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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8월20일(목)맑음
새벽에 일어나니 온 몸이 쑤신다. 왜 그럴까? 어제 안 하던 가래질과 괭이질을 해서 그렇구나. 평소에 일 안하던 몸이 갑작스레 좀 움직였더니 온 데가 다 아프다. 선비가 어찌 땅 파는 일에 익숙하랴, 내가 부르조아다. 노동해서 먹고 사는 사람의 고통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내가 백면서생이다. 세상 사람이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나는 백운 간을 나는 한 마리 학처럼, 청산에 유유히 노니는 靑鹿청록처럼 살 일이다. 그게 나의 본성에 맞다.
오늘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칠석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안개가 짙어지더니 가는 비가 살짝 흩뿌린다. 견우가 오늘 밤 직녀를 만나러 갈 때 타고 갈 마차를 씻는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란다.
차담시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왜 울력을 대중이 같이 하지 않고, 소임자가 개인적으로 하느냐, 이것은 공평하지 않다, 본사 스님으로서 입승보기에 미안하다, 등등. 결론은 오후 정진 2시간 동안 울력을 해서 도량정리를 완전히 해마치자는 것. 그렇게 해서 울력하다. 나는 피곤하여 중간에 들어와 누웠다.
밤 비오다. 견우과 직녀가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나 보다. 오늘 밤 소슬비는 달달하겠다. 땅과 숲과 산들이 감로수를 마신다.
2015년8월21일(금)흐림
밤새 보슬비. 새벽에도 보슬비. 견우, 직녀 만나서 눈물, 헤어질 때 눈물.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 희비고락의 맛이 비가 되어 내린다.
점심 때 비긋다. 흐리다.
밤 수정봉 어깨 위에 초승달 뜨다. 보기 좋다. <수행일기-8> 올렸더니 금성보살 읽고 댓글 달았다. 일광에게 문자하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제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安心안심이다. 이밖에 별달리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들떠있거나, 헤매거나, 미쳤거나 이다. 제 자리에서 안심하라.’ 문아보살은 호주에서 할 일 마치고 돌아왔다고 연락.
夢踏十萬里, 몽답십만리 꿈에 십만 리를 다니다가
俄覺月滿樓. 아교월만루 문득 깨어보니 누각에 가득한 달빛이여!
2015년8월22일(토)흐림
아침 짙은 안개.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스님들이 빨래할까 말까, 풀할까 말까, 망설인다. 그러다 하기로 결정한다. 구름이 짙게 깔리더니 이내 햇볕이 반짝하다가 곧 흐려진다. 端正단정과 許允貞허윤정 보살이 서울서 내려오다. 밤에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단정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들었다. 세상에서 주어진 제 자리를 지키며 살 것이라 한다. 내가 말하길 자리는 고정된 게 아니니까 열린 관점을 가지고 자리의 수평적, 수직적 이동가능성을 열어놓으라고. 허윤정은 靑海省청해성에 北海북해선원에서 있었던 明賢명현선사의 수련법회이야기, 서울대에서 중국어 가르치는 이야기를 했다.
