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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자(柚子, 橙子) 한시(漢詩)모음(21편)> 고영화(高永和)
1. 南人送柚子남쪽 사람이 보내온 유자. 성현(成俔, 1439~1504).虛白堂補集 /고영화(高永和)
南國丘墟千木奴 남국의 옛 터에는 감귤이 많은데
團枝剡棘黃金珠 둥글게 모인 가지에 뾰족한 가시 황금빛 방울이 달렸다
自從渡淮變作枳 회수를 건너와 스스로 탱자로 변하게 되었으며
風土所繫形模殊 풍토에 얽매이게 되어 모양이 뛰어나게 되었다하구나.
南人封襲筐篋。남쪽 사람이 광주리 큰 상자에 봉(封)하여
年年充貢朝玉闕 해마다 공물을 충분히 채워 옥궐에 조회한다네.
時時黃帕賜臣僚 때때로 유자를 싸서 모든 신하에게 하사하며
歸遺細君相怡悅 귀가해서 아내에게 주니 즐겁고 기뻐하네.
豈料至尊啓供餘 어찌 더할 수 없이 존귀한 공물임을 알았는지,
飛塵萬里來遺余 만 리 흙먼지 날리며 나에게 전해 왔도다
十箇帶葉如新採 열 개 달린 잎이 새로 따온 듯하며
光華滿室驚睢盱 아름다운 빛이 방안에 가득하여 휘둥그레 쳐다본다
噀人香霧霏霏射 향기로운 안개가 사람에게 뿜어내며 연이어 펄펄 쏘아대어
剝皮如肉甘可嚼 고기 살처럼 껍질을 벗겨 씹어보니 맛나구나.
或漬崖蜜調爲漿 혹은 산꿀과 함께 담으면 음료가 되어 좋고
或成黃流作杯杓 혹은 누런빛이 흐르는 담근 술로 이용된다.
色香與味俱三絶 색과 향 그리고 맛, 세 가지 뛰어남을 갖추어
庶幾慰此相如渴 바라건대, 이 몸의 상여갈을 위로하소서.
[주1] 목노(木奴) : 목노(木奴)는 감귤(柑橘)의 별칭이다. 양양(襄陽) 이형(李衡)이 가족 몰래 무릉(武陵) 용양주(龍陽洲)에 감자(柑子) 천(千)나무를 심어 두었다가 죽을 때에 아들에게 말하기를, “용양주에 천두(千頭) 목노(木奴)가 있으니 해마다 비단 수천 필을 얻을 것이다.” 하였다.
[주2] 회수(淮水) : ‘화이허 강’의 다른 이름. 양쯔강과 황하강 중간쯤에 있음.길이 1100km.
[주3] 상여갈(相如渴) : 한 나라 때 효문원(孝文園)의 영(令)을 지낸 사마상여(司馬相如)는 항상 소갈병을 앓았다. 소(消)와 갈(渴)을 주증으로 하는 병증으로 당뇨병과 같은 뜻이다.
* 연산군 시절의 문신이었지만 사화에 휩쓸려 행방불명이 된 인물인 정희량은 해주, 의주, 유배 후 김해까지 이배되어 왔다. 그의 시(詩)를 읽어보면, 유자의 향기에 무척 감명을 받았던 곳 같다. 유자만 있으면 벼슬도 뿌리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는 이 시에서 표현한 그대로,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세속에서 사라졌는데,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유자향기 그윽한 남해 연안에서 향기에 도취되어 황홀한 말년을 보냈으리라..
2. 食柚子유자를 먹으며. 虛庵先生遺集. 허암 정희량(鄭希良1469-?) / 역 : 고영화(高永和)
江風海雨朝朝濕 강바람타고 바다에 내린 비로 아침마다 축축한데
綠葉初看病眼新 푸른 잎을 때마침 바라보니 병든 눈이 개운하다.
擘破霜皮香落手 쳐서 쪼갠 서리 맞은 껍질, 손에 향기 떨어지고
嚼殘金瓣冷霑唇 씹다 남은 누른 유자, 젖은 입술 쌀쌀하네.
袖中每日懷慈母 날마다 향기로운 소매 속에 어머니 사랑 떠올리며
林下先嘗愧逐臣 시골에서 먼저 맛을 보니 귀양 간 신하 부끄럽다.
移取千頭堪命僕 무성한 가지 옮겨놓고 내버려 두어도 견뎌내니
故山歸臥未全貧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도 전혀 궁하지 않다네.
