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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수 5:9-12, 고후 5:16-21, 눅 15:1-3,11-32, 시 32편
늘 주님과 함께 하는 복을 누립시다. / 한서노회
엊그제 새벽기도회 시간에 공부한 다니엘서 마지막장 10절에는 이런 말씀
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시련을 당할 것이다. 그것
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당신의 백성들을 깨끗하고 바르게 살 수 있게 하
려는 것이다. 하지만, 못된 짓만 일삼던 자들은 여전히 그 잘못된 짓을 계속
할 것이다. 그 못된 자들은 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하지
만 슬기운 이들, 곧 하나님 편에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은 이 비밀을 깨
달으리라.」
이 말씀의 뜻은,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 편에서
깨끗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더 애쓰는 반면, 거짓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
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 봐라. 세상은 다 썩었다"고 하면서 더욱
악한 길로 빠져간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교수 신분을 가진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해서, 많은 사람
들이 한숨을 지으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장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연회에 참석했던 목사님들도 숙소에서 TV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말들을
나누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교수들까지 다 병들고 썩어
버렸군!" 그러자 다른 다른 목사님도 그 말을 받아서 "그래요,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까지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범하고 있으니, 세상은 갈 데까
지 다 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다른 한 목사님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어째들 그렇게 말씀하십니
까? 교수 한 사람이 살인을 한 것이지, 모든 교수가 다 살인을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수가 다 썩었다. 세상이 다 병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패배주의라
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탄의 세력입니다"라고.
저도 이에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얼마든지 훌륭한 교수님들이 우리 나라에
는 아주 많은텐데, 어느 한 교수가 살인을 했다고 해서 교수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입니다. 목사 하나가 사기를 쳤다고 해서 모든 목사를
사깃꾼으로 몬다든지, 몇몇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정을 했다고 해서 교회 다
니는 사람은 다 틀려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온당치 못한 일인 것입니다.
오죽하면, 바울 선생님이 고린도후서 5장 16절에서 「세상적인 생각이나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평가하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이어서
바울 선생님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사람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새 인생이 다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새 인생이 시작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부족한 것이 많고 결점이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
을 듣고 배워서 차츰 그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이 새 인생인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씀을 잘 살펴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새 인생인지 분
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누가 봐도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도와 많은 일들을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축내지도 않았거니와, 속을 썩이는 일
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집을 나
가, 자기 몫의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소식도 없이 아버지의 마
음을 애태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불효막심한 자식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지금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은 둘째 아들이 아니라 큰 아들입니다. 오히려 둘째 아들
은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를 위하여 잔
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의 지금까지 한 짓이 예쁘다고 하는 잔치가
아닙니다.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일부러 나쁜
길로 빠졌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큰 죄든지 작은 죄든
지 간에, 죄를 짓고 사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역부러 죄짓자고 해서 짓
는 죄가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있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지은 죄를 깨닫고,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면
서 바르게 살기를 결심하는 것입니다. 또 죄를 지을텐데 회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말씀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갖고 살 때에 짓는 죄
와,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짓는 죄는, 그 죄의 성격이 다릅니다. 일반
사회 법정에서도 결과만 가지고 그 죄를 따지지 않듯이, 하나님은 그 동기와
방법, 그리고 결과를 모두 살펴서 판단하십니다. 더우기 할 수만 있으면 우리
인간을 파멸로 이끌고 가려는 마귀의 흉계를 깨뜨리시려고, 하나님은 '십자가의
은총'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아주 작은 것이나마 선한 뿌리가 남아 있다면, 그
것만이라도 결코 무시하지 않고 살려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려는 귀한 뜻인
것입니다. 꺼져가는 촛불이나마 확 불어서 꺼버리지 않으시고, 될 수 있으면
그 불을 살려시려고 적극 힘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십자가의 은총은,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복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낙심하고 좌절케 해서 선한 의지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마귀의 책략을 물리치고, 비록 작은 믿음이지만, 그 믿
음을 바탕으로 해서 새 삶을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
총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지난 죄의 빚을 대신 갚아주심으로써 우리로 하
여금 가벼운 마음으로 새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
다.
첫째 아들은 이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왜입니까?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
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잘한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9절의 말씀을 보면,
「저는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느 하
나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저를 위해 해 준 일이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자를, 성경에서는 '할례받지 못한 자'
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1.할례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자는, 교회나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거짓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사회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잘못을 자신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처럼 떠들어댑니다.
예레미야 4장 4절의 있는 말씀을 보면,「너희는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내
마음에 들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너희를 태워 없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아들이 분명 아버지를 위해 일한 것은 틀림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
상은 자신의 위해 할 일임을, 그의 말을 통해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
는 저를 위해 해준 일이 없습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아버지를 위해
순수하게 일한 것이 아니라, 어떤 보상을 바라고 했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한 모든 일은 그의 마음 속에 남아 있어서 그를 교만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또한 불만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냥 순전히 아버지를 돕는 일이 되었으면, 교만한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불만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불평 불만하는 사람이 누구입니
까? 무슨 일이든지 순수한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명예심이나 어떤 댓가를
바라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러한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습
니다. 보상을 바라고 일하는 사람들은 땀 흘려 일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대접을 받는데 있기 때문에, 작은 일을 하고서도 생색이나 내
고 열심히 하는 체를 할 뿐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서 명예심이나 보상심리, 또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욕심
을 제거하는 일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면
①그 욕심에 이끌려서 일을 하는 까닭에, 많은 죄를 짓게 됩니다.
