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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14(주일) 민수기 29:1~11 ’나팔절과 대속죄일의 교훈‘ 예산수정교회
오늘은 민수기 29:1~11 본문을 통하여 ‘나팔절과 대속죄일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절기를 주신 까닭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팔절과 대속죄일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7월 1일에 모든 일을 멈추고 모여 나팔을 불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또한 나팔절이 지난 후 같은 달 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 이 날은 1년에 한 번 있는 날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의 나팔절과 대속죄일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1. 나팔을 불라(1~6절).
나팔절과 대속죄일의 교훈 첫 번째는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이 날은 특별히 나팔을 불었기 때문에 ‘나팔절’이라고 부릅니다. 나팔절이 있는 7월은 이스라엘에서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어 노동을 잠시 쉴 수 있고 물질적으로도 풍성한 시기입니다. 풍요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7월 1일에 이스라엘 백성은 잔치를 벌이며 죄의 유혹에 빠지지는 대신 성회로 모여 나팔을 불며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나팔을 불라고 하십니다(1절). 이스라엘 백성은 나팔을 불어 무언가를 기념해야 했습니다.
[레위기 23:23~2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쉬어야 했고 나팔을 불어야 했습니다. 나팔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팔은 기쁜 일이 있거나 경고할 일이 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며 찬양할 때 불었습니다.
[출애굽기 19:19~20]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고” 이 말씀은 우리 왕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도 우리 주 메시야 예수께서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께서 피조물들에게 다시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주께서 나팔절에 세상에 다시 자신을 보이실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팔절에 부는 나팔소리는 백성을 성회로 초대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나팔소리를 들으시고 백성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신 소리입니다(민10:9~10).
나팔절의 나팔소리에는 4가지 의미가 있습니다(고전15:51).
100번의 나팔을 부는데 네 가지의 나팔소리는 이 시대를 살면서 예수님의 공중 강림을 기다리는 네 가지의 거룩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1) 데키아 나팔을 한 번 부는 것을 ‘데키아’라고 합니다.
한 번의 나팔을 부는 데키아의 의미는 ‘왕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의 나팔소리인 데키아는 다시 오시는 예수께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심 을 알리는 것입니다.
2) 쉐바림 짧게 세 번 부는 것을 ‘쉐바림’이라고 합니다.
짧게 세 번 부는 쉐바림의 뜻은 ‘회개하라’ 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알리고 취해야 할 자세로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나팔소리의 의미는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마4:17]에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3) 테루아 나팔을 아홉 번 부는 것을 ‘테루아’라 합니다.
이 나팔의 의미는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공중에서 맞이하기 위해서 성도가 취해야 할 행동을 암시하는 데, 이것은 성도들이 이 땅의 자는 자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성도는 “근신하여 깨어있어야” 합니다(벧전5:8)
“그런즉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고 하셨습니다.
▶테키아 하가돌 테키아 하가돌은 100번째 부는 나팔로 웅장하고 길게 부는 마지막 나팔입니다.
가장 길게 부는 100번째 부는 마지막 나팔 소리는 나팔소리 같은 예수님의 음성으로 이리로 올라오라 라고 하는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7년 환난 전의 나팔절의 나팔소리는 예수님의 재림시 마지막 나팔 소리로 길게 불어서 온 지구상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저회와 함께 살아있는 자들이 변화되어 주님의 음성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변화된 영광입니다(눅21:35~36).
나팔절의 나팔소리의 네 가지 조합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대를 살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주님의 그날과 그 시간에 일어날 재림을 간절하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첫 번째 나팔소리처럼 왕으로 오신 신랑 예수께서 공중강림하시어 오신 것을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팔소리처럼 성도는 그 날에 거룩하고 흠 없이 보전되기 위하여 날마다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나팔소리처럼 성도는 그 날과 그 시간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다섯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 나팔소리처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나팔소리 같은 주의 음성을 듣는 복된 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영원한 그날을 소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나팔절의 교훈처럼 성도는 일이 잘 풀리고 풍요로울 때도 죄와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지 말고, 말씀의 나팔소리를 듣고 회개하며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힘들 때 조차도 이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기도의 나팔을 불면서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적용) 나는 말씀과 공동체를 통해 나팔이 불릴 때 어디에 있습니까? 최근 나에게 나팔 소리처럼 울려 나의 실체를 드러내고 회개로 인도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2. 심령을 괴롭게 하라(7절).
