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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곡 (莎堤曲)/ 박인로(朴仁老:1561∼1642)
어리고 졸한 몸이 영총이 이극하니
궁국진취하여 죽어야 말려 여겨
숙야비해하여 밤을 잊고 사탁한들
관솔에 켠 불로 일월명을 도울는가
시위반식을 몇해나 지내연고
늙고 병이 들어 해골을 빌리실새
한수 동 땅으로 방수심산하여
용진강 지내 올라 사제 안 돌아 드니
제일강산이 임자 없이 바려나다
평생몽상이 오래하여 그렇던지
수광산색이 옛낯을 다시 본 듯
무정한 산수도 유정하여 보이나다
백사정반에 낙하를 비끼 끼고
삼삼오오 섞이 노는 저 백구야
너다려 말 묻자 놀래지 말라사라
이 명구 승지를 어데라 들었던다
벽파가 양양하니 위수 이천 아닌게오
충만이 올올하니 부춘 기산 아닌게오
임심 노혹하니 희옹 운곡 아닌게오
천감토비하니 이원 반곡 아닌게오
배회사억하되 아무덴 줄 내 몰라타
애지청란은 청향이 욱욱하여 원근에 이어 있고
난간동계에 낙화가 가득 잠겼거늘
형극을 헤혀 들어 초옥 수간 지어 두고
학발을 뫼시고 종효를 하려 어겨
원거원처하니 차강산지 임자로다
삼공 불환 차강산을 오늘사 알았고야
어지러운 구로와 수 없은 미록을
내혼자 거느려 육축을 삼았거늘
각 없는 청풍명월은 절로 기물 되었으니
남과 다른 부귀는 이 한 몸에 갖었고야
이 부귀 가지고 저 부귀 부를소냐
부를 줄 모르거든 사괼 줄 알리던가
홍진도 멀어가니 세사를 듣볼소냐
화개엽락 아니면 어느 절을 알리던고
중은암 쇠북소리 속품에 섞여 날아 매창에 이르거든
오수를 갓깨어 병목을 열어 보니
밤비에 갓핀 가지 암향을 보내어 봄철을 알외나다
춘복을 처음 입고 여경이 더딘 저기
청려장 비끼 쥐고 동자 육칠 불러내어 속잎 난 잔디에
족용중케 흩걸어 청강에 발을 씻고
풍호강반하여 흥을 타고 돌아 오니
무雩영이귀를 적으나 부를쏘냐
춘흥이 이렇거든 추흥이라 적을런가
금풍이 슬슬하여 정반에 지내 부니
머괴잎 지는 소리 먹은 귀를 놀래나다
정치추풍을 중심에 더욱 반겨
낙대를 둘러 메고 홍료를 헤혀 들어
소정을 끌러 놓아 풍범낭즙으로 가는대로 더져두니
유하전탄하여 천수변에 오도고야
석양이 거인 적에 강풍이 짐즉 불어
귀범을 보내는 듯
아득던 전산도 홀후산에 보이나다
수유 우화하여 연엽주에 올랐는 듯
동파 적벽유인들 이내 흥에 어찌 더며
장한 강동거인들 오늘 경에 미칠는가
거수에 이렇거든 거산이라 우연하랴
산방에 추만커늘 유희를 둘 데 없어
운길산 돌길에 막대 집고 쉬어 올라
임의 소요하며 원학을 벗을 삼아
교송을 비기어 사우로 돌아 보니
천공이 공교하여 묏빛을 꾸미는가
흰 구름 맑은 내는 편편이 떠서 날라
높으락 낮으락 봉봉곡곡이 면면에 버렸거든
서리친 신나무 봄꽃도곤 붉었으니
금수병풍을 첩첩이 둘렀는 듯
천태만상이 참람하여 보이나다
힘세이 다투면 내 분에 올까마는
금할이 없을 새 나도 두고 즐기노라
하물며 남산 나린 끝에 오곡을 갖춰 심어
먹고 못 남아도 긋지나 아니 하면
내 집의 내 밥이 그 맛이 어떠하뇨
채산소주하니 수륙풍도 잠간갖다
감지봉양을 족하다 할까마는
오조함정을 벱고야 말렸노라
사정이 이러하여 아직 물러 나왔은들
망극한 성은을 어느 각에 잊을런고
전마미성은 백수에야 더욱 깊다
시시로 머리 들어 북신을 바라보니
남모르는 눈물이 두 사매에 다 젖나다
이 눈물 보건댄 차마 물러 날까마는
가뜩한 부재에 병하나 짙어가고
훤당노친은 팔순이 거의거든
탕약을 그치며 정성을 비울런가
이제야 어느 사이 이 산밖에 날오소냐
허유의 씻은 귀에 노래자의 옷을 입고
앞 뫼에 저 솔이 푸른 쇠 되도록
함께 뫼셔 늙으리라
💜핵심 정리
▶연대 : 조선시대의 광해군 3년(1611년)
▶갈래: 가사, 은일가사
▶성격: 한정적, 유교적
▶운율 : 3.4조 4.4조의 4음보 연속체,가사체로 되어 있음. 운문체
▶심상: 묘사적 심상
▶주제 : 유유자적하는 한음의 생활 / 사제(莎堤)의 승경(勝景)과 이덕형의 유유자적함.
▶특징
시선의 이동에 따른 시상전개(산을 오르면서 교송, 하늘, 봉봉곡곡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태도가 보임
💛이해와 감상
(용진강 사제의 뛰어난 경치와 그 곳에 한가로이 소요(逍遙) 자적(自適)하는 한음 이덕형의 생활을 그림)
사제(莎堤. 사제는 지명으로, 용진강(龍津江. 경기도 광주지역 한강의 지류) 동쪽 5리쯤 떨어진 곳에 있으니, 곧 한음(漢陰) 이상공(李相公)의 강정(江亭)이 있는 곳이다)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덕형의 사제 생활을 읊은 사제곡(莎堤
曲)
한음 이덕형 가문과 노계 박인로 가문의 최초의 인연은 1601년 2월 한음이 사도체찰사(四道體察使; 충청, 전라, 경상, 강원)가 되어 부임하면서 영천에 있는 광주이씨 시조묘를 찾아가던 중에 우연히 부근의 박인로 조부의 묘를 발견하여 참배하고 가면서 이루어 졌다.
이때 이덕형은 40세로 이미 좌의정을 지낸 신분이었음에도 일개 시골 무관의 조부 묘에 절을 하고 갔다는 것은, 이덕형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박인로의 시문학에 대한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하여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는 이덕형의 별서(別墅)가 있던 용진 사제(남양주시 송촌리)를 자주 찾아 한음과 벗하며 지내면서 많은 시문을 지어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이때 지어진 유명한 시가(詩歌)가 박인로의 <사제곡(莎堤曲)>이다. 박인로의 시가(詩歌) 사제곡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萬曆辛亥春 漢陰大監命作此曲 莎堤勝地名 在龍津 江東距五里許 大監江亭所在處也
(만력신해춘 한음대감명작차곡 사제승지명 재용진 강동거오리허 대감강정소재처야)
1611년 봄에 한음대감의 요청으로 이 노래를 지었는데 사제(莎堤)라는 곳은 용진의 강에서 동쪽 5리 되는 거리에 있고 대감의 정자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이다.
박인로(15611642)는 자는 덕옹, 호는 노계 또는 무하옹이다.
박인로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이 되어 전쟁터에서 싸웠으며, <태평사>를 지어 병졸을 위로했다. 1599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은 순탄치 못했다.
1611년(광해군 3)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광해군 시절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정계를 은퇴, 벼슬에서 물러나 경기도 용진(龍津:지금의 양주군) 사제(莎堤)의 농막에서 은거하며 시국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덕형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박인로가 당시 이덕형을 찾아갔을 때 51세 때 지은 가사로 이덕형의 마음을 대신해 장가체인 가사로 대작한 작품으로, 용진 사제의 뛰어난 경치와 그곳에 한가로이 자연을 벗하며 소요(逍遙)·자적(自適)하는 한음 이덕형의 생활을 그렸다.
이 가사의 강점은 단순한 서경묘사나 서정의 표현에 머물지 않고, 임금을 그리는 정과 어버이를 끝까지 받들고자 하는 지극한 효심이 담겨 있는 데 있다.
사제(莎堤)는 용진(龍津)에 있는 이덕형의 별서지가 있었던 곳으로, 작자가 사제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덕형의 소요자적(逍遙自適)하는 모습을 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덕형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 내용은 이덕형이 임금의 영총을 지극히 받아 성은에 감격하여 진력하다가, 늙고 병이 들어 관직을 사퇴하고 광주(廣州) 용진강 동쪽의 사제로 돌아왔음을 읊었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옛날 보던 제일강산이 임자 없이 버려져 있어 이제야 주인을 만난 듯함을 춘흥과 추흥을 통하여 노래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망극한 성은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임금을 그리는 정과 어버이를 받들고자 하는 심정을 간절히 나타내었다.
❤️농암에 올라보니<농암집(聾巖集) / 이현보(李賢輔)
(농암가)
농암애 올아 보니 노안(老眼)이 유명(猶明)이로다.
인사(人事)ㅣ 변한들 산천이야 가실가.
암전(巖前) 모수모구(某水某丘)이 어제 본 듯 하예라.
💜전문풀이
농암에 올라 서서 바라보니 늙은이의 눈이 아직도 밝게 보이는구나
인간과 세상이 모든 일이 변해 가겠지만, 어느 산천인들 변하겠는가?
농암에서 바라보는 모든 물과 산들이 어제 본 듯 모두 그대로 있구나.
💛배경
작자가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한가롭게 지내면서,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고국의 산천을 감상하며 읊은 작품이다.
💛핵심정리
▶종류 : 평시조
▶제재 : 고향산천
▶성격 : 낭만적, 전원적,흥취적 예찬적, 풍류적
▶주제 : 영원한 자연에 대한 감회와 회고(懷古)(치사 한정)
▶표현 : 대구법, 대조법, 설의법, 영탄법, 대유법, 역설법
▶특징
1.설의적 표현으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들어냄.
2. 낙향의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피력함.