느낀 점: 요즘 아이들, 대학생들까지도 자기표현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훈련이 덜 되 있다. 인생을 보는 폭이 좁다.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한다. 그러니 젊어서부터 보수적인 사고를 할 경향이 다분하다. 한국사회가 경쟁이 치열하고, 피로하게 만들며, 심리적 압박이 심하다. ‘제 자리를 찾아야한다.’는 말은 한국 사회 젊은이들이 삶의 무게를 얼마나 무겁게 느끼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부모가 대학까지 시켜주었으니 이제 내 능력으로 내 의식주를 책임져야한다. 나의 생계를 해결해야한다. 그런데 밥벌이할 자리 하나 구하기가 만만한 게 아니다. 이런 불안은 생존적 차원이다. 남한사회의 경제가 발전했다하나 아직도 이 정도인가? 중산층의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다 마친 청년의 꿈이란 게 겨우 직장 한 자리 구하는 것이라니, 그 인생이 얼마나 쪼그라들었는가, 그에게 꿈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겠는가? 아니 자기의 꿈이 뭔지나 알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자기가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 어떤 꿈을 이루고 싶은지, 과연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게 교육의 기본이요, 효과인데도 말이다. 그러면 부모나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쳤는가? 생존하는 기술로서 대학교 가는 것, 안정적인 직장 구하는 것,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무난하게 맞춰서 사는 법. 이게 뭔가? 이렇게 살다간 Kafka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벌레가 된 사나이가 될 것이며, 그 말로는 Gogoli고골리의 <외투>에 나오는 하급 공무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처럼 비참하게 죽어 원혼이 되어 떠돌 것이다. 평생 모은 돈으로 황금 단추가 달린 고급외투를 샀는데 어느 날 밤 강도에게 빼앗겼다. 너무 억울하여 관청, 경찰서에 찾아달라고 호소하였으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관료주의에 물든 그들에게는 마이동풍이었다. 억울하고 허탈해져 헤매다 길에서 죽었다. 원혼이 되어 거리를 떠돌며 부자들이 타고 가는 마차에 나타나 그들의 외투를 벗겨간다. 당신이 일생을 소모해서 벌어 모은 재산과 쌓은 인맥, 사회적 지위, 돈 들여 키운 자식들, 이게 당신의 ‘외투’이다. 어느 날 그 외투를 이유도 없이 뺐길 것이다. 누가, 왜? 죽음이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을 때 억울하다고 원망할 수 있으랴. 외투를 사기 위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쓸 것 안 쓰고, 놀 것 안 놀고 모았다. 당신의 삶을 외투와 바꿨다. 그런데 외투는 빼앗기고 만다. 당신은 그렇게 살 것인가? 세상 사람들 모두 이런 헛질을 한다. 자기가 자기를 배반한다. 삶이란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생의 목표를 왜 황금 단추가 달린 외투에 두는가? 지금 입고 있는 대로 살라. 안개와 이슬비, 구름과 노을이 자연의 옷이 아니랴. 제 꿈을 실현하라, 열정에 넘쳐 살라. 푸른 산 흰 구름 나는 새 뛰는 노루가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왜 그렇게 좁아터진 구석에 기어들어가 한 자리 차지하려고, 안 끼워 줄까봐 불안해하는가? 하늘과 땅은 넓고도 두터워 너의 삶을 지탱해주기에 충분하니, 모든 불안과 근심을 내려놓으라. 왜 미리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 상상을 하는가,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라 긍정적 상상을 해보라. 너의 행복을 찾아가라. Follow your bliss. 파랑새를 찾지 말고, 자신이 파랑새가 되어라. 길을 찾지 말고, 네가 길이 되어라. 가지 않은 길을 기웃거리지 말라. 곧장 너의 길을 가라. 가다가 아니면 다른 길을 가면 된다. 모든 것은 네 자신에게로 통한다.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믿는 대로 경험하고 투사한대로 현상된다. 세계의 주인으로 살면서 세계를 벗어나자. 세계해탈, 이것이 한 발은 진흙을 밟고 한 발은 연꽃을 밟고 가는 삶이다.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고 녹차를 마시다. 속리산 터미널까지 바래다주고 헤어지다.
단정에게 줄 시가 생각나다.
如初恒身至端正, 여초항신지단정
學道修心應如是; 학도수심응여시
涉世泥牛喊月走, 섭세니우함월주
逍遙玉馬瑠璃地. 소요옥마유리지
처음처럼 늘 새롭게 끝까지 바르게
도를 배우고 마음 닦는 데 마땅히 이러해야지,
세상을 건너가라,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듯
유유자적하라, 옥마가 유리로 된 땅에 노닐 듯.