나팔절과 대속죄일의 교훈 두 번째 교훈은 심령을 괴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팔절이 지난 후 같은 달 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 이 날은 7대 절기 가운데 제일 중요한 절기(레 16장)이며,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1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깨끗이 씻음 받는 속죄일입니다(레 23:27~28). 다른 절기들은 대부분 축제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이 대속죄일 만큼은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며 슬퍼하는 날이요, 죄를 속죄 받는 그런 날입니다. 금식의 날이요, 회개의 날이요, 슬픔의 날입니다. 이 대속죄일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스스로 자기 심령을 괴롭게 했습니다. 여기서 ‘심령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NIV성경에서는 “You must deny yourselves”(당신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결국 ‘회개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심령을 괴롭게 할까요? 일반적으로 이것은 금식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시편 35편에 다윗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그의 영혼을 괴롭게 했다고 말합니다. 굶주림을 통해 몸을 괴롭게 하고 그 영혼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은 환상을 깨닫기 위해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기로 결심하고 세 이레동안 슬퍼하며, 좋은 떡은 먹지 않고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았으며,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죄일에 영혼을 괴롭게 하는 것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고 좋은 침대에서 자지 않고 몸을 괴롭게 해서 하나님 앞에서 겸비함과 겸손음을 유지하여 회개하는 것이 심령을 괴롭게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날에 성회로 모여 심령을 괴롭게 하여 회개를 하되 ‘진정한 회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한 두가지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100% 전적인 죄인임을 인정하고 무능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사상을 기본 원리로 하는 칼빈주의는 5개의 중요한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보통 ‘칼빈주의 5대교리’라고 부릅니다. 이 다섯 개 조항의 영어 첫글자를 모아서 ‘튤립’(TULIP)라고 합니다. 1) 인간의 전적 부패 또는 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궁극적 구원(Perseverance of the Saints) 등입니다. 이 중에 첫 번째가 인간의 전적부패입니다.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령을 괴롭게 하며 자신이 철저한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내용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고 부패했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을 받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적 무능력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혜의 역사 없이는 거듭 날 수 없으며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 그 자체도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에 반해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비록 인간이 타락했을지라도 인간의 상태가 전적으로 무능력한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유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것과 멸망에 이르는 것은 자신의 의지적 결정에 달렸다고 봅니다.
그런 알미니안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해서 ‘인간의 전적 부패’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1)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나며 그들은 본질상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전적으로 무능한 자들입니다(창세기 2:16-17; 로마서 5:12; 에베소서 2:1-2; 골로새서 2:13; 요한복음 3:5-7).
2) 아담의 타락의 결과 인간은 영적 진리에 대하여 소경이 되었으며 또한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죄로 인하여 어두워졌으며 또한 그들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악합니다(창세기 6:5; 8:21; 예레미야 17:9; 마가복음 7:21-23; 요한복음 3:19; 로마서 8:7-8; 고린도전서 2:14; 에베소서 4:17-19; 5:8; 디도서 1:15).
3) 모든 인간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거듭나기 전에는 마귀의 자녀이며 또한 마귀의 통치 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의 노예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8:44; 에베소서 2:1-2; 디모데후서 2:25-26; 요한1서 3:10; 5:19; 요한복음 8:34; 로마서 6:20; 디도서 3:3).
4) 죄의 지배는 우주적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의 권세 하에 있으며, 결국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역대하 6:36; 욥기 15:14-16; 시편 130:3; 143:2; 전도서 7:20, 29; 이사야 53:6; 64:6; 로마서 3:9-12; 야고보서 3:2, 8; 요한 1서 1:8, 10).
