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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연재 -미국의 여성 불교 >
제인 허쉬필드
글 / 스텔라 박
PBS에서 제작하고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나레이션을 담당했던 <붓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편안한 미소가 감도는 여류 시인이 우리들의 스승, 붓다에 대해 잔잔하면서도 단단한 어조로 설명하는 것을 대했다. 2010년도 발표된 이 다큐는 데이빗 그루빈(David Grubin)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붓다의 삶과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시인이 붓다에 대해 그토록 깊은 이해를 갖고 있다는 것도 희한했고 인터뷰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이 더 신기했다.
“도대체 이 여자 뭐지?” 하는 궁금증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 허시필드(Jane Hirshfield),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시인이다. 뉴욕시에서 출생한 그녀는 1972년도에 프린스턴 대학을 3년 만에 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녀는 1년간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아무리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이고 고정관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각자가 창조하는 자유일 뿐이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그녀가 아무런 것에도 구애되지 않고 신성한 노동에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건 커다란 용기이다.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그녀가 다큐멘터리 <붓다>에서 불교에 대해 조근조근 자신감 넘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학교 3학년 때인 1974년 때부터 1982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젠센터를 포함한 몇 군데 조동종 젠 센터에서 선(禪) 수행을 직접 했었고 선불교를 공부하며 청년기를 보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1979년, 조동종에서 재가 불자의 계를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한 기관에 묶이지는 않았지만 샌프랜시스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고, 버클리 대학의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베닝턴 문예 창작 연구회 교수, 신시내티 대학의 엘리스턴 방문 시인으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에는 UC 샌프란시스코의 뇌과학부에 의해 헬먼 방문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고 2016년에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시를 강의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전 세계에서 시인과 예술가들을 위한 세미나와 클래스에 자주 초대된다.
그녀는 <주어진 설탕과 소금(Given Sugar, Given Salt)>, <심장의 삶(The Lives of the Heart)>, <10월 궁전(The October Palace)>, <중력과 천사(Of Gravity & Angels)>, <알라야(Alaya)> 등 여성과 깨달음을 주제로 한 7권의 시집을 발표했고 시에 관한 에세이집인 <9개의 문(Nine Gates)>이 있다. <잉크처럼 어두운 달(The Ink Dark Moon: Love Poems by Komachi & Shikibu)>, <고대 일본 궁정의 여인들(Women of the Ancient Court of Japan)>, <성스러운 찬미의 여인들(Women in Praise of the Sacred: 43 Centuries of Spiritual Poetry by Women)> 등의 시 선집을 편집하고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미국 시인 아카데미 창작기금 등 수많은 문예 관련 상을 받기도 했다.
시인, 강연가 등 정신적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의 영향력은 테드에 그들의 강의나 강연이 있는가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인 허시필드는 <시와 메타포>라는 주제로 진행한 테드 토크(Ted Talk) 강의에서 언어생활에서의 은유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들이 대화를 할 때엔 직설법을 쓰기도 하지만 비유를 사용하기도 한다. 비유는 대상의 다른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어떤 대상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방식이자 상상력과 감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비유는 진실이나 허구가 아니며 역설이 있는 예술이다. 비유는 거의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을 표현한다. "~같이, ~같은, ~처럼"과 같은 비교(직유)는 생각을 하게 하는 반면, 비유는 느낌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비유는 명사 뿐 아니라 동사와 형용사에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비유를 가장 뚜렷하게 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시이며 시는 비유를 통해 넓어진다. 비유를 경험하려면 눈으로도 보고 상상으로도 봐야 한다.
랭스턴 휴의 유명한 시 "엄마에서 아들로"의 첫 부분에 보면, "내 인생은 크리스털 계단이 아니었단다. 그것에는 압정과 파편이 있었고, 판자는 찢어져 있었고, 카펫이 없던 곳이란다."라는 비유가 나온다. 이는 그녀의 실제 집이 아니지만 힘든 삶을 이처럼 잘 표현할 수 없다.
