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열정
“아, 성명(聖明)하신 전하께서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과거 역사에 기록된 난망(亂亡)의 조짐이 한꺼번에 집중되는 것입니까. 어찌 하늘과 조종(祖宗)께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애(仁愛)하는 마음에서 이것으로 전하를 크게 경동(警動)시켜 훌륭한 인덕(仁德)을 완성시켜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명(大命)을 맞이하여 계승해 가게 하는 것도 오늘날에 달려 있고 하늘이 시재(時災)를 내리게 하는 것도 오늘날에 달려 있으니, 그 기미야말로 털끝도 용납할 수 없는 정도라 할 것입니다. 이는 오직 전하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백강 이경여 선생, 효종4년 1653년 2월 13일 상차문(上箚文) 에서>.
위에서 백강 이경여 선생이 어려가지 난망의 조짐가운데도 대명을 계승하는 비전과 열정을 마음에 품을 것을 효종대왕에게 주문하고 있는데, 약동하는 기독교인의 삶에도 반드시 비전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비전과 열정은 골방에서의 기도를 통하여 생겨난다.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한1서 5장 14절).”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분의 임재 안에 거하는 시간을 통하여 어떤 책이나 불을 토하는 설교, 혹은 전략적인 세미나로도 채울 수 없는 비전과 열정을 채우실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비전과 열정의 삶을 살다간 야베스에 대해 기록하기를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honorable)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地境, border)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장 9-10절)”라고 하였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멋있는 말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어느 인생이든 고통과 고난은 따르기 마련이다. 문제는 어차피 당하는 고통과 고난이 값진 것이냐 아니면 헛된 것이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나치수용소에서의 험난한 나날을 극복함에 성공하였던 빅터 프랭클 박사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값어치 있는 고통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에 대하여 다음같이 쓰고 있다. “삶을 의미 있고 값어치 있는 삶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우리는 영적인 자유를 통하여 골방에서 기도함으로 얻은 비전과 열정을 품고 닥치는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어 내 삶이 가치 있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비전과 열정을 품고 가치 있는 삶을 향해 나갈 때 반드시 경계로 삼아야 할 말씀이 ‘논어’에 기록되어 있다. ‘논어’「안연」의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마음을 동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구절은 안자가 인(仁)을 행하는 공부 방법이다. ‘논어’「학이」의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나니, 남을 위하여 도모함에 마음을 다하지 못했는가? 벗과 사귐에 미덥지 못했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는 증자가 덕(德)에 들어간 요체이다.
아울러 반드시 참조할 말씀이 있으니 이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정기편(正己篇)」에 기록된 “삶을 올바르게 보전하려는 사람은 욕심을 적게 하고, 몸을 온전히 지키려는 사람은 세상에 이름 내기를 피한다. 욕심을 내지 않기는 쉬우나 이름 내지 않기는 힘들다.[保生者(보생자)는 寡慾(과욕)하고 保身者(보신자)는 避名(피명)이니, 無慾(무욕)은 易(이)이나 無名(무명)은 難(난)이니라.]”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열정을 품고 살아갈 때 사사로운 탐욕과 속세의 명예를 추구하게 되면 하나님의 돌보심은 그치고 앞으로 나가는 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2026.10.26.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