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천사의 섬, 증도 여행기(1)-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증도(曾島)’ 이야기를 들은 건 몇 해 전이다. 그 뒤로 증도 출신인 정태기 목사님께서 문 전도사님 이야기를 하셨다. 잊을 뻔했는데 작년 늦가을에 이동춘 목사님한테 또 들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올가을을 안 넘기려 ‘증도’ 여행 날을 내 생일 다음 날로 잡았다. 내 차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안내에 따라 ‘문준경길’을 찾아 증도대교를 건너 증도에 도착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증도초등학교 강당에서 면 노인의 날 경로잔치가 벌어졌다. 아내는 점심 대접을 잘 받았다며 좋아했다. 바로 옆에 높은 십자가가 보였다. 얼른 올라가 보니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었다. 그때야 길 이름이 문 전도사님의 성함을 본 떠 ‘문준경 길’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뒤로 둘러선 산과 멀리 탁 트인 바다가 어우러진 동산이 마음에 들었다. 넓은 정원에 3층 새 건물과 바로 앞에 십자가 탑이 있고, 오른쪽에는 생활관이 있었다. 기념관 전면 분홍색 벽에 새겨진 요한복음 12장 24절이 눈에 띄었다. 문 전도사님의 생애를 담아 써놓은 성경 구절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층 전시실은 문 전도사님의 출생에서부터 전도사 사역을 준비할 때까지 고난의 삶을 소개했다. 문 전도사님은 1891년 2월 2일 전남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진사인 할아버지 덕으로 넉넉한 가정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총명한 아이로 부모와 조부모, 이웃을 사랑했다. 글을 배우고 싶어 아버지에게 간절히 구했지만 아버지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며 거절했다.
문 전도사님은 열일곱 살에 증도면 등산리 정근택이란 청년과 결혼했다.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살았다. 그렇지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시아버지께 글을 배우고 익혔다. 시아버지가 죽고 삼년상을 치른 뒤 20년 살던 증도를 떠나 오빠가 사는 목포로 갔다. 재봉틀로 삯바느질을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갔다. 문 전도사님의 손때가 묻은 재봉틀은 문 전도사님의 고된 삶을 증언하고 있었다.
문 전도사님은 서른여섯 살 때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틈나는 대로 성경을 열심히 읽고 암송하며 묵상을 했다. 찬송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너는 내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집사 때 신안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전했다. 성경지식이 부족함을 알고 전도하려면 체계적인 학문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결혼한 여성은 입학할 수 없다는 입학규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이성봉 전도사님의 추천을 받아 마흔 살에 경성 성경학원에 청강생으로 입학했다. 이성봉 전도사님의 신원보증으로 드디어 정식학생이 됐다. 하나님께서도 문 전도사님의 간절한 소원에 감동하여 들어준 거라 여겼다.
2층은 문 전도사님의 박해와 헌신의 삶을 체험할 수 있어 마음이 저렸다. 6년 동안 방학 때는 고향에 내려와 복음을 전했다. 문 전도사님은 풍선(風船)을 타고 노두길을 걸어서 신안 섬을 다니며 전도활동을 했다. 노두길을 걸어보고 성경책과 고무신을 볼 때는 문 전도사님의 활동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찬송가를 잘 불러 찬송을 듣고도 섬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한다. 전도사님은 신학공부를 하면서 임자도의 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중동리, 대초리에 교회를 세웠다. 또 재원리, 방축리, 우전리에 기도처도 세웠다. 여성의 몸으로서 토속신앙이 강한 섬 지역에서 큰일을 한 문 전도사님께 머리가 숙여졌다.
6‧25전쟁 때 쳐들어온 공산주의자들이 문 전도사님을 체포하여 목포로 이송했다. 그때 목포는 인민군 철수로 피할 수도 있었지만 섬에서 인민군들이 교인을 해칠 걸 마음 아파해 성도를 지키려 다시 풍선을 타고 목양지인 증도로 들어갔다. 문 전도사님은 새끼줄에 묶여 끌려가다 발로 차이고 창에 찔리고 총대로 후려침을 당했다. ‘새끼 많이 깐 씨암탉’이라고 목에 총을 맞았다. 초대교회 스테반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쉰아홉 살에 순교했다. 순교의 우렁찬 기도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아버지여, 저들에게 죄를 묻지 마시고 죄 많은 내 영혼을 받으소서.”
문 전도사님은 목포에서 피하든지, 아니면 며칠만 늦게 증도에 갔더라도 죽음을 면할 수 있었는데 인민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건 아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증도의 성도를 품으려 자원해서 죽음을 선택한 게다. 세계적 영적인 여성 지도자, 섬 지역에 천사 같은 문준경 전도사님이 계셨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순교체험관의 동영상을 못 보고 나온 게 원망스러웠다. 내일 한 번 더 들르고 싶었다.
※ 풍선(風船) : 바람으로 움직이는 돛단배
※ 노두길 : 노두는 징검다리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옛날 말에 오르내리려 발돋움을 위해 놓은 노둣돌을 썰물 때 건너다니던 길. 썰물 때 섬과 섬을 잇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