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91/200220]“고맙다, 나의 누이들이여”
드뎌, 마침내, 결국 3개월여만에 다 먹었다. 흑염소엑기스 팩 100여개. 지난 늦가을, 사랑하는 여동생 셋이 사준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오직 황감할 따름이었다. 한 마리에 50여만원 간다 던데. 제발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말겼건만, 막무가내로 보낸 택배. 그래, 좋다. 이 못난 오라버니 건강을 염려하는 동생들의 선물이니, 기쁘게 받자. 돈이 문제가 아니고 이 오빠의 건강을 희원希願하는 마음씨에 또 한번 ‘한 감동’을 했었다. 아침저녁으로 한 포씩, 약간 덥혀 마시기를 일 삼았다.
사연인즉슨,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77kg 나가던(평소 항상 76∼79kg) 몸무게가 급격히 빠지기 시작, 여름쯤부터는 65kg까지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상조짐은 없었다. 나를 아는 친인척, 친구, 지인들이 보기만 하면 하는 소리 “먼 일 있는 것 아니여? 여러 가지 정밀 검사해 봐” 하도 들으니, 종당에는 누군들 만나기가 꺼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니, 어찌 사랑하는 여매女妹들이 걱정을 하지 않으리오. 물론 아내의 “단 것과 술은 절대 금물禁物이다” 잔소리가 요란했다. 내가 거울을 봐도 한심하기는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당뇨糖尿, 다음은 고향집 고친다고 평생 안해본 노가다(삽질 등 육체노동)를 짧은 기일내 무리하게 한 것.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10년째 상담하고 있는 당뇨糖尿 주치의 말은 “하루 2알 먹는 약 중에 살 빠지는 성분이 있는데, 너무 빠진 것같군요. 70kg정도에서 관리를 하면 좋을텐데”라고 했다. PSA 수치가 많이 높다고 서울대병원에서 골치 아프다는 전립선암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암은 아니어서 곧바로 전립선비대증 수술을 받았다. 아마도 원인은 10여년째 지병持病인 당뇨 때문일 터인데, 여매들은 친정집 수리에 무리한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흑염소엑기스는 원래 몸이 찬 여성들에게 잘 맞는 보약補藥이라는데, 지난 봄에 아내가 해준 흑염소가 나의 체질에 특별히 맞는 듯했다. 정성들여 중탕을 해준 것을 다 복용하니, 몸이 확실히 좋아진 듯했다. 몸무게도 조금 늘었다. 이럴 경우, 가을에 한번 더 먹어야 한다고 해 이뤄진 일이다. 사람에 따라 설사를 하거나, 몸에 맞지 않아 먹다가 그만두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그렇게 비위가 상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말처럼, 건강해진 것같다. 며칠 전 재본 당뇨지수가 ‘공복 102 식후 2시간 122’ 10여년만에 처음으로 가장 낮은 수치이다. 물론 약을 먹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제 당화혈색소(3개월 통합 평균지수)도 6.5 이하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이제 어머니는 영원히 내 곁에 계시지 않지만, 나를 사랑하는 네 명의 여인(식이요법 헌신獻身의 아내, 흑염소즙를 선사한 세 명의 동생)의 바람처럼 나는, 건강해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각골명심刻骨銘心하고, 노오력하자. 그 좋아하는 술도 최대한 자제自制하고 절제節制하고. 그러지 않으면 나는 나쁜 남편, 나쁜 오빠가 되고 말지니.
여기에서 동생들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야겠다. 59년생 돼지띠, 61년생 소띠, 63년생 토끼띠, 모두 두 살 터울. 동생들도 나를 신뢰하고 따르는 편이지만, 솔직히 나는 동생 셋이 있는 게 너무 좋았다. 그것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이었으므로.
# 환갑이 넘은 큰동생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머니를 닮았다. 먹을거리, 입성 등 친정부모, 남편, 아이들 챙기기를 넘어 친정집 오빠, 동생들에게까지 마음을 쓰는 ‘극성’이 장난이 아니다. “오촌떡(어머니 택호宅號) 닮아간다”며 다들 혀를 내두른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최청崔淸”이라며 효녀 큰딸을 칭찬하실까. 나에게 마치 큰누나같은 동생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화까지 세게 내니, 눈치를 봐야 할 판이다. 광양(본댁)-인천(남편)-의왕(딸)-임실 오수(친정아버지) 등 ‘이산가족’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고, 한 달 교통비만 50만원이 든다는데, 아직은 끄떡없다. 예쁜 외손녀의 재롱까지 있으니, 일주일이 멀다하고 네 집을 순례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부디 건강하기를.
# 둘째 동생은 한마디로 무엇이든 ‘똑소리’가 난다. 입이 얼마나 야무졌으면 일곱 살에 학교를 보냈을 것인가. 방송대학교를 100% 장학금으로 졸업하더니, 내처 편입까지 한 열성파 늦깎이 대학생. 어찌 주부로만 있었을 것인가. TM(텔레마케팅 매니저)로 수원에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섬에서부터 시작한 초등학교 선생님 사모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 현모양처賢母良妻의 표상이다. ‘얼리 어댑터early adaptor’답게 구순의 아버지께 휴대폰 열강을 몇 차례한 덕분에 아버지는 카톡문자나 사진 전송도 문제없고, 심지어 나도 잘 못하는 인터넷뱅킹을 일상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1년 여주에서 친정아버지 모시기에 완벽을 기했다. 물론 애교파 사위의 공로를 빠트리면 안되리라. 일성(언제나) 짱짱하기를.
# 우리집 막내, 언젠가 쓴 적이 있지만, 어릴 적 별명이 ‘벌 것’이었던 막내는 보기만 해도 아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바보같이 착하다. 남편은 충청도 양반으로 “윤서방은 똥도 아깝다”며 어머니가 칭찬한 인물이다. 농촌 큰며느리로 시집을 가, 시부모께 얼마나 잘 했으면, 30년도 넘었는데, 사돈들의 칭찬이 입에 마를 정도이다. 어머니 장례식장에 사돈집 대가족(5남매)이 모두 문상을 오셨으니, 말하면 무엇하랴. 몇 년 전 시골집에서 막내가 내 무릎을 기대고 누었는데,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막내 예쁘다, 예쁘다”를 했으니, 누가 보면 넘사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 중에 누구 하나 선생만 되면 원이 없겠다”던 어머니의 소원을 유일하게 풀어준 딸, 첫 봉급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10만원씩을 곗돈 붓듯이 아버지께 자동이체하는 딸. 어찌 예쁘지 않겠는가. 애기도 징글럽게 예뻐하는데, 두 아들조카 빨리 결혼하여 떡뚜꺼비같은 손주 앵겨주어라.
여동생들 자랑과 칭찬은 이만 줄여야하지만, 딱 한마디만 더 해야 한다. “아아- 나의 누이들이여! 사랑한다. 내 동생 되어준 것이 진짜 고맙고 기쁘다”
첫댓글 내 평생 가장부러운 여동생을 셋이나 가진 친구는 세상 행복한 사나이일세.
어머니 떠나신 빈자리를 채워주는 여동생들ㆍ
복받았네
복터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