"비유는 우리가 알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문의 손잡이다. 각각의 문은 새로운 집으로 연결된다. 손잡이를 만들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테드 강의는 그녀가 불교적 사유의 결과물로 탄생시킨 시에 있어 비유, 은유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녀는 워낙 뛰어난 자국 시인이 많아 다른 나라 시인들이 별 초점을 받지 못하는 한국에서도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다. 2013년 10월, 수원시 라마다 호텔에서 ‘세계의 시인들 시대의 전환을 꿈꾸다’라는 모토로 세계 작가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그녀는 정호승, 신달자, 신경림, 미셸 드기, 베리 힐 등 전 세계의 이름난 문인들과 함께 참가했다. 이 행사에서 그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관계를 표현한 ‘우리를 묶는 것(For What Binds Us)’이라는 시를 소개했다. 이 역시 연기적 세계관을 그대로 표현한 시이다.
당시 행사에 참가했던 진은영 시인은 허쉬필드의 시에 대해 “사무엘 베케트가 시란 ‘절약하는 언어를 통해 사유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한 표현을 봤는데, 허시필드의 시가 딱 그랬다. 개인적 경험의 독자성을 지우고 사유를 드러내는, 사유의 힘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시였다. 시의 표면에 흐르는 복잡성을 제거하고 적확한 이미지를 최소화해 사용한 것 같다.”라고 표현했었다.
또한 그녀에 대해 “불교에 관한 책도 많이 낸,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으로 알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을 시로 쓰는 남성 시인들이 참 많은데, 선생님의 시는 그들과 달리 구체적 사물에 주목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많다. 관념적 세계와 구체적 세계가 만나 붕 뜨지 않는 사유의 힘을 보여주는 시가 나온 것은 여성시의 구체성과 형이상학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진속 불이(眞俗不二)의 불교적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라고 평가했다.
허쉬필드는 스스로에 대해 “2세대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한다. “여자의 몸으로 살고, 여자의 혀로 말하고 여자의 마음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를 쓸 때만은 여성이 아니라 시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녀는 이어 “여성과 시인은 두 개의 분리된 세계다. 동서고금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시집을 많이 펴냈지만, 그것은 그들이 위대한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여성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아닌 척하고 있지만, 문예지 수록 시인의 성비, 문학상 수상 여부 등을 따져보면 그렇다.”라고 미국 문단의 성차별적 현실을 밝히고 있다.
허쉬필드는 또한 1970년대의 미국에는 분노한 시가 많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스스로도 12, 13세 시절에 가장 정치적인 시를 썼었다고 털어놓는데 당시, 베트남전 때문에 굉장히 성난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시, '문 손잡이를 닦으며(Washing Doorknobs)'는 80~90년째 사실상 전쟁 상태인 그녀의 조국인 미국에 대해 쓴 시라고 한다. 드러내고 화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시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은 16세까지는 모두가 시를 쓰지만 이후에는 모두 중단한다. 미국에서 시라는 개념 자체는 널리 존경받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은 아주 적다. ‘닷지 시 페스티벌’은 미국 최대의 ‘시 축제’인데 격년으로 열린다. 축제 기간은 나흘간인데 매일 2,000~3,000명이 찾아온다. 최대 발행 부수의 시 문예지는 주간인데, 3억 인구 중 구독자는 백만 명밖에 되지 않으니 독자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시가 대중에게 보급되는 최대 수단은 라디오와 다리 난간, 동물원, 지하철 등이다. 사람들이 시에 걸려 넘어져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니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결혼식과 장례식에서는 시를 읽는다. 그들이 시를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시를 쓰는 게 우리의 직업이다.”