[💛[구성]
초장 = 귀향 후 농암에 올라 풍경을 감상함
중장 = 변치 않는 자연에 대한 예찬
종장 = 귀향에 대한 반가운 마음구성]
초장 = 귀향 후 농암에 올라 풍경을 감상함
중장 = 변치 않는 자연에 대한 예찬
종장 = 귀향에 대한 반가운 마음
💙(농암가)이해와 감상
초장의 농암은 작자 고향의 큰 바위를 가리킨다. 그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넓은 산천을 감상한 것이다. 어느새 늙어가는 자신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고, 변하지 않는 자연의 싱그러움에서 넉넉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가 생겨나 흐믓함에 젖는다. 작자가 말년에 돌아온 기쁨을 노래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빈녀음(貧女吟) / 허난설헌
가난한 여인의 노래
기시핍용색豈是乏容色
공침복공직工鍼復工織
소소장한문少少長寒門
양매불상식良媒不相識
한대한아색不帶寒餓色
진일당창직盡日當窓織
유유부모련唯有父母憐
사린하회식四隣何會識
야구직미휴夜久織未休
알알명한기戞戞鳴寒機
기중일필련機中一匹練
종작하수의綜作何誰衣
수파금전도手把金剪刀
야한십지직夜寒十指直
위인작가의爲人作嫁衣
년년환독숙年年還獨宿
허난설헌<許蘭雪軒>
인물도 남에 비해 빠지지 않고
바늘 솜씨 길쌈 솜씨도 좋건마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자란 까닭에
좋은 중매 자리도 나타나지 않네.
춥고 굶주려도 겉으로는 내색도 않고
하루 종일 창가에서 베만 짠다네.
오직 내 부모만 가엾다 생각할 뿐.
어떤 이웃이 이내 속을 알아주리오.
밤이 깊어도 짜는 손 멈추지 않고
짤깍짤깍 바디 소리 차가운 울림은
베틀에 짜여가는 이 한 필 비단은
필경 어느 색시의 옷이 되려나.
가위로 싹둑싹둑 옷 자르노라면
추운 밤에 열 손가락 꼿꼿해 지네.
남을 위해 시집가는 갈옷 지어주건만
이내 몸은 해마다 혼자 산다오.
💜요약
이 시는 가난한 여자의 처지를 읊은 노래로, 전체가 4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 네 번째 작품이다. 가난하니 길쌈과 바느질을 해서 살아야 하고 시집 갈 날은 멀어지기만 한다는 내용으로, 불공평한 현실을 은근히 고발한 작품이다.
💜특징 주제
1행과 2행에서는 겨울 밤 바느질의 괴로움을 노래하고 있고, 3행과 4행에서는 남을 위해 밤을 새워 하는 바느질과 자신의 불우한 삶을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다.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불우한 여인의 고달픈 삶을 애상적 시풍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자 자신의 불우한 삶과도 통하는 시이다. 그리고 시집갈 날은 멀어지만 한다는 내용으로 불공평한 현실을 은근히 고발하는 작품이다.
◆형식 : 오언 절구
◆제재 : 길쌈옷
◆주제 : 가난한 여인의 처지(시집 못 가는 한)
◆어구 풀이
㉠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 추운 겨울 밤 바느질하느라 손발이 곱아서 입김을 불어가며 일하는 여인의 고통스런 삶을 표현하고
있다.
㉡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이건만
→ 밤낮으로 남이 시집갈 때 입을 옷을 바느질하건만
㉢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 남을 위해 바느질하느라 고통스럽게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다.
❤️만흥(漫興) 6수 /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제1수>
산슈간(山水間) 바회 아래 뛰집을 짓노라 ᄒᆞ니,
그 모론 ᄂᆞᆷ들은 욷ᄂᆞᆫ다 ᄒᆞᆫ다마ᄂᆞᆫ,
어리고 햐암의 뜻의ᄂᆞᆫ 내분(分)인가 ᄒᆞ노라.”
<제2수>
보리밥 풋ᄂᆞᆺᄆᆞᆯ을 알마초 머근 후(後)에,
바횟긋 믉ᄀᆞ의 슬ᄏᆞ지 노니노라,
그 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ᄅᆞᆯ 줄이 이시랴.
<제3수>
잔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ᄇᆞ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ᄉᆞᆷ도 우음도 아녀도 몯내 됴하 ᄒᆞ노라.
<제4수>
누고셔 삼공(三公)도곤 낫다 ᄒᆞ더니 만승(萬乘)이 이만ᄒᆞ랴,
이제로 헤어든 소부(巢父) · 허유(許由) ㅣ 냑돗더라,
아마도 님쳔한흥(林泉閑興)을 비길 곳이 업세라.
<제5수>
내 셩이 게으르더니 하늘히 아라실샤
인간만사(人間萬事)를 한 일도 아니 맛뎌
다만당 다토리 업슨 강산(江山)을 딕희라 하시도다
<제6수>
강산(江山)이 됴타한들 내 분(分)으로 누얻느냐
님군 은혜(恩惠)를 이제 더욱 아노이다
아므리 갑고쟈 하야도 갚올 일이 업세라
‘만흥’은 산중생활에서 문득 느껴지는 ‘부질없는 흥(만흥)’을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첫째 수는 자연에 묻혀사는 소박한 생활이 작자에게 알맞은 분수임을 노래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가난에 평안하는 안분(安分), 안빈(安貧)의 경지를 그렸다.
셋째 수는 담담한 표현 속에 느긋한 정취를 은은히 풍기고 있다. 산수시의 미, 느긋한 즐거움〔閑寂〕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넷째수는 한흥, 곧 이 시의 주제인 만흥을 노래하였다. 「만흥」은 전원시이면서 산수시다.
이 작품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세속과 떨어져 자연 경치를 완상하며 살아가는 은거자의 삶이 부귀공명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에 비해 월등히 낫다는 가치관과 자부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연시조로, 조선시대 선비의 이상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현대어 풀이]
자연 속 바위 아래에 초가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 / 그런 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 / (나처럼) 어리석고 시골뜨기의 마음에는 (이렇게 사는 것이) 나의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뒤에 / 바위 끝 물가에서 실컷 노니노라. / 그밖에 나머지 일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겠는가?
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니 / 그리워하던 님이 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 (산이 비록) 말하거나 웃거나 하지 않아도 나는 그저 좋아하노라.
누군가가 (자연이) 삼공보다 낫다고 하더니 만승(천자의 지위)이 이만하겠는가? / 이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가 영리하였도다. / 아마도 자연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비교할 데가 없어라.
내 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시고서, / 인간 만사를 하나도 맡기지 않으시고, / 다만 한 가지 다툴 것이 없는 강산을 지키라고 하시도다.
강산이 좋다고 한들 내 분수(능력)로 이렇게 편안히 누워 있겠느냐. / 이 모든 것이 임금의 은혜임을 이제야 더욱 알 것 같도다. / 하지만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세속과 떨어져 자연 경치를 완상하며 살아가는 은거자의 삶이, 부귀공명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에 비해 월등히 낫다는 가치관과 자부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연시조로, 조선시대 선비의 이상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임금의 거가를 모시고 따라감)하지 않았다 하여 경상도 영덕에 유배되어 있다가 풀려나, 해남의 금쇄동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산중신곡>에 수록되어 있는 6수로 된 연시조이다. 이 <만흥> 6수에는 벼슬하지 않고 자연 속에 사는 것이 자기의 분수에 맞는 일이라고 자위하고 있으며, 한문투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윤선도는 시어의 아름다움과 형상적인 구조로 시조 문학의 절정을 이루어 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정리]
성격 : 평시조, 연시조, 한정가(閑情歌)
표현
① 설의법, 한문투의 표현이 거의 없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림.
② 겸양의 미덕과 함께 현실에 대한 체념적 태도를 부분적으로 드러냄.
③ 작가의 안분지족하는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있고, 물아일체의 자연친화정신이 잘 나타나 있음.
구성
-. 제1수 → 안분지족의 삶
-. 제2수 → 안빈낙도의 삶
-. 제3수 → 자연동화의 삶
-. 제4수 → 강호한정의 삶
-. 제5수 → 풍월주인으로서의 삶
-. 제6수 → 성은에 대한 감사
제재 : 자연과 벗하는 생활
주제
*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隱士)의 한정(閑情)
* 자연 속에서 사는 삶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
문학사적 의의 : 영덕에 유배되었던 윤선도가 유배가 풀린 후, 해남 금쇄동에 은거하면서 자연 속에서 살며 느낀 흥취를 6수의 연시조로 표현한 작품. 제6수를 토앻 임금님의 은혜를 표현하는 강호가도류를 계승하고 있음.
[💛허유와 소부 이야기]
중국 요임금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약해지자 천자의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단주를 사랑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재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임금은 천하를 다스리는 공적인 대의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후계자를 물색하던 요임금은, 허유라는 현명한 은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허유는 바른 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았고, 당치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 않고, 오직 의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요임금은 그를 찾아가 말했다.
"태양이 떴는데도 아직 횃불을 끄지 않는 것은 헛된 일이요, 청컨대 천자의 자리를 받아주시오."
허유가 사양하며 말했다.
"뱁새는 넓은 숲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나뭇가지 몇 개면 충분하며, 두더지가 황하의 물은 마셔도 배만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비록 음식을 만드는 포인이 제사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가 부엌으로 들어가지 않는 법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허유는 기산이라는 곳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요임금은 다시 그를 찾아가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물론 허유는 단호했다. 워낙 세상의 권세와 재물에 욕심이 없었던 허유는 그런 말을 들은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생각해서 흐르는 강물에 귀를 씻었다. 때마침 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지나가던 소부가 이 모습을 보고 허유에게 물었다.
"왜 귀를 씻으시오?"
"요 임금이 나를 찾아와 나에게 천하를 맡아달라는구려. 이 말을 들은 내 귀가 혹여 더럽혀졌을까 하여 씻는 중이오."
이 말을 들은 소부는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왜 웃으시오?"
"당신이 숨어 산다는 소문을 퍼트렸으니 그런 더러운 말을 듣는 게 아니오. 모름지기 은자란 애당초부터 은자라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서는 안 되는 법이오. 한데 당신은 은자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트려 명성을 얻은 게 아니요?"
그러고 나서 소부는 소를 몰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방 먹은 허유가 물었다.
"소에게 물은 안 먹이고 어딜 올라가시오?"
소부가 대답했다.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어 올라가는 거요."
❤️훈민가(訓民歌) 16首 : 정철(鄭澈 1536~1593)
<제1수> 부생모육(父生母育)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 곳 아니면 이 몸이 사라시랴
하늘갓튼 가업슨 은덕을 어데 다혀 갑사오리.
<제2수> 군신(君臣) 간의 의리(義理)
님금과 백성과 사이 하늘과 땅이로다.
내의 셜운 일을 다 아로려 하시거든
우린들 살진 미나리 홈자 엇디 머그리.
<제3수>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아 아애야 네 살할 만져 보아
뉘손듸 타 나관데 양재조차 가타산다
한 졋 먹고 길러나 이셔 닷 마음을 먹디 마라.
<제4수> 자효(子孝)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 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면 애닯다 엇디하리
평생(平生)애 곳텨 못할 일이 잇뿐인가 하노라.
