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우크라이나에 병합) 국립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리스 자르 작곡 <라라의 테마>
러시아 민속악기(발랄라키아)가 대거 보이고 있습니다. 삼각형 스타일도 있고 타원형 스타일도 있습니다.
* <닥터 지바고>의 한장면
[ 장대한 서사극의 거장, 데이비드 린 ]
1908년 영국 크로이던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시절 우연히 본 영화에 매료되어 무작정 영화계에 입문, 스튜디오에서 잡역부 등으로 일하면서 1930년대에는 편집기사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42년 영국 최고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노엘 카워드와 공동연출로 영화를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합니다.
이후 감독은 영화 <밀회>(1945)를 통해 치밀한 내러티브와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화면 구성으로 감독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데이비드 린 감독이 거대한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영화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이후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담아내면서 <위대한 유산>(1946), <올리버 트위스트>(1948) 등의 영화를 찍습니다.
1950년대 중반 린 감독은 할리우드 자본을 축으로 대작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콰이강의 다리>(1957),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닥터 지바고>(1965) 3편의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 <콰이강의 다리>의 한장면
연출 초기에는 영국 영화를 통해 아름답고 소박한 영국의 리얼리즘을 표상했던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이후,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영화들을 70mm의 렌즈로 사막과 설원의 광대함을 스크린에 담아내어 시각미의 극치를 선사하면서 후대의 블록버스터급 영화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죠.
<닥터 지바고>의 대성공 이후 <라이언의 딸>(1970)을 내놓았지만, 평단의 차가운 비판에 상심이 너무 깊어서였는지 14년 동안이나 작품을 내놓지 않던 린 감독은 1984년 <인도로 가는 길>을 만든 후 차기작을 준비하던 1991년 83세의 나이로 돌연 세상을 떠났습니다.
* <라이언의 딸>에서...
열 여섯 작품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영화를 남겼으나 그의 작품은 모두 26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획득해, 영화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습니다.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장대한 드라마를, 거대한 스케일과 빈틈없이 구성된 작가술로 능숙하게 펼쳐 보였습니다.
* <인도로 가는 길>에서...
특히 풍경 묘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일류급이었죠. 정교하고 섬세한 화면과 장대한 스케일의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후대의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 대표작 소개 ]
< 닥터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데이비드 린이 각색한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서사극이라 할 수 있는 <닥터 지바고>는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의 불안을 차례로 기록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러시아에 미친 막심한 피해부터 구세계의 질서를 붕괴시킨 혁명 그리고 한 차례의 격심한 내전과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소요와 불안까지...
로버트 볼트의 각본은 <닥터 지바고>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스토리를 명민하게 압축하여 경제적·사회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던 1930년대의 시점에서 회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지요.
<닥터 지바고>는 크리스티와 샤리프가 불운한 연인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몇 가지 장엄한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카자크인들이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장면과 지바고의 가족이 전국을 누비며 끝없는 여행을 하는 장면, 지바고가 버려진 시골집에 있는 라라를 다시 만나기 위해 혹독한 겨울 풍경을 헤치고 가는 장면 등이 그렇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노련한 거장답게 각국에서 데려온 유명한 배우들을 잘 조화시켰고, 또한 로드 스타이거 등 조역 연기가 특히 뛰어났습니다. 촬영감독 프레디 영은 러시아의 광활하고 거친 풍광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모리스 자르의 음악은 스토리를 더욱 아름답게 보완해 나갔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연기와 함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닥터 지바고>는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렸으며 텔레비전 방영을 통해서도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 아라비아의 로렌스 >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사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화가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차대전 당시 터키인과 맞서 싸웠던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 영국군 장교 T.E. 로렌스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은 여러 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쥐며 야심만만하다는 말의 의미를 철저히 보여주었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수많은 감독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특히 스필버그와 역시 이 영화의 열광적인 팬인 마틴 스콜세지는 나중에 함께 이 작품을 원작의 길이(216분)로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모리스 자르의 휩쓸어가는 듯한 주제곡과 로버트 볼트의 문학적인 대본, 사막에서 이루어진 프레디 영의 매혹적인 촬영, 거기다 수천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꼭 영화관의 대형 화면으로 보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70㎜ 필름으로 촬영된 형식은 주인공 피터 오툴의 푸른 눈동자부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사막의 모래를 내리비추는 햇빛에 이르기까지 정밀한 세부표현을 가능하게 했지요.
