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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4기 – 주제로 살펴보는 요한복음>
제4과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말하는 증인들(Witnesses of Christ as the Messiah)
<10월 19일/안>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성경에 비치는 모든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구약과 신약 성경을 하나로 연결하여 그분을 증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 영생에 대한 소망이 중심이 되는 분으로 제시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대한 지식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선언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383)
◎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분은 요한의 기별을 듣고 깊은 확신을 얻은 것을 기억하라고 그들에게 호소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아버지의 증거가 주어졌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영문 시조, 1893년 11월 13일)
◎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의 위대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요한, 안드레, 시몬, 빌립, 나다나엘 등 다섯 명의 제자를 택하셨다. 이들은 구세주의 사역에 동행하고, 그분의 거룩한 가르침을 받고, 그분의 강력한 기적을 목격하여 세상에 알리기 위해 비천한 직업에서 부름을 받았다.
갈릴리 가나에 결혼식이 있었다. 당사자들은 요셉과 마리아의 친척들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가족 모임에 많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모일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새로 사귄 제자들과 함께 가나로 향하셨다. 예수께서 그곳에 오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예수님과 그분의 친구들에게 특별한 초대장이 보내졌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의도하신 일이었고, 그래서 그분은 그 잔치에 참석하여 은혜를 베푸셨다. (Redemption: Or the Miracles of Christ, the Mighty One, 3).
<10월 20일/일, 침례자 요한의 증언>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선지자 요한에게 맡겨진 큰 일이 있었지만 지상에는 그가 다닐만한 학교가 없었다. 그는 도시에서 떨어진 광야에서 학문을 습득하여야 하였다. 그가 연구해야 할 책들은 구약 성경과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연계였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주의 길을 예비하는 그 사업에 적합한 인물로 만들고자 하셨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 콩과 야생 꿀이었다. 사람들의 관습과 관례들은 이 사람의 교육이 될 수가 없었다.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은 그의 품성 형성에 하나도 섞여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 …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고, 그리고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셔서 그가 백성들에게 회개를 호소하고 더 높고 더 고상한 생애를 촉구하는 큰 사업을 하도록 그의 마음에 뜨거운 열심을 불붙이셨다. 요한은 삼십 년 간 그를 두르고 있는 광야의 산과 바위들같이 주변 환경에 의해서 동요되지 않고 백성들 가운데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고되고 궁핍한 은둔 생활을 통하여 그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거기에 맞추어 통제하고 있었다. (화잇주석, 눅 1:80)
◎ 요한의 유년 시절과 청년 및 장년 시절은 확고부동함과 도덕적 능력으로 특징 지어졌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마 3:3)라는 그의 음성이 광야에 들리자 사탄은 자기 왕국의 안전을 인해 두려워하였다. 죄의 죄악 됨이 사람들을 무서워 떨게 하는 그러한 방법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었던 사탄의 권세는 파괴되었다. 사탄은 하나님께 송두리째 바친 그의 생애에서 침례자 요한을 돌이키게 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해 왔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을 정복하는 일에도 실패하였다. 사탄은 광야의 시험에서 패배함으로 그의 분노는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요한을 침으로 그리스도를 슬픔에 빠지게 하려고 결심했다. 사탄은 자기가 범죄 하도록 꾈 수 없었던 그분에게 고통을 안겨 주려 했다. (소망, 223-224)
◎ 요한의 증언은 긍정적이었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주어졌다. 그는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손으로 만진 것, 곧 생명의 말씀에 대해 증언했다. 예수께서는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요한의 말을 믿었지만, 사탄의 명령을 받은 후 교만과 불신이 그들의 마음속에 작용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시기, 질투, 노골적인 증오가 드러났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영문 시조, 1893년 11월 13일)
<10월 21일/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수님의 침례 때 요한이 그분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가리켰을 때 새로운 빛이 메시아의 사업을 환히 비추었다. 요한의 마음은 “그가 …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사 53:7)이라는 이사야의 말에 쏠리고 있었다. 그 후 여러 주일 동안 요한은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예언의 말씀과 제사 의식의 가르침을 연구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업의 두 국면, 곧 고난 당하시는 희생 제물과 승리하시는 왕으로서의 두 국면을 분명히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분의 강림이 제사장들이나 백성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 요한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돌아오셔서 무리 가운데 계신 것을 보았을 때 그분께서 그분의 본성에 대한 어떤 표징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것을 확신하며 지켜보았다. … 그러나 한마디의 말씀도 없었고 아무런 표징도 주어지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분께 대한 침례자 요한의 선포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요한의 제자들과 사귀면서 그분의 특별한 사업에 대한 외적 증거를 주지 않으셨고, 남의 이목을 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으셨다. (소망, 136~137)
