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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 여행후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행 짐을 다시 확인하고 서둘러 공항을 향하여 고속터미널에서 인천공항행 리무진을 타고 가면서 전주에서 올라오는 형님께 전화해서 어디쯤 오는가? 확인한 결과 공항미팅 시간인 오후 1시경에 도착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항에 12시에 도착 되었건만 여행사측에서도 아무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40여분이 경과되어 여행사측과 형님들이 거의 동시에 도착되어 미팅이 시작되었고, 마음을 조아리게 도착된 사람은 군산에서 오는 동생 내외였지만, 이상 없이 출국수속을 받고 한국에 살고 있는 “장씨”들이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개국공신 “장씨인 장량”이라는 분이 호남성 중심부에 정착해서 “장씨 가계”를 이뤄 살았다는 “장가계” 여행장도에 오르게 되었다.
항공기의 출발시간은 오후 3시40분 예정이었지만, 실제 이륙은 오후 4시경 이다보니 배가 몹시 곱팠다. 항공기가 정상적인 고도를 잡고 비행을 하면서, 그렇게 고대하던 기내식사가 제공되는데 모두가 시장하다 보니 정말 반가웠다. 음료수로 쥬스, 물, 커피 중에서 선택하여 마셨고, 주식으로는 쌀밥에 소고기, 또는 닭고기를 삶은 콩을 곁들인 식사와 간식으로는 조그마한 빵과 과자류가 나왔다. 모두가 허기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른 아침부터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들뜬 마음으로 출발하여 오후 5시경까지 식사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중국 장사공항에 도착되는 동안 밖은 깜깜해서 볼 수 없었고, 비행을 3시간이상 경과되어 도착되었다. 봄에 군대 동기생 가족들을 이끌고 북경에 안내해서 갈 때 보다 장씨 형제 여행인원 34명을 안내하는 것은 출발 계획부터 신경이 이만 저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장사공항에 도착하니 “이봉”이라는 가이더가 저녁식사 장소인 “서호루” 라는 식당으로 안내하는데, 도로운행 하는 것이 한국 내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역주행 하는 등, 이곳에서 말하는 “제 멋대로 운행”을 하여 거대한 대형식당에 도착하였다.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충북 단양에 있는 초대형 불교 성전이라고 할 수 있는 “구인사”와 같은 대형 절과 같은 곳에서 식사하는 것 같은 웅장한 식당이었고, 중국전통 향내를 제거한 음식들로 우리 입맛에 맞는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여행사에서 신경을 써서 준비했다는 49인승 대형버스를 탔다. 버스는 비교적 깨끗하고 새차였다. 장사에서 구경거리가 있는 장가계로 이동하는데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는데 차량들은 많지 안았으나, 운전기사가 준법운행하는 속도로 안전하게 운행하다보니, 잠자는 남천 국제호텔에 도착은 거의 밤 12시경이 되어서 였다.
방은 2인 1실로 배정을 받아 아침부터 저녁 12시까지 항공기와 차를 탔으니 피곤하여 각자 샤워하고, 다음날 아침 6시 모닝콜에 의하여 일어나 세수하고, 군대처럼 아침 6시 30분에 호텔내 식당에 가니, 벌써 한국에서 준비해 온 반찬들을 꺼내놓고 식사를 아주 맛있게 하였다. 7시까지 차량에 탑승하여 십리화랑 이라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10리나 되는 협곡을 따라서 수풀이 양쪽으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높이는 기이한 봉우리와 암석들이 각양각색의 형상을 띠고 있어서, 마치 한 폭의 중국의 거대한 산수화를 보는 것 같았다.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며 카메라를 좋은 배경을 향하여 계속적으로 찍고 하는 것을 보니, 마치 영화라도 촬영하는 것 같았다. 중간지점에서 내려, 기이한 암석들을 배경으로 부부들이 또는 그룹별로 추억의 사진을 찍고,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서 진주목거리 가계를 들렸다가 점심식사는 돼지 삼겹살 구이를 하는 식당에 갔다. 배가 곱파서 이겠지만 삼겹살 구이가 기름기도 별로 없어서 인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맛이 있다. 함께 간 아저씨들이 종이팩으로 된 참이슬을 한국에서 부터 준비하여 식사 때마다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참이슬로 형제들간에 잔을 돌리며 중국에서 산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가계에 와서 한국의 참이슬로 입술을 축이니, 정말 내 자신이 신선이 된듯 하여 중국의 식당에서 “형제들의 건강과 화목을 위하여” 건배의 목소리를 높혔다. 오후에는 땜을 쌓아서 물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다고 하는 “보봉호”로 가는데 대나무로 만든 듯한 꽃가마처럼 된 가마에 사람이 타면 2명이 앞 과 뒤에서 어깨에 메어서 운반하는 것인데 2만원을 받는다. 전주형수님이 다리가 불편하여 대표로 타고 이동하였고, 한참을 계곡 길을 따라 올라가서 보봉호에 도착하여 50-60명정도 탈수 있는 유람선을 타고, 나가는데 앞에 조그마한 배에서 여인이 나와서 환영한다는 노래를 중국말로 하는데 음이 매우 높은 음성이었다.