사막의 신기루에서 나오는 오마 샤리프,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불붙인 성냥을 비추어보는 장면과 경탄스러운 아카바 공격 등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장관을 빚어냅니다. 컴퓨터 특수효과가 생겨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더욱 그러하죠.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촬영상, 편집상, 주제곡상, 음향상 등 7개 부분에 걸쳐 상을 받았지만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피터 오툴의 탈락은 이후 8회에 걸쳐 후보에 오르고 끝내 수상을 못하는 불운(?)의 전주곡이기도 했죠(그해에 남우주연상은 <앵무새 죽이기, 일명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의 그레고리 펙이 수상했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작 자체가 기적인 영화입니다. 오마 샤리프가 언급했듯이 당시까지는 무명이었던 출연 배우들, 액션 장면도 거의 없고 여배우와의 로맨스도 없는 그러나 상영시간은 거의 4시간에 달하는 영화를, 그것도 사막에서 찍기 위해 엄청난 제작비가 소요된다는 말을 듣고도 돈을 투자한 제작자에게는 정말이지 존경심이 들 정도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T.E.로렌스는 실제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아랍 민족을 자극하여 독립 투쟁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여러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적인 인물이자 당시에는 터부시되었던 동성애자였으며 아랍 문명을 사랑했지만 결과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를 도와줄 수 밖에 없었던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드라마틱한 인물이지요.
영화 초반의 로렌스의 죽음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데이비드 린이 굳이 로렌스의 죽음으로 영화를 시작한 것은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죠.
오토바이를 타고 엄청난 스피드로 달리다 속도를 통제하지 못해 사고로 사망한 로렌스는 그의 일생 역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뛰어들어 상처입고 실패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영웅의 몰락을 그리고 있죠.
하지만 제목이 무색하게도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로렌스가 아니라 사막 그 자체입니다. 실제 사막에서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화면은 관객들에게 경이로운 대리 체험을 경험하게 합니다. 4시간짜리 영화라고 하지만 스토리는 간결합니다.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광활한 사막의 모래바람과 태양, 그 사이에 존재하는 베두인들입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의 현란한 편집이 난무하는 영화들은 발끝도 따라오지 못할 거대한 이상이 구현되는 장면들도 모두 사막 장면들입니다.
피터 오툴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는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영화의 주연이 알려지지 않는 무명 배우에게 돌아갔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물론 나중에 우리는 피터 오툴이 얼마나 뛰어난 배우인지 잘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무명의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로렌스는 배우가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피터 오툴은 놀라운 통제력으로 로렌스 역할을 100% 이상 소화해 냅니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의 말투, 몸짓 모두에서 로렌스가 동성애자임을 강하게 암시하죠.
기차 습격 성공 후 탈선된 기차 위에서 마치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던 그의 모습을 보시죠. 어린 하인 파리지와의 관계도 연인처럼 느껴집니다. 성정체성 외에도 로렌스의 마조히스트적인 면모에 괴로워하는 부분도 명연기 중 하나입니다. 촌락을 습격했던 터키군을 몰살시킬 때의 광기 어린 로렌스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합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뛰어난 감독의 영감을 스크린에 구현한 이상적인 영화입니다. 문학적인 향취와 스펙터클한 영상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보기 드문 영화이기도 하죠. 영화에서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믿는 부류와 활동사진으로서의 영상미가 중요하다고 믿는 부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입니다.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에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몹시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활짝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