◎ 이튿날 요한은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본다. 하나님 영광의 빛이 자기에게 머무르자 요한은 그의 두 손을 펴면서 이렇게 말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서 …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요 1:29~34). (소망, 137)
◎ 요한은 자기가 침례를 베풀어 준 분이 세상의 구주라는 것을 알았다. 성령께서 그분에게 임하자 그는 손을 펴서 예수님을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 청중 가운데 한 사람도, 심지어 그 말을 한 요한조차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이 말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자기 아들이 “내 아버지여 …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고 묻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대답하기를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7~8)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에게서 사람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실 그분의 표상을 보았다. 성령께서는 이 사건을 취해서 이사야를 통하여 구주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그가 …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으며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사 53:7, 6) (소망, 112-113)
<10월 22일/화, 요한의 두 제자>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곁에 있고자 노력했으며, 이런 소원은 이루어졌다. 열두 제자 중에 이 세 사람은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였다. 요한은 그리스도와 누구보다도 친밀해지고 싶었다. 실제로 그는 그런 관계를 누렸다. 요단 강가에서 처음으로 모인 집회에서, 안드레는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즉시 그 형제를 부르러 달려갔으나, 요한은 조용히 앉아서 그리스도의 기이한 말씀을 듣고 명상에 잠겼다. 그는 언제나 열심히 주님을 따르고 그 말씀을 들었다. …
요한은 교제하기를 좋아하며 사랑과 동정이 가득했다. 그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곁에 앉아 그분의 가슴에 기대곤 했다. 마치 꽃이 태양과 이슬을 받듯이, 그는 하늘에서 내리는 빛과 생명을 받아 마셨다. 사랑과 숭배 그리고 동경에 가득한 마음으로 구주를 바라보던 그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그분과 더불어 교제하는 일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다. 마침내 그의 품성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영하였다. (교육, 87)
◎ 그들은 요한을 떠나서 예수님을 찾으러 갔다. 둘 중의 하나는 시몬의 형제 안드레였고 다른 하나는 전도자 요한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 최초의 제자들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충동에 움직여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다. 이는 그분과 함께 이야기 하기를 간절히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과 침묵 속에서 “이분이 메시아인가?”라는 중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를 따르고 있는 것을 아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전도하신 처음 열매들이었으므로 이 사람들이 그분의 은혜의 초청에 응답하였을 때 하늘의 교사이신 예수님의 마음은 기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보시면서 “무엇을 구하느냐?”라고만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돌아가거나 혹은 자신들의 소원을 이야기하거나 간에 그들의 자유에 맡기실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그분[메시아]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외쳤다. 길가에서 잠시의 면담으로는 그들이 바라던 것을 받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따로 만나서 그분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말씀 듣기를 원하였다. (높임, 168)
◎ 요한과 안드레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불신의 정신을 갖고 있었더라면 예수님의 발아래서 배우는 자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비평가로서 그분께 나왔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함으로 가장 귀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이 첫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침례자 요한이 전도할 때 성령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였다. 그들은 이제 하늘 교사의 음성을 알아보았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신선함과 진리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룩한 조명(照明)이 구약성경의 교훈을 비추었다. 진리의 다양한 주제가 새로운 빛 속에서 솟아 올랐다. (소망, 139)
<10월 23일/수, 빌립과 나다나엘>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빌립은 그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 또한 즉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 (소망, 139)
◎ 빌립은 나다나엘을 불렀다. 나다나엘은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지적할 때 무리들 가운데 있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보자 실망하였다. 수고와 빈곤의 흔적을 지닌 이 사람이 과연 메시아일까? 그러나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거절하기로 결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요한의 기별이 그의 마음에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다나엘은 빌립이 불렀을 당시 조용한 숲속에 물러가서 요한이 선포한 말과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명상하고 있었다. 그는 요한이 선언한 그분이 구속주이시면 자기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셔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위하여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확신시켰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는 기별은 나다나엘에게 자기의 기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으로 보였다. … [그러나] 선입견이 일어났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였다.