그녀는 본래 몰래숨어서 시를 쓸 만큼 부끄럼을 많이 타는 소녀였지만 이제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를 낭송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시가 3가지 측면의 시대적 효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삶의 채도를 더 짙게 한다. 둘째, 현실을 일면이 아니라 다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우리들을 해방시킨다. 셋째,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일깨워준다. 당신의 고통을 나도 느꼈다고, 시인은 시를 통해 들려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붓다의 감성적인 삶에 대해 오랜 시간을 성찰했다. 붓다의 고요하고 빛나는 모습을 보고 선에 몰두했지만 혹시 그 평정함에 감정이 제외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허시 필드는, 중국의 한 출가수행승에게 육체적인 접근을 통해 그의 깨달음의 정도를 시험해 보려는 재가 여성 수행자의 일화를 예로 들어, 그 출가수행승이 보여준 목석과 같은 감정 상태와 반응에 대해 몇몇 선사들과 서양 학자들이 언급한 몇 가지 다른 시각을 조명한다. 깨달음이란, “욕망이나 분노, 또는 그 어떤 감정일지라도 감정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가 아니라, 깨달은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에너지가 일시적이고,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이지, 그 에너지의 힘과 유용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허시 필드는 “붓다의 감성적인 삶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은 “참 본성 안에 있는 나 자신의 감성의 삶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붓다의 의식에는 모든 전반적인 감정이 폭넓게 일어나지만, 그것들은 붓다 자신만을 위해 일어난 느낌이 아니라, 모든 다른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자비심을 수반한 감정이며, 그것은 관세음보살 명칭 그대로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듣고 응답하는” 자비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불교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그녀의 시들은 영어로 씌어진 오도송에 다름 아니다. 번역의 한계를 넘어 제인 허쉬필드의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사과(Apple)
- 제인 허쉬필드
눈을 뜨니 내가 꾸고 있던 꿈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날이 밝고, 다시 어두워졌다.
그 풍성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잡초를 좀 뽑고, 차가운 꽃 몇 송이 꺽어 들어와 화병에 꽂았다.
약간의 독서, 약간의 청소와 비(빗자루)질.
이 날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기로 맹세했었고, 그렇게 했다.
한 번인가, 희망 같은 게 다가왔다.
그리곤 이내 떠나버렸다.
낯익은 숄 걸치고 요드 같은 목연향(나무 태우는 향) 풍기며 내 곁을 지나갔다.
난 말을 건네지 않았고 그쪽도 마찬가지.
하지만 우리 사이엔 따뜻한 관례가 오갔다,
옛 친구들이 나눠 먹던 사과처럼.
이쪽에서 한 입 깨물면, 다음엔 그쪽에서 깨문다.
그렇게 해서 다 없어질 때까지.
우리의 일상은 눈을 뜨고 꾸는 꿈… 꿈은 눈을 감고 하는 생각…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 하에 그렇게 하면서도 한 번인가 희망 같은 게 다가왔다가 이내 떠나버렸다는 표현… 결국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은 온전히 현존하지 못하고 미래로 갔었다는 얘기일 게다. 하지만 그 희망(즉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걸어오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럴 때 마치 사과 하나를 나는 이쪽에서 먹고 친구는 다른 쪽에서 먹어 들어와 입술이 마주치는 것처럼 현존하지 않음(사과)은 점점 먹어서 없어진 사과처럼 사라져 갔다…
나 자신을 온전히 주기 (Give Myself Utterly)
- 제인 허쉬필드
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싶다
사흘 동안 아낌없이 불타고 불타는
그리고 이틀을 더 불타다가
모든 잎을 떨어뜨리는
이 단풍나무처럼
검푸른 깊이 속으로
무엇이 오든 받아들이고 다시 돌려주는
이 호수처럼