5) 죽음 상태에 놓여 있는 인간은 스스로 회개하거나 복음을 받아들여 믿거나 또는 그리스도에게로 나올 수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변화시킬 능력이나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다(욥기 14:4; 예레미야 13:23; 마태복음 7:16-18; 12:33; 요한복음 6:44, 65; 로마서 11:35-36; 고린도전서 2:14; 4:7; 고린도후서 3:5).
그러므로 이 회개는 날마다 말씀 묵상에 집중할 때만 가능합니다. 적용) 날마다 말씀 묵상할 때 내가 전적인 죄인임을 인정합니까? 날마다 말씀으로 나 자신을 비추며 회개와 감사에 힘쓰고 있습니까?
3. 속죄제를 드리라(7~11절).
나팔절과 대속죄일이 주는 세 번째 교훈은 ‘속죄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나팔절에도 속죄제를 드려야 하고, 대속죄일에도 번제와 전제 그리고 매일 드리는 제물 이외에 두 번의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대속죄일은 일년에 딱 한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날입니다. 이날 만큼은 채색된 옷이 아닌 하얀색 아마를 입고 그 위에 흉패를 덧입어야 합니다. 대속죄일에는 제사도 많아지는 데, 일반적으로 드려지는 제사외에 번제가 추가되는데, 소와 어린양들이 더해집니다. 대제사장은 일주일전에 성전에 들어와 일주일동안 스스로를 준비시킵니다. 이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정한 것으로부터 피하기 위함이며, 일주일동안 2번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몸을 정결케 합니다(민 19:1~10). 하지만, 만약에라도 대제사장이 부정하게 되면, 대체할 수 있는 제사장도 같이 준비를 하게 되는 데, 대제사장 바로 다음 서열인 사람이 준비를 합니다. 또한 대제사장은 이렇게 자신의 몸을 준비하는 것과 같이 대속죄일의 제사를 미리 연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매일제에 같이 참여합니다. 대속죄일에는 절대 실수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기를 지키는 목적이 무엇이든 모든 절기에는 속죄제를 행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먼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숫염소 한 마리는 속죄제 외에 추가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입니다(11절). 이 또 다른 속죄제는 속죄일에만 드리는 특별한 제사로(레16장),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이 자신과 백성뿐만 아니라 지성소까지 속죄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이 날을 지키는 것 역시 내 죄를 잊지 않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신 십자가의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함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대속죄일에 행해지는 구약의 속죄제는 유효기간이 1년이지만, 우리의 영원하신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자신을 드려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6:20; 9:12).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주님 앞에 나가기 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사단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썩어질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라고 인정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싸워 이기겠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스스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죄를 지으면서 많은 핑계와 변명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여자 때문이라고 변명하지 않습니까.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죄를 지으면서 자신의 회사 상사 때문이라고, 아내 때문이라고, 어떤 사람이나 환경, 조건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대해 낙심하고 변명하며 무언가에 핑계 댈 것이 아니라, 마땅히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유대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데려왔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고 그들이 모두 떠나자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비와 은혜를 베푼 것만 주로 기억하고 있는데 주님은 그녀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5:3)”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의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빌3:2)” 자신이 스스로 죄의 이름도 부르지 않을 뿐아니라, 다른 죄를 짓는 사람들도 삼가고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최근에 공부한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의 죄들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는 서신서로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없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한 서신입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범하지 말고 죄와 맞서 싸우고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1:5)” 우리의 아버지께서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싸우고 대적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6,7)” 우리가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맺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8,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자백하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릴 치유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우리는 죄를 짓는 순간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고 죄를 범했을 때도 주님을 의지해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주를 영접한 자,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만이 ‘그리스도를 아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적용)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가족과 이웃, 심지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모든 죄를 씻고자 영원한 속죄제를 단번에 드리셨음을 믿습니까?
결 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풍요로운 삶에 만족하여 영적인 잠을 자거나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일이 잘된다고 교만하지 말고,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늘 말씀을 묵상함으로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깨달아 영생의 구원이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믿고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