▶ 정희량(鄭希良, 1469-?)은 연산군 시절의 문신이었지만 사화에 휩쓸려 행방불명이 된 인물이다. 연산군일기와 연려실기술, 허암유고(虛庵遺稿) 등에 보면, 자는 순부(淳夫)이고, 호는 허암(虛庵)이며, 본관은 해주다. 23살(성종23)에 사마시에 장원하고 성종25년 겨울에 왕이 죽어 재를 올리자 극언으로 상소했다가 다음해에 해주로 유배되었다. 여름에 풀려나서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검열 등을 거쳐 28살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듬해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예문관 대교(待敎)가 되어 왕(연산군)에게 경연(經筵)에 충실할 것과 간언을 받아들일 것을 상소하여 왕의 미움을 받았다. 이 해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었으므로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 김해로 옮겼다. 이듬해에 풀려나 모친상으로 고양에서 시묘살이를 하다가 시절에 절망하고 분해 하다가[傷時憂憤] 신발을 강가에 남긴 채 사라졌는데,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총명하고 자부심이 강했으며 성질이 과격했다. 복서(卜書)를 좋아하여 ‘갑자년의 화는 무오년보다 심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했다고 한다.
* 해도록(海島錄) 정덕(正德) 병인년 봄 2월, 거제도(巨濟島)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 이행(李荇) 著.
3. 자진이 반죽 지팡이를 준 데 사례하다.[謝子眞乞斑竹杖] 걸(乞) 자는 거성(去聲)이다.
내 벗님 가까이 유자도에 머무나니 / 故人住近柚子島
유자도에는 반죽의 숲도 매우 많지 / 柚子島多斑竹林
내게 금옥 같은 대지팡이를 주었으니 / 乞我錚錚一枝足
흰 구름 봉우리 위로 올라 가야겠다 / 白雲岑上要登臨
유자도(柚子島)는 거제시 舊 신현읍 유자도(삼성조선 매립,현 대섬(竹島), 현재 유자섬(橘島)은 당시에는 소도(小島)),에 유배 온 동료 홍언충과 신현읍 장평동 삼성호텔자리에서 유배 살던, 최자진이 이전에 지은 시에, “이르노니 적선께선 높이 착안하라. 흰 구름 위에 기이한 봉우리 있느니.[爲報謫仙高着眼 白雲頭上有奇岑]”라는 구절이 있었기 때문에 이른 것이다.
해도록(海島錄) 정덕(正德) 병인년 봄 2월, 거제도(巨濟島)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
4. 말 위에서 석류꽃을 보고. 이행(李荇) 著.
석류가 몇 척 높이로 섰으니 / 海榴高幾尺
울타리에 저녁노을이 붉어라 / 籬落暮霞丹
타향살이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 / 有客經時出
비낀 석양에 말을 세우고 보노라 / 斜陽立馬看
유자와 함께 공물로 바쳐져야겠고 / 應隨橘柚貢
도끼에 무참히 베어질까 걱정일세 / 更恐斧斤殘
거제현(縣) 사람 중에 유자나무를 벤 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좋은 시구가 없다 괴이쩍어 말라 / 莫怪無佳句
노년에 괴롭게도 기쁜 일이 적단다 / 衰年苦少歡
[주] 좋은 …… 말라 : 용재(이행)가 석류를 보고, “너를 읊을 좋은 시구가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5. 池進孫送柚子연못에 나가보니 손자가 유자를 보내왔다。池有三樹甚盛연못에 있는 세 그루 나무가 매우 무성하다. 노수신(盧守愼) 진도유배 作. /번역 : 고영화(高永和)
煙霧蒙三蓋 자욱한 안개가 여러 번 덮으니
文章雜二團 문장이 두 개로 모여 뒤섞인다.
輕籠池榭近 대그릇 가볍게 들고 연못 정자 곁의
細瀉草亭閑 자잘한 개펄 초가집 한가하다.
帶葉崖風起 대나무 잎 무성한 언덕에 바람 일고
凝膚野露殘 살갗이 얼어붙는 시골엔 이슬만 남았네
平生陸郞涕 평생 동안 육지 사내 눈물 흘리니
日月道途艱 세월 따라 간, 길마다 험했구려.