보봉호는 길이가 2.5km, 수심은 70여m 정도 된다고 한다. 좌우측의 그윽한 주위환경이 무릉원의 대표적인 수경으로, 호수 안에는 작은 섬이 있고, 바깥쪽에는 기이한 봉우리들이 있으며 이 봉우리들이 호수를 끼어 안고 있는 듯하다. 이곳 장가계는 아주 오래전에 바다였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구의 변화에 따라서 육지로 변하면서 특이하고 아름다운 산천으로 변화된 것 같다. 얼마나 이 모든 자연들이 아름답기에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둘러 보며, “와~ 와~” 라는 감탄으로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와~ 와~”하다가 가는 곳이라고 할까!!.
케이블카를 타고 “천자산” 등정을 하는데 케이블카는 6명이 탈수 있고, 급경사를 타고 오르며 발밑을 바라보니, 정말 발바닥이 간지러울 정도로 아찔하였다. 천자산의 풍경은 시야가 아주 넓고, 산의 기세가 웅장한 맛을 느끼게 하였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위산들이 수풀처럼 하늘을 받들고 있는 듯하며, 그 사이로 깊은 계곡들이 뻗어 있어서, 천군만마가 포효하며 달라오는 것 같았다. 주변의 원시림속에서 흘러 나오는 맑은 공기가 아주 맑다. 멋진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들을 산책하면서, 진짜 산수화속을 거니는 신선의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이곳에서는 사진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서 목걸이를 만들어서 1,000원을 받고 파는 것이다. 집사람도 나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서 잘 나왔고 신기하다며 1개를 샀다. 조금 지나친 경우는 그 사진을 찾지 않으면, 역정을 내며 사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여성들에게는 위협을 줄 정도로,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다. 심지어 사진을 찍는데 의자를 내밀며, 의자 위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해서 위에 올라갔더니만 1,000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물론 돈을 주기는 하였지만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저녁에는 궁중요리식사를 묵고 있는 호텔에 와서, 그룹별로 방에 들어가, 참이슬을 곁들여 정말 흡족하고 맛있게 하였다. 여행비가 북경에 갈 때 보다, 비싼 고급 여행상품이서 인지, 호텔 및 음식들이 가는 곳마다 흡족하여 연속 감탄이 나온다. 저렴한 상품도 있지만, 품위있는 여행이 되도록 고급상품을 잘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는데 “선조님들의 덕”으로 종친회에서 후손들에게 이렇게 여행할 수 있도록 경비를 남겨 주시고, 또한 종친들의 재산을 관리하던 형제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감사드린다.
