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설악산 유감
동국여지승람에 대청봉에는 한가위까지 눈이 내리고,
쌓인 눈은 동지를 지나야 비로소 녹는다.
그래서 눈 설(눈)을 붙여 설악산이라고 했다.
설악산은 구석구석이 비경(秘境)이고 전설(傳說)이 주저리주저리 열려있어, 문인 묵객들의 글에 자주 회자 된다.
송강 정철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을 찬(讚)하는 글을 완성하고, 설악산에 올라 소견(所見)을 피력했다.
책상물림이라 하체가 부실했던지
설악(雪嶽)이 아니라 벼락(霹落)이요. 구경(求景)이 아니라 고경(苦景)이구나.
아마도 가장 짧은 기행문일 것이다.
송하선 시인의 ‘늙어가는 법’
머리에 눈 설(눈)자를 쓰고 서 있는
은빛 갈대에게서 배웠네.
살랑살랑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흔들리며
흔들리며
소슬한 바람도
즐기며
즐기며
그저 늙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 덮인 설악산 정상에서
설악산 등반에서
설악산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명성에 걸 맞는 편의시설과 관광시설이 부족하다.
정부가 설악산은 개발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공룡능선을 예로 들어보자.
구배가 심하고 굴곡도 많다.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바위도 많다. 그러니 등정에 힘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위험 코스에는 계단이나 보행용 테라스가 있는데 일부는 부실하다.
계단이 높아, 오르기에 힘이 든다.
오색은 설악산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여서,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
이곳에 설치된 통나무 버팀목 일부는 약해서 재 구실을 못한다.
산이 가파르면 길을 지그재그로 낼 수 있지만, 무리하게 직선으로 낸 것이다.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출입금지 말뚝이 세워져 있다.
이런 곳에 쓰레기통이나 화장실이 없는 것도 문제다.
출렁다리 하나가 없으니
불편한 곳에 편의시설을 만드는 것은, 자연 훼손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 보호다.
설악산을 다녀온 것은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많이 좋아졌을 것이다.
오색 약수터에서
남설악 관광호텔 지배인의 초대로, 양양 남대천에서 홀치기 낚시로 연어 몇 마리를 잡았다.
좋은 식당이름 공모전에서 1위를 한, 오색약수 계곡의 ‘연다라 식당’에서, 수박 향이 나는 은어 회를 먹었다.
지나는 길에
에델바이스
Edelweiss Edelweiss, Every morning you greet me, Small and white Clean and bright, You look happy to meet me
자일을 메고 바위를 오르다보면, 솜다리 꽃이 보입니다. 이럴 때에는 반가운 친구를 우연히 만난 듯,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 갑니다.
에델바이스 액자가 잘 팔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산행을 기쁘게 해주는 고마운 식물인데, 이렇게 마구 캐가도 되는 겁니까?
설악산 신흥사 주지 스님의 푸념 섞인 말에, 기념품 가게 할머니의 대답은.
설악산에 에델바이스를 심으면 솜다리가 되지 않겠소?
에델바이스라고 해야지, 솜다리라고 하면 누가 삽니까?
설악산 솜다리인지, 알프스 에델바이스인지는 알 필요가 없소.
별 중놈 다 보겠네! 머리에 털이 없다고 속까지 비어있으면 되나?
미친 놈 지껄이던 말 던, 빨리 하산해서 액자에 넣어야지!
이때 주지스님은 눈을 내려 깔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까마귀 한 마리 보름달 가로 질러도, 세상은 어둡지 않듯이, 풀포기를 하찮게 보는 사람이 있어도, 하찮은 세상은 되지 않는다.
세계는 관광자원 개발에 혈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80%가 산지이다. 그래서 관광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은, 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이블카
설악산 중청산장에 이르는 케이블카 설치와 5성급 호텔 건립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오색 케이블카는 양양군 서면의 한 호텔 인근에서, 설악산 대청봉 부근까지 3.5km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지자체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신청했으나, 환경훼손을 이유로 승인받지 못했다.
오색케이블카가 논란이 되자, 권금성 케이블카가 덩달아 화제로 떠올랐다.
권금성은 원래 바위 위에 토사가 쌓여, 나무가 자라던 곳이었는데, 케이블카로 인한 관광객들의 발길로,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삭막한 곳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사위인 한병기에게 권금성 삭도(케이블카) 허가와 독점 운영권을 주었다.
한병기는 박정희의 첫 번째 부인이 난 딸의 남편이다. 사단장 시절 전속부관을 지낸 사람이다.
사업권을 특정 업체에게 주지 말고, 지자체가 직접 맡고, 자회사에게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케이블카는 개발이냐 환경이냐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경제성과 환경보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사안별로 결정해야 한다.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힐러리 경
"내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설악산 신흥사 대웅전 수조(水槽)
속초시와 나와의 인연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김경산 시장은 전에 신세진 것이 있어서 그런지, 단풍이 절정이니 설악산에 한번 다녀가시라고 했다,
동명동 서울집에서 점심을 드는데, 조난사고에는 항상 먼저 나타나는 설악산 털보가 신흥사 주지 스님을 대동하고 시장을 찾아왔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암자에는 수조가 있는데, 우리 절에는 마땅한 수원이 없어, 중생들에게 물을 주지 못합니다. 절에 온 사람이 맨 처음 찾는 것이 ‘진리’보다 ‘시원한 물’아닌가요? 도와주세요.
그렇다. 목마른 자에게 목을 축이게 하는 것은 ‘구도(求道)’보다 시급한 일이다.
독사의 독도, 어린이의 눈물도, 꽃잎에 살포시 떨어지는 이슬도, 심장의 끓는 피도 물이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다.
신흥사 대웅전 앞에 석조(石槽)을 만든다면? 제가 한번 해 보지요.
어디서 그런 만용이 나왔는지!
이왕에 저질러 놓은 것이니, 한번 부딪쳐보자!
절에서 ‘마시는 물’의 요건
첫째 수질은 음용수 기준에 적합해야한다.
둘째 지표수가 유입되지 않아야한다.
셋째 수량이 일정해야한다.
넷째 계절에 관계없이 시원해야한다.
다섯째 산이라 전원이 없으니 졸졸 흘러야 한다.
수원을 찾아
산중이라 자연유하(自然流下)식 사이폰 도수(導水) 방법을 써야한다. 그래서 신흥사보다 높은 곳에서 물을 찾아야 한다.
심마니가 산삼 뒤지듯 꼬박 사흘을 조사했다.
마침내 후미진 계곡에서 단서가 잡혔다. 갈수기라 주위는 온통 말라있는데, 쌓인 낙엽에 질퍽질퍽한 물기가 보였다.
한질 깊이로 파고 한나절을 기다리니, 고인 흙탕물이 침전해서, 맑은 물이 꽤 깊이 고였다. 그래서 호수에 연결을 해보니 물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동파(凍破)하지 않을 90cm지하로, 1인치 PVC관을 신흥사 경내까지 끌어왔다.
속초시청 건축과 김준환 토목기사의 지원으로 공사를 마무리했다.
석물불사(石物佛事)는 설악동 상인회 이동원 회장이 맡았다.
허주의 돈키호테 같은 만용에 의해, 신흥사의 대웅전 수조가 만들어진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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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eWWrunMW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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