<제5수> 부부유은(夫婦有恩)
한 몸 둘혜 난화 부부를 삼기실샤
이신 제 함끠 늙고 주그면 한데 간다
어대셔 망녕의 꺼시 눈 흘긔려 하나뇨.
<제6수> 남녀유별(男女有別)
간나희 가는 길흘 사나희 에도다시,
사나희 녜는 길을 계집이 츠ㅣ도다시,
제 남진 제 계집 하니어든 일홈 뭇디 마오려.
<제7수> 자제유학(子弟有學)
네 아들 효경 닑더니 어도록 배홧나니
내 아들 쇼학은 모래면 마찰로다
어내 제 이 두 글 배화 어딜거든 보려뇨.
<제8수> 향려유례(鄕閭有禮)
마을 사람들아 올한 일 하쟈스라
사람이 되어나셔 올치옷 못하면
마쇼를 갓 곳갈 씌워 밥머기가 다르랴.
<제9수> 장유유서(長幼有序)
팔목 쥐시거든 두 손으로 바티리라.
나갈 데 계시거든 막대 들고 좇으리라.
향음주(鄕飮酒) 다 파한 후에 뫼셔 가려 하노라.
<제10수> 붕우유신(朋友有信)
남으로 삼긴 듕의 벗갓티 유신(有信)하야.
내의 왼 일을 다 닐오려 하노매라.
이 몸이 벗님 곳 아니면 사람되미 쉬울까.
<제11수> 상부상조(相扶相助)
어와 뎌 족해야 밥 업시 엇디할꼬
어와 뎌 아자바 옷 업시 엇디할꼬
머흔 일 다 닐러사라 돌보고져 하노라.
<제12수> 혼인사상인리상조(婚姻死喪隣里相助)
네 집 상사들흔 어도록 찰호산다
네 딸 셔방은 언제나 마치나산다
내게도 업다커니와 돌보고져 하노라
<제13수> 무타농상(無惰農桑)
오날도 다 새거다 호믜 메고 가쟈사라.
내 논 다 매여든 네 논 졈 매여 주마.
올 길헤 뽕 따다가 누에 머겨 보쟈사라.
<제14수> 무작도적(無作盜賊)
비록 못 니버도 남의 옷을 앗디 마라.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비디 마라.
한적 곳 때 시른 후면 고텨 씻기 어려우리.
<제15수> 무학도박(無學賭博)
쌍육(雙六) 장기(將碁) 하지 마라 송사(訟事) 글월 하지 마라.
집 배야 무슴 하며 남의 원수 될 줄 엇지,
나라히 법을 세오샤 죄 잇난 줄 모로난다.
<제16수> 반백자불부대(班白者不負戴)
이고 진 뎌 늘그니 짐 프러 나랄 주오
나난 졈엇꺼니 돌히라 므거올까
늘거도 설웨라커든 지믈 조차 지실까.
<松江歌辭>
[💜현대어 풀이]
[1]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께서 나를 기르시니 / 두 분이 아니셨더라면 이 몸이 살아 있었겠는가 / 하늘 같이 높으신 은덕을 어느 곳에 갚아 드리오리까 ?
[2]
[3] 형아, 아우야, 네 살들을 한번 만져 보아라. / (너희 형제가) 누구에게서 태어났기에 얼굴의 생김새까지도 닮았단 말이냐? / (한 어머니에게서) 같은 젖을 먹고 길러졌기에, 딴 마음을 먹지 마라.
[4] 부모님 살아계실 동안에 섬기는 일을 정성껏 다하여라. / 세월이 지나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리 뉘우치고 애닯다 한들 어찌하겠는가 /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 부모님 섬기는 일이 아닌가 하노라.
[5] 한몸을 둘로 나누어 부부를 삼으셨기에 / 살아있는 동안에 함께 늙고 죽어서도 같은 곳에 가는구나 / 어디서 망령된 것이 눈을 흘기려고 하는가?
[6] 여자가 가는 길을 남자가 멀찌감치 떨어져 돌아서 가듯이, / 또 남자가 가는 길을 여자가 비켜서 가듯이, / 제 남편, 제 아내가 아니거든 이름도 묻지 마시오.
[8]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을 하자꾸나. /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못하면 / 말과 소에게 갓이나 고깔을 씌워 놓고 밥이나 먹이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9] (어른이 기동할 때에 만일) 팔목을 쥐시는 일이 있거든 (그 손을) 내 두 손으로 받들어 잡으리라. / 나들이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실 때에는 지팡이를 들고 따라 모시리라. / 향음주가 다 끝난 뒤에는 또 모시고 돌아오련다.
[10] 남남으로 생긴 가운데에 친구같이 신의가 있어 / 나의 모든 일을 말하려 하노라 / 이 몸이 친구가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까?
[11] 아, 저 조카여, 밥 없이 어찌할 것인고? / 아, 저 아저씨여, 옷 없이 어찌할 것인고? / 궂은 일이 있으면 다 말해 주시오. 돌보아 드리고자 합니다.
[13] 오늘도 날이 다 밝았다, 호미를 메고 나가자꾸나. / 내 논을 다 매거든 너의 논을 조금 매어 주마. /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뽕을 따다가 누에에게 먹여 보자꾸나.
[14] 비록 못 입어도 남의 옷을 빼앗지 마라. /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빌지 마라. / 한 번만이라도 때가 묻은 후면 다시 (그 죄를) 씻기 어려우리.
[15] 노름이나 장기를 하지 마라. 고소문 쓰지 마라. / 집안을 탕진하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남의 원수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나라가 법을 세우시는데 죄 있는 줄을 모르느냐.
[16] 머리에 이고 등에 짐을 진 저 늙은이, 짐을 풀어서 나에게 주오. /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겁겠소? / 늙는 것도 서럽다 하는데 무거운 짐까지 지셔야겠소?
[💜창작 배경]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였던 1580년(선조13) 정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백성들을 계몽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은 작품이다. 송나라 때 진고령(陳古靈)이 백성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조목별로 쓴 '선거권유문(仙居勸諭文)' 13조목에다, 군신(君臣), 장유(長幼), 붕우(朋友) 3조목을 추가하여 각각 한 수씩 읊은 것으로, 유교의 윤리를 주제로 한 교훈가이다.
[💜이해와 감상]
'훈민가'가 계몽적 · 교훈적 노래이면서도 세련된 문학으로 설득력이 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언어 형식에 있다. 유교적 윤리관에 근거한 바람직한 생활의 권유라는 주제를 표현하되, 현실적 청자인 백성들의 이해와 접근이 용이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중국 문학에서 차용한 한자 · 한문이 거의 없다. 어법에 있어서도 완곡한 명령이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청유의 형식을 위주로 하고 있다. 지은이가 이런 언어 형식을 취한 것은 통치자로서의 명령적, 지시적 태도를 버리고 인간적인 데에 호소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 결과, '훈민가'는 훈민(訓民)이라는 목적 의식에서 지어진 많은 시조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고, 친근감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리]
성격 : 연시조, 훈민가(訓民歌), 교민가(敎民歌), 교훈가
💙전체 구성
제1수 - 부생모육(父生母育)
제2수 - 군신(君臣) 간의 의리(義理)를 강조
제3수 - 형우제공(兄友弟恭) : 형제 간의 우애를 강조함.
제4수 - 자효(子孝) :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권유함.
제5수 - 부부유은(夫婦有恩) : 부부 간의 의리와 존중을 강조함.
제6수 - 남녀유별(男女有別) : 남녀 간의 문란한 관계를 경계함.
제7수 - 자제유학(子弟有學) : 자녀들에 대한 학문의 권장
제8수 - 향려유례(鄕閭有禮) :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강조함.
제9수 - 장유유서(長幼有序) : 향촌에서의 예의(어른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강조함.
제10수 -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과의 바른 관계(나의 잘못을 바로잡아줌)를 강조함.
제11수 - 빈궁우환(貧窮憂患) 친척상구(親戚相救) :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을 강조함.
제12수 - 혼인사상인리상조(婚姻死喪隣里相助) : 이웃의 애경사를 서로 도움.
제13수 - 무타농상(無惰農桑) : 농사일에 근면과 상부상조를 권함.
제14수 - 무작도적(無作盜賊) :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 것을 강조함.
제15수 - 무학도박(無學賭博). 무호쟁송(無好爭訟) : 도박과 송사를 금함.
제16수 - 반백자불부대(班白者不負戴) : 노인에 대한 공경의 마음(경로사상)을 강조함.
※ 제3수의 '군신', 제9수의 '붕우유신', 제10수의 '붕우유신'은 <선거권유문>에 없는 내용을 추가한 부분이고, '무이악릉선, 무이부탄빈, 행자양로, 경자양반'의 4조목은 채택하지 않았으며, '무학도박'과 '무호쟁송'은 시조 1수의 제재로 용해시켜서 표현함.
창작 의도 : 유교적인 윤리관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권유하는 데 있었지만, 작가 정철은 사대부 계층의 선험적인 가치체계를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명령하는 어법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정감어린 어휘들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제재들을 다룬 어떤 작품들보다도 강렬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 '훈민가(訓民歌)'의 특성
① 윤리(倫理) 도덕(道德)의 실천 궁행(實踐躬行)을 목적으로한 목족 문학(목적문학)이다.
② 강원도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한 계몽적이며 교훈적인 성격의 노래이다.
③ 문학적인 운치나 창의성은 적지만. 평이한 말 속에 인정의 기미를 곁들여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④ 고유어를 사용하여 백성들의 이해와 접근이 용이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⑤ 당위적 표현과 청유 어법을 활용하여 설득하는 힘이 강하다.