큰 아들이 이러한 욕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ㄱ.공치사를 하면서 아버지
께 불만을 토하고 ㄴ.동생이 환대받는 것을 시기했던 것입니다.
②결과적으로, 할례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나아가서 형제와도 화목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에스겔 44장 9절의 말씀을 보면,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는 뜻입니
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여호수아 5장 9 - 12절의 말씀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할례를 받았던 것은, 그들이 모두 한 형제임을 밝히는 의식이 있음을 드러내주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곧 우리 마음 속에서 욕심을 제거
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룰 수가 없고 나아가서 형제와도 화목하
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큰 아들의 마음 속에 욕심이 가득했기 때문에, 아버지한테 불만이요 동생
한테도 불만인, 그러한 불행스러운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큰 아들의 잘못 가운데 가장 큰 죄는
①아버지가 용서한 동생을, 형으로서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생의 잘못으로 고통을 당했다면, 아버지만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생이 형한테 손해를 끼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노발대발 화를 내고 있
는 형입니다. 아버지가 동생을 용서하고 잘 대접한다고 말입니다. 무슨 이유
인지 알 수 없는, 큰 아들의 분노입니다.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반겨
야 할 형으로서, 아버지가 동생에게 대우 잘해주는 것을 가지고 왜 화를 내며
불평했을까요?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분노와 불평을, 지금 우리들이 일쑤 행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그 누구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
는 부끄러운 죄가 우리 가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형제의 잘못을 용서치
못하고, 계속 정죄하면서 심판하고 있습니다. 심판할 수 있는 권한 오직 하
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물고 늘어지면서 심판하는
것은, 아주 큰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다 죄인입니다. 누가 누구의 잘못을 따
질 권한이나 염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죄를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돌아
온 탕자에게 아버지는, 과거의 어떤 행위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이기 때
문에 찾아온 그 아들을 반가이 맞아들이고, 그를 위해서 잔치까지 베풀어주
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그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2.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새 인생을 살도록 그 길을 열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사람이 된
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곧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새 인생을 영어 성경에서는 창조(creation)라 번역
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인생을 산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
침과 모범을 따라 우리의 잘못된 삶을 고쳐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새 인생을 살 수 있도록
①할례를 베풀어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물론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때만 가능합니다. 자신의 죄를
드러내놓지 않으면, 그 죄가 그를 이끌고 다니면서 온갖 챙피를 당하게 합
니다. 그러다가 멸망에 빠뜨리 는 것입니다. 아뭏든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의 종노릇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가장 복된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품안에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가 돌아오면 기쁘게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복음 15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
님 품안에 안기는 순간, 우리는 죄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어떤 악한
세력이 우리의 죄를 들춰내며 모함을 해도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②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좋은 관계를 가짐 으로써 새 인생을 살게 해 주십
니다.
누가복음 15장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멸시 받는 사람들과 어
울려 함께 식사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형편없는 우리들이지만, 하
나님은 우리를 친구 삼으셔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선한 면이라곤 손
톱만큼도 없는, 아주 나쁜 우리들이지만, 우리 속에 작은 믿음의 씨가 있음을
보시고, 그것을 인정해 주시면서 새 삶의 용기를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여 구제 불능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좋
은 면을 찾아내어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
은 감추어 주시고 장점만 드러내어 칭찬해 주시면서, 더욱 열심히 살 수 있
도록 도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③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늘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기사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적은 없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이 싫어서
도망간 것뿐입니다. 큰 아들처럼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산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장 2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다 끝날 것처럼 보입니까? 그러
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세상 끝날에 있을 심판을 대비하고 있습니
까?
애굽에서 나온 유대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 조리 죽었던 것은 세상이 끝났
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의 끝날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슨 죄든지 다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3.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최근 저는 컴퓨터의 모니터 관계로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모니터에 이
상(異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를 산 한얼컴퓨터에 문의를 했으나 귀
찮은 듯 대답을 하고, 제천의 금성서비스센터에 신고를 했지만, 자기들이 판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고쳐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금성 원주 서비스 센터와 연결이 되어서, 기사가 이곳까지 와서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본 순간 인상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묻
는 말에 성실하게 대답을 하면서 모니터를 고쳤습니다. 3시간 가까이 걸렸습니
다.
저는 고마와서, 그 기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여비를 조금 주었습니다. 그
러나 그는 한사코 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더니, 오히려 감사헌금까지 하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주의 작은 개척교회를 다니는 신자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컴퓨터를 다섯 대씩이나 팔아주었건만, 불친절하고 무
성의하게 대하는 못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맡은 바 직무를 성실
하게 수행하는 착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얼마동안, 돈만 아는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한 것 같아 서글펐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작은 빛이 있음을 발견하고 참 기뻤습니
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은 다 틀려먹었다고 하면서, 똑
같이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음을 믿고, 그 선하신 하나님의 일에 동참을 해
야 할까요?
물론 여러분 모두, 후자에 동의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향
하여 불평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는 자
기 자신을 탓하면서,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아들
은 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김으로써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으나, 아버지와 항상 함께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아버지 품을 떠
나 있던 큰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괴롭게 해드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귀한 자녀가 됩시다.
그러려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을 깨달아,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고쳐 삶으로써, 늘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