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
창 16:1~16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많은 자손을 주실 거라 했는데, 10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그러자 아내 사래가 자기 몸종 하갈을 씨받이로 삼는다.
하갈은 이집트 출신 여인이다. 아마 흑인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포로였을 수 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몸종이었다.
아브람과 동침하여 임신했다. 그러자 콧대가 높아진 하갈이 주인 사래를 멸시했다.
노예가 되어 살면서 맺힌 한이 많았다. 그런데 주인의 아기를 가졌으니 해볼 만했다.
사래는 이런 하갈의 태도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잘못할 때마다 벌을 내렸다.
임신한 여자로서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은 가출했다. 도망쳤다.
하나님은 천사를 하갈에게 보냈다.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되돌아가서 복종하라고 타이른다.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고 이름까지 지어준다.
그리고 태어나는 아들 이스마엘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예고한다.
(12절)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천사의 이 말이 좋은 말인가, 나쁜 말인가?
객관적으로 볼 때 결코 좋은 말일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이렇게 말할 때 하갈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 하갈의 마음 속에는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다.
사래에게 학대를 당하고 못 견뎌 도망쳤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이렇게 말해줬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하갈은 어리석은 여자였다.
자기 안의 분노 때문에 태어날 아들의 장래를 망쳤다.
속으로 ‘제발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어머니인가?
<야곱의 위대함>
야곱의 위대함이 떠오른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천사를 만났다.
밤새도록 천사의 삿바를 놓지 않고 ‘나를 축복해 주기 전에는 갈 수 없습니다.’ 매달렸다.
쇄골이 부러지도록 놓지 않았다. 끝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놓아주었다.
하갈도 이랬어야 한다.
하나님, 제 뱃속의 아이가 이렇게 사는 것을 저는 원치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이가 되도록 해 주세요!
새로운 응답을 얻기까지 천사에게 매달렸어야 한다.
그러나 하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라고 되돌아왔다.
결국 태어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사자가 예언한 대로 사는 인물이 되었다.
들나귀 : 고삐 풀린 망아지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 좌충우돌 싸움을 일삼는다. 참을 줄을 모른다.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멱살잡이를 한다.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 맞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있나?
이스마엘은 모든 이들과 대립하면서 살게 된다.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 나중에 태어나는 이삭과 사이좋을 리 없다.
결국은 이삭을 희롱하다가 쫓겨나고 만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추방당하다>
창 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이스마엘과 이삭은 배다른 형제이다.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14살 위의 형이다.
한참 어린 동생을 잘 보살피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일로 결국은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는 다시 쫓겨난다.
15살 짜리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하갈이 광야로 나갔다.
갈 곳이 없다. 기가 막히다. 가지고 나온 양식은 다 떨어졌다. 이대로 굶어죽나?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창 21:18~21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참 좋으신 하나님이다.
간혹 기독교인 중에 하나님은 믿는 사람만 챙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다.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그들도 빠짐없이 돌본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돌보심을 알고 감사하는 사람들이고,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이스마엘은 중동 사람들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중동 사람들도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기의 피조물을 다 보살피신다.
하나님의 보살핌을 깨닫고 감사함이 은혜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기적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