▶ 주제 : 유교 윤리의 실천 권장
❤️별사미인곡 / 김춘택
이보소 져각시님 셜운말 그만하오
(이보소 저 각시님 서러운 말씀 그만 하오)
말을 드러니 셜운줄 다모를쇠
(말씀을 들어보니 서러운 것이 끝이 없소)
인년인들 가지며 니별인들 갓탈손가
(인연인들 한가지며 이별인들 같을 것인가)
광한젼 백옥경의 님을뫼셔 즐기더니
(광한전 백옥경에 님을 모셔 즐기다가)
니래 였거니 재아을 업손가
(이별을 하였거니 재앙인들 없을 것인가)
해다 저문날의 가줄 설워마소
(해 다 저무는 날이 가는 것을 서러워마소)
엇더타 니내몸이 견흘데 전혀없내
(정녕코 이 몸을 견줄데가 전혀없네)
광전 어대머오 백옥경 내아던가
(광한전이 어디 있던가 백옥경을 내가 알던가)
원앙침 비취금의 뫼셔본적 히없내
(원앙침과 비취금을 모셔본 적이 없네)
내얼골 이거동이 무엇로 남길고
(내 초췌한 얼굴과 거동으로 어찌 임을 사랑할꼬)
질을 모거니 가무야 더니가
(길쌈을 모르거니 춤과 노래 더 이를가)
엇인지 님향 조각이 (무엇이 어떻던지 님 향한 일편단심)
을 하리 심기시고
(한 조각 마음은 하늘이 주시고)
셩현이 가라치서
(세상 이치 통달한 성인이 가르치시어)
뎡학이 알펴잇고 부월이 두해이셔
(끝없는 지옥은 눈앞에 시퍼런 도끼는 뒤에 있다하더라도)
일백번 죽고죽어 뼈가 길니된후도
(일백번 죽고죽어 뼈가 가루가 될 지언정)
님 향 이이 별손가
(님을 향한 이 마음이 변할리야 있을 것인가)
나도 일을가저 의업 것만어더
(나도 일을 가져서 남이 없는 것만 얻어서)
부용화 오짓고 목난으로 사마
(연꽃으로 옷을 짓고 목련으로 꽃신을 신어서)
한긔 맹셰여 님섬기랴 원이러니
(하늘에 맹세하여 남 섬기는 것이 소원이건만)
조물 긔가 귀신이 희즈온가
(조물주의 시기인가 귀신이 훼방을 놓는 것인가)
내팔 그만니 사을 원망가
(내 팔자가 이러니 어찌 사람을 원망할 수 있으랴)
내몸의 지은죄를 모니 긔더죄라
(내 몸의 지은 죄를 몰라서 더 큰 죄인가)
나도 모거니 이어이 아도던고
(나도 모르는데 남이 어이 다 알리요)
한하 살인가 이몸의 되녀이셔
(하늘이 이 몸을 그리되게 하셨는가)
💙핵심정리
▶갈래 : 가사
▶주제 : 임 향한 일편단심
▶특징 : 사랑 받지 못한 여인 ⇒ 사랑 받지 못한 신하: 폭넓은 공감대 형성<특수한 사연을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호소)로 전환하여 폭넓은 공감대 형성>
▶시상전개
▪ 시적화자(유배지고독과 외로움)
↓
▪ 부용화 옷(一片丹心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정성)
↓
▪ 광한전 백옥경군선(임 계신 곳임과 함께 하고픈 소망)
💜
이해와 감상
조선 숙종 때 김춘택(金春澤)이 지은 가사. 지은 시기는 작자의 문집인 ≪북헌집 北軒集≫ 권4 논시문(論詩文)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내가 제주에 와 우리말로 <별사미인곡>을 지으니, 이는 정철(鄭澈)의 양미인곡(兩美人曲)에 추화(追和)한 것이다…….”라는 논시문의 기술에 의해 작자가 제주도에 유배된 1706년(숙종 32) 4월에서 1710년 6월 사이에 <별사미인곡>을 지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작품은 4음보 1행으로 계산하여 모두 79행이며, 율조는 3·4조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가사의 분량은 양미인곡을 모방하여 창작하였으나 구성은 <속미인곡>과 같이 대화체로 되어 있다.
가사의 서두는 가사 중의 갑녀(甲女)라 할 수 있는 여인이 “이보소 저 각시님 설운말 그만오.”라고 시작하여 마치 앞에 어떤 하소연을 들은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속미인곡>을 연상하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 대하여 가사 가운데 을녀(乙女)라 할 수 있는 여인이 자기의 소회를 풀기 시작한다. 곧, 그는 자기가 광한전 백옥경에서 임을 뫼시다가 아양을 부려 그것이 재앙이 되어 이렇게 이별하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스스로 아무런 재주도 없어 임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변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모르니 그것이 더욱 큰 죄라 하며 자기가 지은 죄를 자기도 모르니 다른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고 하여 스스로의 허물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또 임을 위하여 산호(珊瑚) 재기와 백옥함에 임의 옷을 간수하고 있지만 임에게 가져다 줄 사람이 없으며 혹시 가져간다 하여도 임이 보시기나 할 것인가라고 하여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생에서 임을 가까이 못하는 안타까움은 차라리 후생에서 구름이 되어 임에게 덮이고 싶다고 하였다. 그것을 임이 싫다고 하면 다시 바람이 되어 여름날 임을 부쳐주고 싶다고도 하고, 그것도 싫으면 명월(明月) 혹은 명산대천·노목·지초·오현금·말·새·짐승 등이 되어서라도 임에게 가까이 있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대하여 갑녀는 을녀가 이렇게 된 것은 팔자며 천명이니 구름이나 바람이 되면 무엇하겠느냐며 차라리 술이나 잔 가득 부어 마시고 한시름 잊으라고 권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대화체 구성이라는 점에서 <속미인곡>에 가까우나 내용에 있어서는 <사미인곡>의 영향도 보인다. 군주에 대한 원망은 거의 보이지 아니하고 간절한 충성을 읊었다는 점에서 연군가사의 면모가 두드러지며, 유배가사로서도 가사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이 가사를 지어놓고, 정철의 가사에 비하여 그 말은 더욱 아름답고 그 곡조는 더욱 처량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구성은 능란하다 하여도 양미인곡에 비하여 정제되지 못한 점이 있다. 국문학사상 미인곡계 가사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하는 가사로서 의의를 지니며,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조 역사의 반영으로서도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
▲정철의 “사미인곡”과의 비교
정철의 사미인곡에 비하면 임과 헤어진 화자의 절실한 감정 표현이 모자라며 후반부에 군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 단점이지만 순한글을 사용하여 정연한 율조아래 평이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진유의 “속사미인곡”
정철의 사미인곡을 모방한 동일한 주제와 내용을 가진 작품 중에 하나다. 기행체 구성 방식을 도입하여 유배 당한 자신의 처지를 천상에서 내려와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에 비유하였다. 기행을 하게 된 동기, 유배지로 향하는 출발 과정, 유배지에서의 견문이 세세하게 진술되어 있으나 회정(懷情)은 언급되지 않았다. 유배(이별)의 동기가 자신의 죄 때문도 아니고 임이 박정해서도 아니라 자신을 질투한 여인들의 참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여인들을 정적으로 묘사하여 자신의 유배가 노론 일당의 모함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
김춘택(金春澤, 1670년 1717년)은 조선후기의 문신, 외척, 작가이다. 자(字)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본관은 광산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손자이다. 종조부인 김만중의 문하생이다
별사미인곡은 숙종 때 북헌 김춘택이 지은 작품이다. 김춘택은 숙종 계비인 인현황후 김씨의 친정 조카인데 장희빈으로 인해 인현왕후가 폐비되었을 때, 글로 연좌 되어서 다섯 번이나 유배되고 세 번이나 옥에 갇혀 30여년을 고생했는데 이 별사미인곡은 그가 제주로 유배되었을 때 1708년(숙종 34)에 지은 것이다. 순 한글로 표현되어 있고 율조의 흐름과 언어구사가 평이하여 친근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 / 이원익(李元翼)
가사(歌辭) ◦ 고공가(雇工歌)
● 본문
허전(許㙉)이 지은 「고공가(雇工歌)」에 화답한 가사이다. ‘고공답가(雇工答歌)’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명신이던 이원익이 지었다 하며, 순조 때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잡가(雜歌)』라는 노래책에 실려 전한다.
雇工答主人歌 (고공답주인가)
어와 져 양반아 도라안자 내말 듯소.
엇지한 져믄 소니 헴 업시 단니산다.
마누라 말삼을 아니 드러 보나산다.
나난 일얼 만뎡 외방(外方)의 늙은 툐이
공밧치고 도라갈 재 하난 일 다 보앗내
우리 댁 셰간이야 녜븟터 이러튼가.
전민(田民)이 만탄 말리 일국(一國)에 소래나데
먹고 입난 드난죵이 백여구(百餘口) 나마시니
므삼 일 하노라 타밭츨 무겨난고.
농장(農場)이 업다 하난가 호매연장 못 갓던가.
날마다 무삼하려 밥먹고 단기면서
열나모 정자 아래 낫잠만 자나산다.
아해들 타시런가 우리 댁 죵의 버릇 보거든 고이하데
쇼 먹이난 아해드리 샹마름을 능욕하고
진지(進止)하난 어린 손내 한 계대를 긔롱한다.
삐삐름 제급(除給) 못고 에에로 제 일 하니
한 집의 수한 일이 뉘라서 심써 할고.
곡식고(穀食庫) 븨엇거든 고직(庫直)인들 어이 하며
셰간이 흐텨지니 될자힌들 어이 하고
내 왼 줄 내 몰나도 남 왼 즐 모랄넌가.
플치거니 매치거니 할거니 돕거니
하로 열두 때 어수선 핀거이고
밧별감 만하 이사 외방사음(外方舍音) 도달화도
제 소임 다 바리고 몸 끄릴 뿐익로다.
비 새여 셔근 집을 뉘라셔 곳쳐 이며
옷 버서 문허진 담 뉘라셔 곳쳐 쌀고.
블한당 구모 도적 아니 멀리 단이거든
화살 찬 수하상직(誰何上直) 뉘라셔 심써 할고.
큰나큰 기운 집의 마누라 혼자 안자
긔걸을 뉘 드라며 논의(論議)을 눌하 할고.
낫시름 밤근심 혼자 맛다 계시거니
옥 갓튼 얼굴리 편하실 적 면 날이리
이 집 이리 되기 뉘 타시라 할셔이고.
헴 업는 죵의 일은 뭇도 아니 하려니와
도로혀 혜여하니 마누라 타시로다.
내 항것 외다 하기 죵의 죄 만컨마난
그러타 뉘을 보려 민망하야 솗나이다.
삿꼬기 마라시고 내 말삼 드로쇼셔.
집 일을 곳치거든 죵들을 휘오시고
죵들을 휘오거든 상벌(賞罰)을 발키시고
상벌(賞罰)을 발키거든 어른 죵을 미드쇼셔
진실로 이리 하시면 가도(家道) 절노 닐니이다.
●💜풀이
어와 저 양반아 젊은 고공아 돌아 앉아 내 말 듣소
어찌한 젊은 손님이 고공이 생각 없이 다니느냐
마누라 우리 왕 말씀을 아니 들어보았느냐
나는 이럴 만정 외방의 늙은 종이
너희 공밧치고 돌아갈 때 하는 일을 다 보았다.
우리 집 세간이야 옛부터 이렇던가.
밭가는 백성이 많다는 말이 전국에 소문이 났었는데.
