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제재 효과 가시화" vs 2분기 GDP 플러스 성장.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와 함께 시작된 가혹한 서방의 대러 제재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올 상반기에는 분명히 효과를 입증할 것'이라고 서방 측은 확신했다. 대러 제재가 6개월여 지속된 지난해 9월, 미 CNN 방송은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가 아직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나, 이르면 내년 초 효과가 가시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즈음, '러시아 경제가 장기간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보고서가 '러시아의 내부 문서'라며 외신에 공개되기도 했다.
가구전문업체 이케아(위)가 러시아를 떠난 뒤 출현한 대체 기업 스웨드 하우스/홈페이지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뒤 러시아 경제 상황은 서방 측의 기대(?)와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올 2분기(4~6월)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온라인 매체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통계청은 지난 11일 러시아 GDP는,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처음으로 분기 성장세를 회복한 것이다.
이에 대한 서방측의 평가는 냉정하다. 지난해 2분기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4.5%를 기록한 데 따른 기저효과라고 본다. 러시아 전문가들도 굳이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현지 일간 콤스몰스카야 프라우드(KP)에 따르면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의 시장조사 센터의 게오르기 오스타르코비치 센터장은 "2분기의 인상적인 GDP 성장은 낮은 기저 효과 때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러시아 경제가 서방 기업들의 철수와 같은 어려운 여건에 적응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러시아 경제가 원자재및 부품, 완성품의 공급망을 새로 구축하고, 국내 수요가 새로운 공급자의 시장 진입과 철수한 외국 기업을 대신하는 플레이어(대체기업)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됐다"며 "여객 운송 분야(19.8%)와 도소매(12.5%), 제조업(11.3%), 건설 부문(9.8%) 등에서 가장 큰 성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지난해 기록한 2.1% GDP 마이너스(-) 성장분을 올해 2% 성장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사진출처:홈피 hse.ru
특히 자동차 판매 시장은 어지러울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rbc에 따르면 8월 첫째주(7월 31일~8월 6일) 러시아의 신차 판매는 2만8,295대로, 우크라이나전 개전 이후 최고점을 찍었다. 전주(7월 24~30일) 대비 10% 증가했다. 7월 한달간 신차 판매도 9만 5,654대로, 전년 대비 168.8% 늘어났다. 서방의 주요 자동차 제작 회사들이 러시아를 철수하면서 60~70% 무너졌던 러시아 자동차 산업이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시장 진입으로 급격히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다.
주목할 것은 GDP 성장률의 추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후 러시아는 4분기 연속 전년 대비 GDP 역성장(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2년 2분기 -4.1%, 3분기 -4.0%에 이어 4분기에는 2.7% 하락(마이너스)에 그쳤다. 올 1분기에는 -1.9% 성장을 기록했다. CNN 등 미국 주요 언론이 "내년 초 경제제재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던 바로 그 시점(지난해 9월)에 러시아 경제는 반등 조짐이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2분기에는 플러스로 돌아섰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의 2분기 플러스 성장이 국방비의 지출 증가에 따라 방산분야의 산업 생산이 활기를 띠고, 수십만명의 참전 군인들과 사회적 약자층을 지원하는 정부 지원금의 증가, 선심성 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소비자 수요가 탄력을 받은 결과(8.3% 성장)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라는 게 현지 언론의 진단이다.
국영 리야노보스티 통신은 지난 6일 "러시아 경제가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며 "지금까지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러시아 경제는 올해 중반까지 전쟁 전인 2021년 말 수준으로 회복됐다"면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3분기부터 성장률 둔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외 무역 수지의 악화에 따른 루블화 약세, 수입 물가 상승에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등 통화 긴축정책으로 이미 대응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중앙은행/텔레그램
인플레이션에 대한 민간 전문가들의 우려는 더욱 크다. 금융 전문가인 안드레이 베르니코프는 리야 노보스티 통신에 "정부 재정 지출의 지속적인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며 "이제는 경제 회복을 위해 (외국) 투자자들의 복귀와 루블화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 및 가스 수입의 감소도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아시아 시장으로 에너지 수출선을 돌리면서 부담해야 했던 가격 할인으로 에너지 판매 수익의 일부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재무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러시아는 작년 대비 석유 판매 수입이 47% 줄었다.
외화 딜러 업체 알파 포렉스(Альфа-Форекс)의 구젤 프로첸코 CEO는 "무역 수지의 약세는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나아가 수입품 및 부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제조업체는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의 시장 조사센터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기업의 절반 이상이 외국산 원자재와 부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응답 기업 10곳 중 한 곳만이 3년 이내에 국산 부품으로 완전히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3분의 2는 부분적으로만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리야 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 상승 체감도는 이미 10%를 넘어섰다. 중앙은행의 인플레 예측치 (5.0~6.5%)의 두 배다. 이같은 인플레 체감도와 그에 따른 기대심리는 사람들의 구매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쳐, 일부에서 투기를 부채질하고 실질적인 인플레이션을 높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중앙은행이 서둘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이유다.
러시아 루블화/바이러 자료 사진
러시아 금융가에서는 중앙은행이 연내에 적어도 1%P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측한다. 이에 대한 학습 효과도 확실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한번에 20%로 인상했다. 2018년 말에는 이듬해(2019년)의 부가가치세(VAT) 인상을 앞두고, 미리 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중앙은행의 또다른 고민은 지금까지 경제회복의 근간이 됐던 주요 경기 부양 정책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방위산업 중심의 국가 프로젝트도 더이상 성장 여력이 부족하고, 소비자 수요 증가도 물가상승 흐름에 따라 느려질 것이며, 기업과 소매 대출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기계 및 기계 제작, 에너지, IT 및 기타 산업 분야의 수입 대체 프로그램에서도, 전쟁전 수준에 도달한 수입 물량에서도 성장이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도 조만간 선제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재무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난 5월과 6월 지출을 일부 줄였다. 또 연말에는 에너지 주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일부 환수해(서방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횡재세'/편집자) 재정적자를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수출업자들을 대상으로 강제했던 '외화의 의무 판매제'를 재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전문가 베르니코프는 "에너지 기업들이 벌어들인 외화를 일정 부분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하는 정책의 재도입은 루블화 가치를 올릴 것"이라며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제는 대출을 제한하고, 국민들에게 저축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기준 금리 인상과 함께 시중은행의 수신(예금) 금리가 인상되고, 러시아 국채의 수익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와 서방의 경제제재, 전쟁비용 급증이라는 3가지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