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무기는 꽁무니에 있다
임병식
해질 무렵 산책에 나섰다. 논둑길을 걷는데 제풀에 놀란 개구리 한 마리가 ‘찍’ 하고 오줌을 내갈기며 달아났다. 느닷없는 봉변에 바짓가랑이가 젖었다. 황당하면서도 괘씸했다.
나를 해치려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해코지를 하다니.
잠시 화를 누르고 개구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놀란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줌을 내갈긴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갑작스러운 위협을 피하려는 본능적인 방어 행동이었을까.
벌과 전갈은 독침을 지니고 있고, 스컹크는 꽁무니에서 지독한 냄새를 뿜어낸다. 위험한 무기를 몸 뒤쪽에 감추고 있는 셈이다. 눈에 드러난 무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진 무기가 더 뜻밖의 위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개구리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것은 치명적인 무기가 아니다. 독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양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그것이 개구리에게는 제 목숨을 지키는 수단이 되는 모양이다.
어렸을 적에도 그랬다. 고무신을 신고 논둑길로 메뚜기를 잡으러 나가면 메뚜기보다 먼저 놀란 개구리가 오줌을 내갈기며 달아났다. 녀석들은 어찌나 정확한지 내딛는 발을 겨냥했다. 두어 번 오줌 세례를 받고 나면 고무신이 미끄러워 걷기조차 힘들었다.
그때는 그것을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직접 당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개구리가 오줌을 내갈기면 사람은 먼저 자기 몸을 살핀다. 개구리를 쫓는 일은 그다음이다. 그 짧은 순간이 개구리에게는 달아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아닐까.
무기가 아니면서도 무기 구실을 하는 셈이다.
사람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다.
위기에 처하면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기지가 번뜩일 때가 있다.
시골 여인이 오랜만에 금반지 하나를 장만해 끼고 친정으로 가던 길에 산중턱에서 강도를 만났다.
“당장 금반지를 내놓으시오.”
여인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반지를 빼 풀숲에 던지며 말했다.
“지지리도 복 없는 여편네가 구리반지 하나 사서 끼고 길을 나섰다니, 이것 하나도 낄 팔자가 없는갑소. 욕심나면 가져가시오.”
강도는 반지를 주워 갔고 여인은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개구리가 오줌 한 방으로 잠깐의 틈을 만들었듯, 사람도 때로는 뜻밖의 재치 하나로 위기를 빠져나온다.
해질 무렵 논둑길을 달아나는 개구리를 바라보았다.
남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는 행동 하나에도 제 목숨을 지키려는 나름의 지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비밀무기는 꼭 손에 들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꽁무니에도 있다.
(2026)
첫댓글 일상의 사소한 경험에서 삶의 통찰을 매끄럽게 이끌어 내셨습니다.
불쾌할 수 있는 ‘개구리 오줌 세례’라는 해프닝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인간사의 지혜(금반지 우화)로 사고를 확장하는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개구리가 오줌을 싸면 상대가 제 몸을 먼저 살피게 된다는 관찰은 단순한 생태 묘사를 넘어 방어 기제의 핵심(주의 분산과 시간 벌기)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비밀무기는 꼭 손에 들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꽁무니에도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글의 유머와 주제의식을 단단하게 매듭짓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줌을 내갈기고 달아나는 개구리를 보면서 "제깐것이 독도 없으면서 공격을 하네"하고
가소롭게 생각하다가, 생각해보니 그것은 연막작전으로 피할 시간을 벌기위해 하는 짓이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름의 생존전략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꽁무니에서 나오는 개구리의 오줌 한 방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는 순간의 기지와 재치'를 일깨워 주신 참 재미있고 깊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힘보다 상황을 유연하게 넘기는 지혜가 제 목숨과 소중한 것을 지키는 진짜 무기라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언제나 흥미롭고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시는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은혜로운 매일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어제는 개구리 한마리가 사유를 끌어내는 수필 한편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지극히 하찮게 오줌을 내갈리는 동작이나마 자기를 기키려는 방어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 나름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늘 건강 챙기시면서 작품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제 시간이 없습니다. 건강한 신체도 건강한 정신도 모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맞아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지요.
연일 폭염이 장난이 아닙니다.
김은진교장선생님도 더위먹지 마시고 각별히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