빌립은 논쟁하지 않았다. 그는 “와보라”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다나엘은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홀로 기도하던 나다나엘에게 증거하였던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셨다. 의혹을 가지고 어느 정도 선입견에 빠져 있기는 했지만, 나다나엘은 진리를 찾는 정직한 욕구를 가지고 그리스도께 나왔다. 이제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의 믿음은 자기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자의 믿음을 능가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높임, 81)
◎ 나다나엘이 랍비들의 지도를 신뢰했더라면 그는 결코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제자가 된 것은 스스로 보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입견을 가지고 선으로부터 물러서는 많은 사람의 경우도 그러하다. 만일 그들이 “와 보”면 그 결과는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인간적인 권위의 지도를 신뢰하는 한 아무도 진리의 구원하는 지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다나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연구하고 성령님의 깨우쳐 주심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던 나다나엘을 보신 분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우리도 보실 것이다. 빛의 세계에서 내려온 천사들은 겸손하게 하늘의 지도를 구하는 자들 가까이에 있다. (소망, 140-141)
<10월 24일/목, 니고데모의 증언>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거듭남의 대진리가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나타났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3-8). (실물, 98)
◎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가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목격했을 때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확신이 굳어졌었다. 니고데모는 너무 교만하여 그 갈릴리 선생을 동정하면서도 공공연히는 인정하지 못하고 은밀하게 회견하고자 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회견에서 그에게 구속의 경륜과 세상에 대한 그분의 사명을 나타내셨으나 여전히 니고데모는 주저했었다. 니고데모는 진리를 그의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으므로 삼 년 동안 표면적인 결과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그리스도를 공공연히 승인하지 않으면서도 산헤드린 공회에서 그리스도를 멸하려는 제사장들의 음모에 대해서는 거듭 반대했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니고데모는 감람산의 밤중 회견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요 3:14)라고 하셨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깨달았다.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 비용을 담당하였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였으나, 니고데모와 요셉은 그들을 도우려고 담대히 나아왔다. 부자요 명예가 있는 이 사람들의 도움이 그 어두운 시간에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들은 운명하신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제자들이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할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의 재산과 영향력으로 제자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악의에서 크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행적, 104)
◎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 대한 체험적인 지식이 없는 자가 매우 많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성령님의 깊은 감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기호에 따른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저희의 구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그분이 저희에게 죄를 이길 능력을 주실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 계신 구주와 개인적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의 품성은 선천적인 결함과 후천적인 결함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 …
이런 사람들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진리의 말씀을 스스로 깨닫는 데 있다. “거듭나야 하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7, 3). (실물, 48)
<10월 25일/금, 다 깊은 연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분을 알기 위하여, 6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5).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파괴적인 죄가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마음으로부터 슬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제한된 감성은 주께서 인간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죄를 보실 때 슬퍼하신 슬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신 구세주의 고상하고 순결한 빛을 통하여 볼 때에 인간 가족이 고생을 당하는 그 병균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 그들에게 임한 병균임을 알 수 있다. 그분은 고난 당하는 모든 사건마다 그 원인을 규명할 수가 있었다. 그분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의 최후 종말에 관한 슬프고도 무서운 역사를 알고 계신다. 그분은 그들이 빠진 웅덩이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자신뿐임을 알고 계셨다. 그분만이 그들의 발을 옳은 길로 놓을 수 있었다. 그분의 완전하심만이 그들의 불완전함의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아셨다. 그분만이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그분 자신의 흠없는 의의 옷으로 덮으실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원하셨으며 그분은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린 바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오! 만일 인간 가족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죄악과 폭행과 범죄사건의 결과를 볼 수만 있다면! 사람은 순결하고 거룩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함으로 인하여 사탄의 속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형상을 쓰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에 순종하시고 인간의 질병과 슬픔과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인간들에게 나타나셨지만 한 사람의 죄인이 되신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순결하시고 어떤 질병으로도 더럽힘을 받지 않으셨다. 단 하나의 점이나 흠도 그분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 그분은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 앞에 서셨다. 괴로워하는 인성이 그분에게 엄습했으나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건강한 상태로 계셨던 주께서는 인간과 함께 괴로워하시는 분이 되셨다. 인간을 위하여 주께서 그분 자신의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심은 본질적인 것이었다. …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리만큼 충분히 강하셨다.
◎ “무화과나무 밑으로 가라” (1기별, 414~415).
나다나엘은 침례 요한이 구세주를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구원자이신 주님의 외모를 보고 실망하였다. 고생과 궁핍의 흔적을 가진 저가 어떻게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예수님은 노동자이셨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셨다. 나다나엘은 더 생각할 필요가 없는 듯이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과연 어떤 성품의 소유자였는지에 대하여 결정적인 견해를 굳히지 않았다. 그는 무화과나무 밑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사실상 그분이 메시아였는지 하나님께 물어보았다. 그가 아직 그곳에 있을 때 빌립이 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사렛”이란 말이 또다시 그의 불신을 자극시켰으며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였다. 그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빌립은 그의 편견을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빌립은 단순하게 “와 보라”라고 하였다. 나다나엘이 예수님 앞에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은 깜짝 놀랐다. 그는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5-48)라고 하셨다.
우리들 역시 무화과나무 밑으로 가서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해야 옳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나다나엘을 내려다보신 것처럼 우리들을 내려다보실 것이 아닌가? 나다나엘은 주님을 믿게 되었으며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49-51).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것을 우리가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의존하지 않고 그분을 의존하기를 바라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가 새 마음을 갖기를 바라신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빛의 계시를 우리에게 주려고 하신다. 우리는 모든 난관과 더불어 씨름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논쟁점이 있는 교리들이 제시되었을 때 그대는 인간의 의견을 묻기 위하여 사람을 찾아가서 그의 의견을 듣고 그대의 결론을 얻으려고 하는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대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고하고 그대의 성경을 들고 마치 숨은 보화를 찾듯이 말씀을 연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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