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S BY UTMB 대회후기(5)

[타잔]

2024.8.27
 
날이 어두워지면서 헤드랜턴을 다시 차고 긴팔 상의를 꺼내 입었다. 첫번째 밤과 첫번째 낮이 지나가고 두번째 밤이 시작된 것이다. UTMB 경험자들은 한결같이 두번 째 밤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바위가 많은 긴 내리막에서 속도를 붙여 뛰어내려가 본다. 앞에 있던 선수들이 한쪽으로 비키면서 길을 양보해 주니 더 신나서 뛰어 내려간다. 레이스 초반에는 사람이 많고 길이 좁아 추월하기도 어렵거니와 잘 양보해 주지도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심리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앞서 나갈 힘이 있지만 안전을 생각해서 그냥 가는 것이니 너도 내 앞으로 감히 나올 생각 하지 말라는 것과 지금 뛰쳐 나가봐야 후반부에서 고생만 하니 그냥 긴 행렬에 묻어 가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라는 무언의 경고???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 앞 뒤 사이에 다소 여유가 생겼다. 빠른 주자들은 더 멀리 앞서 나갔고 느린 주자들은 더 뒤로 쳐졌기 때문에 속도가 비슷한 한 무더기 한 무더기 주자들이 드문드문 이빨 빠진 행렬을 이루며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무리했나? 어느 순간 부상당했던 왼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뛰어보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왼 무릎에 충격이 덜 가게 하기 위하여 오른 다리만 뻗고 왼 다리는 살짝 짚는 외다리 주법으로 절뚝절뚝 뛰어 보지만 빨리 걷는 속도나 그게그거다. 생각해 보니 코리아50K, 영남알프스 9봉, 제주100K 등 큰 부상은 아니었어도 거의 모든 대회 때마다 후반에 발목을 잡았던 무릎 통증. 80km 가까이 버텨준 무릎이 고맙긴 하지만 슬슬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 무릎으로 완주할 수 있을까? 내리막에서 뛰지 못하니 점점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국에서 준비한 먹거리와 갈아입을 옷과 신발이 들어있는 드롭백(Drop-Bag), 출발할 때 맡긴 이 드롭백은  91km 지점에 있는 CP7 Beaufort에 보관되어 있다. 일단 여기까지 왔다면 3분 2를 온 것이고 여유있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니 완주의 큰 관문은 넘게 되는 셈이다. 당초 계획보다는 5시간 정도 늦은 저녁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마을에 들어섰다. 주민들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나와서 지나가는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해준다. “바브(브라보??), “오레오레(고우고우??) 등 뜻을 알 수 없는 프랑스어로 큰 소리를 지르며 큰 박수를 치거나 지나가는 선수와 손을 마주친다. 이런 따뜻한 응원 문화가 전 세계 달림이들을 프랑스 샤모니(Chamonix)로 몰려들게 하였고, UTMB 월드시리즈를 전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었으리라. 인구 일만 밖에 안되는 작은 산악도시에 UTMB 월드시리즈에 참가하는 선수와 가족, 서포터즈, 행사 요원, 엑스포 관계자, TMB 트레킹을 즐기는 백패커와 관광객 등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넘쳐난다. 
 
선수와 서포터즈들로 도떼기시장과 같은 CP7에 들어서자 피로가 몰려왔다. 먹는 것도 귀찮아 바로 체육관 바닥 한 켠에 누워 잠들었다. 눈을 떠 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잠에 취해 경기고 뭐고 그냥 자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CP에서 8시간을 잤다고 하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이 갔다. 억지로 잠을 깨고 나니 그제서야 비릿한 땀 냄새와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워 자는 사람, 아내와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무용담을 떠드는 사람, 서포터즈에게 맛사지를 받는 사람, 먹거리를 준비하는 사람, 화장실에서 세수 하고 옷 갈아입는 사람 등등.  
 
나도 슬슬 시작해 볼까, 뜨거운 물을 부어 칠갑농산 떡국을 국물까지 마시고 종두가 준 동원양반 쇠고기죽을 먹고 통조림 황도복숭아 먹고 CP에 있는 와플과 콜라, 수박 등을 먹으니 그동안 굶주린 배가 가득 채워졌다. 레이스 출발 당일 종두와 같이 준비했던 주먹밥 8개는 싱겁고 딱딱해져서 2개만 주로에서 먹었고 드롭백에 있는 주먹밥을 포함한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국에서 사온 도리야끼빵 4개도 주로에서 한 개를 먹고 CP4 에서 먹으려고 하는데 상한 냄새가 나서 먹지도 못하고 모두 버렸다. 파워젤과 파워바, 양갱, 약과도 많이 준비했지만 속이 뒤집혀 거의 먹지 못했다. 물에 타먹는 전해질도 날이 더워지면서 모두 버리고 맹물만 먹었다. 아니, 그 동안 소모한 칼로리가 일 만은 될 건데 빵 몇 조각과 몇 개의 파워바와 파워젤, 과일, 콜라로 버텨 낸 것이 정말 용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나서 종이 타월로 얼굴과 몸을 대충 닦아내고 반팔 상의를 갈아입고 양말과 신발을 새것으로 갈아 신으니 기분이 한결 상쾌해진다. (신발은 준비할까 말까 했는데 결과적으로 바꿔 신기를 잘한 것 같다. 아쉽게도 경기복 반바지와 팬티는 갈아입을 것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레이스 도중 젖고 마르기를 반복하면서 기대 이상으로 쾌적해져 별 문제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CP를 나가면서 의무장비 검사를 마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CP7에서 2시간이나 머무른 것이다.

[Eunice 김은파]

아주 힘드셨을텐데, 읽은 우리는 너무나 흥미진진합니다.
무협지 소설 읽는듯..
온갖 어려움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하는..
결과를 알고 읽어서 그런가요?ㅋ

[흰둥이(전소연)]

그니까요 저도 너무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