 엄청난 사람들이 광장에 대기하고 있지만, 스피커를 통하여 들려오는 말씀에 따라 엄숙하게 전례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절대 침묵속에 자신의 성지조배의 순서를 기다리는 그들을 바라만 보아도 이곳에 오기를 잘 했구나라고 생각듭니다. 성전을 자세히 살펴보니, 은사를 입은 사람들의 사연들이 사진과 함께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한구석에는 순래객들이 사용하던 작고 큰 십자가들이 있기에 나도 하나 걸어 메고 성전 주변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 주님, 나도 환자요...!!! 낳게 해 주세요...!!!"
< 12>
◇진, 성모발현 성당에 좀더 오래 있기를 원했건만, 리무진은 매정하게 오딜리엔 수도원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차창밖에 펼쳐지는 그림은 아직도 밀과 보리들이 심겨진 끝없는 초원이랍니다. 빵만 먹은 지 이틀째, 배탈이 계속 되기에 한마디 던저 봅니다.
"식탁에 빵과 맥주만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
끝이 보이지 않는 유럽의 대단위 들판이로다..
밭에서 쌀밥을 만드는 방법은
우리만 알고 있을 뿐...,
만일 밀 대신 밭벼를 심을 줄 안다면
쌀밥이 유럽 식탁을 점령하는
대 혁명이 기필코 일어나리라...,"
◇진, 저녁때가 되어서 우리는 오딜리엔 수도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고향에 온 느낌입니다. 숙소가 모두 정해진 다음, 열쇠를 받아 들고 방을 찾아가는 길, 화장실 앞에서의 일 이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우리 할배가 독일 할매한테 허리춤이 잡혀 있느체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DAMAN..???>이라기에 남자 화장실인줄 알고 들어 갔던 것입니다......, 헤헤..., 웃자구요
<13>
순례수도원 : 성 오틸리엔 수도원
설립연도 : (1884년 개원) 1896년 설립
수도원 건립 약력:
1. 1887년 - 아프리카
2. 1909년 - 서울
3. 1920년 - 북한과 만주 관할
4. 1923년 - 베네주엘라
5. 1961년 - 콜롬비아
수도원 부속 시설
1. 중등학교
2. 인쇄소. 대단위 농장, 도제(기술교육 제도 - 개별교수 지도아래 초등학교 4년 이후 중등, 고등학교를 이수하는 독일의 일반적인 교육제도)
☆수도원 순례 일과표☆ (2003.06.08-성신강림대축일)
06:30분 기상
07:00 - 08:30 아침기도
08:30 - 09:30 식사 및 휴식
09:30 - 12:00 수도원 대미사(성신강림대축일)
12:00 - 14:00 식사 및 휴식
14:00 - 15:00 저녁 기도
15:00 - 20:00 Andechs 수도원 순례, Eresing 본당 순례
20:00 - 21:00 수도원 만찬(바베크 초대)
21:00 - 22:00 수도원 소개(아빠스) 및 새 신부님 첫 강복
◇진, 오늘은 성신 강림대축일 이었습니다. 우리는 순례자로서 고상한 품위를 잃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하였답니다. 단순한 관광에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례때에는 수도복을 입고, 수사님들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일거일동들은 독일의 일반 신자들이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공개석상에서 아빠스가 직접 소개하거나, 전례안에 주례자가 극찬으로 우리를 들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성신강림 대축일 강론에서는 땅 극변,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여 성서를 증명하는 의미로 우리를 소개하였답니다. 강론자의 열변은 많은 이들을 크게 감동 시켰습니다.
◇진, 이들의 감동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들은 1909년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서울에 파견돤 이후 1920년 함흥교구(북한)와 연길교구(만주)를 설립하여 선교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의하여 많은 순교자 탄생과 함께 선교지 철수라는 뼈 아픈 역사를 감수하게 됩니다. 서울 수도원 설립 100주년 가까운 이 시점에서 서울 봉헌회의 오틸리엔 수도원 방문은 역사적 회고라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성소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선교사 파견 포기라는 뼈아픈 고통을 안고 있는 그들로서 우리들을 바라봄은 우리들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 아이를 많이 낳아서 신학교에 많이 많이 보내야 할 것 같은데....., !!??? 맞지요?>
< 14>
< Andechs 수도원 순례>
설립 : 1455년,
◇진, 오딜리엔 수도원에서 맞는 성신 강림 대축일은 감격적이었답니다. <...이젠 우리 차례 로구나...! > 생각은 적절하게 정리가 덜 되었건만, 한 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 우리는 다음 수도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답니다.
안데크스 수도원의 소명...?
은근히 취하는 맥주의 향기속에
하느님의 영성을 전한다????
◇진, 안데크스 수도원은 맥주공장으로 더 유명하답니다. 아주 고급 맥주를 만들어 그것을 선교재원(성보니파시오 수도원의 선교재원으로 후원)으로 활용하였답니다. 지금도 안데크스 맥주는 유명한 고급 브랜드로 독일인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도원 직활 맥주집을 수사님들이 직접 운영하였답니다. 우리도 순례기념으로 500cc 내지 1000cc 주량껏 마셔 보았답니다. 맛과 멋, 그리고 하느님의 영성이 한꺼번에 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맥주는 참으로 짜릿하였습니다. 지도 신부님 왈..., "너무 취하지 맙시다...!!"
◇진, 안데크스 수도원 대성당은 전쟁하는 이들의 쉼터였습니다. 성당 입구 벽면에 새겨진 수많은 사연들, 이미 전사한 이들의 명판을 새겨놓고 오랫동안 기억하는가 하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안전을 비는 사연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무사히 귀가하였음을 감사하는 명판도 보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또는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고 큰 십자가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려 500년간 지속된 신심행위등입니다. 기도의 특징은 소원 성취후 꼭 기억하여 감사의 표현을 남기는 것입니다. 지금도 군인들을 위한 기도는 전통에 따라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진, 수도원 만찬은 희극?적 이었답니다. 웃고 울고...,
우리는 수도원 만찬 예약 때문에 서둘러 돌아 왔야 했답니다. 만찬은 수도자만을 위한 특별휴식자리로 수도원 뒤편에서 이미 흥겹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봉헌회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수도원 역사이래 만찬을 최대한 풍요롭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만찬은 일반인들에게 폐쇄적이었으나, 우리들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빠스의 재빠른 지휘아래 먹거리와 웃음거리가 풍성하였습니다. 일본 수사님의 즉석 영명축일 파티, 계속 이어지는 수사님들의 자기 소개는 동방에서 온 가족을 한껏 따듯하게 감싸 주었답니다.
◇진, 아빠스의 안배아래 새 신부님의 첫 강복은 우리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였답니다. 이어서 수도원의 깊고 감추어진 현장들의 의미있는 공개는 우리가 가족임을 감동있게 깨우처 주고 있었습니다.
◇진, 오딜리엔 성녀는 처음부터 소경이었으나, 세례이후 눈을 뜨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 성녀는 우리로 하여금 영혼의 눈을 뜨게하는 주보로 존경을 받게 되어 오딜리엔 수도원은 수도원의 주보로 모셨답니다. "....늘 어둠속에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빛을 따라 세상을 밝게 보게 하소서..."
첫댓글 천리본당 신부님과 신자들의 특별한 배려로 심진 크리스티나를 기쁘게 떠나 보냅니다.
특히 총회장님, 김영식 야고버 형제님, 그리고 연령회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늦 총각이 그 이후 아들을 낳았습니다
지금은 예비 신학생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