식사후에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중국전통 맛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 갔다. 지난 3월에 북경에 가서 받은 맛사지와 다르게, 정말 정성이 포함된 맛사지 다운 맛사지를 잘 받고, 모두가 만족해 하였다. 어떤 형제들은 다시 받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움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하루 종일 걸었던 피로가 완전히 풀리는 것 같다고도 한다. 나를 맛사지 한 사람에게 그동안 배웠던 중국말을 사용하여 의사 소통해 보니 나이는 24세된 유부녀로 1살된 자녀가 있다고 하였다. 다음날 8시에 차량에 탑승하여 토가족의 오래된 산간마을을 복구하여 만든 토가풍정원에 갔다.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같은 곳으로 토가족의 민속문화 관광구이다. 민속춤을 구경할 생각으로 앉아 있었더니, 토가족의 한 여성에게 이끌리어 나가, 함께 춤을 추는데 우리의 가락과 차이가 있어서 처음에는 어색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익숙해 질 무렵 춤은 끝이 났다. 건축물들은 대부분이 나무와 돌을 이용해서 만들어 졌고, 기둥과 대들보는 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특히, 구중천 조각루가 산비탈에 12층짜리 누각으로 높이가 42m로 웅장하면서도 독특하게 건축되었다. 어느 한곳에 가니 토가족들이 칼춤으로 묘기를 보이기에, 집사람과 일행중 몇분의 형제들로부터 1,000원씩 걷어서, 그들에게 주었더니 “아리랑” 곡을 연주하여 고맙다는 뜻을 전해 준다.
환상적인 지하비경을 가진 중국 최대의 몽골 용왕동굴에 갔다. 이 동굴은 학생들이 몇 년 전에 발견한 정말 거대한 동굴인데, 물방울들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수천개의 돌로 된 봉우리, 석주, 석순등의 기이한 형상들로 동굴내에 산재해 있었다. 더욱 돋보이도록 조명을 빨갛고, 파랗게 하여 용왕들이 움직이는 형상들로도 보이고, “딜라이 라마”가 목욕하는 형상등 여러 모형들이 보였다. 점심은 북한식당에서 하였는데, 중국호텔이나 중국 음식점에서 잘 먹어서인지, 음식맛이 조금은 떨어지는 것 같았고, 밥도 중국식당들은 찹쌀밥을 주었는데 이곳에서는 맵쌀밥을 주었고, 식사후 북한 식당에서 한약재를 선전하고 파는데, 어딘지 모르게 강압적인 자세였고,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다음은 장가계의 절경인 원가계 정상에 올라갔는데, 날씨도 좋아서 수백미터 아래에 있는 발밑을 내려다보며, 그 아름다운 비경에 정말 감탄사가 연속 터져 나왔다. 오래전 군인공제회 임원진을 따라서 설악산 대청봉에 오를 때, 설악산의 그 아름다운 비경에 감탄하여 울고 있던 어느 여학생처럼 이렇게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아~”하는 소리만 절로 나왔다. 원가계 정상을 돌면서 발아래에 370m의 낭터러지가 되는 기이한 절벽과 수풀들이, 어떻게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형형색색의 암벽들과 수풀들!! 얼마나 넓은지 고함소리를 질러 봐도, 메아리조차 없는 그야말로 광할한 미국의 그랜드 캐년같은 바로 그 자체였다. 얼마나 높고 광할하였던지, 집사람은 겁에 질려서, 원가계를 구경하는 동안, 나의 팔목을 꼬옥 껴 안았다.
