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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케이불 카 트래킹 -효도 관광 힐링 트래킹-
제10화 "돌로미티의 성" 파소 포르도이
2025년 7월 27일
작별과 시작 사이에서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새벽 햇살에 눈을 떴다.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조식 식당으로 향했다. 채식 위주로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는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할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었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입안에서 아침 공기처럼 상쾌하게 퍼졌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4박 5일 동안 우리를 헌신적으로 가이드해준 아들 동현이가 베네치아로 떠나는 날이다.
늙은 부모 둘을 세심하게 관찰한 결과 택시를 이용하며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고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아들은 렌터카를 반납하고 오후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며 우리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버지, 어머니,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들의 손을 잡으며 고마움이 복받쳐 올랐다. 저 멀리 이국땅까지 늙은 부모를 위해
함께해 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들의 차가 호텔 앞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제 진짜 우리만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 같은 묘한 설렘을 느꼈다.
파소 포르도이를 향하여
9시, 우리는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프런트에 맡겼다. 호텔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준 시간에 맞춰 호텔 앞에서 Passo Pordoi행 버스를 기다렸다. 맑은 아침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들었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아침 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파소 포르도이(Passo Pordoi )는 '포르도이 고개'라는 뜻으로, 북쪽의 셀라 산군과
남쪽의 마르몰라다 산군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엄한 고갯길이다.
이 전설적인 고개길은 1904년경 아라바(Arabba)에서 카나제이(Canazei)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발 2,239m의 고도에 건설된 이 도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었다.
카나제이에서 고개까지 12.1km를 연결하는 동안 무려 28개의 헤어핀처럼 생긴 헤어핀
커브를 지나야 한다. 아라바에서는 9.3km를 달리며 32개의 헤어핀을 통과해야 고개에 닿는다.
평균 7~8도 경사를 끊임없이 올라가는 이 힘든 코스는 세계적인 사이클링 대회의 명소가
되었다. 유명한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대회에 여러 번 선정되었으며 전 세계
라이더들이 꿈꾸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고 한다. 버스 창밖으로 그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보였다. 그들의 도전하는 모습이 경이로워 보였다.
전설의 발자취를 따라
11시 20분경, 드디어 Passo Pordoi 케이블 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 동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자전거 선수
파우스토 코피(Fausto Coppi, 1919~1960)의 기념 동상이었다. 세계 대회에서 수십 번의
우승을 차지한 그는 포르도이 구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의 영혼이 이곳에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동상의 얼굴은 영원히 저 높은 산을 향해 있었다.
케이블 카 입구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또 다른 선구자의 동상이 서 있었다.
마리아 피아츠(Maria Piaz, 1877~1971), '포르도이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 여성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그녀는 포르도이 고개에 판잣집을 지어 고개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며 헌신해왔다고 한다 돌로미티의 산악 도로인 '스트라다 델레 돌로미티
(Strada delle Dolomiti)'가 생기면서 포르도이 고개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헌신적인
활동이 이곳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61년 그녀는 최초의 케이블 카를 만들어 셀라 산군과 연결되는 관광 루트를 개척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산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늘로 오르는 5분
1963년 개통된 케이블 카에 몸을 실었다. 2,239m의 포르도이 고개에서 5분간 상승하면
해발 2,950m의 사소 포르도이(Sasso Pordoi)에 있는 Maria 산장에 도착한다.
케이블 카가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구불구불한 헤어핀 커브가 마치 용의 등뼈처럼 산허리를 감고 있었고 그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창문 너머로 차가운 고산의 바람이 살며시 스쳐 지나갔다
돌로미티의 성(城)
케이블 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우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거대한 셀라 산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700m 높이의 평탄한 바위 성벽이 마치 병풍처럼
아니 거대한 성곽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햇살이 백운암 절벽에 부딪혀 은빛으로
반짝이고 구름 그림자가 산군 위를 천천히 흘러갔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돌로미티의 테라스'라고 부르지만 나는 감히 돌로미티의 성(城)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구글에서 찾은 맑은날씨의 테라스는 한폭의 그림과 같았다
3,000m 높이의 평탄한 고원에서 돌로미티의 모든 산군을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장관이 아니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마치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특별한 관람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왼쪽으로는 어제 다녀온 사소롱고 산군이 익숙한 친구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고
이어서 장엄한 셀라 산군이 파노라마를 이어갔다. 셀라 산군을 따라 시선을 돌리면
오른쪽 끝에 거대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 정점에 자리한 곳이 바로 셀라 산군의 최고봉
피츠 보에(Piz Boè, 3,152m)였다. 오늘 우리가 도전할 목표였다.
노부부의 도전
우리는 피츠 보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른 트레커들과 함께 셀라 산군의 테라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왼쪽 끝에 있는 봉우리가 우리의 목적지였다.천 길 낭떠러지가 있는
고원지대의 9부 능선길을 따라 30여 분을 걸었다. 발밑으로는 아찔한 절벽이 눈앞으로는
끝없는 하늘이 펼쳐졌다. 3,000m 고지의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시원하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포르셀라 포르도이(Forcella Pordoi) 안부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포르도이 산장
(Rifugio Pordoi, 2,848m)이 자리하고 있었다. Passo Pordoi 고개에서 걸어 올라오는
등산객들의 중간 쉼터이자 장엄한 전망을 선사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산장에서 바라본 마르몰라다 산군의 일부가 마치 한 폭의 수묵화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 속 순례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계속해서 걸어갔다.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자연의 위대한
교훈을 체험했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정상을 향해 도전하는
우리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긍지가 가슴속에서 솟아올랐다.