▶ 노수신(盧守愼) : 1515년(중종 10)∼1590년(선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茹峰老人). 1545년 명종이 즉위하고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이 을사사화를 일으키자 이조좌랑의 직위에서 파직, 1547년 순천으로 유배되고, 이어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죄가 가중됨으로써 진도로 이배되어 19년간 섬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1565년 다시 괴산으로 이배되었다가 1567년에 선조가 즉위하자 풀려나와 즉시 교리(校理)에 기용되고, 이어서 대사간·부제학·대사헌·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지냈으며, 1573년에는 우의정 1578년에 좌의정을 거쳐 1585년에 영의정에 이르렀다.
한편 그의 덕행과 업적의 성과는 매우 다양하여, 인군과 백성들, 그리고 많은 동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가 진도에 귀양갔을 때 그 섬 풍속이 본시 혼례라는 것이 없고 남의 집에 처녀가 있으면 중매를 통하지 않고 칼을 빼들고 서로 쟁탈하였다. 이에 예법으로써 섬 백성들을 교화하여 드디어 야만의 풍속이 없어졌다
6. 謝李晉州景胤寄惠柚子 진주 이경윤이 유자를 보내준 고마움에 사례하며 . 권벽(權擘), 習齋集(습재집)
維南厥貢夥 남방에는 그 공물이 넉넉하니
有此席上珍 이런 자리를 통해 임금께 진상한다.
厚味冠籩實 덮은 제기그릇에 과일의 맛이 진하여
令人齒生津 사람으로 하여금 이빨 사이에 침이 고이게 한다.
頃年客嶺表 요 몇 해 사이 영남의 나그네는
潤肺常食新 폐가 윤택하고 식사가 산뜻하네
木效頗同調 유자나무를 본받아 자못 같은 가락인데
餘子安敢倫 나머지 사람들이 어찌 인륜을 다하지 아니하랴.
一自返京洛 한번 돌이킨 서울,
解包嗟無因 짐 꾸러미 내려놓고 이유 없이 탄식한다네.
誰知晉康守 진주에 머무를 줄 누가 알았으랴
好我推深仁 나를 좋아하여 어진 마음으로 받든다.
遠寄香末沫 멀리 보낸 향 가루차(유자차)를
封題如隔晨 편지에 봉하고 겉에 쓰니 어제 아침 같다네.
所貴德其物 그 물건의 은덕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不但想伊人 그 사람을 생각해서이다.
懷橘永無日 귤을 품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澘焉念吾親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흐른다
應復待佳客 응당 머물며 반가운 손님 기다리니
得佐家釀醇 집에서 빚은 진한 술, 고맙게도 권하네.
[주1]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등장하는데, 옛날 중국 오나라의 육적이, 6세 때에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귤 세 개를 슬그머니 품안에 숨겨 나오다가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대답하여, 그 지극한 효성이 모두를 감동시켰다는 내용입니다.
[주2] 권벽(權擘) : 조선 중기의 문신(1520~ 1593). 자는 대수(大手). 호는 습재(習齋). 사관(史官)으로, 중종·인종·명종 삼대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저서에 《습재집》이 있다.
7. 柚子島乙卯 유자도 을묘년 1555년 / 羣倭陷達梁之處 왜구의 무리가 달량진을 점령했다. 栢潭先生續集(백담선생속집). 구봉령(具鳳齡)
當年島醜繫羣船 그 해 왜구의 여러 배가 정박하니
落日妖虹射碧天 해질녘 요사스런 무지개가 푸른 하늘을 쏘았다
畢竟城崩諸將死 마침내 성은 함락되고 모든 장수가 죽었는데
冤魂萬古拂山川 원혼이 오랜 세월동안 산천을 떨친다.
8. 削黃柚當杯杓 잘 익은 유자를 깎아 술을 대하며 爲健飮客所齧 유지를 씹고는 굳센 술꾼이 되니 戲贈東岳 희롱삼아 태산도 보내버린다. /李安訥. 조희일(趙希逸) 竹陰先生集
偶熟門冬酒 잘 익은 문동주(담근 술)를 대하니
仍斟柚子杯 자주 유자주를 잔에 채우네
快傾兼齧盡 쾌히 한꺼번에 모두 씹고 잔 기울이자
婢僕笑空臺 사내종과 계집종이 빈 누대에서 웃는다.