제 밭일은 안하고 먹고 입는 드난 종이 백여구가 남았으니
무슨 일을 하느라고 텃밭을 묵혀두는가
농기구가 없는가 호미 연장을 못 갈았던가
날마다 무엇하려 밥 먹고 다니면서
열나무 정자 아래 낮잠만 자는가
아이들 탓이런가 우리 댁 종의 버릇을 보거든 심각한데
소먹이는 아이들이 상마름을 능욕하고
진지하난 어린 손이 한 계대 높은 어른을 희롱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탓으로(아이탓) 우리 종도 저지경인가!
삐삐름 제급 먹고 에에로 제일 하니 투잡뛰고 제 일은 대충하니
한 집의 많은 일을 누가 힘써 할까
곡식고가 비었거든 곡식지기인들 어이 하며
세간이 흩어지니 질그릇인들 어찌 만들고 농업과 상업이 모두 어려워졌구나
나 그른 줄 스스로는 몰라도 남 그른 줄을 모를까
플치니 매치니 헐뜯거니 싸움을 돕거니 남과 다툼에만 집중하고
하루 열두 때 내내 어수선만 핀다
바깥 별감 많아 있어 외방 사음 도달화도 군인들도
제 소임을 다 버리고 몸만 사릴 뿐이로다.
비가 새어 썩은 집을 누가 고칠 것이며
칠 벗겨져 무너진 담 누가 고쳐 쓸까
불한당 구모 도적이 아직 안 멀리 다니거든
화살을 찬 수하상직의 역할을 누가 힘써 할고..
크나큰 기운 가세의 집에 마누라 왕 혼자 앉아
소식을 누가 들려주며 논의를 누구와 할까 곁에서 일할 신하가 아무도 없구나
낮 시름 밤 근심 혼자 마주해 계시거니
옥같은 얼굴이 편하실 때가 몇 날이겠는가
이 집 이렇게 되기 누구 탓이라 할까
생각없는 종의 일은 물을 필요도 없거니와
도로 생각해보니 마누라 왕의 탓이로다.
내 항것 윗사람을 그르다하기에는 큰 종인 나의 죄도 많건마는
그리하여 누구 보기 민망하지만 사룁니다.
새끼 꼬지 마시고 내 말씀을 들으소서.
집 일을 고치거든 종들을 휘어 잡으시고
종들을 휘어 잡으시거든 상벌을 밝혀 분명히 하시고
상벌을 밝히거든 어른 종인 나와 같은 이들을 믿으소서.
진실로 이렇게 하시면 가도 집의 도리가 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특징]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는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가사의 특징에 해당하는 실용주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공답주인가」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관리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조선조 청백리인 이원익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하고 있는 산문 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갑민가<해동가곡> / 무명씨
어져어져 저기가는 저사람아 네행색 보아하니 군사도망 네로고나 청자의 신분과 상황암시
요상으로 볼작시면 베적삼이 깃만남고 허리아래 굽어보니 헌잠방이 노닥노닥
곱장할미 앞에가고 전태발이 뒤에간다
십리길을 할레가니 하루에 가니
몇리가서 엎쳐지리
내고을의 양반사람 타도타관 옮겨살면
천하되기 상사여든 본토군정 싫다하고
자네또한 도망하면 일국일토 한인심에
근본숨겨 살려한들 어데간들 면할손가
차라리 네사던곳에 아모케나 뿌리막여
칠팔월에 채삼하고 구사월에 돈퍼잡아
공채신역 갚은후에 그나머지 두었다가
함흥북청 홍원장사 돌아들어 잠매할제
후가받고 팔아내어 살기좋은 너른곳에
가사전토 고쳐사고 가장집물 장만하여
부모처자 보전하고 새즐검을 누리려믄
(갑민) 어와 생원인지 초관인지
그대말씀 그만두고 이내말씀 들어보소
이내또한 갑민이라 이땅에서 생장하니 이때일을 모를소냐
우리조상 남중양반 진사급제 연면하여
금장옥패 빗기차고 시종신을 다니다가
시기인의 참소입어 전가사변 하온후에
국내극변 이땅에서 칠팔대를 살아오니
선음 입어 하는 일이 읍중구실 첫째로다
들어가면 좌수별감 나가서는 풍헌감관
유사장의 채지나면 체면보아 사양터니
애슬프다 내 시절에 원수인(怨讐人)의 모해(謀害)로서
군사강정(降定) 되단 말가 내 한몸이 헐어나니
좌우전후 일가친척 차차충군(充軍)* 되거고야
제사 받들 이내 몸은 하릴없이 매어있고
시름없는 제적인은 자취없이 도망하고
여러 사람 모든 신역(身役) 내 한몸에 모두무니
한 몸 신역 삼량오전(三兩五錢) 돈피(獤皮)* 두 장 의법이라
열 두 사람 없는 구실 합쳐 보면 사십 육냥(四十六兩)
해마다 맞춰 무니 석숭(石崇)*인들 당ᄒᆞᆯ소냐
연부연에 맡아무니 석승인들 당할소냐
약간 농사 전폐하고 채삼(採蔘)*하려 입산(入山)하여
허항령(虛項嶺) 보태산(寶泰山)을 돌고 돌아 찾아보니
인삼(人蔘) 싹은 전혀 없고 오갈피잎이 날 속인다
하릴없이 공반(空返)하여 팔구월 고추바람
안고 돌아 입산(入山)하여 돈피 사냥 하려하고
백두산(白頭山) 등의 지고 강 아래로 나려가서
싸리 꺾어 누대 치고 잎갈나무 모닥불 놓고
하나님께 축수하며 산신님께 발원하여
물채줄을 갖춰 꽂고 사망일기 원하되
내 정성이 부족한지 사망실이 아니 붙네
빈손으로 돌아서니 삼지연(三池淵)이 잘참이라
입동(立冬) 지난 삼일(三日) 후에 밤새 눈이 사뭇 오니
다섯 자 깊이 벌써 너머 사오보(四五步)를 못 옮길레
식량 다하고 옷 얇으니 앞의 근심 다 떨치고
목숨 살려 욕심ᄒᆞ여 죽기 살기 길을 허여
인가처를 찾아오니 검천(劒川) 거리 첫목이라
첫닭 소리 이윽하고 인가 적적 한잠일네
집을 찾아 드러가니 혼비백산 반주검이
말 못하고 너머지니 더운 구들 아랫목의
송장같이 누웠다가 정신을 차리고
두 발 끝을 굽어 보니 열 가락이 간데 없네
간신조리 생명하여 쇠게실려 돌아오니
팔십당년 우리노모 마주나와 이른말씀
살아왔다 내자식아
사망없이 돌아온들 모든신역 걱정하랴
전토가장 진매하여 사십륙량 돈가지고
파기소 찾아가니 종군파총 호령하되
우리사또 분부내에 각초군의 제신역을
돈피외에 받지말라 관령여차 지엄하니
하릴없어 퇴하놋다 돈가지고 물러나와
원정지어 발괄하니 물위번소 제사하고
군노징교 차사놓아 성화같이 재촉하니
노부모의 원행치장 팔승네필 두었더니
팔량돈을 빌어받고 달아다가 채워내니
오샙여량 되것고야
삼수각진 두루돌아 이십륙장 돈피사니
십여일 장근이라
성화같은 관가분부 차지잡아 가두었네
불쌍할사 병든처는 영어중에 던지어서
결항치사 하단말가
내십문전 돌아드니 어미불러 우는소리
구천에 사무치고
의지없는 노부모는 불성인사 누웠으니
기절하온 탓이러다
여러신역 바친후에 시체찾아 장사하고
사묘모셔 땅에묻고 애끓도록 통곡하니
무지미물 뭇조작이 저도또한 설리운다
낙중변지 우리인생 나라백성 되어나서
군사싫다 도망하면 화외민이 되려니와
한몸에 여러신역 물다가 할새없이
또금년이 돌아오니 유리무정 하노매라
나랏님께 아뢰자니 구중천문 멀어있고
요순같은 우리성주 일월같이 밝으신들
불점성화 이극변에 복분하라 비췰소냐
그대또한 내말듣소 타관소식 들어보게
북청부사 뉘실런고 성명은 잠깐 잊어닜네
허다군정 안보하고 백골도망 해원일레
각대초관 제신역을 대소밀호 분장하니
많으면 닷돈푼수 적으면 서돈이라
인읍백성 이말듣고 남부여대 모여드니
군정허오 없어지고 민호점점 늘어간다
나도또한 이말듣고 우리고을 군정신역
북청일례 하여지라 영문의송 정탄말가
본읍맡겨 제사맡아 본관아에 부치온즉
천신만고 놓여나서 고향생애 다떨치고
인리친구 하직없이 부로휴유 자야반에
후치령로 빗겨두고 금창령을 허위넘어
단천땅을 바로지나 성대한을 넘어서면
북청땅이 긔아닌가
거처호부 다떨치고 모든가속 안보하고
신역없는 군사되세
내곧신역 이러하면 이친기묘 하올소냐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충군애민 북청원님 우리고을 빌리시면
군정도탄 그려다가 헌폐상에 올리리라
그대또한 명년이때 처자동생 거느리고
이영로로 잡아들제 그때내말 깨치리라
내심중에 있는말씀 횡설수설 하려하면
내일이때 다지나도 반나마 모자라리
일모총총 갈길머니 하직하고 가노매라
💜핵심정리
▶갈래 : 가사, 평민가사
▶작자 : 함경도 갑산 사람
▶연대 : 조선 영·정조 때
▶운율 : 가사체, 운문체
▶주제 : 갑산 백성들의 학정에 시달리는 참상을 묘사
💙이해와 감상
조선 정조 때 함경도 갑산 사람이 지었다는 서민가사.
작품 끝에 붙어 있는 관계기록으로 미루어 창작연도는 1792년인 듯하다. 무리한 군포징수를 견디지 못한 백성이 재산을 모두 팔아 세금으로 바치고 빈털터리가 되어 노모와 함께 도망가는 처량한 모습이 대화체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초라한 모습으로 도망가는 군사를 보고 생원(生員)이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는 말이 기막혔다. 이웃과 친척의 것까지 13인분의 군포를 마련하느라고 전답을 모두 팔았더니 한 사람 앞에 돼지가죽 2장씩 바치는 것이 그 고장의 법이라며 독촉을 해댔다는 것이다. 돈을 빌려 보태서 돼지가죽 26장을 구하느라고 돌아다니는 동안, 옥에 갇힌 아내는 죽고 홀어머니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백성이 이런 처지에 놓였는데도 왕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한탄하며 북청부사의 선정(善政)을 기대하여 그곳으로 도망간다고 끝을 맺었다. 갑산 사람의 이와 같은 생애는 그 시대 백성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반 관료사회의 수탈 및 부패를 과감하게 폭로하고 비판했으나, 문제의 뿌리를 파헤치거나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끌어내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해동가곡>에 실려 있다.