어떤 구간은 트레커들의 안전을 위해 와이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안전한 길잡이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안개 속에서도 이정표는 명확했고 우리는 그 표지를 믿으며 걸었다.
1시간을 트레킹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광활한 회색의 백운암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성벽이었다.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빚어낸 이 장엄한 조각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완의 정상, 완성된 여행
드디어 정상 피츠 보에 산이 안개 속에서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야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날씨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체력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정상까지 왕복 1시간, 고도 3,152m...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없이도 통했다.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무리해서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무사히 하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웠다.
"여기서 돌아가요."
아쉬움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맑은 날의 피츠 보에 정상 풍경을 나중에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고도 3,000m 높이에
이런 트레킹 코스가 있다는 것이 전혀 상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피츠 보에 정상에는 카판나 피츠 파사(Capanna Piz Fassa) 산장이 있다. 1968년 포르도이의
선구자 마리아 피아츠의 아들이 등산객을 위해 만들었고 1980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360도 아무런 가림 없이 사소롱고 (Sassolungo) 로젠가르텐(Rosengarten)
마르몰라다(Marmolada) 치베타(Civetta) 토파네(Tofane) 푸에즈오들레 (Puez Odle)
산군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알타 비아 2(Alta Via 2) 구간이 통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올라온
길과 반대편에 알타 비아 2의 경로가 이어진다고 한다.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마음속으로 작은 소원을 빌었다
하산길의 은총
우리는 원점 회귀를 위해 왔던 길을 따라 안전하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길은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오르막보다 힘은 덜 들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 있게 내려갔다.
길가에 예수의 고난 장면이 목각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모습을 보며 중생을 위해 고난을 감내하는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졌다. 감사했고, 경배로웠다.
이 높은 산에서 신의 사랑을 만나는 것 그것은 예상치 못한 은총이었다.
하산하다 피츠 보에를 돌아보았다.신기하게도 안개가 걷히고 정상의 산장이 투명하게
보였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쏟아지며 산장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정상을 포기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나이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무사히 돌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등반이 아닐까.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돌탑을 지나 왕복 3시간 만에 우리는 Maria 산장에 도착했다.
상당히 힘든 트레킹이었다. 피로가 뼈 속까지 쌓여 있었다.
그러나 가슴속은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
3,000m 높이의 고원에서 3시간 동안 트레킹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서 이곳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오늘의 이 트레킹이 아름답게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80대의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었다.
꿀맛 같은 점심과 만남
Maria 산장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시장기에 먹는 야채 샐러드와 따뜻한 수프는
정말 꿀맛이었다. 고산에서 맛보는 소박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다니.
몸과 마음이 함께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블 카를 타기 전 사소롱고 산군 쪽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다.
철제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돌이 반쯤 쌓여 있었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집자가에는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머리글자인 INRI는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를 의미하는 문자가 세겨저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당시 그의 죄목을 표시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 달게 한 명패의 내용이라 하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며 역사적 사건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높은 산 위에서 만나는 이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인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구원에 대한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켰다.
조금 더 내려가니 자연이 만든 거대한 암층이 나타났다. 수억 년의 풍화작용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아래로 보이는 것은 아찔한 1,000m 절벽 너머의 포르도이
헤어핀 길이었다.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도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젊음과의 만남
케이블 카를 타기 위해 산장으로 돌아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클라이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젊은 그들의 힘찬 발걸음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기다렸다가 그들이
모두 올라온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독일에서 왔습니다. 당신들은요?" "한국에서 왔어요."
독일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들은 40대 초반이라고 했다. 우리가 80대라고 하자,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Unglaublich! (믿을 수 없어요!) Really amazing!"그들은 진심으로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도 그들의 젊음과 열정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서로 격려했다.
나이와 국적을 넘어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존경과 격려를 느꼈고, 우리도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돌로미티의 성벽
포르도이의 셀라 산군은 돌로미티의 중앙에 위치한 산군으로 정상이 뾰족하지 않고
거대한 평원처럼 생겼기 때문에 '돌로미티의 테라스'라고 불린다.하지만 내 눈에는 달랐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모습은 마치 돌로미티의 성벽"처럼 느껴졌다.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이 거대한 요새 그 안에 들어선 우리는 마치 중세 시대
성을 방문한 여행자 같았다
그림 속을 걷다
우리는 케이블 카를 타고 Passo Pordoi로 내려왔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호텔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조금 더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보이는 곳곳이 힐링의 장소였다. 하나하나가 풍경화 같은 거리를 걷는다는 것
그것은 피로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알프스의 전통 가옥들,
꽃으로 장식된 발코니,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 멀리 보이는 설산...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발걸음마다 감사했다. 이 나이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 건강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감사의 작별
오후 4시경, 호텔에 도착했다.채식 식사와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해준 주인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들은 주인장도 놀라워하며 축복해주었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하며 아쉬운 이별을 나눴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Rifugio Col Gallina로 출발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80대의 우리가 3,000m 고지를 걸었다.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만의 정상에 올랐다. 이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오늘의 포르도이 파소 트래킹은 1→2→3→4→5번 지점까지 도달 후, 6번(피츠 보에 정상)
을 포기하고 5→4→3→2→1로 안전하게 회귀한 일정이었다
" 자연의 경이로움은 숫자로 기록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가슴속에 새겨졌다".
오늘의 운동량
걸음 수: 19,536보
이동 거리: 12.6km
걸은 시간: 3시간 32분
마음의 충전: 도전의 기쁨, 포기의 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