次韻 東岳 차운 동악
堪笑蓮堂事 연꽃 핀, 사랑채의 흥치에 웃음 참는구나
休誇橘作杯 귤로 만든 술 자랑마소
敎坊今寂寞 교방은 이제 적막한데
誰是舍人臺 누대를 내버린 이, 그 누구인가?
9. 柚子유자. 白江先生集. 이경여(李敬輿, 1585년~1657년)/번역 : 고영화(高永和)
品物流形孰主張 온갖 물건이 형체가 흐른다 누가 주장하는가?
洪匀元不限遐荒 넓고 가지런함이 으뜸은 아니나, 먼 변방 땅에 있도다.
后皇嘉樹生南國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남국에서 만들어
錫貢惟楊走北方 공물을 바쳤는데, 유독 양웅만이 북방으로 달아났다.
何處家封千戶素 부질없는 천 칸의 내 집 어디에 있는가?
幾枝香散九秋黃 몇 개의 가지로 향기 흩뜨리니 (음력)9월 누른빛 가을이다.
上林苑隔長淮水 상림원은 긴 회수와 떨어져 있어
安得移根獻未央 어찌해야 옮겨 심은 뿌리 내려 끝없이 진상 할 수 있으랴.
[주1] 후황(后皇) : 곧 후주(后主)로서 여기서는 조물주로서의 천제인 하늘의 뜻과 상대적으로 양생주로서의 땅인 후토를 말한다.
[주2] 양웅楊雄(B.C.53-A.D.18) : 자는 자운(子雲)이요, 촉군(蜀郡) 성도(成都 : 지금의 사천성 성도) 사람이며. 서한(西漢) 말(末) 역경(易經)을 모방하여 인사와 자연 을 논한 역술서(術家書) 태현경(太玄經)저술. 楊雄은 비록 문장으로는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나 시대의 아픔이나 과제를 무시하고 역적 왕망에게 몸을 굽혀 섬기다가 마침내 書閣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
[주3] 상림원(上林苑) : 천자(天子)의 정원(庭園). 진시황(秦始皇) 또는 한(漢) 나라 궁전의 어원(御苑). 한의 상림원 안에는 동물원이 있었고, 사마상여는 천자가 상림원에서 사냥하는 장면을 읊었음.
[주4] 회수(淮水) : ‘화이허 강’의 다른 이름. 양쯔강과 황하강 중간쯤에 있음.길이 1100km.
● 이익(李瀷, 1681∼1763) : 조선 후기의 실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조선 영조 때의 남인(南人) 실학자이다. 대사헌 이하진(李夏鎭)의 아들이다. 1700년대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그의 문인 안정복(安鼎福) 등과 더불어 천주교를 깊이 연구하게 된다.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도로 지목되고 있는 홍사량(洪士良)이 보내준 당유자를 받고 너무 좋아하며, 고마움에 편지를 써서 보낸다.
10. 謝洪士良寄唐柚子 홍사랑이 당유자를 보내와 사례하다. 이익(李瀷)
瀛洲仙子五雲棲 영주(제주)의 신선은 오색구름에서 쉬고
琪樹參差結子低 옥 같은 나무는 들쑥날쑥, 열매는 주렁주렁.
土養眞黃交錯落 토양엔 또렷한 누런빛이 서로 뒤섞여 두르고
椀盛霛液暎玻瓈 주발에 담은 신비한 진액이 수정에 비친다.
十分爽味關情得 십분 시원한 맛에 느낌이 일어나,
千里名香滿握攜 천리 이름난 향을 손에 가득 잡았구나.
多謝故人靑李帖 청리첩을 지은 고인(故人)에게 깊이 감사하며
厥苞相伴手封題 그 선물과 서로 벗하며 손수 서찰을 봉한다네.
[주] 청리첩(靑李帖) : 진(晉) 나라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청리내금(靑李來禽)’이라 써서 서첩(書帖)을 만들었다. 청리는 오얏, 내금은 능금이다.
11. 次聖徽柚子䪨 "성휘(거룩하고 아름다운)유자"차운하여. 立齋先生遺稿. 강재항(姜再恒
昨夜北風吹洛陽 어젯밤 북풍 불어 음력10월이 끝나니
階花庭綠摠萎霜 푸른 뜰의 쌓인 꽃이 모두 서리에 시들었네.
厥包何處來相送 그 보따리 어디에서 보내 왔는가?
滿眼秋光特地香 눈에 가득한 가을빛에 본래의 향기 유별나다.