2015년8월24일(월)흐림, 바람
시원한 바람 분다. 淸凉청량, 容平용평의 기운 느껴진다. 태풍이 지나간다는 소식이 있다. 오전에 바람이 점점 세지다. 산중이 가물어 비를 기다리는데 마른 바람만 분다.
2015년8월25일(화)비
새벽 정진 마치고 입승이 죽비를 놓는다. 하안거 한 철이 이렇게 매듭지어진다. 좌복 피를 벗겨 빨래를 한다. 밖에 비가 오니 큰방에 불을 넣어 빨래를 말린다. 해인사에서 열리는 수좌회의 모임에 참석하라고 성화를 대어, 선원장과 입승은 가는 척하고절을 나서서는 속리산을 한 바퀴 돈다. 용유계곡으로 가서 蓬萊봉래 梁師彦양사언 손가락 글씨를 보고 化北화북에서 콩국수루 점심을 때우고 우중에 지출거리며 돌아다니다. 피곤해져서 돌아와 옷을 빨고는 일기를 쓰려고 자리에 앉다. 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추루추루, 띠릭띠릭, 치릭치릭 내린다. 피곤하여 일찍 자다.
2015년8월26일(수)흐림
새벽 기운 쌀쌀하다. 계절의 순환은 사람을 속이지 아니한다. 어제 밤 대구 관오사 주지 지우스님이 전화했다. 여름동안 스리랑카 칸두보다Kanduboda의 숲속 수행센터에 다녀왔다고 한다. 다른 날 함께 가서 수행하자고 하다. 가을 학기에 네 번 강의해주기를 부탁한다. 매주 목요일 관오사 법당에서, 주제는 내가 정한다. 대략 다음과 같이 정하다.
1.간화선 무엇이 문제인가?-간화선의 문제점과 혁신방향 2.티베트 불교의 과거와 현재-간략한 역사와 현재 3.티베트 불교 수행의 실제-4대 종파, 카규파의 3년3개월3일 결사와 나의 경험 4.선정체험-아나빠나사띠와 사선정
2015년8월27일(목)흐림
마지막 삭발. 한 철 동안 내 머리를 삭발해주었던 靈曇영담스님의 마지막 손길을 받고 “애쓰셨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하다. 빨래 해놓았는데 갑작스레 소나기 오다. 방에다 말려야겠다. 내일 浩然호연거사와 같이 오겠다던 明眼명안보살님 올 수 없는 사정 생겼다고. 세상살이란 게 거미가 자기가 뱉은 거미줄에 걸려서 옴싹달싹 못하는 것과 같으니, 빠져 나오려고 나부댈수록 더 엉크러져 얽혀든다.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수 있을까?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푸는 문제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얽힌 타래를 풀기 위해 실타래의 단서를 찾기 보다는 단 칼에 실타래를 잘라버렸다. 얼핏 보면 야, 쾌도난마야. 통쾌한 해결이야! 하겠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엉망진창인 해결이다. 잘라진 실로는 옷을 짤 수도 없어 쓸모가 전혀 없다. 전혀 해결이 아니며 손해 볼 일만 생긴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얽힌 매듭은 찬찬히 천천히 살살 풀어야 옳다. 그래야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바쁜 일상 스케줄도 마찬가지. 매 순간을 알아차려 한 때에 한 가지 일만 집중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또 다른 한 가지 일을 한다. 매 순간 착수하여 매 순간 마무리한다. 뒤끝이 없다. 그리고 쉰다. 얼마나 단순한가!
비가 오락가락 햇빛이 반짝하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다.
저녁 예불 후 하안거 자자회를 하다. 함주 선덕스님의 치하의 덕담을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할 차례이다. 별 말 없이 순서만 돌아간다. 나는 말했다. 속리산 이 좋은 명당 길지에서 훌륭한 대중을 모시고 여름 한 철 지내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선덕스님들과 한주스님들의 정진력과 호념으로, 그리고 선원장과 입승스님의 배려와 노고로 안거가 성만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여름 한 철 동안 비구 원담의 말과 행동과 용심으로 대중 스님네를 뇌롭게 한 점이 있거든 저의 알아차림이 불민하여 그리된 것이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모두 출가의 큰 뜻을 성취하시길 기원하면서 다음 날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 공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15년8월28일(금) 맑음
하안거 해제하는 날. 아침 커피 한 잔하고 숲길로 들어서다.