아무 것도 거부하지 않는
고요한 마음 속에서
세상은 다시 태어난다
두 개의 지구가 돌고
두 개의 하늘이 있고
두 마리의 왜가리가 하강하며
하나가 된다
물고기조차
한순간 둘이 되었다가
사라진다
그 물고기이고 싶다
비가 오면 모든 것을 잃었다가
되돌아오는 그 투명함이고 싶다
가장자리에 핀 꽃 때문에
얕은 모래들에 속아
걸어 들어가는 모든 것은 빠져야만 하는
늪이고 싶다
그 ‘빠져듦’이고 싶다
날이 어둑해졌을 때만
은밀하게 목을 축이러 오는 자이고 싶다
그리고 삼켜지는 자이고 싶다
눈 없이 보고
귀 없이 듣고
자신의 의지나 두려움 없이
가장 부드러운 손길에도 떨리는
물이고 싶다
차가운 달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이 흘러가게 두는
판단하지도 말하지도 않고
모든 것이 흘러가게 두는
그런 물이고 싶다
랄 데드는 노래했다
하나의 호수가 있다고
겨자씨 하나보다도 작지만
모든 것이 되돌아오는
아, 마음이여
나에게 그 호수를 주지 않을 거라면
아니, 줄 수 없다면
그 노래를 달라
시인은 낙엽처럼 내면을 남김없이 불태우는 열정적 삶, 그것을 내려놓는 평온함을 경험하고 싶다고 말한다. 호수는 풍경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고요히 수면에 비쳐 준다. 마음 역시 판단을 멈추고 고요할 때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을 시인은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하고 있다.
습관
- 제인 허쉬필드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금 간 푸른색 잔에
티스푼으로 일곱 번 젓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문 닫기 전에
지갑이 있는지
열쇠가 있는지
주머니 만져 보기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작은 의식들의 약속을 믿게 되었을까
그것들에 의해 어제 알았던 우리가
오늘의 우리가 되고
내일의 우리가 되리라는 것을
칫솔을 쓴 후 흔들어 말리는 방식이나
목욕할 때 맨 먼저 씻는 부위처럼
너무 익숙해서 생각 없이 해 버리는 일들
타인들에게서 배운 습관들과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만의 습관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많이 결정짓는지
아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여행 가방을 열어 보라
거기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스웨터
밝은 색 줄의 목걸이, 호박 귀걸이
이 모두가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것들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나라고
그러나 습관은 다르다
습관이 선택하고
그것의 충실한 말인 우리는
먹을 것 한 조각에도 입을 벌린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선택은 무의식적 습관이 내리는 것이다. 습관이 되면, 즉 자동화 프로그램이 돌아가게 되면 더 이상 심장이 관여하지 않는다. 습관은 그렇게 심장의 관여 없이 반복됨으로써 더욱 강화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강화된 습관을 뭐 대단하고 고매한 취향으로 여긴다. 와인, 차 등에 대한 천착도 결국은 습이요, 카르마이다. 깨어서 습관을 바라보면 그저 형성된 것일 뿐이다. 하지만 형성된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이를 통찰하게 될 때 형성된 것에 대한 애착은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시인
- 제인 허쉬필드
그녀는 지금 작업 중이다,
내가 글을 쓰고, 당신이 책을 읽는 바로 이런 방과 다름없는 방에서.
테이블은 종이로 뒤덮여 있다.
램프에 갓을 씌우면 빛이 한결 누그러지고
전구의 그 유난한 혹독함도 가시겠건만
왠지 그녀는 전구에 갓을 씌우지 않았다.
그녀의 시?
내게 몹시 필요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들.
그녀가 쓰는 철자조차 해독할 수 없다.
그녀의 의자는 가죽이든, 캔버스이든, 비닐이든, 고리버들을 엮은 것이든
그 무엇이어도 좋다.
그녀에게 의자와 갓 없는 램프와 테이블이 있기를...
옆방에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 한 둘이 있기를..
문이 닫히고, 잠들어 있는 이들은 건강하기를…
그녀에게 시간, 고요함, 써서 버리고 또 쓸 수 있는 넉넉한 종이가 있기를..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불교 수행으로 지혜를 닦아 나가는 시인의 시들을 대하며 “아, 그녀도 같은 것을 느꼈구나…” 공감하는 기쁨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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