12. 下舟柚子島 배에서 내린 유자도/ 島是梨津前岸여기 섬에는 배나무가 있고 나루 앞 언덕에。以柚子樹最多 유자나무가 아주 많다。錫名云석명이 말했다. 김익(金熤, 1723년~1790년 조선 후기 문신).
好伴春風去復來 봄바람에 좋은 벗되어 가다오고 하는데
小舟還泊掛帆㙜 작은 배가 높은 돛을 달고 도착하였네
㙜前冬栢花猶在 마을 앞 동백꽃은 아직 그대로구나
爲待詩人續續開 시인을 기다리며 자꾸 꽃을 피우네
19세기 초중반에 영감(令監) 윤정현과 선비 박윤묵은 무척이나 유자를 사랑하였으며, 매번 그 향기와 맛에 감격하여 아래와 같은 한시(漢詩) 두 수를 남겼다.
13. 梣溪令公惠柚子 윤정현 침계(梣溪) 영감(令監)이 유자를 사랑하여 . 密城朴允默士執著 밀성 박윤묵 선비가 벗하며 지었다
忽驚珍顆落寒床 문득 진귀한 덩어리에 놀라 차가운 상에 떨어뜨렸는데
頃刻凝成滿室香 잠깐 동안 엉기고는 방안에 향기 가득히 퍼졌구나.
非但人情偏貴遠 비단 인정이라는 건, 멀리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나
令公恩賜是爲光 영감(令監)에게 임금이 하사한 이것, 빛이 되리라.
▶ 윤정현(尹定鉉: 1793-1874) : 침계는 추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호이다. 윤정현은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여 그 덕망이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다. 특히 비문에 능했다.
14. 유자柚子. 密城朴允默士執著 밀성 박윤묵 선비가 벗하며 지었다.
産於南海上 남쪽 해상에서 자라나는
品質出凡常 범상한 품질이 있다네.
可愛登盤顆 쟁반에 올린 덩어리가 사랑스럽게도
翻成滿室香 온통 나부껴, 방안에 향기 가득하구나.
苞分生玉液 꽃 봉우리 터져 옥액(玉液)이 생겨나며,
皮潤帶金光 껍질에 윤이 나고 금빛을 둘렀도다.
咀嚼渾餘事 소일거리로 생각 없이 씹어보다가
吾先侈小床 내가 먼저 나서니, 과분하게도 상(床)이 작게 여겨진다.
[주] 옥액(玉液) : ①옥에서 나오는 즙(汁). 마시면 오래 산다 하여 도가(道家)에서 선약(仙藥)으로 침 ②맛이 좋은 술의 비유(比喩). 옥액 경장. 옥액 금장
15. 上仲兄 둘째형에게 올림. 淸風子先生續集. 청풍 정윤목(鄭允穆)
冬寒 겨울 추위가
未審氣候何如 미심쩍은데 날씨는 어떠한가요?
懸慕不已 떨어져 있어 매우 그립습니다.
弟歸路落傷 아우가 돌아가는 길에 낙상을 당하여
不能運身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春前勢難出戶也 형편상 봄이 되기 전에는 집을 나오기가 어렵답니다.
開月初 다음 달 초,
當有入洛人 갑자기 어떤 사람이 서울로 들어온다기에
此時簡通 이 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領台送於仲振處計料 영의정이 중진에게 보낸 부분을 헤아려 보지만
而但時勢益艱 다만 그 당시 형세를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奈何 어찌하여
柚子島產絶乏 유자가 생산된 섬에서 아주 끊어졌습니다.
進封亦貿於他處 임금에게 진상하거나 무역도 다른 곳에서 하며,
石榴庭前結者盡腐落 뜰 앞의 석류도 묶인 것이 떨어져 썩어 없어지니
豈運氣如是耶 어찌 이와 같은 전염병이 돌았는지?
玉髓經 (풍수지리서) <옥수경>은
聞有全秩在南海 소문에, 전질(全秩)이 남해에 있다고 합니다..
欲借龍虎經 도교서 <용호경>을 빌리고자 했는데
得友生書送之 친구가 글을 써서 보냈네요.