❤️고공가(雇工歌) / 허전
💜현대어 풀이
집의 옷과 밥을 제쳐놓고 빌어먹는 져 고공(雇工), 우리 집 기별을 아느냐 모르느냐? 비 오는 날 일 없을 때 새끼 꼬면서 이르니라. 처음에 한어버이 살림살이하려 할 때, 인심(仁心)을 많이 쓰니 사람이 절로 모여절로 모여, 풀 베고 터를 닦아 큰집을 지어내고, 써레 보습 쟁기 소로 전답을 기경(起耕)하니, 올벼 논 텃밭이 여드레갈이로다. 자손에 전계(傳繼)하여 대대로 내려오니, 논밭도 좋거니와 고공도 근검터라.
저희마다 농사지어 부유하게 살던 것을, 요사이 고공들은 생각이 아주 없어, 밥그릇 크나 작나 입은 옷이 좋나 나쁘나, 마음을 다투는 듯 우두머릴 시기하는 듯, 무슨 일 감겨 들어 반목을 일삼느냐? 너희들 일 아니하고 시절조차 사나워서, 가뜩이나 내 살림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엊그제 화강도(火强盜)에 가산을 탕진하니, 집 하나 불타 버리고 먹을 것이 전혀 없다. 크나큰 세간을 어찌하여 일으키려뇨. 김가(金哥) 이가(李哥) 고공들아 새 마음 먹으려무나.
너희는 젊었다고 생각하려 아니하느냐. 한 솥의 밥 먹으며 항상 다투느냐? 한 마음 한 뜻으로 농사를 짓자꾸나. 한 집이 부유하면 옷과 밥을 분별하랴. 누구는 쟁기 잡고 누구는 소를 모니, 밭 갈고 논 갈아 벼를 심어 던져 두고, 날 좋은 호미로 김을 메자꾸나. 산 밭도 거칠었고 무논도 기워 간다. 사립피 말뚝 놓아 벼 곁에 세워라. 칠석에 호미 씻고 김을 다 맨 후에, 새끼 꼬기 뉘 잘하며, 섬은 뉘 엮으랴. 너희 재주 헤아려 서로 서로 맡아라. 가을 거둔 후면 성조(成造)를 아니하랴. 집일랑 내 지을게 움이란 네 묻어라. 너희 재주를 내 짐작하였노라. 너희도 먹을 일을 분별을 하려무나. 멍석에 벼를 넌들 좋은 해 구름 끼어, 볕뉘를 언제 보랴. 방아를 못 찧거든 거칠고 거친 올벼, 옥같은 백미 될 줄 뉘 알아 오겠는가.
너희네 데리고 새 살림 살자 하니, 엊그제 왔던 도적 아니 멀리 갔다 하되, 너희네 귀눈 없어 저런 줄 모르기에, 방비는 전혀 않고 옷 밥만 다투느냐. 너희네 데리고 춥는가 주리는가. 죽조반 아침 저녁 더 해다 먹였거든, 은혜란 생각 않고 제 일만 하려 하니, 사려 깊은 새 들이리 어느 때 얻어서, 집 일을 맡기고 시름을 잊으려뇨. 너희 일을 애달파 하면서 새끼 한 사리 다 꼬았구나.
💙핵심정리
▶연대 : 조선 선조 때(임진왜란 직후)
▶형식 : 3.4조 4.4조
▶성격 : 교훈적, 계도적, 경세적(警世的)
▶주제 : 나태하고 이기적인 관리들의 행태 비판
▶특징 : 신하들의 나태한 모습을 한 집안의 머슴들의 모습에 비유하여 나타냄.
💛이해와 감상
임진왜란 직후에 허전이 쓴 노래로, 국사(國事)를 한 집안의 농사일에 비유하여, 정사에 힘쓰지 않고 사리 사욕만을 추구하는 관리들을 집안의 게으르고 어리석은 머슴에 빗대어 통렬히 비판한 작품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그렇게 무참히 당하고 유교적 이상이 깨어진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여, 그러한 현실을 수습하려 들지 않는 신하들의 나태한 모습을 은유적 수법으로 잘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에서 지은이가 관료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 이면에 유교적인 이상 사회를 재건하려는 숭고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화답가(和答歌)로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가 있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이후 집권층이 정사(政事)보다는 당파 싸움에 힘쓰자, 작자가어른 종(영의정)의 입장에서, 종(신하)들을 나무라고마나님(임금)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지은 작품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 이매창(李梅窓) 계랑 1573~1610)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 劉希慶이 上京 후 소식이 없자 읊은 시조
-歌曲源流-
💜【현대어 풀이】
배꽃이 비 내리듯 흩날리는 날에, 서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가을바람 나뭇잎 떨어지는 이 때에 님도 나를 생각하고 계실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이화우 흩뿌릴 제」는 전라도 부안 출신 기생이었던 매창의 시조다. 매창은 계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이 작품이 실린 『歌曲源流』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하고 있다.
계랑은 부안의 이름난 기생으로 시를 잘 지어 『梅窓集』이 세상에 나와 있다. 촌은 劉希慶의 오랜 벗으로,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이에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1591년 봄 기생 梅窓은 부안에서 28세 연상의 劉希慶을 만나 시를 주고받다가 사랑에 빠졌다. 劉希慶은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참전했다. 15년 후 재회하고 같이 여행도 했으나, 梅窓은 열흘 만에 헤어지고 38세에 숨졌다.
❤️사미인곡 / 정철
원문
서사(緖詞)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ᄒᆞᆫᄉᆡᆼ 緣分(연분)이며 하ᄂᆞᆯ 모ᄅᆞᆯ 일이런가.
나 ᄒᆞ나 졈어 닛고 님 ᄒᆞ나 날 괴시니,
이 ᄆᆞ음 이 ᄉᆞ랑 견졸 ᄃᆡ 노여 업다.
平生(평ᄉᆡᆼ)애 願(원)ᄒᆞ요ᄃᆡ ᄒᆞᆫᄃᆡ 녜자 ᄒᆞ얏더니,
늙거야 므ᄉᆞ 일로 외오 두고 글이ᄂᆞᆫ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
그더ᄃᆡ 엇디ᄒᆞ야 下界(하계)예 ᄂᆞ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年(삼년)이라.
臙脂粉(연지분) 잇ᄂᆡ마ᄂᆞᆫ 눌 위ᄒᆞ야 고이 ᄒᆞᆯ고.
ᄆᆞ음의 ᄆᆡ친 설음 疊疊(텹텹)이 ᄡᅡ여 이셔,
짓ᄂᆞ니 한숨이오 디ᄂᆞ니 눈믈이라.
人生(인ᄉᆡᆼ)은 有限(유ᄒᆞᆫ)ᄒᆞᆫᄃᆡ 시ᄅᆞᆷ도 그지 업다.
無心(무심)ᄒᆞᆫ 歲月(셰월)은 믈 흐ᄅᆞ듯 ᄒᆞᄂᆞᆫ고야.
炎凉(염냥)이 ᄯᅢᄅᆞᆯ 아라 가ᄂᆞᆫ ᄃᆞᆺ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춘원(春怨)
東風(동풍)이 건듯 부러 積雪(젹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花(ᄆᆡ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ᄀᆞᆺ득 冷淡(ᄂᆡᆼ담)ᄒᆞᆫᄃᆡ 暗香(암향)은 므ᄉᆞ 일고.
黃昏(황혼)의 ᄃᆞᆯ이 조차 벼마ᄐᆡ 빗최니,
늣기ᄂᆞᆫ ᄃᆞᆺ 반기ᄂᆞᆫ ᄃᆞᆺ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ᄆᆡ화) 것거 내여 님 겨신 ᄃᆡ 보내오져.
님이 너ᄅᆞᆯ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하원(夏怨)
ᄭᅩᆺ 디고 새 닙 나니 綠陰(녹음)이 ᄭᆞᆯ렷ᄂᆞᆫᄃᆡ,
羅幃(나위) 寂寞(젹막)하고, 繡幕(슈막)이 뷔여 잇다.
芙蓉(부용)을 거더 노코 孔雀(공쟉)을 둘러 두니,
ᄀᆞᆺ득 시ᄅᆞᆷ 한ᄃᆡ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鴦錦(원앙금) 버혀 노코 五色線(오ᄉᆡᆨ션) 플텨 내여,
금자ᄒᆡ 견화 이셔 님의 옷 지어 내니,
手品(슈품)은ᄏᆞ니와 制度(졔도)도 ᄀᆞᄌᆞᆯ시고,
珊瑚樹(산호슈) 지게 우ᄒᆡ 白玉函(ᄇᆡᆨ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ᄃᆡ ᄇᆞ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里 萬里(쳔리 만리) 길흘 뉘라셔 ᄎᆞ자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춘원(春怨)
東風(동풍)이 건듯 부러 積雪(젹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花(ᄆᆡ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ᄀᆞᆺ득 冷淡(ᄂᆡᆼ담)ᄒᆞᆫᄃᆡ 暗香(암향)은 므ᄉᆞ 일고.
黃昏(황혼)의 ᄃᆞᆯ이 조차 벼마ᄐᆡ 빗최니,
늣기ᄂᆞᆫ ᄃᆞᆺ 반기ᄂᆞᆫ ᄃᆞᆺ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ᄆᆡ화) 것거 내여 님 겨신 ᄃᆡ 보내오져.
님이 너ᄅᆞᆯ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하원(夏怨)
ᄭᅩᆺ 디고 새 닙 나니 綠陰(녹음)이 ᄭᆞᆯ렷ᄂᆞᆫᄃᆡ,
羅幃(나위) 寂寞(젹막)하고, 繡幕(슈막)이 뷔여 잇다.
芙蓉(부용)을 거더 노코 孔雀(공쟉)을 둘러 두니,
ᄀᆞᆺ득 시ᄅᆞᆷ 한ᄃᆡ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鴦錦(원앙금) 버혀 노코 五色線(오ᄉᆡᆨ션) 플텨 내여,
금자ᄒᆡ 견화 이셔 님의 옷 지어 내니,
手品(슈품)은ᄏᆞ니와 制度(졔도)도 ᄀᆞᄌᆞᆯ시고,
珊瑚樹(산호슈) 지게 우ᄒᆡ 白玉函(ᄇᆡᆨ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ᄃᆡ ᄇᆞ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里 萬里(쳔리 만리) 길흘 뉘라셔 ᄎᆞ자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추원(秋怨)
ᄒᆞᄅᆞ밤 서리김의 기려기 우러 녤 제,
危樓(위루)에 혼자 올나 水晶簾(수졍념) 거든 말이,
東山(동산)의 ᄃᆞᆯ이 나고 北極(북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光(쳥광)을 쥐여 내여 鳳凰樓(봉황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ᄒᆡ 거러 두고 八荒(팔황)의 다 비최여,
深山窮谷(심산궁곡) 졈낫ᄀᆞ티 ᄆᆡᆼ그쇼서.
