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작/기막힌 날/ 조옥자

[박종희]

당신들 내 몸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뜨거운 액체가 팔뚝을 타고 가슴에서 발끝까지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흉부 CT를 찍어야 한다고 해서 조영제(造影劑)를 맞았는데 전신이 후끈거렸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문자가 계속 왔다. 병원을 정해서 예약을 했다. 평소에 소화도 잘 안되고 변비도 심하기에 큰맘 먹고 대장암과 위암 검사는 수면 내시경으로 받기로 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났는데 진료실에서 다시 호명을 했다. 위내시경 검사 담당 선생님이 사진을 보여주며 종합병원에 가서 재검을 받으라고 했다. 사진에는 식도와 위 사이에 주먹만 한 게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재검 의뢰서와 내시경 검사결과가 담긴 사진을 들고 세브란스병원에 접수를 했다. 진료일은 일주일 후라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위와 식도에 관한 모든 것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마침내 예약한 날 소화기 내과 전문의 앞에 앉은 나는 엄습해오는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담담해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식도 쪽에 이상 소견이 있으니 흉부 CT 찍고 가라고 했다. 그에게 “혹시 암이에요?” 물었더니 아닐 수도 있구요, 하면서 2주 후에 결과를 보러 오라고 했다. 온몸이 후들거려왔다. 그러나 결과가 나올 때까진 자식들한테는 내색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귀가해서 보니 휴대폰에 카카오톡과 또 메시지로 알림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2 주일 후 열 시에 암 병동 3층 몇 호실로 결과를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암인가? 마침내 내게도? 분명 암인가 보다.


그날부터 나의 2 주일은 마음도 몸도 피곤하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이 심신을 죄는가 하면, 먼저 떠난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긴 세월 암 투병을 한 남편, 그 남편을 직접 간병했기에 나는 누구보다도 암 환자의 고통을 잘 안다. 또다시 인터넷을 뒤져 식도암에 관한 모든 걸 섭렵했다. 췌장암과 더불어 생존율이 가장 낮으며 5년 생존율이 45%, 대장을 잘라서 잇는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수술이다. 전조 증상으로는 소화가 잘 안 된다 등등. 그래서 그렇게 소화가 안 되고 끅끅거리며 신물도 올라왔구나 싶었다. 그래도 생경스러웠다. 위가 좀 약한가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나는 식도암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척추가 안 좋을 뿐 다른 장기는 문제없다고 자신했었다. 밥맛조차 뚝 떨어져 버렸다.


12년 전에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5년 후에 다시 한 번 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허리가 아파서 용하다는 한의원이며 침술원을 드나들었지만 그저 그때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허리가 안 펴지는 바람에 시술도 받았었다. 그러나 통증은 여전했고 파스와 진통제로 견디어 내다 수술을 결심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척추 전문병원에 상담예약까지 해놓았는데 정기 건강검진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작별의 준비를, 가까운 주변부터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 내가 여러 날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 먹이 주기가 어려우니 네가 구피 좀 가져다 기르라고 했다. 구피가 너무 많아 미장원에도 분양을 해줬더니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음 날은 수석(壽石) 좋아하는 친구에게 관리하기 힘들어서 그러니 가져가라고 했다. 친구는 당장에 남편과 함께 트럭을 몰고 와서 수석을 모두 실어갔다. 남편이 젊어서부터 직접 채석(採石)도 해가면서 모아들인 것들이었다. 그 다음 날은 화분들도 친구들에게 하나둘 나누어 주었다. 갑자기 집안이 휑해졌다. 옷 정리도 시작했다. 좀 낡은 것들은 모조리 재활용통에 넣어버리고 조금 아깝지만 잘 안 입던 것들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친구한테 연락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그릇도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내버렸다.


이렇게 며칠 나눌 것은 나누고 버릴 것은 버리며 집안 정리를 하고 있는데 딸이 찾아왔다. 딸은 갑자기 변해버린 집안을 둘러보고 어리둥절하였다. 나는 가능한 침착하게, 담담한 어조로 그동안의 얘기를 짧게 전했다. 그리고 오라비한테는 결과 나오면 얘기하라고 했다. 그제야 딸내미는 엄마 성질도 급하지, 결과도 안 나왔는데 뭘 단정 짓고 야단이냐며 괜찮을 거야 엄마, 한다. 그러면서 집안이 깨끗해졌네, 넓어져서 좋아,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리곤 오빠도 알아야 한다며 기어이 전화를 했다. 그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오던 전화가 두세 번으로 늘었고 나는 과도한 관심은 사양해, 하면서 귀찮은 척을 했다.


검사결과를 보러 가는 날, 굳이 아들 딸 모두 따라나섰다. 암 병동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빨리도 움직이는 듯했다. 차례를 기다리며 잔뜩 긴장한 나의 손을 딸이 꼭 잡아주었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식도와 위 사이에 게실(憩室)이 커져서 소화가 안 되셨을 거예요. 일 년마다 추적 관찰이 필요하니 일 년 후에 내원하셔서 CT 찍도록 하세요, 했다. “암이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순간 다리에서 힘이 쑥 빠지며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부축하러 다가온 아들이 의사에게 시선을 맞추며 침착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암 병동으로 결과를 보러 오라는 문자에 어머니께선 백 프로 암이라고 단정, 기다리는 2주 동안 무척이나 힘들어하셨습니다, 라고. 아들의 말에 의사 선생님이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 제가 암병동 근무라서요.”
참, 기막힌 날이었다.

[심산]

진짜 어이없는,
기막힌 날이네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작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