未知彼肻許否 저것을 즐겨 읽어야 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정윤목(鄭允穆) 1571년(선조 4)∼1629년(인조 7). :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淸州. 자는 穆如, 호는 淸風子·蘆谷 아버지는 서원부원군 탁(琢)이며, 어머니는 巨濟潘氏 潘冲의 딸이다. 일찍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다가 鄭逑 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세 전에 經史子集의 많은 서책을 읽었고, 시문에 뛰어나 일가의 체격을 이루었다. 1589년(선조 22)에는 謝恩使로 가는 사행길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다. 벼슬에 뜻이 없어 두차례 재랑(齋郞)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1616년(광해군 8) 召村道察訪에 취임하였으며, 1618년 通訓大夫에 加資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사직, 산수를 벗삼아 시와 書로 세월을 보냈다. 만년에는 龍宮의 長野坪에 草廬를 짓고 마을의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1786년(정조 10) 道正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청풍자문집》이 있다.
16. 古今島僉使柚子吟一絶 고금도 첨사가 "유자" 절구 하나를 지어 읊었다. /全城世稿 三 >霞翁集一[上]
木奴來自海中島、목노(木奴)가 바다의 섬으로부터 와서
四顒圓黃訝許金。둥글고 누른빛에 사방에서 우러르며, 금인 것 같아 의아했다.
乍置案頭霜滿座、잠깐 내버려둔 책상 한쪽 가에 서리가 가득 앉았는데
洞庭秋色入淸唫 맛깔스런 유자의 가을빛에 입을 다물고는, 선명한 빛에 빠진다.
[주1] 목노(木奴) : 목노(木奴)는 감귤(柑橘)의 별칭이다. 양양(襄陽) 이형(李衡)이 가족 몰래 무릉(武陵) 용양주(龍陽洲)에 감자(柑子) 천(千)나무를 심어 두었다가 죽을 때에 아들에게 말하기를, “용양주에 천두(千頭) 목노(木奴)가 있으니 해마다 비단 수천 필을 얻을 것이다.” 하였다.
[주2] 『하옹집(霞翁集)』은 이익필(李益馝 ; 1613∼1691)의 문집이다. 29세에 별시 무과에 급제. 훈련원첨정, 평해군수(平海郡守), 오위장(五衛將), 죽산도호부사(竹山都護府使), 여주목사(驪州牧使), 전라좌도수군절도사 등의 관직을 역임. 1678년 금위우별장으로서 이인좌의 난 토평(討平)에 참가. 그 후 진천현감(鎭川縣監)을 제수받고 수충갈성분무공신(輸忠竭誠奮武功臣)이 되었다. 그 후 평안도병마절도사, 춘천도호부사(春川都護府使), 길주목사(吉州牧使)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17. 北京諸果북경의 여러 과일은 如砂果葡萄之屬 사과 포도의 종류와 같으며過時如新때가 지나가니 새것과 같고柑橘甚賤감귤이 매우 싸나.橙子稍貴유자는 심히 귀하다戲次東坡惠州食荔芰韻희롱삼아 "중국 동파(소식)이 혜주에서 바늘붓꽃을 먹었다" 차운하여. / 김석주(金錫胄)
葡萄液滿好經春 포도는 액이 가득하여 봄이 지난 후에 좋고
香橘霜橙色色新 향기로운 귤과 잘 익은 유자는 색색이 새롭다.
三百荔芰雖日啖 삼백의 바늘붓꽃을 아무리 날마다 먹는다 하여도
豈宜長作薊南人 어찌 남쪽 사람들은 굳은 가시를 길게 만들어야 했는지..
18. 浥露黃橙(이슬에 젖은 유자). 김수온(金守溫)
山室秋風晚 가을바람 부는 산사의 저녁
金丸燦爛黃 금방울 방울 찬란한 황색이네
破瓤牙濺雪 유자 속 쪼개려 이를 무는데, 튀는 물이 흩뿌려져 씻기고
攀刺手傷瘡 먼저 꺾다 찔려 난 상처에 애태운다.
夜後含煙嚲 밤 지난 뒤 짙은 안개 품고
朝來瀉露瀼 아침부터 쏟아진 이슬에 남실남실,
繁星千萬點 반짝이는 별 천만의 점이로다
一一向人光 하나하나 사람을 향해 빛나네.
옛 조선초기 시인 김수온(金守溫)은 직접 유자를 따서 손으로 쪼개려다 유자 물이 얼굴에 온통 튀었는데 손가락에 난 상처가 따가워 애태우는 모습과 함께 안개와 이슬내린 새벽, 하늘의 별과 함께 유달리 빛나는 환한 유자열매를 노래하는데, 그 장면이 시를 읽는 동안 눈앞에 훤하다.