💙동원(冬怨)
乾坤(건곤)이 閉塞(폐ᄉᆡᆨ)ᄒᆞ야 白雪(ᄇᆡᆨ셜)이 ᄒᆞᆫ 빗친 제,
사ᄅᆞᆷ은 ᄏᆞ니와 ᄂᆞᆯ새도 긋쳐 잇다.
蕭湘南畔(쇼상남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樓高處(옥루고쳐)야 더욱 닐러 므ᄉᆞᆷᄒᆞ리.
陽春(양츈)을 부쳐 내여 님 겨신 ᄃᆡ 쏘이고져.
茅簷(모쳠) 비쵠 ᄒᆡ를 玉樓(옥루)의 올리고져.
紅裳(홍샹)을 니믜 ᄎᆞ고 翠袖(ᄎᆔ슈)를 半(반)만 거더,
日暮脩竹(일모슈듁)의 헴가림도 하도 할샤.
댜ᄅᆞᆫ ᄒᆡ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燈(쳥등) 거른 겻ᄐᆡ 鈿空篌(뎐공후) 노하 두고,
ᄭᅮᆷ의나 님을 보려 ᄐᆡᆨ 밧고 비겨시니,
鴦錦(앙금)도 ᄎᆞ도 챨사 이 밤은 언제 샐고.
💙결사(結詞)
ᄒᆞᄅᆞ도 열 두 ᄯᅢ ᄒᆞᆫ ᄃᆞᆯ도 셜흔 날,
져근덧 ᄉᆡᆼ각 마라 이 시ᄅᆞᆷ 닛쟈 ᄒᆞ니,
ᄆᆞ음의 ᄆᆡ쳐 이셔 骨髓(골슈)의 ᄭᅦ텨시니,
扁鵲(편쟉)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ᄒᆞ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ᄎᆞᆯ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 ᄃᆡ 죡죡 안니다가,
향 므든 날애로 님의 오ᄉᆡ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ᄅᆞ샤도 내 님 조ᄎᆞ려 ᄒᆞ노라.
(글꼴이 설치되지 않은 경우 원문이 깨져나올 수 있으니 원문 확인은 아래 '출처 - 원문'을 참조)
💛해석
💜서사(緖詞)
이 몸 생겼을 때 임을 좇아 생겼으니,
한평생의 연분임을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하나 젊어 있고 임 하나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가 전혀 없다.
평생에 원하오되 함께 지내자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로이 두고 그리는고.
엊그제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하계에 내려왔느냐.
올 적에 빗은 머리 헝클어진지 삼년이라.
연지분이 있지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할꼬.
마음에 맺힌 설움이 첩첩이 쌓여 있어
짓는 것이 한숨이고 지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은 끝이 없다.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는 듯 하는구나.
더위와 추위가 때를 알아 가는 듯 다시 오니
듣고 보고 느낄 일도 많기도 많구나.
💜춘원(春怨)
동풍이 건듯 불어 쌓은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냉담한데 그윽한 향은 무슨 일인고.
황혼의 달이 쫓아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흐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 내어 임 계신 데 보내고 싶구나.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꼬.
💜하원(夏怨)
꽃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깔렸는데,
비단 장장이 적막하고 수놓은 장막이 비어 있다.
연꽃 휘장을 걷어 놓고 공작 병풍을 둘러두니,
가뜩이나 시름 많은데 날은 어찌 길었던고.
원앙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 풀어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 임의 옷 지어내니,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보석 지게 위의 백옥함에 담아두고
임에게 보내오려 임 계신 데 바라보니,
산인가 구름인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리만리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본 듯 반기실까.
💜추원(秋怨)
하룻밤 서리 김에 기러기 울며 갈 적에
높은 누각에 혼자 올라 수정발을 걷으니,
동산의 달이 뜨고 북극의 별이 보이니
임이신가 하여 반기니 눈물이 절로 난다.
맑은 빛을 쥐어 내어 궁궐에 부치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두고 온 세상 다 비추어,
깊은 산골에도 대낮같이 만드소서.
💜동원(冬怨)
천지가 얼어붙어 막히고 흰 눈이 한 빛깔인 때,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날짐승도 그쳐 있다.
소상강 남쪽도 추위가 이렇거든
임 계신 곳이야 더욱 일러 무엇하리.
봄기운을 부쳐 내어 임 계신데 쏘이고자 한다.
띳집 처마에 비친 해를 대궐에 올리고자 한다.
붉은 치마를 여며 입고 푸른 소매를 반만 걷어
해 질 무렵 긴 대나무에 헤아림도 많기도 하구나.
짧은 해가 쉬이 지어 긴 밤을 꼿꼿이 앉아,
푸른 등 걸어둔 곁에 전공후 놓아 두고,
꿈에나 임을 보려 턱 받치고 비껴 있으니,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 샐꼬.
💜결사(結詞)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깐 동안 생각 말아 이 시름 잊자 하니,
마음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꿰쳤으니,
명의가 열이 와도 이 병을 어찌하리.
아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서 범나비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좇으려 하노라
💛
갈래 = 가사
형식 = 고려속요의 영향을 받은 연속체 가사
주제 = 임금님을 그리워하는 충절의 정서
●해석과 해설●
❤️상사곡(相思曲) / 박인로
춘창(春窓)에 늦게 일어 유회(幽懷)를 둘 데 없어
임풍(臨風) 초창(怊悵)1)하여 사우(四隅)2)로 돌아보니
온갖 꽃 다 피어 그린 듯이 고운데
탐화(探花) 봉접(蜂蝶)들은 다투어 다니거든
버들 위에 꾀꼬리는 쌍쌍(雙雙)이 비끼 날아
쫓기거니 따르거니 금(갏)북을 던지는 듯
한 소리 두 소리 높으락낮으락
무정(無情)히 울건마는
어찌한 내 귀에는 유정(有情)하게 들리는구나
저 같은 미물(微物)도 자웅(雌雄)을 각각(各各) 생겨
교태(嬌態) 겨워 논다마는
최귀(最貴)한 사람은 새만도 못하구나
박명(薄命) 인생(人生)은 만물 중(萬物中) 불쌍하다
가을밤 채 긴 제3) 적막(寂寞)한 방(房) 안에
어둑한 그림자 말 없는 벗이 되어
고등(孤燈)을 도진(挑盡)하고4) 전전반측(輾轉反側)하여
밤중만 어느 잠이 오동비에 깨달으니
구곡(九曲) 간장(肝腸)을 끊는 듯 째는 듯
새도록 끓인다
하물며
풍청(風淸) 월백(月白)하고 삼경(三갂)이 깊어 갈 제
동창(東窓)을 더디 닫고 외로이 앉았으니
님의 낯에 비친 달이 한빛으로 밝았으니
반기는 진정(眞情)은 님을 본 듯하다마는
님도 달을 보고 나를 본 듯 반기는가
저 달을 높이 불러 물어나 보고전들
구만리(九萬里) 장천(長天)에 어느 달이 대답하리
묻지도 못하니 눈물질 뿐이로다
어디 뉘 말이
춘풍(春風) 추월(秋月)을 흥(興) 많다 하던게오
어찌한 내 눈에는 다 설워 보인다
봄이라 이러하고 가을이라 그러하니
구수(舊愁) 신한(新恨)5)이 첩첩(疊疊)이 쌓였구나
천황(天荒) 지로(地걛)한들6) 이내 한(恨)이 그칠 것이냐
몇 백세(百歲) 인생(人生)이 천세우(千歲憂)를 품어 있어
못 보는 저 님을 이렇게까지 그리는가
잠시 동안 아주 잊어 팽개쳐 던져 두자
수(겤) 있는 이합(굒合)을 힘대로 할 것이냐
언약(言約)을 굳이 믿고 기다려는 보려구나
영허(盈虛) 비태(否泰)7)는 천도(天道)가 자연(自然) 그러하니
초승에 이지러진 달도 보름에 둥글거든
청춘(靑春)에 나눈 거울 이제 아니 모을소냐
기신(其新)도 공가(孔嘉)커든 기구(其舊)가 어떠할 것이니8)
흰머리 속에 소년정(少年情)을 가져 있어
산수(山水) 갖은 골에 초막(草幕)을 좁게 짓고
용치 못한 생애(生涯)를 유여(有餘)코저 바라겠나
[어휘 풀이] 1) 초창 : 한탄스러우며 슬픔. 2) 사우 : 사방. 3) 채 긴 제 : 아주 길어진 때. 4) 고등을 도진하고 : 외따로 켜 있는 등불의 심지를 돋우어 태우고. 5) 구수 신한 : 옛날의 근심과 새로운 한스러움. 6) 천황 지로한들 : 오랜 시간이 흐른들. 7) 영허 비태 : 천체의 빛이 그 위치에 의하여 증감하는 현상으로서 가득 참과 이지러짐, 막힌 운수와 터진 운수로서 불행과 행복을 아울러 이르는 말. 8) 기신도 공가커든 기구가 어떠할 것이니 : 신혼 때 그토록 즐거웠는데, 오래된 옛정은 지금이야 어떠하랴.
●현대어💜
봄날에 늦게 일어나 그윽한 회포 둘 데가 없어
바람을 맞으니 더욱 슬퍼져 사방을 돌아보니
온갖 꽃들이 다 활짝 피어 그림을 그린 듯이 아름다운데
꽃을 탐하는 벌과 나비는 다투어 날아다니며 봄을 즐기거늘
버들가지 위의 꾀꼬리는 쌍쌍이 비스듬히 날아다니며
서로 쫓기고 따르는 꾀꼬리의 모습이 금북을 던지는 듯하고
한 소리 두 소리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아무 의미 없이 울건마는
어찌하여 내 귀에는 의미있게 들리는구나!
저 같은 미물인 꾀꼬리도 암수로 각각 태어나
서로 아양을 부리며 놀고 있지만 최고로 귀한 인간인 나는 새만도 못하구나.
박명한 인생은 만물 중에서 가장 불쌍하구나.