이렇게 아름다웁기에 가 보았던 사람들이, 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흙이 없는 돌봉우리 위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서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어필봉” 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원가계의 높은 지역구경을 하고 내려 올 때에는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얼마나 높은지, 400m나 되는 절벽위에서 직선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속도는 조금 느리게 하강하였다. 우리나라의 “롯데월드 자유로”에서 낙하는 것처럼 “스릴”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엘리베이터가 하얀색으로 된 철재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라고 해서 “백룡”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백룡엘리베이터로 내려와서 관광지 셔틀버스를 타고, 우리차량이 있는 곳까지 가야하는데, 셔틀버스가 지연 도착되고, 밤이 늦어서 우리 일행외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서로 먼저 관광지 입구까지 나가려고 아우성 이다보니, 차량에 2대에 따로 따로 분산 탑승하게 되었다. 여행의 인솔자의 한사람으로써 여행의 출발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우리 일행들 안전만을 생각하며, 걱정을 많이 하였지만, 다행이 염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가이더 말에 의하면, 실제로 관광 왔다가 실종되는 한국사람도 발생한다고 한다. 다음은 케이블카를 타고 황석채로 올라가는데 한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관광을 하면서도 염려가 되었다. 사진도 찍고, 내려 올 무렵쯤에 보이지 않턴 동생이 혼자서 그 높은 황석채 정상까지 관광티켓도 없이 올라 왔다. 우리 전용 관광차에서 피곤하여 잠들었다 깨어서, 의사소통도 되지 않을 텐데도, 우리들이 있는 곳까지 찾아 왔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서 내려올 무렵에는 올라 갈 때 사용했던 티켓이 있어야 하는데, 올라가서 그 티켓을 없앴던 형제들은 한동안 붙잡혀서, 확인하는 마음의 고통을 당하여야 만 했다. 이 황석채는 웅장한 자연미를 대표하는 곳으로, 한나라 “장씨의 장량”이 이곳에서 은거하며 괴로운 시절을 보낼 때, 사부인 황석공에 의해 구출되었다고 해서 “황석채”라는 지명이 붙여졌고, 높이가 1,200m로 계곡을 따라서 오랫동안 걷고 싶기도 하였지만, 일행 중 연세도 있고, 피곤한 사람들도 있고 해서 도보코스를 단축하였고, 우리들의 관광버스로 와서 입구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우리나라 70년대의 시골집 화장실처럼, 악취가 지저분하게 많이 나는 곳이었는데, 잠깐 사용하고 나오니 역시 1,000원 내라고 하는 것이다.
남천호텔에서 마즈막 밤을 보내고, 장사 지역으로 4시간동안 이동하여, 호남성 박물관에 들려 여러 가지 유물들을 보았고, 특히 수천년 전 여자시신이 발견당시에 살아 있는 사람의 피부처럼 잘 보존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현대의 알코올처럼 액체로써 잘 방부제 역할 하는 것을 오래전부터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관은 나무로 된 4중관을 사용하였다. 오후에는 우리나라의 서당과 같은 악록서원에 들려 글과 그림들을 보았는데, 특이한 것은 이곳에서 나오는 색상모레들을 종이위에 뿌려 붙여서, 그림을 그린 것이 특별하게 보였다.
장사장가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호화 유람선을 타고 상강의 수려하고 매력적인 장사지역 경관을 관람하는 것이다. 노아유람선은 중국에서 자랑하는 5,000톤급의 초호화 유람선으로 1,500명까지 탑승할 수 있으며, 중국 호남성 장사시의 “ 현대화의 상징”이라 불린다는 유람선에 조금 일찍 승선하여 음악이 없는 가운데, 노래를 형제들 간에 지명하여, 돌아가면서 하였는데, 성악가처럼 솜씨 있게 잘 하는 동생들도 있었다.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올 때에는 장씨들의 끼가 발동되어, 연세 남녀 불문하고, 상강 노아 유람선 내부를 한동안 휘어 잡았고, 노아의 배는 느린 속도로 상강을 따라서 한바퀴 돌고 돌아 하선하여, 장사에서 가장 좋다는 5성급 “화아화천호텔”에 도착하여 마즈막 여장을 풀고, 형제들이 한방에 모여 중국의 맥주를 마음것 마시며, 장가계 여행을 마치는 아쉬움을 달랬다.
멋진 5성급호텔에서 아침은 양식으로 하고, 선물을 포함한 여장을 챙겨, 장사공항에서 오전 11시에 이륙하여, 한국에는 오후 2시 40분경 도착되었고, 그동안 여행을 함께 한 형제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며 헤어졌고, 아들이 공항까지 차를 몰고 와서, 그 차를 타고 집에 오니, 며누리, 딸이 “잘 다녀오셨느냐?”고 반긴다. 한국 사람은 역시 내 조국 한국이 가장 좋고, 집이 가장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34명의 출발 인원이 4박5일 동안 아무 이상 없이, 안전하고 무사하게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것을 가장 기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