▶ 김수온(金守溫) : 1410(태종 10)~1481(성종 12).조선 초기의 문신·학자.세종·세조 때의 편찬 및 번역 사업에 공헌했다. 본관은 영동. 자는 문량(文良), 호는 괴애(乖崖)·식우(拭疣)이다
19. 황등(黃橙, 유자). 김시습(金時習).
酷愛霜橙香且團 향기로운 둥근 과일, 잘 익은 유자 너무나 사랑하는데
壓枝秋實光爛斑 나뭇가지 누르는 가을 열매가 빛이 아롱져 빛난다.
幷刀劈破黃金顆 병주의 좋은 칼로 황금빛 과실을 쪼개 가른
色味絶勝柑橘間 색의 맛이 감귤나무 중에도 매우 뛰어나구나.
泛泛新浮綠蟻觴 범범히 새로 띄운 동동주에 잔을 내어
一吸瓊漿爽腸胃 좋은 술을 한번 마시니 위와 창자가 상쾌하다.
已聞吳娃袖裏香 이미 오나라 미녀 소매 속의 향기를 들은바가 있어
更堪傖父樽前味 창부라 놀려도 다시금 참으며, 술통 앞에서 맛을 봄이라.
南國秋深霜風吹 남쪽나라 깊은 가을, 서릿바람 불고
細細淸香來擁鼻 세세한 맑은 향기, 코를 찌르며 다가온다.
一年好景着眼看 일 년의 좋은 경치 눈여겨 바라보니
千箇萬箇垂纍纍 천개 만개(유자) 겹겹이 쌓여 늘어졌네.
[주1] 幷刀(병도):칼을 민첩하게 놀리는 것. 원래 중국 幷州에서 생산된 칼이 잘 드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주2] 녹의(綠蟻) : 술이 막 익어 푸른빛을 내며 보글거리는 것이 마치 개미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美酒(미주)의 딴 이름. 술구더기라는 말로, 걸러 놓은 술 위에 뜬 삭인 지에밥의 별칭, 동동주, 개미가 물에 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부의주(浮蟻酒) 또는 나방이 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부아주(浮蛾酒)라고도 한다.
[주3] 창부(傖父) : 南人이 北人에 대한 허칭(戲稱), 깔보는 말.
박상(朴祥)이란 조선전기 선비는 귤의 사촌인 유자를 보며 이 시를 지었는데, 유자주(柚子酒)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시큰한 유자의 깊은 맛에 남의 집 유자를 슬쩍 따 먹고는 흔적을 지운다는 약간의 해학적인 시를 남겼다.
20. 浥露黃橙 이슬에 젖은 유자(잘 익은 유자). 박상(朴祥 ).
昔聞江橘化淮濆 예로부터 강가의 귤이 회수 물가에서 변한다는데
今見橙根海外分 이제 보니 귤 뿌리가 바다 밖에서 달라지구나
露實日烘秋罷熟 이슬 젖은 열매, 햇볕에 취하여 가을이 끝날 쯤 무르익어
霜香風釀曉披紛 서리 앉은 날, 향기로운 바람타고 빚은 술에 새벽같이 분주하네.
閉心守白終違俗 닫친 마음으로 비움을 지켰는데 마침내 풍속을 어기며 먹어보니
滋味持酸未貢君 시큰한 깊은 맛이라, 임금에게 바치지 못했구나.
移席不妨隨細雨 자리를 옮겨도 괜찮은데 가랑비가 따라와서
傍林鋤急破苔痕 숲가에서 급히 호미로 이끼 낀 흔적 지웠다네.
[주1] 강남종교 강귤위지(江南種橋 江橘爲枳) 강남땅의 귤나무를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
[주2] 회수(淮水) : ‘화이허 강’의 다른 이름. 양쯔강과 황하강 중간쯤에 있음.길이 1100km.
[주3] 박상(朴祥) : 조선 중종 때의 문신(1474~1530).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 연산군 9년(1503)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중종의 폐비 신 씨(愼氏)의 복위를 상소하다가 관직을 삭탈 당하였으나, 학행이 뛰어나 이조 판서로 추증(追贈)을 받았다. 저서에 《눌재집》이 있다. 시를 잘 써서 이행(李荇)과 함께 당대에 이름을 떨쳤고, 박은(朴誾)과 더불어 후대에 높이 평가되었다.