다시 산을 나서며
산에서 내려와 숲을 지난다,
도열한 나무들의 인사를 받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길을 나선다,
오솔길 끝나는 데서
세상으로 이어지는 큰길이 나오고
길 가는 자 또 길을 간다,
이 길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젠 멈추었다가 가는 여유와
길동무를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이 길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기에
가끔 뒤쳐진 자들을 돌아보면서
구름을 쓸고 꽃을 뿌리면서 길을 닦는다,
길 가는 사람들은 모두 길 위에서 만난다,
길에서 만나고 헤어짐은 길 위에서의 일이라
길이 끝나면 모두 잊혀 지리라,
길을 끝내기 위해 길을 가기에
앞발과 뒷발 사이는 항상 한 걸음
흐르는 강물 밟고 청산이 간다.
짐 싸놓고 기다린다. 삶이란 곧 떠날 것처럼 짐 싸놓고 기다리는 막간의 휴식이다.
이 시를 써놓고 보니 나의 解制頌해제송이 될 만하다.
호연, 아미화, 원정이 데리러 오다. 정이품송 근처 연꽃밭 옆 <로터스 블라썸 카페Lotus Blossm Cafe>에서 아포가또 한 잔 음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을 즐기다. 진주 입성. 금강미소실에 돌아오다. 오래 비워둔 방이지만 아미화와 정안이 깨끗이 닦아 놓아 고향집에 돌아온 것 같다. 여기가 히말라야 산 속 동굴이다. 짜라투스트라 다시 아늑한 굴속으로 돌아와 세상을 만난다.
첫댓글 스님.. 스님께서 말씀하신, 안정을 선호한다. 보수적인 사고. 중산층의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다 마친 청년의 꿈이란 게 겨우 직장 한 자리 구하는 것. 이런 말씀들에, 처음에는 제가 전하고자 했던 의도는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했습니다. 아침부터 이 부분만 마음에 남아 억울하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ㅎㅎ 그렇지만 이것도 제가 스님께 드린 말씀에서 떠올리신 것이니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스님께 변명 아닌 변명들을 이것저것 하고 싶지만, 제 생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고, 억지로 글로 옮기기에는 실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제 안에 있는 생각들을 인정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제 변명을 하자면요 스님.. 부처님의 제자 중 한 분의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할 능력이 충분치 않아 괴로워하던 제자에게 부처님께서는 마당을 쓸라고하셨었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시야는 아직 좁지만 일단은 그 안에서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자리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자는 마음을 냈습니다. 그렇지만 스님 말씀대로 그에 안주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다보면 보이는 또 다른 길을 놓지 않겠습니다.
청년은 너무 일찍 자신의 삶을 결정짓지말라. 다소 불안하거나 불안정해 보여도 살맛이 나는, 열정이 있는, 꿈꿀 수 있는 길을 가라. 그게 청년시대의 특권이요, 기회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젊은 날에 싯다르타는 무엇을 꿈꾸었나? '현실'이라는 수레바퀴, '세상'이라는 수레바퀴에 깔리기 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수레바퀴를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맙습니다 스님~ 항상 건강하세요..
스님 수행일기를 읽고 용기가 샘솟습니다.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선택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진주 입성하심을 도과선원 도반님들 모두에게 축하를 드려야겠습니다.
긴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어제같이 세월이 빨리 지나갔습니다.
세월이 빠른 걸 안타까워했지만 이번 만큼은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우리가 스님을 많이 기다린듯 합니다.^^
한 때에 한 가지만 집중하고, 어디를 가나 히말라야 산 속 동굴이라는 말씀. 마음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카페 로터스블라썸
속리산을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