가을밤 아주 길어진 때 적막한 방 안에
어둑한 (내) 그림자가 말 없는 벗이 되어
외따로 켜 있는 등불의 심지를 돋우어 태우고, 엎치락 뒤치락 잠을 못 이루어
한 밤중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깨달으니
구곡간장을 끊는 듯, 칼로 째는 듯 밤새도록 애를 끓인다
하물며
바람소리 맑고 달이 밝아 밤이 깊어갈 때
동창을 늦게 닫고 외로이 앉았으니
임의 얼굴에 비추는 달이 같은 빛으로 (나 있는 곳에서도) 밝으니
달을 반기는 마음은 임을 본 듯 기쁘다마는
임도 달을 보고 나를 본 듯 반가워할까?
저 달을 큰 소리로 불러 물어나 보고 싶지만
아득히 높고 먼 하늘에 어떤 달이 대답할까?
묻지도 못하니 눈물만 흐를 뿐이로다.
어느 누가 말하기를
봄바람 가을달을 흥이 많다고 했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내 눈에는 다 서러워 보이는가?
봄에도 서럽고 가을에도 서러우니
옛날의 근심과 새로운 한이 겹겹이 쌓였구나.
오랜 시간이 흐른들 이내 한이 그칠 것인가?
몇 백 년을 사는 인생이 천년 뒤를 걱정하며 살아
못 보는 저 임을 이렇게까지 그리워하는가?
(임 생각을) 잠시 동안 아주 잊어 팽개쳐 던져 두자.
운명으로 정해진 헤어지고 만남을 내 힘으로 바꿀 수 있겠느냐?(임금과 헤어짐과 만남을 화자 자신의 뜻할 수 없음)
임과 했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려 보겠노라.(임과의 재회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하늘이 정해준 운수가 자연히 그러하니
초승에 지러진 달도 보름에는 둥글게 되는데
청춘 시절에 정표로 나누어 가진 거울 이제 아니 모으겠느냐?(거울이 곧 모일 때가 되었으므로 곧 임을 수 있다.)
신혼 때 그토록 즐거웠는데, 오래된 옛정은 지금이야 어떠하랴(더욱 그립다)
몸은 늙었지만 어린 시절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
산수 간 골짜기에 초가집을 작게 짓고
용하지 못한 삶에 여유까지 바라겠는가?
핵심정리💛
▶갈래 : 가사(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
▶성격 : 애상적, 대조적, 비유적, 감각적
▶주제 : 변함없는 연군의 정(연군지정(戀君之情))
▶특징 : 군신관계를 남녀관계에 빗대어 우의적으로 형상화. 사랑하는 임(여성)과 이별한 장부(丈夫남성 화자)가 화자로 등장(남성 화자는 임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지만 임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상태임. 임은 지상계에 존재하는 여성이라는 사실만 드러날 뿐 구체적 정보는 없음)
이해와 감상
장부(丈夫)가 임을 절절히 그리워하는 형식을 빌려 변함없는 연군(戀君)의 정을 읊은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로, 박인로의 가사 작품 중 하나이다. 노계가집(경오본)에 실린 작품으로, 임과 이별한 화자의 처지, 이별의 안타까움과 임에 대한 그리움, 임과의 재회를 바라는 심정, 그리고 임에 대한 변함없는 일념을 드러내고 있다.
❤️상사곡(相思曲) / 박인로
가을밤 아주 긴 때 적막한 방 안에
어둑한 그림자 말 없는 벗이 되어
외로운 등 심지를 태우고 전전반측(輾轉反側)하여
밤중에 어느 잠이 ㉠빗소리에 깨어나니
구곡간장(九曲肝腸)을 끊는 듯 째는 듯 새도록 끓인다
하물며 맑은 바람 밝은 달 삼경(三更)이 깊어 갈 때
동창(東窓)을 더디 닫고 외로이 앉았으니
임의 얼굴에 비친 달이 한 빛으로 밝았으니
반기는 진정(眞情)은 임을 본 듯하다마는
임도 달을 보고 나를 본 듯 반기는가
저 달을 높이 불러 물어나 보고 싶은데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의 어느 달이 대답하리
묻지도 못하니 눈물질 뿐이로다
어디 뉘 말이 춘풍추월(春風秋月)을 흥(興) 많다 하던가
어찌한 내 눈에는 다 슬퍼 보이는구나
봄이라 이러하고 가을이라 그러하니
옛 근심과 새 한(恨)이 첩첩이 쌓였구나
세월이 아무리 흐른들 이내 한이 그칠까
몇 백세(百歲) 인생이 천년의 근심을 품어 있어
못 보는 저 임을 이토록 그리는가
잠깐 동안 아주 잊어 후리쳐 던져두자
운수에 정해진 만남과 이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언약을 굳게 믿고 기다려는 보자구나
행복과 불행은 하늘의 이치에 자연 그러하니
초생(初生)에 이지러진 달도 보름에 둥글듯이
청춘에 나눈 거울 이제 아니 모을소냐
신혼에 즐거웠거늘 오랜 옛정이 지금이라고 어떠하랴
흰머리 속의 소년의 마음을 가져 있어
산수(山水) 갖춘 고을에 초막(草幕)을 작게 짓고
편안치 못한 생애를 유여(有餘)하고자 바랄소냐
두세 이랑 돌밭을 갈거니 짓거니
오곡이 익거든 조상 제사 받들고 성경(誠敬)을 이룬 후에
있으면 밥이오 없으면 죽을 먹고
좋은 일 못 보아도 궂은 일 없을지니
오십에 아들 낳아 자손 아기 늙도록
일생에 덜 밉던 정을 밉도록 좇으리라
●❤️상사곡(相思曲) / 박인로
처음 인연 맺을 적에 이리 되자 맺었는가
비익조(比翼鳥)* 부부 되어 연리지(連理枝)* 수풀 아래
나무 얽어 집을 짓고 나무 열매 먹을망정
이생 뜻으란 하루도 이별 때를 보지 말자 원하더니
동서(東西)에 따로 두고 그리기에 다 늙었다
예부터 이른 말이 견우직녀를
천상인간(天上人間)에 불쌍하다 하건마는
그렇다 저희는 한 해에 한 번을 해마다 보건마는
애달플사 우리는 몇 은하(銀河)가 가려서 이대도록 못 보는고
명황(明皇)은 귀비(貴妃)를 죽어서나 헤어지니
섧다 섧다 한들 우리같이 설울런가
(A)살아서 못 보니 더욱 하나 망극(罔極)하다
수심(愁心)은 불이 되어 가슴에 피어나니
절로 난 그 불이 남의 탓도 아니로되
내해 하 설워 수인씨(燧人氏)*를 원(怨)하노라
함양(咸陽) 궁전(宮殿)이 다만 삼월(三月) 붉었어도*
지금에 그 불을 오래 탔다 하건마는
이 원수(怨讐) 이 불은 몇 삼월을 지내언고
눈물은 장마 되고 한숨은 바람이 되어
불거니 뿌리거니 그칠 적도 없으니
이 비로 저 불을 끔 직도 하다마는
어떠한 불인지 풍우(風雨) 중에 타노왜라
수화상극(水火相剋)이 거짓말이 되었구나
피거니 뿌리거니 승부(勝負) 없이 싸우거든
조그마한 몸은 ㉡전장(戰場)이 되었나다.
아이고 하느님아 칠석(七夕) 비 내리어 이 싸움 말리소서
불쌍한 이 몸은 살까 여겨 바라내다.
* 비익조 :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달려 있어 암컷과 수컷이 좌우 한 몸이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는 전설상의 새.
* 연리지 :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
* 수인씨 : 인간에게 불을 쓰는 법을 알려 주었다는 전설상의 인물.
* 함양 군전이 다만 삼월 붉었어도 : 항우가 진나라를 함락시킨 후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의 궁전을 불살랐는데, 석 달이나 붉게 타올랐다고 함.
❤️사노친곡(思老親曲) 십이장 / 이담명
봄은 오고 ᄯᅩ 오고 플은 플으고 ᄯᅩ 풀으ᄂᆡ
나도 이 봄 오고 이 풀 프르기 ᄀᆞ티
어ᄂᆞ 날 고향(故鄕)의 도라가 노모(老母)ᄭᅴ 뵈오려뇨
💜현대어역
봄은 오고 또 오고 풀은 푸르고 또 푸르고
나도 이 봄 오고 이 풀 푸른 것 같이
어느 날 고향에 돌아가 노모를 뵐 것인가
친년(親年)은 칠십외오 영로(嶺路)ᄂᆞᆫ 수천 리오
도라갈 기약(期約)은 가디록 아ᄃᆞᆨᄒᆞ다
아마도 ᄌᆞᆷ 업슨 중야(中夜)의 눈믈 계워 셜웨라
*친년(親年) : 어머니 연세
💜현대어역
어머니 연세는 칠십오 세요 고갯길은 수천리네.
돌아갈 기약은 갈수록 아득하구나
아마도 잠 없는 한밤에 눈물겨워 하노라.
적리(謫裏) 광음(光陰)은 사 년이 ᄇᆞᆯ셔 되고 천외(天外) 가향(家鄕)은 만 리예 아ᄃᆞᆨᄒᆞ니
몸이 못 가거든 기별(奇別)이나 드ᄅᆞᄃᆡ야
아마리 척흘첨망(陟屹瞻望)을 말랴 ᄒᆞᆫᄃᆞᆯ 어들쏜가.
*적리 : 유배지
*척흘첨망 :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봄
💜현대어역
유배지에서의 세월은 사 년이 벌써 되고 하늘 밖 집과 고향은 만 리에 아득하니
몸이 못 간다면 어머니의 기별이나 들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보는 것을 그만두라고 한 들 어쩔 수 있겠는가?
내 죄ᄅᆞᆯ 아ᄋᆞᆸ거니 유찬(流竄)이 박벌(薄罰)이라
도처(到處)에 성은(聖恩)을 어이 ᄒᆞ야 갑ᄉᆞ올고
노친(老親)도 플텨 혜시고 하 그리 마오쇼셔
*유찬이 박벌이라 : 유배를 보낸 것이 가벼운 벌이라
*플텨 혜시고 : 널리 이해하시고
💜현대어역
내 죄를 아노니 유배 보낸 것이 가벼운 벌이로라
도처에 있는 임금의 은혜를 어찌 갚지 않을 것인가
늙은 어머니도 널리 이해하시고 너무 그렇게 슬퍼 마시옵소서
💙핵심정리
▶주제 : 유배지에서 느끼는 노모에 대한 그리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작자가 유배지에서 고향에 계신 노모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연시조이다. 봄이 또 오고 풀이 또 푸르듯 다시 제 본모습으로 돌아오는 자연현상과는 달리 화자는 유배지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를 말하고 있으며 고향집에 계시는 노모에 대한 소식이라도 알고 싶어하지만 여의치 않음을 한탄하고 있다.