21. 귤림당(橘林堂, 귤 숲의 집). 鳴巖集(명암집) 이해조(李海朝, 1660년~1711년) 제주도
堂在府衙東隅。집이 부사의 집무실 동쪽 모퉁이에 있었다.
堂前。집 앞에 有果園。과수원이 있는데
柚子유자,唐柚당유,黃柑황감,乳柑유감,金橘금귤,洞庭橘동정귤,山橘산귤,靑橘청귤,倭橘等樹甚盛。왜귤 등, 나무들이 심히 무성하다.
間植梔子。사이사이에 치자나무를 심었다.
霜後諸果政濃熟。서리 내린 후에 모든 과실이 확실히 무르익고
綠葉金苞。푸른 잎이 누런색으로 변했다.
燦爛相暎。찬란하게 서로 비추며
樹高不過丈餘。나무의 키는 한길 남짓 이상은 넘지 않고
糾結磊磈。돌무더기에 얽히고 헝클어져 있다.
如虯蛇狀。뱀의 형상을 하고 있고
古榦瘦勁。묵은 줄기는 마르고 힘이 있으며,
苔蘚斑蝕。이끼는 좀먹어 아롱져있다.
新叢靑嫩。푸르고 야들야들한 새 숲이
尤可愛。더욱 사랑스럽고
最高樹下。가장 높은 나무 아래
累石作壇。여러 돌들이 제단을 만들었는지,
可坐半百人。50명의 사람이 앉아 있다.
布席列壺觴。자리를 깔고 술과 술잔을 벌이며
摘果佐酒。과실을 솎아 술안주 삼는다.
向曛。날이 어둡도록 권한다.
缺月微透。이지러진 달이 어렴풋이 환하고
淸颸徐來。맑고 선선한 바람이 서서히 불어온다.
繁陰散亂。무성한 나무그늘이 어수선하고
濃香馥郁。풍기는 짙은 향기가 그윽하다
眞奇絶景也。참으로 기이하고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경치로다
恨不得與會心人共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지 못해 안타까우며,
此淸翫也。이에 깨끗한 놀이로다.
["黃堂掩暎橘千頭 천두의 귤나무가 집을 감싸 누런빛을 비추며
綠葉陰中几舃幽 가을의 푸른 잎에 몇 마리 까치 아득하네.
簾幕坐邀瀛島月 주렴 장막에 앉아서 바다 섬의 달을 만나고
階除閒弄洞庭秋 층계엔 한가하게도, 골짜기 집 뜰(동정호)에 가을빛이 희롱하네
團圓金顆堪投鵲 둥근 황금 열매, 까치가 덤벼도 견뎌내고
蟠屈苔査欲學虯 이끼 찌꺼기는 뱀을 흉내 내고자 빙 감아 구부러졌네.
更愛濃香凝燕寢 좋아하는 짙은 향기가 한가한 방에 엉기는데
官梅不必說楊州 양주 고을 관아의 매화, 무슨 말이 필요할까."]
/ 東坡詩(동파시,소식蘇軾)。聞道黃柑常抵鵲(잘 익은 홍귤은 항상 까치를 꺼린다)
[주] 동각관매(東閣官梅) : 남조(南朝) 양(梁) 나라 하손(何遜)이 심취했던 양주(揚州) 고을 관아의 매화꽃. 하손이 일찍이 양주에 머물면서 매화 한 그루를 사랑하였는데, 뒤에 이를 못 잊어 다시 양주를 자청해서 부임한 뒤, 종일토록 나무 밑을 서성이며 시를 읊었던 고사가 있다.
▶ 이해조(李海朝, 1660년~1711년) : 조선의 문신. 자는 자동(子東), 호는 명암(鳴巖), 우의정 정구(廷龜)의 증손, 대제학 일상(一相)의 아들. 1689년(숙종15)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있다가 1694년 왕후가 복위된 후 빙고 별검(氷庫別檢)이 되고, 1702년 전주 판관(全州判官)으로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했으며, 정언(正言)·부교리(副校理)·집의(執義)·대제학을 역임하고 전라도 관찰사에 이르렀다. 조부 때부터 3대가 모두 대제학(大提學)을 지냈으며, 시문에 능하여 김창흡(金昌翕)으로부터 천재라는 격찬을 받았다. 1706년(숙종 32) 제주어사(濟州御使) 이해조(李海朝)가 주관한 시험인, 문과 초시를 실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