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 [0729]
요한1서 4,7-16 요한 11,19-27
2024. 7. 29. (월) / <마르타기념일>에서, 기념축일변경(2021년부터)
주제 : 사랑을 보인 한 가족과 예수님
오늘은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던 라자로, 마르타 그리고 마르타의 가족과 관련한 축일입니다. 이들은 베타니아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 너머에서 가까운 동네입니다. 그렇게 이름을 가진 베타니아라는 동네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그 집에 자주 들르셨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이전에 라자로의 부활이 있었던 곳이며, 마르타의 충실한 봉사를 받으셨고,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들은 마리아가 정성을 보인 일로 예수님이 특별히 감동하신 형제와 자매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한 장소가 놀라운 곳이 되는 일은, 그 장소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그 장소에 살던 사람들이 드러낸 삶의 모습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가 베타니아는 아니지만, 베타니아처럼 특별한 일이 일어난 곳이 되는 방법은 우리가 예수님과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살던 가족을 사랑하셨다는 일을 편애(偏愛)라고 생각하여 질투하는 마음을 가져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을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는 곤란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질투하는 마음을 드러내어, 내 삶이 좋아진다거나,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대상이 받을 영광을 높이는 일이라면 권장할 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하는 동물이 드러내는 특징은 질투의 마음에서 좋은 것을 만들지 못합니다. 결국, 질투를 담은 행동은 좋지 않은 행동이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로 들은 독서는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은 무엇이겠습니까?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다양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랑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삶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나만 사용해도 좋다고 말하지 않으며, 삶의 효과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행동을 담을 때 우리가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었는데 누구를 위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겠습니까? 내가 사랑을 베풀었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모양으로 그 사랑을 돌려받겠습니까?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라자르와 마르타 그리고 마리아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훌륭한 본보기의 모습을 우리가 현실에서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사랑은 내가 돌려받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내가 드러낸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이 연결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