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을 이해할 때 주의할 점은 대칭의 시공간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멈추어 있다면 양자의 요상한 움직임에 황당해할 이유가 없다. 불확정성이 존재할리 없지 않은가? 가장 작은 단위의 세상에도 강력한 움직임으로 시간과 공간, 입자와 파동을 수시로 변화한다. 우리의 삶도 끊임없는 파동으로 변화한다. 움직임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충돌이다. 언제라도 無를 깨트릴 수 있는 대칭의 沖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아야 가능하다. 冲氣以爲化 이 멋진 표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다. 위에서 보았던 플라톤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자.
“모든 원소들이 공간의 본성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 속에 다른 것이 들어갈 때마다 성질이 바뀌고 또 바뀐다. 공간이 물질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흔들기도 한다” 또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이 왜곡 된다” 無有入無間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沖작용이 이루어져 시간과 공간의 대칭구조가 비틀어지고 변화한다. 丁壬癸의 대칭구조를 이해하면 복잡했던 모든 것들이 명료해진다. 종교 표현을 丁壬癸로 바꾸어 살펴보자.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수행을 다 거두어들인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만법의 근본이요 일체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을 알면 온갖 수행을 다 갖추게 된다. 마음을 알고서 도를 닦으면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모든 선과 악은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찾으면 끝내 옳지 않다.”
“어떻게 마음을 관찰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까?”
오온(五蘊)이 본래 비어 실체가 없음을 알았으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 두 가지 차별이 있음을 알았다. 하나는 깨끗한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더러운 마음이다. 깨끗한 마음이란 샘(번뇌)이 없는 진여(眞知)의 마음이요, 더러운 마음이란 샘이 있는 무명(無明)의 마음이다. 이 두 가지 마음은 본래부터 함께 갖추어져 일시적인 인연에 화합하였으나 서로 생겨나게 하지는 못한다.
깨끗한 마음은 늘 착한 인연을 즐기고, 더러운 마음은 언제나 나쁜 업을 생각한다. 만약 진여를 깨달아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성인이니, 모든 괴로움을 멀리 여의고 열반(梁)의 즐거움을 증득할 것이다. 만약 더러움을 따라 악을 지어 번뇌에 얽히고 덮이면 범부라 하나니, 삼계(三界)에 빠져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더러운 마음이 진여의 본체를 가렸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들은 丁壬癸로 이해하면 매우 쉽다. 분리될 수 없는 한 쌍으로 이루어진 마음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니 나는 神과 같다. 다만 대칭이 깨지고 육체를 가진 후로는 색계의 탐욕으로 업보가 생겨난다. 참모습을 찾으려면 원래의 마음을 찾으면 그만이다. 마음은 내 육체가 있기 전부터 있었고, 육체가 생겨난 후에도 있으며 육체가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니 육체의 유무와는 무관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丁이나 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좋거나 나쁘다고 선택하기 때문에 번뇌가 생기니 선택만 하지 않으면 열반에 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애매모호한 종교, 철학의 표현들이 丁壬癸로 간단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음에 놀란다.
1. 무엇이 나의 생각을 변하게 만드는가?
2. 그것을 확인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3. 양자의 세계 양자의 세계에 대해서 들어봤느냐? - 핵심은 움직임이다.
4. 움직이는 방식은 무엇인가? - 道沖 우주를 다스리는 방식
5. 움직임은 어디에서 온 것이다. - 빅뱅이전
6.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
7. 누가 나의 생각을 바꾸는가? 왜 괴로운가?
8.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9. 그 출발점은 빅뱅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