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金堤市]의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전설이 많고 특히 벽골제와 관련된 전설이 유명하다. 「쌍룡추와 벽골룡전설」은 고려 고종 초기의 인물로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璧)과 관련된 것이다. 원평천의 포교(浦橋) 근처에 있는 초혜산(草鞋山) 북단의 용추(龍湫)에는 백룡이 살고 있었고, 연포천(連浦川) 앞 용골마을 남단의 용추에는 청룡이 살고 있었다.
조연벽이 어렸을 때 꿈에 백의노인이 찾아와 자기는 벽골대제를 수호하는 백룡인데, 외지의 흑룡이 습격해 자기 집을 빼앗으려 하니 구원해 달라고 하였다. 이튿날 백룡이 흑룡과 싸울 때 조연벽이 활을 쏘아 흑룡을 죽였다. 그러자 백룡은 조연벽의 후손을 대대로 흥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보은으로 조연벽은 이름이 세상에 크게 드러났으며 그 자손도 번창했다는 것이다. 「부잣집 손부(孫婦)와 이랴소리 전설」은 청하면의 장산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마을에 천석꾼 김씨가 손자며느리와 함께 살았는데, 이 손부가 기운이 무척 세어 여장군으로 소문이 나자, 이를 조정에서 알고 손부를 죽일까 두려워한 김부자는 손부를 야반도주하게 하였다.
손부는 많은 의복과 곡식을 소의 등에 싣고 떠났는데, 청하산 고갯길을 소가 넘지 못하였다. 이에 끙끙대는 소를 짐을 실은 채로 번쩍 들어 자기 머리에 이고 걸어가자, 머리 위에서 배가 눌린 소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손부는 소가 지칠 때마다 머리에 이고 갔는데, 소가 더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소가 지칠 때마다 “이랴, 이랴.” 하고 다그치며 고개를 넘었다. 그 뒤로 ‘이랴’가 소를 다그쳐 몰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승려와 아름다운 여인이 혼인해 불도에 정진했다는 「부설거사(浮雪居士)와 묘화부인(妙花夫人) 전설」, 부안군의 형제산이 풍랑으로 떠다니다 이 곳에 정착해 울었다고 해서 ‘울엉산’이라고도 하는 이야기 「명량산전설(鳴良山傳說)」, 「입석산(立石山)과 와석산(臥石山)싸움전설」, 「구렁이와 흥복사(興福寺) 전설」 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에는 노동요가 많은데, 평야지대이므로 농업노동요인 들노래가 중심이 된다. 들노래의 전승상태가 좋은 곳은 만경읍 대동리로, 모를 내기 전 논고르기에서 벼를 베어 내기까지 전 과정의 노래가 잘 전승되고 있다.
「모심기노래」는 “패랭이 꼭지에다/장화를 꽂고서/마호라기 춤이나 추어보세/여 · 이여 · 어여허 · 여루우/상 · 사아 뒤 · 이여……”라고 해 후렴이 ‘상사디어’계이면서 앞뒤 여음이 풍부하고, 느린가락 · 빠른가락이 모두 있다.
「논매기노래」는 “……바람불고 눈비올 줄 알면/어느 뉘가 빨래질을 갈까/나아 · 하아 하아 · 헤 · /헤 · 헤어헤 에에헤에 헤헤헤/노호오오리 헤 · 에이 허 · 허리가/산아지로 고으나 에헤에에야……”로 후렴이 「만경산타령」과 비슷하고, 풍부하면서도 세련되었다.
「벼베기노래」도 어느 지역보다 가락이 세련되었고, 「등짐노래」라고도 하는 벼를 져내는 노래도 “오오 · 허어 · 오/어허 · 어허 · 오호호/바늘같은 몸에다가/황소같은 짐을 싣고서/이 고개를 어이 넘어 갈꺼나……”라고 해 노동의 힘듦을 내용으로 하면서도 여음이 풍부하다. 「등짐노래」 · 「김매는 노래」 등은 앞소리 · 뒷소리의 교환창으로 부르는데, 받는 소리는 “아허허 허아하 에헤 · 에하 · ”, “아헤 · 에 에헤야 에헤오호” 등 모두 다양한 여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풍부한 가락으로 부른다. 그 밖에도 「메물노래」 · 「지층개노래」 · 「나물노래」 · 「담배노래」 등이 있는데, “담장안에 담뱃모를 붓어서/낮이로는 볕내쐬고/밤으로는 이슬맞어/점점이 자라나니……”의 「담배노래」는 농사 짓는 모습, 식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함께 담고 있다. “신통방통 고부랑통/인천 소금통/서울 오줌통/일본놈 장통/서양놈 우유통……” 등 어희요 계통의 「풍소요」가 많으며 「꼬리따기」 · 「다리빼기노래」 등의 동요도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5-01-1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